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매일성경, 07년 09월 04일] 사도행전 2:14-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형람서원 2007. 9. 5. 23:52
728x90
반응형
 

[매일성경, 07년 09월 04일] 사도행전 2:14-21. 베드로의 설교 원고


제목: 베드로의 설교원고

내용: 새 술에 취했다는 조롱을 반박하면서, 베드로는 요엘서 2:28-29절을 성경본문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겠다고 선포합니다.


14-21절) 


14-15절) 설교의 환경과 도입

    베드로는 열한 사도를 뒤로 놓고 서서 설교를 합니다(마치 성명서를 발표하는 행사장 같습니다). 칼빈은 설교의 요점을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계시되었고, 그대들이 눈으로 본 바와 같이, 성령의 은사를 수여되었다는 것이다.(The sum of this sermon is this, he gathereth that Christ is already revealed and given by the gift of the Holy Ghost, which they saw).”로 제시합니다.

     베드로는 술 취했다는 조롱에 대해서 부정합니다(15절). 베드로는 3시(해 뜰 때를 기준으로 12시간으로 나누어, 겨울로 9시, 여름은 8시)에 술 취할 수 없다고 간략하게 제시합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이해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에 관심”을 둔 것입니다. 즉 이해와 변호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이루어진 책망은 의로 교육하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히려 사람들의 조롱을 교훈을 주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였습니다.


17절) 

    말세(last day)에 대해서 요엘은(요엘 2:28-29)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엘은 교회의 완전한 회복(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 회복의 때가 말세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엘은 일치하지만, 베드로가 설명의 형식으로 첨가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회(이스라엘)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만 새롭게 되고, 회복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1)

   “‘말세’, ‘때가 찼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현시와 계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견고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2)


   I will pour out my Spirit   교회는 성령의 수여됨으로 구원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소생될 수 없습니다.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신다고 말씀하심으로 마르지 않는 유일한 샘(그의 영, his Spirit)에서부터 무한한 다양한 은사들이 사람들에게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보다 더 탁월한 것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4) “성령은 우리가 모든 영의 복의 보고에 들어가는 문(door)과, 하나님 나라까지도 들어갈 수 있는 입구(entrance)를 여는 열쇠입니다.5)


Upon all flesh 모든 육체는 나이,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칼빈은 ‘모든 육체’라는 구절이 신약과 구약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모든 육체와 소수의 사람이 구별된다는 것인데, 제자들은 소수에게만 성령에 참여했고, 구약의 백성들이 우리와 동일한 은혜에 참여했지만 우리와는 구별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모든 성도(구약의 택자과 120명)가 우리를 조명하고 중생시키는(illuminate and regenerate us) 동일한 성령, 곧 지혜와 정의와 성화의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거듭 주장합니다.6) 즉 성령은 동일하지만, 숫자 소수와 다수의 차이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칼빈의 견해는 구속사적 이해가 부족하며, 신약과 구약의 구별을 약화하는 성경 이해에 기인한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사람을 의미하며,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떠한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음을 제시합니다. 


  And your sons shall prophesy    “예언”은 비범한 지혜의 은사입니다.By the word prophesy he meant to note the rare and singular gift of understanding. 성령이 부어지자마자 모든 성도들이 선지자(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을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자기들의 시대에 적합한 형상으로 묘사하는 것이 그들의 일반적인 관습”입니다. 주의 성령이 임함으로 사 66:21 백성들 중에서 레위인과 제사장을 삼음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누구나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영예로운 지위에 나아가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사람(선지자)은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we must only seek the truth without figures). 이것을 사도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일반 질서를 초월한 신적으로(계시 의존적인) 하늘의 신비에 관한 말을 선지자적으로 행해야 합니다.7) 성령의 감동과 신적인 말씀은 계시에 의존하는 성경(특별계시)에 의한 것입니다. 진리는 하늘의 신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칼빈은 “예언”이 뛰어난 지혜의 은사이지만, 소수의 예언자에게만 계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영적 지혜를 선지자들이 받았던 뛰어난 정도까지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렘 31:34). 현재에 예언의 은사를 구별하여 점을 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칼빈의 견해와 전혀 다릅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는 성령의 은사가 그쳤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을 교회로부터 철수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주께서는 이 동일한 약속에 의하여 예외 없이 우리 모두에게 날마다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에게 만일 부족함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 자신의 태만에서 유래된 것일 따름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일반 기독인 남녀를 뒤로 빼돌려 놓은 자들은 사악하고 모독적인 행동으로 성령의 적(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젊은이들을 동일하게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참으로 지명하여 초청하신다.”8)


