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매일성경, 07년 09월 02일] 사도행전 1:15-26. 성령 세례 받음을 준비하는 제자들

형람서원 2007. 9. 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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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07년 09월 02일] 사도행전 1:15-26. 성령 세례 받음을 준비하는 제자들


제목: 성령 세례 받음을 준비하는 제자들

내용: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베드로의 설교로, 사도의 결원을 보충(기도와 제비뽑기로 맛디아 선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 세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5-22절) 베드로의 설교

          설교본문: 시편 69:25, 시 109:8

          설교제목: 빈 자리를 채웁시다.

          설교내용: 유다의 배반은 성경을 완성하는 것임으로 그 결원을 채워야 합니다.


       15절) 칼빈은 120명의 숫자가 남자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규정하지 못하며 그리고 평소에 거기에 계속적으로 상주하는 않은 것으로 추측합니다. 결론은 “그 당시에 그들이 하나의 중대한 사실을 다루어야 했을 때에 전 교회가 소집되었던 것이라는 편에 동감한다. ‘일어서서’ 라는 말이 그 같은 경향을 표시해 준다.”고 제시합니다.

              칼빈은 베드로의 설교로 결원을 보충함(맛디아 선출)이 정당한 것으로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별 이유 없이 열 두 사람을 중요한 그의 복음의 전달자로 선택하셨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심판자가 될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셨을 때, 그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들을 한 신앙으로 모으기 위하여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임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16절)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경의 권위는 성령의 권면으로 다윗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윗의 언어(혀)가 성령의 도구(the Spirit which used their tongues as an instrument)이라는 것입니다. 즉 칼빈은 성경의 권위의 정당성, 하나님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교황주의자의 베드로 수위권의 주장은 성령의 주도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즉 “성령이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베드로 또한 성경을 통하여 유다의 배신이 그리스도의 탁월한 사역을 무효화 시키지 못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정당성을 성경(성경에 예언된 말씀)에서 적절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이해력(교황주의자, 자유주의자)에 의존하여 살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유다에 대해서 성경의 예언을 따라 전혀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배반한 것은 예언의 강요로 인하여 된 것이 아니요, 그 자신의 마음의 사악함에 원인한다.”

Neither was Judas therefore excusable, because that which befell him was foretold, seeing that he fell away, not being compelled by the prophecy, but only by the malice of his own heart.

베드로의 설교는 두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첫째 성도들이 유다의 파멸에서 마음에 품게 될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제거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둘째, 유다를 대신하여 다른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일의 필요성입니다.


17절)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설교의 둘째 부분, 유다가 비록 사도의 무리 중 하나였지만 결손의 보충을 하기 위한 설명입니다.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도 동일한 내용이라고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높은 영광스러운 지위에 올려 주셨던 자가 그처럼 무서운 파멸에 곤두박질해서 떨어져야 했다는 사실은 무척 무서운 일이었다.” - 사도 직무의 탁월성을 변호하기도 합니다(Peter doth here express by name the excellency of his function).              


18절) 이 사람이 칼빈은 이 말씀의 누가가 여기 삽입시킨 것이 정당하고 생각하여, 18-19절의 말씀을 괄호()에 넣는다고 제시한다. 다른 성경에서는 ()처리가 되지 않았지만, 한글 개역성경에는 ()처리가 되어있습니다.  칼빈이 ()로 처리하기를 원한 것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아겔다마’를 ‘피밭’으로 번역해서 설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누가가 베드로의 설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삽입하였다는 것입니다. ‘아겔다마’는 히브리어는 아니고, 시리아어와 갈대아어가 섞인  말(아람어)입니다.

     밭을 사고, 누가는 유다의 매장지를 소개함으로 영원한 치욕이 되게 했습니다. 은 30으로 그리스도를 판 것 보다 자기의 사도직을 판 것이도 합니다. 즉 칼빈은 사도직에 대한 포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도직의 포기는 용서받지 못하는 성령훼방죄와도 같습니다.


