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 정규오 목사의 교회론
서론
해원 정규오(海園 丁奎五, 1914-2006)목사는 박형룡박사의 신학과 정신을 계승하는 정통보수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일생을 사신 분이다. 그는 길선주, 박형룡의 신학전통을 잇는 호교적 인물로서 1950년대 이후 60여 년간 정통주의 신학을 유지, 계승하고 한국교회를 진보주의, 주관주의, 혹은 세속주의의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파수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분이다. 이 점은 정규오 목사님의 삶의 여정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과 WCC를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교회주의나 신복음주의를 경계하였고, 세속주의, 단군신전 건립운동 등을 반대하고 새로운 성경번역을 제창하는 등 호교적 보수 신앙을 파수하고 보전하는데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특별히 그가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한권의 책을 저술한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신념과 반공주의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고, 이런 토대에서 WCC를 거부했다.
그 분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신앙의 정통노선을 파수하는 일이었고, 이것이 그가 이해한 바른 교회운동이었다. 박형룡 박사가 1930년대 이후 보수주의 신학을 지키기 위해 김재준, 송창근, 정대위 등과 대결하며 한국교회의 신학적 변증자로 활동했다면, 정규오 박사는 해방 이후 이 동일한 역할을 자임하셨고, 51인의 신앙동지회 활동에서 보여주듯이 정통신학과 신앙을 지키기 위한 호교적 삶을 사셨다. 이 점에서 정규오 박사는 자신을 박형룡 신학과 이념의 계승자로 자임하고 있고, 박형룡과의 신학이념의 연대성을 중시하고 있다.
정규오 목사가 이해한 정통신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한 개혁주의 신학, 혹은 보수신학을 말하고 이 신학과 신앙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의 신학의 근거이자 토대였다. 동시에 이것이 그의 교회론의 기초였다.
이 글에서는 정규오목사의 교회관이 어떠했던가를 추적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그가 남긴 12권의 『정규오 박사 저작 전집』을 주 택스트로 검토하되, 정규오목사의 삶의 여정, 특히 그의 목회와 교정(敎政)활동, 노회 및 총회에서의 활동, 연합기관에서의 봉사 등을 통해 그가 교회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자료
정규오 박사(이하 해원이라 칭함)는 신학적 체계, 특히 조직신학적 체계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체계에 따라 자신의 교회론을 기술한 일이 없다. 따라서 그의 설교나 강연에 나타난 단편적인 정보를 근거로 그의 교회론이 어떠했던가를 석명하는 일은 약간의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의 여정에는 교회에 대한 그의 관점과 인식이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시도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원의 교회론을 헤아릴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러나 『정규오박사저작전집』 여러 곳에 자신의 교회론을 보여주는 기록이나 언급이 있고, 이런 기록을 종합하면 그가 이해한 교회론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집 12권 ‘교회행정학’의 제1부 교회행정 중의 제1편에서는 비록 간명한 내용이지만 ‘교회론’을 취급하고 있고, 제3편 3장은 ‘예배론’을 취급하고 있다. 또 전집 8권 ‘소논문’ 제1장 목사론, 제2장 장로론에서는 교회에서의 직분에 대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기록 외에도 해원의 교회론을 읽을 수 있는 기록으로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전집1(로마서 강해)
“교회에 대한 성도의 관계”(311-331)
“사회에 대한 성도들의 관계”(331-338)
전집2(설교집, 복음의 폭탄)
“그리스도인의 현실참여”(30-34)
“교육하는 교회”(79-83)
“초대교회로 돌아가자”(209-213)
“교회의 사회참여”(266-272)
전집3(설교집, 새 사람 운동)
“하나님의 통치기관(교회와 국가)”(235-237)
“구국의 길”(243-247)
“베드로”(372-378)
전집4(설교집, 골고다의 세 십자가)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책임”(383-387)
“본 총회의 시대적 사명”(392-414)
“총회의 자세”(392-401)
“교회의 사명”(420-423)
“교회의 사명”(420-423)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435-441)
전집8(소논문)
“제1장 목사론”(17-46)
“제2장 장로론”(47-63)
전집9(사도신경 해설)
“제4편, 교회”(175-216)
전집12(교회행정학)
“제1편 교회론”(17-32)
