정통신학&개혁신학

개혁 신학의 중심과 방향

형람서원 2008. 4. 2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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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신학의 중심과 방향


고경태 목사


  ‘개혁’은 많은 지성인, 선각자들이 좋아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일반 사회와 모든 종교의 다양한 방면에서 ‘개혁’은 사용된다. 기독교 진영에는 ‘개혁파’ 신학이 있음으로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게 될 때 세속의 개혁의 정의에 휩싸이게 된다. 세속의 개념, 일반 종교의 개념은 개혁파 신학의 개혁의 정의와 다르다. 그러므로 개혁파에서 지향하는 중심과 방향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개혁 신학의 중심


  개혁 신학의 중심에는 ‘칼빈’이 있다. 칼빈이 사역한 제네바 교회는 개혁 교회의 원형이다. 제네바에서 교육받은 죤 낙스(John Knox, 1513-1572)와 네델란드, 프랑스 개혁파의 후예들이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죤 낙스는 장로교, 네델란드 칼빈파는 개혁파로 개혁 신학의 큰 축을 세웠다. 그런데 프랑스는 위그노 전쟁(1562년 - 1598년)1)으로 말미암아 세력이 쇠퇴하여 명맥이 거의 소멸하여 프랑스에서 영향력있는 신앙의 모습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개혁신학의 중심은 ‘칼빈’의 신학이다. 개혁 신학의 중심은 칼빈 신학의 중심과 동일하다. 칼빈 신학의 본질은 [기독교강요]에 나타난다. 기독교강요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대별된다. 두 지식 사이에 ‘사람을 아는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은 한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개혁 신학의 방향


  개혁 신학의 방향은 먼저 르네상스2)의 방향과 한 축이 동일하다. 그것은 르네상스와 동일한 시대에 발생한 종교개혁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성경 중심의 신학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문주의의 에라스무스가 희랍어 성경을 편집하여 종교개혁의 원문을 제공하였다. 칼빈은 에라스무스(1469. 10. 27 네덜란드 로테르담~1536. 7. 12 스위스 바젤)의 성경 해석을 비판하였지만 그가 제공한 희랍어 성경 본문을 소개하는 것은 라틴어 성경이 주효했던 당시 상황에서 큰 영향력을 주었다. 종교개혁신학에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한 것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는 개혁 신학의 방향이 과거의 한 근원을 갖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초대 교회이다. 교회의 개혁은 교회의 원형인 초대 교회로,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형태로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초대 교회의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전혀 반대되는 로마교회를 개혁하고 기독교를 회복하는 운동이다.


  둘째, 개혁 신학의 방향은 ‘영생’을 향한다. ‘영원한 본향’으로 지향하는 신학은 여전히 신비를 유지하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천상 통치를 하시는 만유의 주이심을 고백하며, 주의 보좌로 나아가길 원한다. 성경대로 보좌로부터 나오는 생명수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신학에서 영생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바람직한 기독교를 세우지 못한다. 현세의 목표나 목적을 가는 것은 개혁 신학이 아니다.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적합한 구조로 개혁해야 한다. 그러한 구조가 기독교 원형의 개진을 의미한다.


   신학의 이해는 더욱 광범위해지고 있다. 다양한 신학 정보는 신학의 깊이를 소홀히 하게 하였다. 풍성한 신학 세계는 신학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해 참과 진리, 분리와 구분을 하지 못하는 혼동을 가져왔다. 다양한 신학 사회에서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과거의 원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동적인 신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영생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 신학의 방향은 두 축으로서 ‘원전으로 돌아가자’와 ‘영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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