20절)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베드로는 배신자 유다, 거침돌을 성경의 권위로써 제거합니다. 인용된 다윗의 시편 인용이 일반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숙지시키면서 특별한 구속(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을 합니다. 시 69:25-26 유다의 멸망, 시 109:8의 그의 직분을 맡기 위한 다른 사람의 선택의 정당성을 제시합니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그는 악한 자가 땅 위에서 그 생명이 제거되기를 소원한 뒤에 그의 영예로 박탈되어야 하고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의 뒤를 계승하도록 되어야 한다고 첨부하는 것”이다. 교회의 배신자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고귀한 품격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핍박(주님을 배반함)할 수 있지만, 처벌과 불행한 결과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경각심을 주는 말씀이며, 나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지 않도록 충실히 주를 섬기는 직분자가 될 것입니다.

21-22절) 이러하므로.... 우리 가운데서, 칼빈은 결원 보충이 베드로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공동체가 결정한 것으로 이해한다. 칼빈은 “오늘에도 교회에서 이름만 걸고 그 행위가 정당하지 못하고 사악한 자들이 그 직무가 해임되고 다른 사람으로 그 자리를 대치하는 일을 우리가 들을 때가 있는데 그처럼 교회는 그 직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여, 교회의 권징을 강조한다. 즉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성장의 모습은 기도, 말씀, 성찬, 교회의 거룩(권징)에 있다. 모이기를 힘씀, 성도의 교제, 구제 등입니다. 

     [사도의 조건, 22절] (1) 항상 우리(사도)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2) 부활의 선포자(전도자),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칼빈은 순서를 바꾸어서 부활의 선포를 앞에 둡니다.

“그(베드로)가 부활을 말할 때에 그것은 그들이 단지 부활을 증거하는 책임을 지기 때문만이 아니요 먼저 그 속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선교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음에는 우리가 부활 안에 우리의 구속의 목적과 성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부활은 그 자체 안에 그리스도의 하늘의 권위와 성령의 능력을 동반하고 있다. 이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며, 공의와 공법을 확립하며, 질서를 회복하고 죄의 포학을 근절하며, 교회의 모든 원수들을 멸절시키는 일에 떨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피차 배치되면서도 함께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즉 사도의 권위는 부활을 증거함에 있다. 칼빈은 제자들에게 이 부활의 증인이 될 것을 요구하면서,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은 사도적 권위라는 것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알려지지 않는 생애(30년)는 알려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자격은 3년의 생활에 함께한 제자 중에서 선택하여도 자격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삼상 2:6-8).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찬양합시다.

2) 백성들이 성경에 근거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릅시다.


23-26절) 바사바(유스도, 요셉)과 맛디아 중 맛디아가 제비로 선출됨


23절) 두 사람을 천(薦)하니 칼빈은 바사바를 당시의 가장 유력한 사람으로 보았지만, 공동체가 바사바를 결정하지 않고 두 명을 천거하며 제비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결정을 의지하였기 때문으로 제시합니다. 특별히 사도는 목사와 다르게 교회에 의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목사와 사도의 다른 점, 갈 1:1).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음성으로 사도를 세우심”입니다.

    성령의 지도로 진행되어지는 제비뽑기는 경솔하고 변칙적인 운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도 제비뽑기를 원한다면 사도행전처럼 전혀 기도에 힘쓰면서, 공동체의 합의로 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좋을 것입니다.


24-25절) 공동체의 기도의 내용: 120명의 공동체가 기도한 것은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입니다. 공동체가 기도한 이유는 “두 사람이 다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요 깨끗함에 있어서 또는 그 밖의 모든 미덕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이었지만, 모든 자질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이 홀로 아시고 판단하실 수 있는 마음의 성실성이기 때문에, 사도들은 사람들에게서 숨겨져 있는 것을 밝혀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오늘날도 목사의 선택이 있게 될 때에 그와 동일한 고정이 요청되는 것이다.” 칼빈이 사역자의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성실”이다. “왜냐하면 만일 성실이 결여되었다면 지식도 웅변도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장점도 다 연기와 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고 사역자의 성실성을 강조한다. (참고, 토마스 칼라일, [영웅숭배론]에서 영웅이 되는 기본 성품은 -성실-로 반복하여 제시합니다.)