앞에서 지적했지만 이런 기록된 자료 외에도 해원의 삶의 여정을 통해서도 그의 교회론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신학을 문서를 통해서도 고찰할 수 있지만, 한사람의 삶의 여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을 특히 강조한 학자가 영국의 심리사학자인 루이스 내이미어(Lewis B. Namier, 1888-1960)인데, 그는 한 개인이 남긴 기록 보다는 그 사람의 삶의 여정이 내면세계를 보다 정직하게 표현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주장이나 이론과 실제적 삶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기록 보다는 삶의 여정에서 보여주는 행동 양식이 보다 정직한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우리는 해원이 남긴 문헌을 통해서도 그의 교회관이 어떠했던가를 추적할 수 있지만, 그의 삶의 여정을 통해서도 그의 교회관을 헤아릴 수 있는데, 나는 이 후자를 ‘신념의 행위로서의 신학’(theology as an act of faith)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기록된 문헌과 삶의 여정, 양자를 통해서 보여준 점들을 종합하여 해원의 교회관에 대해 주목했다.
2. 해원의 교회론
해원의 교회론은 넓은 의미에서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교회 전통과 장로교 제도와 유산을 답습하고 있고, 이를 수용한 박형룡의 교회론의 범위에 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그는 서구개혁교회 전통의 교회론을 수용하면서도 직분관에 있어서 한국적 변용의 흔적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은 해원 연배의 목회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점들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1. 교회의 정의
해원은 바울과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전통적인 교회관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해원은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의 통일성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은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몸이요, 성도는 그 지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었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유기적 의미에서 교회의 머리이신데, 그리스도는 교회를 그의 생명으로 채우시고 성령으로 지배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기에 교회는 통일성을 가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상호간의 다양성을 생각하기 전에 한 몸으로서의 통일성,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신적이며 초역사적이며 완전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의 유기체적인 공동체라고 말한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영적이요 유기체적인 공동체이다.” 말하자면 해원은 교회는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의 공동체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는 루터로부터 시작된 정의로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신교 교회론의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교회를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근본적으로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제도 혹은 조직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교회를 지상의 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교회 전통인데, 17세기 천주교 논객이었던 로베르토 벨라르민(Roberto Bellarmin)는 교회를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교회와 일치시켰다. 그는 교황을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 규정하고, 이 교황에 의해 다스려지고 성례전이 집행되는 곳에만 교회가 있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17세기 신구교의 대립기에 개신교회를 부인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가시적이고 제도적인 로마교를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몸으로 규정하여 이것을 성육론(成肉論)의 교회론적 확장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전통적인 로마 가톨릭의 교회관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는 제도적인 로마교회뿐이며 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본 것이다.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거치며 약간의 변화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교회론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교회를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의 공동체로 정의하여 가시적인 제도로서의 교회관을 거부한 것이다. 해원은 이런 전통적인 개혁교회 교회론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는데, 이것은 박형룡의 교의신학을 통해 전수된 정통적 입장의 교회관이었다.
