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매일성경, 07-09-18] 사도행전 7:17-29 스데반의 설교(2)

형람서원 2007. 9. 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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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07-09-18] 사도행전 7:17-29  스데반의 설교(2)


제목: 스데반의 설교(2)

내용: 스데반의 설교가 요셉과 모세의 일생을 진술합니다. 모세의 탁월함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하고, 광야로 도주함까지 진술합니다.


17-18절)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과 고난의 시작

    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17절) 칼빈은 430년 동안의 급격한 인구 증가가 비정상적 것으로 인식하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이며, 초자연적인 질서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에 애굽의 가혹한 폭정은 너무나 대조적인 현상입니다. 애굽의 폭정, 가혹한 노동 착취와 남자아이의 학살은 히브리인들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그 속에서 이루어져 모세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며, 또 깊은 곳으로 끌어 내리시기도 하시고 다시 끌어 올리시기도 하시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한나는 이 역사를 기억하면서 신앙고백을 한 것인가?)


   19. Dealt subtilely. The old interpreter did not translate this amiss, to deceive(“Circumvenire,”1) to circumvent=우회하다. κατασοφισαμενος). “옛 번역가는 이 부적절한 것을 속이는 것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스데반은 비록 바로의 행동이 정당하게 보일지라도 폭군들의 속임수에 대해서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즉 바로는 교활하게 자유인인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얼마나 쉽게 그리고 자기 목적에 의해서 은혜를 저버릴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사람과 사람에서도 미움을 받는 것으로,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것도 미움을 받게 됩니다.

    Lest they should be increased. Erasmus translateth this improperly, in my judgment. For [Ζωογονεισθαι] expresseth more than lest their children should live. 칼빈은 에라스무스의 번역을 거부하고, ‘그들의 어린이들을 살지 못하게 함’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데반은 애굽의 잔악함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잔인성의 한 예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파멸의 위기에 있는 것임을 강조하며, 반면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20-29절) 모세의 초반부의 삶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21.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27.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20절) 스데반은 모세가 태어난 상황을 묘사함으로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과 인도하심을 부각시키며, 히브리인의 구원의 절박함을 묘사합니다.


   22절)  Luke reporteth that he was taught in all wisdom of the Egyptians, 누가는 모세가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고 보고합니다. 모세의 탁월함을 칭찬하는 것은 육체적인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준비시킴의 섬세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증거하기 위하여 독특한 경륜과 작정(singular counsel and order)에 의한 것이라는 것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2)

  칼빈은 애굽의 학문을 익힌 모세에 대해서, 천문학(매우 유용하고 칭찬받을 만한 학문) 등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학문은 무식한 사람들도 깨달을 수 있는 것으로 평범의 능력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겸허한 태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져스틴(Justin)이 홍해를 가름을 모세가 애굽에서 배운 마술로 했다고 찬양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폐지하는 것으로 적극 거부하였습니다.

   칼빈은 애굽의 마술의 신비의 신학(mysticam theologiam)의 속임수는 교황주의자들도 (성무일과,the Rationall [Rationale] of Divine Offices)활용하여 무의미한 의식에서 하나님께로서 온 것으로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He was mighty.   금상첨화(錦上添花), 히브리 사람들은 이 이중적인 표현(was powerful in speech and action)을 통해서 모세의 탁월성을 강조함으로 사용했습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탁월성이 구속의 종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백성에게 주지 못했다고 칼빈은 이해합니다.3)


   23. When the time was fulfilled. 원문에는 23. ως δε επληρουτο αυτω τεσσαρακονταετης χρονος, fulfilled가 있지만, NIV에서와 개역성경에는 ‘충만, 때가 차매’가 빠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세가 초기부터 동족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스데반은 정 반대로 하나님의 성령은 때가 차매 모세의 마음을 각성시켜 무관심했던 형제들을 찾아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왕실에서 모세의 출신은 다 알고 있었지만, 모세는 동족에게 자기 표현을 하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모세는 자기의 희망과 정반대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마음에 일어난 반전, 새로운 관심은 성령의 새롭고 신기한 감동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것입니다.4)


   24. When he saw a certain man.  모세에게 자기 백성을 돌보는 사명과 백성이 당한 원통한 일을 당함을 보는 것을 보고 행한 살인이 자기 권한 밖이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은 성령의 역사라고 제시합니다.5) 모세의 활동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활동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26.The day following he appeared. 그러한 모세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거절하고 오히려 자기의 욕심에 몰두합니다. “비록 악한 행위가 한 사람에게서 발생했다할지라도 그 거부는 모든 백성이 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것은 그 악한 행위를 모든 백성이 동조했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허락입니다. 그러므로 조속히 구원받지 못함은 백성들의 허물인 것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악함이 하나님의 역사를 지연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Men ye are brethren.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일치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치가 깨어질 때에는 서로가 피해를 입게 됩니다. 히브리 백성의 불일치는 서로의 피해를 가져오는 것임으로 모세는 그들이 형제임을 자각시켜, 포악성을 완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노력은 무의가 되며, 오히려 백성들은 모세에게 합세하여 공격을 합니다. 모세가 그들의 재판관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27절). 우리는 이웃의 실수를 고쳐주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분노를 터뜨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자기의 격분을 절제하는 수고가 필수적입니다. 악한 행동을 하는 백성들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비록 모세처럼 소명은 받았지만, 소명을 성취는커녕, 수행할 수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동족의 최고의 이익을 저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을 감행하게 되어 모세가 광야로 쫓겨 가지만, 자신들 또한 40년 동안을 더 고통에 매여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단의 술책인 선을 오히려 악으로 매도하여 공격하는 것을 깨뜨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모세에게는 백성을 구원하려는 열망이 있었지만, 사단의 영적 궤계를 이길 능력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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