          봉사(ministry)는 기본적인(base) 뜻을 갖기에, 사도직이란 존엄의 뜻을 첨가했습니다(칼빈). 이것을 ‘사도직의 봉사(the ministry of the apostleship)’로 제시하여, 직무의 존엄성과 중책, 명예와 권위를 강조합니다. -환치법(換置法, hypallage)-


26절) 제비로 맛디아를 선출함. (잠언 16:33)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칼빈은 점성술(호기심)에 의한 제비와 성경의 제비를 명백하게 구별시킵니다. 즉 호기심에 의한 제비, 점치기 위한 제비에 대해서 칼빈은 “유용하고도 훌륭한 과학의 두 기능을 손상시킴(they defame a science both profitable and praiseworthy)”으로 구별한다. 정당한 이용(지배권과 영역을 나눔, 유산을 분배)과 달리 타락(점성술)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비는 ‘양 쪽에 다 관련된’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2007년) 총회의 제비뽑기는 사도행전적 제비뽑기와 다르며, 구약성경의 제비뽑기와도 다른 방식입니다.

   칼빈은 맛디아가 제비로 선출됨이 공동체의 생각과 다름이 있다고 주장한다. “요셉이 맛디아보다 모두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추측”으로 제시하고, 바사바는 ‘맹세의 아들’ 혹은 ‘평온의 아들’로서 성실, 청순 혹은 점잖고 겸손한 성격의 거울과 같은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또 비범한 정직(유스도)으로 평가받은 사람으로 최우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맛디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칼빈은 여기에서 배울 점으로 “사람들의 의견으로 우리가 하늘에 올리움을 받는 것처럼 뽐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사람의 선택으로 우수한 사람들로 평가를 받는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평가하시고 인정하심을 받아야만 한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올바른 판단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판단에 의해서 서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고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1) 우리가 온전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의뢰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의뢰하는 백성은 자기들의 원하지 않는 결과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판단(뜻)에 기쁘게 순종하며, 더욱 믿음의 담력을 얻습니다.

2) 요셉과 맛디아 중 맛디아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판단의 자유, 선택의 결정권을 갖으신 주(主)의 선택은 항상 옳은 일입니다. 성경에서 요셉과 맛디아의 행적이 이 뒤로는 전혀 기록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교회와, 맛디아 그리고 요셉에게 모두 유익하게 선택을 하십니다.

3) 제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우리는 선택과 분별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서 제비를 뽑아 간략하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영역, 유산 분배 등에 제비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즉 영적인 부분이 아닌,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제비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생략된 제비는 점(占)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매일성경, 07년 09월 02일] 사도행전 1:15-26. 성령 세례 받음을 준비하는 제자들


제목: 성령 세례 받음을 준비하는 제자들

내용: 120명의 제자들이 사도의 결원을 보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 세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5-22절) 베드로의 설교

          설교본문: 시편 69:25, 시 109:8

          설교제목: 빈 자리를 채웁시다.

          설교내용: 유다의 배반은 성경을 완성하는 것임으로 그 결원을 채워야 합니다.


       15절) 칼빈은 120명의 숫자가 남자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규정하지 못하며 그리고 평소에 거기에 계속적으로 상주하는 않은 것으로 추측합니다. 결론은 “그 당시에 그들이 하나의 중대한 사실을 다루어야 했을 때에 전 교회가 소집되었던 것이라는 편에 동감한다. ‘일어서서’ 라는 말이 그 같은 경향을 표시해 준다.”고 제시합니다.

              칼빈은 베드로의 설교로 결원을 보충함(맛디아 선출)이 정당한 것으로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별 이유 없이 열 두 사람을 중요한 그의 복음의 전달자로 선택하셨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심판자가 될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셨을 때, 그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들을 한 신앙으로 모으기 위하여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임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16절)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경의 권위는 성령의 권면으로 다윗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윗의 언어(혀)가 성령의 도구(the Spirit which used their tongues as an instrument)이라는 것입니다. 즉 칼빈은 성경의 권위의 정당성, 하나님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교황주의자의 베드로 수위권의 주장은 성령의 주도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즉 “성령이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베드로 또한 성경을 통하여 유다의 배신이 그리스도의 탁월한 사역을 무효화 시키지 못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정당성을 성경(성경에 예언된 말씀)에서 적절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이해력(교황주의자, 자유주의자)에 의존하여 살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유다에 대해서 성경의 예언을 따라 전혀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배반한 것은 예언의 강요로 인하여 된 것이 아니요, 그 자신의 마음의 사악함에 원인한다.”