또 해원은 교회를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로 구분하는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보이는 유형교회와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로서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보는 영적 교회로서 (그 구성원들을, 필자 삽입)부분적으로는 우리도 알 수 있지만 주님께서만 온전히 알 수 있는 교회이요, 보이는 유형교회란 현실적이요, 제도적으로 알 수 있는 현실 속에 있는 교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해원은 교회를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교회를 유형교회, 무형교회로 구분하는 방식 또한 종교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교회는 더 이상 하나의 교회로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다수의 교회로 나눠졌기 때문이다. 16세기 개혁 이전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만이 존재했다. 그것이 로마 가톨릭교회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은 참된 교회로서 표지를 상실 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새로 형성된 개신교회들도 하나의 교회가 되지 못하고 여러 종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하는 문제는 심각한 의문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어거스틴 사상 속에 내제해 있었던 보이지 않는 교회 개념을 발전시켜 보이는 현실교회와 구별되는 참교회로서의 개념을 확립하고 이를 신학화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로마 가톨릭이 제도적으로나 가시적으로 부패했으므로 이에 대한 반박으로 교황을 정점으로 한 ‘보이는 교회’(Ecclesia visibilis)가 아닌 ‘보이지 않는 교회’(Ecclesia invisibilis)를 말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견교회와 불가견적 교회, 혹은 유형교회와 무형교회이다. 즉 참된 교회는 보이는 현실의 제도적인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모임인데, 그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인간은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 만 아신다. 이 개혁자들의 가르침이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속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것이 25장 1항의 진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편적 교회나 우주적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왔고, 되며, 되어질 선택받은 전체 구성원으로 조직되며 만물로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것이 루터나 쯔빙글리 그리고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교회개념이었다. 해원은 바로 이런 교회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해원은 16세기 이래로 끊임없이 논의된 이런 구별이 갖는 장점 혹은 유익이나 단점 혹은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는 단순히 이전 시대로부터 전수받은 교회론을 특별한 의식 없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별은 제도적 교회와 그 활동을 신성화할 위험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제도적 교회의 활동을 참된 그리스도인의 활동과 구별해 준다. 이것은 제도적 교회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낙심치 않고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진정한 참된 교회는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별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다. 첫 인물이 개혁자인 멜랑히톤이었다. 근대에 와서 이 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대표적인 인물은 개혁주의 신학자 존 머레이(John Murray, 1898-1975)였다. 그는 유형교회 무형교회라고 말할 때 ‘무형’이라는 용어 사용의 적절성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구별은 성경적 근거가 충분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의문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신약성경의 용례에서 ‘교회’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유형적인 것’을 지칭한다고 말하면서 신약성경의 교회라는 용어는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유형성(有形性)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은 다수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제기했던 문제점이었다. 보이는 교회, 혹은 보이지 않는 교회라는 도식의 구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대의 플라톤 사상과 중세의 실재론이 숨어 있다. 다시 말하면 보이는 것은 비본질적인 것이며 부패되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본질적이며 순결하다는 관념이 있고, 보이는 현상세계와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를 구별한 희랍 철학의 관념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약성경의 교회들은 어떤 추상적인 이념이나 모임이 아니라 구체적인 보이는 역사적 실체였다는 점이다. 사도들은 보이는 구체적인 실체인 고린데, 빌립보, 에베소, 혹은 로마교회를 칭했다. 이런 점에서 불가시적 교회란 용어상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말씀, 성례, 권징과 같은 교회의 표지가 없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교회란 불가시적 실체가 아니며 불가시성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별이 갖는 3번째 문제는 보이지 않는 교회란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보이지 않는 교회란 실체 없는 허구이고 추상적 개념일 뿐이라는 점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제도적 교회 밖에 있을 수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모임을 생각하고 이 용어를 사용했으나 제도적 교회 밖에 존재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모임 역시 보이는 가견적 실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눈에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라는 구별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으나 이런 점들에 대한 해원의 암시나 언급이 없다. 이점은, 해원은 교회의 정의에 대한 기존의 주장을 단순하게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2. 교회의 제도, 무교회주의
한마디로 해원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깊은 관심을 피력하고 이를 강조했다. 이것은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앞서 교회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 것이다.
