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매일성경, 07-09-20] 사도행전 07:44-53 스데반의 설교(4)

형람서원 2007. 9. 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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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07-09-20] 사도행전 07:44-53 스데반의 설교(4)


제목: 스데반의 설교(4)

내용: 스데반의 설교, 장막, 성전에 하나님을 포용할 수 없습니다.



44-50절) 장막, 성전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44. The tabernacle of witness. 스데반은 이스라엘이 각종 미신에 의해서 스스로 타락한 것을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못하면 조상 탓, 잘하면 내 탓?)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방식을 규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규정 외에 인간의 고안을 첨가하는 것과 성전 자체의 규정 외에 다른 기능을 첨가하는 것은 규정을 어긴 사람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장막과 성전을 그림자로 두셔서 실체를 바라 볼 수 있기를 원하셨는데, 유대인들은 그림자에 만족했으며, 실체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 규정을 조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외적인 제사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증거의 장막”이 있음으로 더욱 범죄하지 않아야 될 백성이 죄악에 빠졌습니다. 즉 주인의 뜻을 안 종이 그 뜻을 이행하지 않아 더욱 심하게 매를 맞는 형색이 됩니다(눅 12:47). 참된 예배와 우상숭배 사이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즉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행하려고 하지 않지만” 자기들에게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나 하도록 권리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뜻을 법으로 생각하고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정해 놓으신 것만을 인정하십니다. “증거”의 장막이라는 것은 정해진 장소와 시간 그리고 총회(백성의 회집)와 관계됩니다. 여호와께서는 백성과 그곳에서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장막”은 언약과 주의 말씀으로 성별되어 있었으며, 그곳에서 그의 음성이 끊임없이 거기서 울려 퍼졌고, 따라서 그 곳은 다른 장소들과 달랐습니다.

   According to the form which he had seen.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규정을 정하셔서 자신을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늘의 진리를 알기를 원하셨고, 외적인 의식을 돌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장막을 하늘 모양으로 만드셨습니다.1)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영적인 예배를 드릴 것을 원했지만, 육적인 어리석음으로 반대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실체에 복종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림자에게 실체가 복종하도록 강요했습니다.


  45. Which they brought in. 스데반은 조상들이 광야의 그릇된 양식을 가나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고 지적하여, 그들의 완간함을 더욱 잘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하나님을 추방하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종 기적으로 자기의 이름을 영예롭게 하였지만, 백성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배를 후퇴하는 습성을 반복하였습니다.

   Until the days of David. 주의 법궤는 다윗의 때까지 실로에 방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있을 장소를 백성들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지시한 장소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궤는 규정된 장소에 있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것을 결정함으로 제사장과 왕의 직책이 하나로 연결하는 위치에 이르게 됩니다. 법궤를 위치시키는 다윗의 통치 방침은 확고부동성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나 장소가 다윗에 의해서 결정되고,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솔로몬에게 허락되었습니다.


  47. Solomon built.스데반은 여기서 솔로몬이 그 성전을 건축할 때에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간접적으로 솔로몬을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데반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고 말함으로 인간의 마음이 교만하여 하늘까지 올라가는 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비난하는 것은 솔로몬이 기도가 마치 하나님이 성전에 묶여 있는 것처럼 잘못 사용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왕상 8:27).

   그래서 선지자는 성전제일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합니다(48절). 그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국한시키는 미신적인 방법을 도용했기 때문입니다. 희생제물을 드리면 화해가 이루어지는 외형적 공식만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외형적인 의식, 싸늘한 많은 의식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49. For whereas God said, that heaven is his seat, and the earth his footstool,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만물에 충만한 존재로 천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장소에 국한된다는 것은 매우 불경한 사고, 우상적 사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기 때문에 어떤 공간적인 제한 속에 담겨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he is infinity, therefore he saith that he cannot be comprehended within any spaces of place).”2)

  “하나님께서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고 하셔서 안식할 곳이 없는 것으로 제시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백성 가운데 임재하심을 목표하시기에, 성전과 희생제물 등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우상을 세워 자기들에게 고착시킨다면 하나님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롱하여 쉴(임재할) 곳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외형적 상징에 의해서 자기 백성들에게 임재하실 것이요, 그리고 그 가운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백성들에게 영의 방법으로 추구하여 그들을 하늘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몰두한 위선자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하늘로부터 끌어내리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공허한 형상만을 소유하고, 멍청한 담력으로 게으름에 빠지게 됩니다. 교황주의자들도 이 공상에 빠져 그리스도를 떡과 포도주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선자들 가운데에는 안식처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때는 백성들이 영으로 천국을 추구하는 한, 하나님은 결코 땅에 국한되지 않으시며 어떤 장소에도 포함되지 않으시면서 백성들의 장소와 그 때에 함께 하시게 됩니다(when he dwelleth amidst those that be his, he is neither tied to the earth, neither comprehended in any place, because they seek him spiritually in heaven.).