Neither was Judas therefore excusable, because that which befell him was foretold, seeing that he fell away, not being compelled by the prophecy, but only by the malice of his own heart.

베드로의 설교는 두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첫째 성도들이 유다의 파멸에서 마음에 품게 될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제거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둘째, 유다를 대신하여 다른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일의 필요성입니다.


17절)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설교의 둘째 부분, 유다가 비록 사도의 무리 중 하나였지만 결손의 보충을 하기 위한 설명입니다.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도 동일한 내용이라고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높은 영광스러운 지위에 올려 주셨던 자가 그처럼 무서운 파멸에 곤두박질해서 떨어져야 했다는 사실은 무척 무서운 일이었다.” - 사도 직무의 탁월성을 변호하기도 합니다(Peter doth here express by name the excellency of his function).              


18절) 이 사람이 칼빈은 이 말씀의 누가가 여기 삽입시킨 것이 정당하고 생각하여, 18-19절의 말씀을 괄호()에 넣는다고 제시한다. 다른 성경에서는 ()처리가 되지 않았지만, 한글 개역성경에는 ()처리가 되어있습니다.  칼빈이 ()로 처리하기를 원한 것은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아겔다마’를 ‘피밭’으로 번역해서 설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누가가 베드로의 설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삽입하였다는 것입니다. ‘아겔다마’는 히브리어는 아니고, 시리아어와 갈대아어가 섞인  말(아람어)입니다.

     밭을 사고, 누가는 유다의 매장지를 소개함으로 영원한 치욕이 되게 했습니다. 은 30으로 그리스도를 판 것 보다 자기의 사도직을 판 것이도 합니다. 즉 칼빈은 사도직에 대한 포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도직의 포기는 용서받지 못하는 성령훼방죄와도 같습니다.


20절)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베드로는 배신자 유다, 거침돌을 성경의 권위로써 제거합니다. 인용된 다윗의 시편 인용이 일반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숙지시키면서 특별한 구속(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을 합니다. 시 69:25-26 유다의 멸망, 시 109:8의 그의 직분을 맡기 위한 다른 사람의 선택의 정당성을 제시합니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그는 악한 자가 땅 위에서 그 생명이 제거되기를 소원한 뒤에 그의 영예로 박탈되어야 하고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의 뒤를 계승하도록 되어야 한다고 첨부하는 것”이다. 교회의 배신자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고귀한 품격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핍박(주님을 배반함)할 수 있지만, 처벌과 불행한 결과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경각심을 주는 말씀이며, 나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지 않도록 충실히 주를 섬기는 직분자가 될 것입니다.

21-22절) 이러하므로.... 우리 가운데서, 칼빈은 결원 보충이 베드로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공동체가 결정한 것으로 이해한다. 칼빈은 “오늘에도 교회에서 이름만 걸고 그 행위가 정당하지 못하고 사악한 자들이 그 직무가 해임되고 다른 사람으로 그 자리를 대치하는 일을 우리가 들을 때가 있는데 그처럼 교회는 그 직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여, 교회의 권징을 강조한다. 즉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성장의 모습은 기도, 말씀, 성찬, 교회의 거룩(권징)에 있다. 모이기를 힘씀, 성도의 교제, 구제 등입니다. 

     [사도의 조건, 22절] (1) 항상 우리(사도)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2) 부활의 선포자(전도자),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칼빈은 순서를 바꾸어서 부활의 선포를 앞에 둡니다.

“그(베드로)가 부활을 말할 때에 그것은 그들이 단지 부활을 증거하는 책임을 지기 때문만이 아니요 먼저 그 속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선교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음에는 우리가 부활 안에 우리의 구속의 목적과 성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부활은 그 자체 안에 그리스도의 하늘의 권위와 성령의 능력을 동반하고 있다. 이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며, 공의와 공법을 확립하며, 질서를 회복하고 죄의 포학을 근절하며, 교회의 모든 원수들을 멸절시키는 일에 떨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피차 배치되면서도 함께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즉 사도의 권위는 부활을 증거함에 있다. 칼빈은 제자들에게 이 부활의 증인이 될 것을 요구하면서,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은 사도적 권위라는 것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알려지지 않는 생애(30년)는 알려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자격은 3년의 생활에 함께한 제자 중에서 선택하여도 자격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삼상 2:6-8).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찬양합시다.