해원은 가시적 제도로서의 교회를 신국과 동일시하는 로마 가톨릭의 교회관을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 교회의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무교회주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이기를 등한히 하고 폐하는 무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무교회주의자들입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일파와 한국의 함석헌(咸錫憲)씨와 그 추종자들, 이들은 잘못된 무리들입니다. 성경에는 무형교회와 유형교회가 있는데, 특히 유형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이 모이지 않고서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약 27권 가운데 4복음서를 제외한 23권은 모두가 유형교회에 보낸 편지들입니다. 그러므로 무교회주의자들은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니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가톨릭과 함께 무교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점을 암시한다. 첫째는 전통적인 개혁교회 교회관을 수용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비록 눈에 보이는 가견적 지상의 교회가 때로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어도 교회의 제도자체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보여준다. 교회의 본질은 제도나 건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교회가 부패하여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 교회는 해원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부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이런 점에서 가견적 교회제도 자체는 거부될 수 없다. 둘째는 신정통주의적 교회관을 거부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지상교회의 불완전성을 지나치게 문제시한 칼 바르트(Karl Barth)는 교회의 본질은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고 보고 ‘말씀의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정의가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인간이 그 말씀을 듣는 곳에 교회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인간이 응답하는 그곳에 참 교회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에밀 브른너(E. Brunner)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20세기 개신교 교회론에 영향을 끼친 부른너는 그의 『교회에 대한 오해』(Das Missverständnis der Kirche)에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제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난 1천 8년 동안 제도와 동일시 했다고 말하면서 교회는 수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요, 수평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형제간의 만남, 곧 형제간의 사랑의 사귐이라고 했다. 이런 신정통주의자들의 교회관은 교회를 조직체로 여기고 교권에 몰두해 온 이들에게는 경종을 주고 참교회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도움을 주었지만 이런 입장의 교회관은 제도로서의 교회를 원천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에 무교회주의를 신학적으로 정당화 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무교회주의는 교회를 부정하는 사상이 아니라 교회제도, 곧 제도적 교회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이 말씀의 사건이라면 제도적 교회가 아니라하더라도 말씀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교회관에 대해 해원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형룡의 관점에 동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해원은 두 가지 극단적인 교회관을 부정하고 있다. 첫째는 제도적 교회에 대한 교회, 혹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절대시하거나 신성시하지도 않고, 다른 한편, 교회의 제도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바르티안적 교회관을 부정하고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가 로마 가톨릭적 행태라고 한다면, 후자는 무교회주의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2.3. 장로교 직분관: 2직분론
해원의 교회관에서 흥미로운 점은 장로교 전통의 2직분론을 받아드리고 있고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원은 “감독과 장로는 성경상 동일직무의 별칭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 점을 성경의 예를 들어 논증하고 있다. 특히 해원은 “이 동일직이 사도시대 이후 감독직은 강화되고 장로 명의는 쇠퇴하여 그 자취를 감춰버렸으나” 16세기 칼빈에 의해 장로직과 장로교 정치체제를 확립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런 입장 또한 장로교 전통의 직분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황주의자들이나 감독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신약교회를 위해 3종의 직, 곧 감독(teaching elder)과 장로(ruling elder)와 집사직(serving office)을 만드셨다고 믿고 있다. 김독과 장로직을 별개의 직분으로 이해하는 이런 입장을 3직분론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들은 이 3직을 계급적 구조로 이해하고 있고 한 교회에는 하나의 감독만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로주의자들은 감독과 장로는 동일직에 대한 다른 용어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성경에 두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이것은 동일한 직분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해원도 이점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딤전3장 1-2, 12절에서 교회의 직분을 감독(장로)와 집사로 규정했고, 예루살렘 교회에도 감독이라는 성직자와 장로, 집사라는 평신도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장로(감독)와 집사만 존재했다. 저명한 교회사가인 니안더(Johann August Wilhelm Neander, 1789-1850)는 “모든 교회가 회중에 의하여 피선된 장로, 혹은 감독들의 연합체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과, 이 두 이름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신약교회의 직분은 장로(혹은 감독)와 집사뿐이라는 것이 2직분론인데, 해원은 장로교 전통의 직분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4. 교회의 책임과 사명
