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뇌를 찍어라!’
2004년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사는 남성 고객이 선호하는 차종을 파악하기 위해 뇌 사진을 찍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독일 울름대의 심리학과, 진단방사선학과 연구팀까지 참여했다.
연구팀은 평균 31세의 남성 12명을 대상으로 스포츠카, 세단, 소형차 사진을 보여 주면서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를 촬영했다. fMRI는 환자의 뇌 영상을 촬영하는 데 쓰는 첨단 의료장비.
실험 결과 스포츠카를 봤을 때 사회적 지위나 보상과 관련 있는 뇌 영역이 가장 눈에 띄게 활성화됐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젊은 남성들이 스포츠카에 ‘미친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뇌 영상 촬영기법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이 낯설지 않다. 상품기획 단계에서 첨단과학을 활용해 소비자의 마음을 정확히 알겠다는 취지다.
‘브랜드 파워 누가 더 셀까?’ ‘에브리데이 뉴 페이스!’
태평양의 화장품 브랜드 라네즈의 광고 카피다. 라네즈는 1990년대 중반 선보인 뒤 기초 및 색조 화장품 전문 브랜드로 장수하는 브랜드.
태평양은 라네즈의 브랜드 파워가 유지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외국의 명품 브랜드와 경쟁할 때도 견뎌 낼 수 있을까?’
지난해 3월 태평양 마케팅팀은 고려대 심리학과 소비자광고심리연구실과 함께 20대 여성 10명의 ‘속마음’을 읽기로 했다.
연구팀은 자원 여성들에게 해외 명품 화장품 브랜드 4개, 라네즈 등 태평양 색조화장품 브랜드 3개 등 총 7개 브랜드의 광고와 제품 사진을 보여 주고 fMRI로 뇌를 촬영했다.
실험 결과 라네즈 광고를 본 여성들의 뇌에서 과거 경험을 떠올리는 영역, 흐뭇한 기분을 느끼는 영역, 알고 있는 지식을 생각해 내는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됐다.
고려대 김숙진 연구원은 “라네즈 제품을 써보고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나, 브랜드를 잘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4개 해외 명품 브랜드 중에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 것들도 있었다.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명품이라면 무조건 국내 브랜드보다 선호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잘못됐음을 보여 주는 결과다.
태평양 이해선 마케팅총괄 부사장은 “뇌 실험으로 자신감을 얻었다”며 “라네즈의 브랜드 파워를 활용한 새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고는 기억하는데 효과가 적다면?’ ‘랄랄라(La La La).’
LG텔레콤의 TV 광고 ‘랄랄라’ 편에서는 고객이 서비스를 받고 즐거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LG의 서비스를 받으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려고 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소비자들은 이 광고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작년 11월 고려대 심리연구실은 40명에게 이동통신 회사들의 로고와 광고 사진을 보여 주면서 fMRI로 뇌 영상을 찍었다.
특이하게도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LG텔레콤 광고를 보면서 근육을 움직이는 뇌 영역을 많이 사용했다.
고려대 김보경 연구원은 “광고를 본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랄랄라’ 멜로디를 따라 부른 것 같다”며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랄랄라’를 이 회사의 ‘마스코트’로 여긴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LG텔레콤은 “이 실험에서 서비스를 경험하지 않은 고객은 친밀감이 낮았다”며 “친근한 느낌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마케팅 전략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설문조사와 뉴로마케팅의 차이 마케팅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으로 제품 기능에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소비자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뉴로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
뉴로마케팅을 이용하면 소비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반응까지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이 ‘생각하면서’ 대답하는 설문조사와 비교된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설문조사와 함께 뉴로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하면 최적의 마케팅 전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로마케팅:
뇌 영상 촬영 등 신경과학 연구 방식을 활용해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분석하는 마케팅 기법. ‘뉴로’는 신경세포를 뜻하는 ‘뉴런(Neuron)’에서 따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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