2) 백성들이 성경에 근거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릅시다.


23-26절) 바사바(유스도, 요셉)과 맛디아 중 맛디아가 제비로 선출됨


23절) 두 사람을 천(薦)하니 칼빈은 바사바를 당시의 가장 유력한 사람으로 보았지만, 공동체가 바사바를 결정하지 않고 두 명을 천거하며 제비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결정을 의지하였기 때문으로 제시합니다. 특별히 사도는 목사와 다르게 교회에 의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목사와 사도의 다른 점, 갈 1:1).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음성으로 사도를 세우심”입니다.

    성령의 지도로 진행되어지는 제비뽑기는 경솔하고 변칙적인 운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도 제비뽑기를 원한다면 사도행전처럼 전혀 기도에 힘쓰면서, 공동체의 합의로 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좋을 것입니다.


24-25절) 공동체의 기도의 내용: 120명의 공동체가 기도한 것은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입니다. 공동체가 기도한 이유는 “두 사람이 다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요 깨끗함에 있어서 또는 그 밖의 모든 미덕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이었지만, 모든 자질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이 홀로 아시고 판단하실 수 있는 마음의 성실성이기 때문에, 사도들은 사람들에게서 숨겨져 있는 것을 밝혀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오늘날도 목사의 선택이 있게 될 때에 그와 동일한 고정이 요청되는 것이다.” 칼빈이 사역자의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성실”이다. “왜냐하면 만일 성실이 결여되었다면 지식도 웅변도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장점도 다 연기와 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고 사역자의 성실성을 강조한다. (참고, 토마스 칼라일, [영웅숭배론]에서 영웅이 되는 기본 성품은 -성실-로 반복하여 제시합니다.)

          봉사(ministry)는 기본적인(base) 뜻을 갖기에, 사도직이란 존엄의 뜻을 첨가했습니다(칼빈). 이것을 ‘사도직의 봉사(the ministry of the apostleship)’로 제시하여, 직무의 존엄성과 중책, 명예와 권위를 강조합니다. -환치법(換置法, hypallage)-


26절) 제비로 맛디아를 선출함. (잠언 16:33)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칼빈은 점성술(호기심)에 의한 제비와 성경의 제비를 명백하게 구별시킵니다. 즉 호기심에 의한 제비, 점치기 위한 제비에 대해서 칼빈은 “유용하고도 훌륭한 과학의 두 기능을 손상시킴(they defame a science both profitable and praiseworthy)”으로 구별한다. 정당한 이용(지배권과 영역을 나눔, 유산을 분배)과 달리 타락(점성술)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비는 ‘양 쪽에 다 관련된’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2007년) 총회의 제비뽑기는 사도행전적 제비뽑기와 다르며, 구약성경의 제비뽑기와도 다른 방식입니다.

   칼빈은 맛디아가 제비로 선출됨이 공동체의 생각과 다름이 있다고 주장한다. “요셉이 맛디아보다 모두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추측”으로 제시하고, 바사바는 ‘맹세의 아들’ 혹은 ‘평온의 아들’로서 성실, 청순 혹은 점잖고 겸손한 성격의 거울과 같은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또 비범한 정직(유스도)으로 평가받은 사람으로 최우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맛디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칼빈은 여기에서 배울 점으로 “사람들의 의견으로 우리가 하늘에 올리움을 받는 것처럼 뽐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사람의 선택으로 우수한 사람들로 평가를 받는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평가하시고 인정하심을 받아야만 한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올바른 판단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판단에 의해서 서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고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1) 우리가 온전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의뢰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의뢰하는 백성은 자기들의 원하지 않는 결과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판단(뜻)에 기쁘게 순종하며, 더욱 믿음의 담력을 얻습니다.

2) 요셉과 맛디아 중 맛디아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판단의 자유, 선택의 결정권을 갖으신 주(主)의 선택은 항상 옳은 일입니다. 성경에서 요셉과 맛디아의 행적이 이 뒤로는 전혀 기록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교회와, 맛디아 그리고 요셉에게 모두 유익하게 선택을 하십니다.

3) 제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우리는 선택과 분별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서 제비를 뽑아 간략하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영역, 유산 분배 등에 제비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즉 영적인 부분이 아닌,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제비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생략된 제비는 점(占)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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