해원의 교회관에 있어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교회의 사명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한 사람의 교회관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해원은 저작전집 제12권 교회행정학 중에서 교회론을 말하는 가운데, ‘유형교회의 직능’ 이라는 항에서 교회의 사명을 6가지로 말하고 있다. 즉 예배, 말씀의 선포, 성례의 집행, 권징, 봉사, 그리고 증거(전도)가 그것이다. 여기서 해원이 교육적 사명을 특별히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은 말씀의 선포 속에 교육적 사명에 포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 예배 외에도 흔히 참된 교회의 표지로 일컬어지고 있는 ‘말씀의 선포,’ ‘성례의 집행,’ ‘권징’을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문제로서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흔히 교회는 마태복음 22장 34-44절에 근거하여 교회의 사명을 이해하고 있다. 즉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가르침은 수직적 차원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 사랑과 수평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 이런 점은 십계명 속에도 잘 드러나 있다.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 사랑을 명하고 있다면,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이웃 사랑을 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교회의 사명은 수직적인 차원에서 예배, 교육, 증거(전도, 선교)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해원은 이 점을 경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의 수평적 차원의 사명은 이웃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인데, 그것이 봉사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해서도 해원은 무시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해원이 교회의 ‘봉사적’ 직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점이다.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봉사’라는 측면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이웃에 대한 책임만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책임성도 포함하는데, 이의 확대된 경우가 인간화에 대한 교회의 책임성, 사회 정의에 대한 교회의 책임, 혹은 평화에 대한 교회의 책임으로 말하기도 한다. 신학적으로 진보적이면 진보적일수록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서의 교회의 책임을 강조하기 보다는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에서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보수적 교회나 그 지도자들은 수직적 차원의 교회의 사명, 곧 예배, 교육, 증거의 사명을 강조하지만 수평적 차원의 활동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진보적 교회나 그 지도자들은 교회의 사명을 수평적 차원에서 강조하여 정치적 현실과 관련시키기도 한다. 보수적 교회는 영혼구원에는 합당한 관심을 표명하지만 교회의 역사적 책임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고, 반대로 진보적 교회는 영혼구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회운동에 치중하여 마치 NGO 조직처럼 활동하는가하면 심지어는 사회구조나 사회악에 대항하고 투쟁하거나 데모를 일삼는 교회도 없지 않다. 이런 교회는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이나 선교를 위한 노력이 별로 없다. 단지 사회개혁, 정치적 해방, 구조적 개혁을 위해 투쟁한다.
그렇다면 교회의 봉사적 사명을 말하는 해원은 이 봉사를 어떤 한계에서 이해하고 있는가? 해원은 교회의 봉사적 사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회 봉사는 주님의 지상 내림의 목적이요(마9:13, 20:28, 막10:45, 요12:24), 교회가 봉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은혜의 결실이요(마10:42, 25:31-46), 주님께 봉사함이다. 교회의 봉사는 권리이며 의무이며, 사명이다(눅10:42, 25:14-30). 봉사는 청지기 직분이요 사명이다(눌12:41-48, 고전4:1-2, 롬14:7-9).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볼 때 해원은 교회의 봉사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제한된 범위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봉사의 근거로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하고 있는데 종의 신분으로 섬기기 위해 오신 본문을 제시하고, 또 “봉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은혜의 결실”이라고 말함으로써, 봉사를 구원받은 성도의 감사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해원이 이해하는 봉사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형제 사랑과, 이웃을 위한 섬김과 배려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원은 전집8권 제3장 ‘봉사론’에서 봉사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의 주의도 봉사를 교회 내적인 헌신과 섬김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헌신봉사, 예배를 통한 봉사, 말씀 전하는 봉사, 구제하는 봉사, 물질을 통한 봉사 등이 그것이다.
해원은 ‘봉사’라는 개념을 확대하여 교회의 사회정치적 책임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 즉 해원은 교회의 사명을 예배, 교육, 증거라는 수직적 차원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 섬김 등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해원의 설교에서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여 교회의 사명과 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교회와 세속의 경계선을 허무는 일에 반대하면서도 이 땅의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역사 현실에서 책임 있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고, 그 성경적 근거를 마태복음 5장 13-16절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해원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을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말하고 있는데, 흔히 말하는 사회 참여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여기서 해원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속사회의 조직과는 달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교회와 사회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광주중앙교회에서 이 설교를 했던 1970년대 본훼퍼 작품의 역간과 더불어 논의되던 세속화론에 대한 거부를 표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해원은 이렇게 설교하고 있다.
