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치료, 식물이 주는 위안
배가 아플 때는 이 걸 먹어라.. 부스럼이 날 때는 이 풀을 써라..
옛날 할머니들은 풀이 가진 신기한 약효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의학계에서는 여전히 완전하게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서 허브를 이용한 치료요법은 간단한 증상들을 완화시키는데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헬스조선에서는 생활속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는 허브에 대한 4편의 기획물을 연재한다. 꽃과 종자, 줄기, 잎, 뿌리 등이 약, 요리, 향료, 살균, 살충 등에 사용되는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초본식물로 정의내려지는 허브. 향기와 함께 건강여행을 떠나보자. (편집자주)
중계동에 자리잡은 중계노인복지관. 치매노인전문요양소이기도 한 이곳 2층 베란다에서 할머니들의 손이 분주하다. 한 할머니는 화분에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또 다른 할머니는 모종에서 잡초를 뽑아 낸다. 다른 한쪽에서는 점심을 위해 상추를 뜯고 있다.
그 중 한 할머니에게 간호사가 다가가 화분에 심은 게 뭔지 물어본다. 할머니는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이 가꾸는 식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건, 라벤더야. 이거 보고 있으면 딴 생각이 안나. 몸은 아파도 화초를 보면 맘이 기쁘고, 자식 키우는 거랑 비슷해.
즐거운 노인들. 하지만 이들이 요양소에서 단순히 취미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원예활동을 통해 건강해지고 있다. 이곳 복지관에서 도입하고 있는 원예치료는 노인치료프로그램의 하나로 노인들의 허약해진 몸과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싸움닭 할머니, 변하다.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치료법인 원예치료. 원예치료는 식물 기르기와 같은 활동과 꽃꽂이, 분재, 식물로 소품 만들기 등 식물을 응용한 활동을 모두 포함한 원예활동을 통해 심신이 허약해 진 상태를 호전시키는 치료법이다.
이 복지관의 간호사이기도 한 김부영 원예치료사는 치매노인들은 단순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에너지는 몸에 쌓여 분출할 곳이 없으면 신경마저 날카로와진다며 식물을 기르는 등 원예활동이 심리적인 안정과 행동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 복지관에서 싸움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김창순 할머니도 효과를 본 경우다. 워낙 신경이 날카롭고 다른 할머니들에게 싸움 걸기 좋아하던 김 할머니는 특별히 마련된 모듬화분 만들기나 원예활동을 하면서 잦던 신경질도 줄었고 집중력은 훨씬 좋아졌다.
실제로 원예치료사 김부영씨는 최근에 자신이 행하고 있는 원예치료의 효과를 장시간 동안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실험 후 총7가지의 평가기준 중에서 4가지 정도에서 원예치료의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사회성, 일상수행능력은 향상되고 우울증과 정서적 위축은 감소하는 결과가 나왔다.
식물보는 것만으로 좋은 뇌파 나와
김부영씨의 다소 경험적인 연구와는 달리, 뇌파를 통한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원예치료학회의 단국대 원예과학과 손기철 교수팀은 원예치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뇌파로 측정해 보았다. 뇌파란 뇌 속의 신경세포상호의 결합형태나 활동에 의해서 여러가지 움직임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활동을 외부에서 기록해서 나타난 파장들이다.
|
◇ 사진설명: 식물 인식시 뇌파 변화 측정 실험(왼쪽), 뇌파 측정의 결과 델타파 감소 알파파 증가(오른쪽) | 손 교수는 한쪽 벽면의 70% 정도를 녹색 식물로 채워놓고 정상인이 이를 바라보았을 때 뇌파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관찰했다. 사람이 녹색식물을 인식하자 델타파는 감소하고 알파파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파파는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며 근육이 이완되고 집중력이 높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파다. 녹색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뇌파란 신체상태를 반영하는 것일 뿐 인위적으로 좋은 뇌파를 발생시키는 방법이 다 일 수는 없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다. 인천의 한 뇌파전문가는 뇌파가 신체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뇌파가 우리 몸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지표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허브를 이용한 원예치료
원예치료는 주로 관상용식물이나 채소를 사용한다. 하지만 최근 허브붐이 일면서 원예치료에도 허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허브는 인간에게 유익한 향을 가진 식물로, 진정 및 감각자극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냄새를 맡으면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강북삼성병원의 한 정신과 전문의는 허브를 이용한 원예치료는 감각을 계속 자극해 줘 치매와 같은 노인들의 퇴행성 질병이 심해지는 것을 막고,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어린이나 정신지체 등 장애인들에게 좋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의 경기기계 공고의 지체아 학급에서도 원예치료에 허브를 도입하고 있는 경우다. 지체아 학급 태세민 지도교사는 최근 원예학회의 권유로 아이들과 함께 허브화단 만들기를 시작했다. 교정 한쪽에 50평 규모의 텃밭을 가꾸고 허브화단을 만들면서 아이들은 땀도 흘리고 좋은향도 맡는다.
태세민 지도교사는 아이들에게 허브화단가꾸기 등 원예활동은 육체적인 운동효과를 주고, 허브 향이 아이들의 감각에 자극도 된다"면서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할 수 있는지도 배우게 해줘 좋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사는 즐거움
원예치료는 현재 장애인 시설, 각 지역의 정신보건센터, 재가복지센터, 성폭력 상담소, 노인종합복지관, 각 병원의 재활의학과, 중고등학교, 아동보호시설 등 전국적으로 40여개의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원예치료는 아직 초기단계이기는 하지만 현대의학의 난제로 알려져 있는 몇 분야에서는 또 하나의 대안으로 가능성을 지닌다. 특히 허브는 향을 통한 자극이나 진정효과로 현재 일부 정신과 치료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길러 얻는 즐거움과 고마움이다. 원예치료학회의 박석근 박사는 말한다.
"허브 매니아들이 생겨나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허브를 마치 하나의 소품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허브의 진정한 고마움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기르면서 얻게 된다. 새로운 유행으로서 허브제품만을 찾을 게 아니라, 인간이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양식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