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의 갑(시보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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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속, 거기 마을이 있었다. 꼭꼭 숨어 있는 듯, 천지간에 그 마을만 있는 듯, 세상과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광주광역시 북구 덕의동 석저(石底)마을-. 어귀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마을을 본다. 종달새 집같이 아늑하기만 했다. 골바람이 찼지만, 마음이 푹해진다. 돌아서 눈을 드니, 그림 같은 풍광이 압도한다. 쪽빛 바다였다. 가곡 ‘가고파’가 환청처럼 날아든다. 눈도 거짓말을 할 줄 아는 모양이다. 광주호, 금세 가슴이 쪽빛으로 일렁인다. 마을은 그렇게 광주호 위에 섬처럼, 고요히 떠 있었다.
마을 왼쪽으로는 계곡이 가로지르고, 물은 흘러 호수에 갇히고 만다. 대숲으로 덮인 계곡을 따라 마을로 들어간다. 물소리 대숲 바람소리 섞어져도 마을은 고요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정자가 있는 마을광장에 이른다. 100년은 넘어 살았을 싶은 느티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고, 겨울이라 아무도 와주지 않는 정자엔 무청이 마르고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쯤 큰 바위 하나, ‘석계동문’(石溪洞門)이라 이름표를 달고 마을을 지키고 있었는데, 누렁이들이 컹컹컹 낯선 얼굴들을 경계하며 마을을 일으킨다. 바위에 ‘石’이라 새길 만큼, 대처나 돌이 많았다. 스무 집 남짓 담이란 담도 모두 돌담이었다. 마을의 품격이 성곽 같은 돌담 때문에 많이 올라갔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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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휴(74)씨에게 전화를 넣는다. 몸이 안 좋은지, 지팡이를 짚고 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이장인 줄 알았는데, 대소사를 챙기는 마을어른이었다. 환경부가 이 마을을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한 것도 박씨의 노력에 기대어 있다.
“마을은 작아도 유서가 깊어. 저 ‘석계동문’이란 글자를 동학군들이 마을로 들어왔을 때 썼다는 것이여. 마을에 동학군 무기고도 있었고.”
상수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마을에선 지금껏 샘물을 ‘약수’로 함께 쓰고 있다. 그 샘도 돌샘이다.
약 300년 전 광산김씨가 터를 잡았다는 이 마을을 자연 그대로 지켜내기 위해 주민협의체를 구성한 것은 2001년 7월이었다. 박씨와 김원호 영농회장 등이 이 일에 앞장섰다. 매월 두 차례씩 마을 앞 광주호에 나가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는 등 마을청소를 해오고 있으며, 재활용품을 분리, 수거하는 등 생활쓰레기 제로화운동도 벌이고 있다.
농약도 웬만하면 안 쓰고, 퇴비도 공동으로 만들어 쓰는 등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한다.
마을을 보듬고 있는 덕봉산에는 산토끼와 꿩, 까치, 멧비둘기, 고라니, 멧돼지 등 산짐승들이 많다. 주민들은 그것들 또한 한 식구라 여기고 지켜내고 있다. 몇 차례 온산을 뒤져가며 덫을 제거하기도 했다.
“산짐승 때문에 농사 못 지어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지. 가을이나 겨울철에는 멧돼지들이 마을로 자주 내려와.”
서녘 하늘 흰 구름사이로 밝은 햇살이 마을로 내려오고, 솔개 하나가 높이 떠 뱅뱅 돈다. 광주호의 쪽빛가슴도 더욱 찬란해진다.
“겨울 한 철만 빼고는 많은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와 정자에서 쉬었다 가기도 한다”는 박씨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광주호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고 극찬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우리 마을 근처에다 골프장을 만든다고 해 마다해버렸지. 진정내버렸어. 마을 버려버리니까.”
석저마을은 지난 2004년 2월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된 이후 2007년 1월 재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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