자유주의자 현대주의 신학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참여를 주장하면서 세속화 운동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들은 흔히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 속에 오시지 않았는가? 그런고로 우리 기독교인들도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살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교회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세상과 함께 살고 세상과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의 생각 중에 큰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속을 철폐해 버리는 것이요. 선악을 혼용해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담을 헐자는 것입니다.
즉 해원은 ‘교회’라는 이름으로의 집단적 사회참여를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할 경우 교회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사회를 섬기게 되기보다는 세속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교회를 노아의 방주로 비유하는 해원은 이렇게 말한다.
배의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있고 파손이 되어서 세상 물결이 교회 속에 들어오지는 않는가?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세상을 주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고 정화하기는커녕 세상이 교회를 흡수하고 비판하고 그리고 세속화되어가고 있지 않는가? 좌경적인 교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말씀, 정통, 보수를 외치는 소위 보수적인 교회에 구멍이 뚫려 있지 않는지 깊이 점검 분석하고 이를 방지해야 한다.
해원은 교회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회봉사가 가져올 위험을 지적하면서도, 이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는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원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그것을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말하는 데, 해원을 이 사명을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임으로 제한하고 있다. 해원은 이렇게 설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개혁주의 칼빈주의에서 주장하는 사회참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향하여, 사회를 향하여 소금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세상을 말할 때 세상은 부패타락 했다고 말하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고, 모든 불의와 악독이 가득한 땅에 속한 지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은 소금의 책임이 있다고 했으니 세상이 썩지 못하도록 방부운동을 해야 하고 정화운동을 우리 기독교인들이 책임지고 전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해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빠져 들어가서 세상과 같이 썩고 타락하고 악하고 음란해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치계에 들어가면 정치계의 부패를 방지하는 정화운동이 일어나야 하겠고, 교육계에 들어가면 교육계를 정화하는 소금으로, 법조계, 행정계, 실업계 등 각계 각처에 침투해 들어가서 소금 노릇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상에서 보여주듯이 해원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를 이 사회에 대한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이해하고 이것을 도덕 혹은 윤리적 정화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사회정화나 개혁을 위한 특별한 제안이나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고 있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그리스도인이 처한 상황에서의 역사적 책임이라는 구체적 행동, 곧 인권의 확보, 사회정의의 실현, 혹은 제도의 개혁으로 확대하지 않고 있다. 비록 그가 “교회와 인권”이란 설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방종에 흐르지 않는 범위에서 신앙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의사표시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평화적인 시위, 거주 등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언론, 집회, 출판, 결사, 거주 등의 여러 자유가 있습니다. 현금 이런 기본적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악법은 하루 속히 폐지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설교하고 있으나 이 설교가 ‘교회의’ 정치참여와 같은 그런 의미에서 볼 근거가 없다. 단지 이 설교가 행해졌던 1974년 당시의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기본권마저도 제한된 상황에서 자유의 제한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1970년대의 상황에서도 교회의 봉사적 직무를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혹은 윤리적 계도의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봉사의 직무를 역사 현실에 대한 책임론으로 확대하지 않고 있고, 진보적인 입장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입장을 종합해 볼 때 해원은 사회책임보다는 영혼구원을 우선시하는 보수적 입장을 추구하고 있고, 교회의 봉사적 사명을 섬김, 배려, 사랑의 실천과 같은 제한된 범위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2.5 교회 연합과 분리
한 사람의 교회관을 반영해 주는 중요한 척도는 교회연합과 분리에 대한 입장이다. 해원에게는 교회 분리나 연합에 대한 분명한 신학이 있었다. 우선 해원에게는 교회의 속성인 통일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근본적으로 교회는 하나라고 인식했다. 이런 믿음은 381년 니케야-콘스탄티노플 신조 이후 교회의 일관된 믿음이었다. 해원은 이렇게 설교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몸이요 성도는 그 지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었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유기적 의미에서 교회의 머리이신데, 그리스도는 교회를 그의 생명으로 채우시고 성령으로 지배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기에 교회는 통일성을 가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상호간의 다양성을 생각하기 전에 한 몸으로서의 통일성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성을 강조해야겠습니다. 신적이며 초역사적이며 완전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나입니다. 모든 지체는 이 하나됨을 위해 힘쓰고 봉사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앙고백이 동일하다면 연합해야하고 신앙고백적 이유가 아닌 교회 분리나 분열은 죄악이라고 본 것이다. 해원은 광신학보(1979. 6. 18)에 쓴 ‘나의 제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총회는 결단코 갈라져서는 안 된다. 그 까닭은 1. 신학과 신앙이 같은 때에는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까닭이다. 우리 합동측 보수교단은 기장과 통합이 이탈함으로써 교단 내에 극소수와 이질분자를 제외하고는 교단 내 350여 교회와 지도자들의 신학사상이 정통보수요 신앙이 정통신앙인 까닭이다. 2. 신학과 신앙이 정통보수인데 교단이 분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함이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찢는 죄악을 범하는 까닭이다(엡4:1-16, 요17:1-26).
