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07-09-16] 사도행전 6:8-15 스데반의 사역
제목: 스데반의 사역
내용: 2-5장까지는 사도의 사역이었고, 6-8장까지는 집사(스데반(7장)과 빌립(8장))의 사역이 진행됩니다.
7-10절)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의 지혜를 감당하지 못하는 회당 사람들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members of the Synagogue of the Freedmen , called the synagogue of the Libertines)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공동번역=자유인의 회당에 소속된~)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7절) 1절(was increasing)과 7절(increased rapidly)의 증가됨은 서로 뉘앙스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1절은 문제가 야기되는 성장이며, 7절은 문제가 해결됨으로 급속하게 성장되는 현상입니다. 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사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거룩과 순종으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the Word of God did grow, 는 그 말씀이 멀리 퍼져 나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제자의 수도 많아짐으로 교회가 외적과 내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And a great company. 환유법(換諭法, metonymia)1)으로 ‘도(道)’로 번역되었지만, 영역에서는 ‘faith’로 번역되었습니다. ‘믿음’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교의 실질적인 신앙고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째든지 그리고 소수이든지 다수이든지 복음의 적대자인 제사장들이 개종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사울의 회심을 기대하게 합니다.
8. And Stephen 누가는 여기서부터 새로운 교회의 전투로 전환을 기술합니다. 복음의 영광은 언제나 십자가와 그리고 여러 가지 고통과 더불어 있다는 것도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교회를 공격하는 무리들은 한 사람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한다는 것이며, 적의 큰 용기로 무고한 피를 흘리는 잔인한 분노를 폭발시키지만(이전에는 때리거나 투옥시켰는데...) 복음의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합니다. “누가는 스데반의 생전에서나 죽음에서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스데반이 ‘믿음과 능력이 충만했다’고 시작한다.” 믿음은 지혜의 은사만이 아니요, 뜨거운 열심도 포함된 것입니다. 본문으로 추론하자면 스데반은 복음의 가르침을 펼치는 일에 쉬지 않았고 담대하게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9. And there arose certain. was called the synagogue of the Libertines 사도행전 초기에 공회의 교회를 핍박함으로 그리스도께 대적함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 핍박은 폭력과 살인까지 동반하였습니다.
리버디노(Libertines)이들은 본래 유대인이었으나 B.C. 53년 폼페이(Pompeii)의 유대 토벌 후 로마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자유인이 된 사람들의 후손입니다(the Libertines, KJV; the Freedmen, NIV) 로마의 시민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 회당을 건립하여, 율법데로 예루살렘에 올라온 율법에 열심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탁월한 열심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리스도를 반대하여 분노를 격발합니다. 여러 나라의 사람이 모였지만, 한 사람, 스데반을 능가하지 못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깃발이 올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사람의 숫자에 있지 않고,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패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스데반과 싸운 것이 아니라, 스데반의 입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과 맞서 싸웠기 때문입니다. “우리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동일한 성령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진리를 위하여 성실하게 싸우자!”And forasmuch as Christ hath promised the same Spirit to all his servants, let us only defend the truth faithfully, and let us crave a mouth and wisdom of him, and we shall be sufficiently furnished to speak, so that neither the wit, neither yet the babbling of our adversaries, shall be able to make us ashamed.
11-15절) 집중 공격 속에서 천사의 얼굴을 한 스데반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12. 회중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더 이상 대항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짓 증인을 매수하든지, 아니면 가르침에 순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을 매수하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멸절시키기 위한 잔인한 방법으로 몰아칩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는다면 사단의 공격을 버틸 수 없습니다.
14. This Jesus of Nazareth. 스데반이 율법의 폐기에 대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말 ‘이 곳을 헐고’와 ‘모세가 전해진 규례를 고치겠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 또한 율법이 그림자이며, 외형이고 본체가 아니라고 이해한 것에 준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폐지는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외형적 율법 준수가 폐지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율법을 완성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율법의 창시자께서 율법을 완성함이 율법의 폐지가 됩니다. 즉 율법의 완성자가 오심으로 율법이 더 이상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율법의 준수에 의한 구원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성취됨으로 구원의 수단으로서 율법이 폐기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용도로 율법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백성들의 오해로 율법이 구원의 표준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율법은 법의 기능처럼 부패방지, 완전한 것을 기다리도록 한 하나님의 구원의 임시적인 방편입니다.
Shall change the ordinances. 스데반은 율법의 의식의 아주 일부분만을 의미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외부적인 과장에 몰입하기 때문에, 스데반이 마치 율법을 모욕하는 것처럼 해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외부적인 의례를 일단 눈에 봄으로 구약의 희생제사를 모세의 특별한 규례로 생각한 것입니다. 교황주의자들이 유대인과 다른 것은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의 방식으로 되어있지만, 교황주의자들은 자기들이 고안해 낸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기독교를 핍박했듯이, 로마교회는 개혁교회를 핍박합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실된 하나님의 사역을 훼방합니다.
We have heard 스데반은 모세나 성전에 관해서 결코 존경의 생각을 갖지 않고 이야기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스데반의 진술에서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율법이 폐기됨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하기로 결정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성실하고 정확하며 유익한 일들이 짓궂게도 뒤집혀서 받아들여지고 썩어진 생각으로 곡해될 때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사단의 시험에서 면제되는 것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시험과 환란이 닥쳐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이나, 하나님의 진리는 사단이 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부과된 의무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정직하지 않는 것은 용납되지 않으며, 성실하게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혹자들은 인간이 모든 죄와 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노예가 됨(완전부패에 대한 교리)으로 타락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것은 죄인은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서 범죄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義)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아카데미 철학파는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하나님을 폭군으로 이해한다고하여 고상하게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려지는 영광도 함께 거부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스데반이 하나님과 모세를 모독했다는 것으로 고소를 당하게 됩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거부하며 오해하게된 근본적이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모세도 하나님도 성경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참 성전의 영상에 불과하며, 율법 또한 외형적이며 일시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모세를 훼방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15.And when they had beheld. 재판장에서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은 평상 시의 얼굴이 아니라, 그 순간에 보여준 스데반의 얼굴입니다. 천사처럼 보인 스데반의 얼굴을 그들의 포악한 죄악 속에서도 보여준 마지막 표적입니다. 사무엘상 29장 9절, 사무엘하 14장 17절, 19장 27절 등 하나님의 사자의 모습으로 얼굴이 보임으로, 보는 자의 마음을 평온케 하였습니다. 즉 ‘천사’라는 단어로 유추법(類推法, analogy)을 사용하여 탁월한 평온의 상태를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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