50. Hath not mine hand?   하나님께서는 금, 은이나 희생제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자족하신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는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훈련시키시기 위해서 필요할 뿐입니다. 희생제물로서 하나님을 공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 혐오스러운 일입니다. 신령한 예배에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할 만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유물이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하여서만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참된 종교는 인간의 육적인 고안품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51-52) 유대인을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스데반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1. 칼빈은 스데반의 설교가 중도에서 중지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청중들은 격분하여 소란과 함성으로 스데반의 설교를 중지시켰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해석, 성전에 대한 해석, 그리고 할례받지 못한 백성이란 소리는 청중들의 한계를 넘어섰을 것입니다. 그들이 결정한 두 가지는 먼저 스데반이 하나님과 성전을 모욕했다는 것이며, 둘째는 율법을 폐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 아브라함부터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 폐기로 성전과 예배의식 철폐로 이해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의 거부됨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폐역하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백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재판하는 가장 역설된 구조가 또 다시 발생한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성전 예배를 정당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설교에 대해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역전되어 설교자가 율법을 폐기한다고 오해하였고, 성전을 모욕한다고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잡는 배은망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백성들의 할례를 지적함으로 분노를 증폭시키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은 분명히 할례를 받았는데,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스데반은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하는 것으로 각인시켰습니다. 목이 곧은 백성의 결론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표면적 할례, 육신적 할례의 무가치한 것을 지적하고, 언약의 말씀대로 마음의 할례를 강조함을 인식하지 않고, 자기의 할례만을 고집하는 우둔한 고집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Ye have always resisted.  스데반이 설교 초기에는 “부형”이라고 하여 청중들에게 우호적으로 도입을 했지만, 후반부에 그의 강직함이 드러나자 청중들은 더 이상 참지 않고 스데반을 향해서 공격을 했습니다. 그러한 성령을 거역함은 부형의 관계가 끊어지며, 다른 족속으로 전락하게 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데반의 설교를 백성들은 거부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게 됩니다. 스데반의 설교가 정직하고 바르지만, 회심의 결정은 하나님의 비밀한 내적 계시가 있어야 하며, 외적인 봉사 직무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52. Which of the prophets?  스데반은 조상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역설적으로 연설합니다. 아브라함의 복된 자손들이 왜 그렇게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는지 알 수 없으며, 핍박받은 선지자를 참 선지자로 인정하는 백성들이 조상의 죄를 반복하는 이유는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청중들에게 이러한 조상들의 죄된 유산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립니다. 동일한 죄를 반복하는 것은 자기가 정죄한 판단에 봉착하여 자기를 자기가 판단하는 악인의 단면적인 모습에 이르게 됩니다.

   Who have foretold.  모든 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지막(완성자)로 생각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도록 노력했다는 것입니다.3)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약속하는 공통된 직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it was the common office of all the prophets to promise salvation by the grace of Christ). “의인(the Just)”은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의를 지명하는 일을 하심으로 무죄할 뿐만 아니라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스데반은 선지자들이 지목하고 인도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유대인들이 참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53. Who have received the law. 스데반은 유대인들의 율법에 대한 열심히 율법에서 이탈자이며 배신자(Apostata)라고 지목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 영광의 가장 정확한 수호자로 여겨지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멸하고 있는 위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위탁한 율법에 복종해야 되지만, 그들은 교만하여 율법을 경멸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율법을 개조시켰습니다.

  In the dispositions of angels 천사들이 하나님의 중재자가 되어 하나님의 율법의 중재자가 되어 증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천사를 여기에서는 단순한 천사로만 평가하였지만, 주의 천사로 보아 하나님의 제2위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에게서 율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핍박한 패역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천사로 가장하셨기 때문에 율법은 하나님의 경륜과 영광이 흐리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훨씬 더 뛰어나게 계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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