18절)

    Upon my servants 성령 세례(약속)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자들에게 한정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종이 되며, 성령이 받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이 종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가족으로 양자를 삼으시고, 성령으로 구조를 만드시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은사를 채워주신다.”9) only let us remember, that the Spirit is appointed for the Church properly. 성령은 교회를 위해서 지목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개인적이지만, 교회를 위한 은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9절-20절)

     And I will show wonders  칼빈은 먼저 20절의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에 대해서 제시합니다. 칼빈은 초림 혹은 재림의 날로 선택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의 전체(the whole kingdom of Christ)”로 주장합니다. 그래서 “날”을 성육신의 시작에서부터 왕국의 완성의 날까지라는 것입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조짐을 전 세계의 구조를 통해서 보여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에는 세상이 큰 두려움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소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마 24장, 눅 21장).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심판이 계시됩니다. 해가 어두워짐(산업혁명), 달이 변함(2007년 8월 27일 8시 37분에 대향과 달이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면서 빛의 반사로 달이 붉은 빛을 띄게 되는 월식, 붉은 달, 2011월 12월 11일 다시 붉은 달)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재앙을 막아낼 만한 응급의 구제수단을 제공하여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 선, 자비의 보증이신데, 진노와 형벌을 주심이 합당치 않다는 견해에 대해서 칼빈은 첫째, 인류가 우둔함으로 매를 맞아야 함, 둘째,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자신에게 초대하시며, 겸손을 배우며 교만의 뿔을 제거하게 함, 셋째, 육체의 안전을 필요 이상으로 추구함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현세의 생활에 결부시킴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영적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친히 인격적으로 대하시면 대하실수록 우리의 불경은 더 증대하고 공공연한 반역행위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날의 두려움은 우연적인 일(accidental thing)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것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Whosoever shall call upon  죽음의 구렁에서, 혼돈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서 언제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름이 불러지게 됨을 원하시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되심을 보이신 이후로 우리가 쉽게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이름을 부름)을 위해서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열심을 증가시킵니다(요 6:24).


[Who is God like?]

1)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모든 세대, 인종, 성별, 계층에 상관없이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17-19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21절).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백성들도 힘써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의 증인이 되어 만민이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전도합시다.


2) ‘해가 변하고’를 십자가 위에서 죽을 때(F. F. Bruce)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는 달이 변하여 피가 된 것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칼빈은 이 구절은 은유적(figurative)로 보고 전 세계의 구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조짐으로 이해합니다. 세상의 크고 두려운 현상(지구온난화, 자원고갈)들이 있습니다. 두려운 그 날에 주의 이름을 부릅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great and glorious day)’은 재림, 심판의 날, 초림 등으로 보지만, 칼빈은 그리스도의 왕국 전체, 즉 시작(성육신)과 특정한 날이 아닌 최후의 부활의 날까지로 간주합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주의 이름을 부르며 담대히 전진합니다.


3) 베드로와 열한 사도, 즉 대표자는 한 사람이며, 전파자를 증언하는 11사도가 있습니다. 복음을 증언을 위해서는 연사도 증언자도 될 수 있습니다. 주의 복음이 전파되기만 하면 기뻐하고 기뻐하는 백성이 됩시다.

   베드로 사도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능력과 담력)을 갖았습니다. 나의 약함은 성령의 능력을 입지 못함입니다. 나의 육체가 약함을 감사하고,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수의 증인이 됩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