신학이 같고 신앙이 같을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학과 신앙이 같을지라도 신앙의 정도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엄격하게 말하면 신앙의 정도의 차이는 만인(萬人)이 모이면 만인이 다 다른 것입니다. ... 그렇지만 신학과 신앙이 같을 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언급과 함께 해원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오늘 우리 총회 안에, 각 기관에서, 교회에서 신학과 신앙이 같으면서도 진정 하나로 단결하지 못하고 감정으로 치우치고 학교 출신에 치우치고 지방(地方)으로 치우치고 세대차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해원은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믿음과, 신학과 신앙외적 이유로 분열하는 것은 죄악일 수 있다는 지적을 했지만 1979년 합동교회(단)은 주류와 비주류로 분열되었고, 결과적으로 ‘개혁측’이라는 새로운 교단이 조직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지도적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해원에게도 약간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분리해야만 했을 불가피한 요인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해원은 총회가 분열될 요인으로 3가지 점을 지적했다. 법질서 파괴, 지방색의 심화, 총신대학의 신학적 좌경화와 운영상의 문제가 그것이다. 정준기교수는 이 때의 분열이 “신학적인 이유와 동서 지역구도 갈등 등 여러 사회학적 요소도 첨가되어 합동과 합동보수라는 이름으로 분열되었음”을 지적했다.
설사 분리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요인들이 있었다 할지라도 해원은 이런 분열에 대해 늘 마음아파 했던 것 같다. 이점은 해원의 삶의 여정과 내면의 진심을 표현한 글 속에 뚜렷이 드러나 있다. 해원은 1998년 12월 15일 보수계열의 9개 장로교단이 합동하기로 하고 전주동부교회당에서 회집한 합동총회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분열주의자였습니다. 한국교회의 분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진정으로 용서를 빕니다. 이제 머잖아 하나님 앞에 갈 것인데,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서로 흩어진 교단들이 손을 잡고 하나가 되십시오.
1979년 분열 당시 한사람의 지도자였던 해원은 합동교단에서 분파된 여러 교회들 간의 연합을 촉구했고, 결국 그의 지도력으로 1998년 12월 15일 합동총회를 개최하게 되어, 9개 교단의 파송한 1800여명의 총대 앞에서 눈물로 연합을 호소했다. 이와 같이 신앙고백을 같이하는 교회들 간의 연합을 위한 노력은 지난날의 분열을 치유하는 일인 동시에, 지난날의 분열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양 자책하는 아름다운 사례를 남겨 주었다. 이것은 지난날의 분열이 정당했다고 변증하는 것 보다 더 큰 결단이었고, 이런 점이 해원의 지도력이자 감동적인 연합에의 추구였다. 해원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연합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신학과 신앙고백을 같이하는 교회들 간의 연합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김준곤의 충고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준곤목사의 “결자해지 해야지요”라는 충고가 그것이다. 해원은 임종 2년 전 합동측 부총회장 서기행목사에게 연합을 호소하였고, 합동측과 개혁측은 이 뜻을 받들어 2004년부터 연합을 위한 접촉을 시작한 결과 2005년 9월 27일 ‘역사적인’ 합동을 이루게 된다. 이 역사적인 합동을 보고 해원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감격해 했다고 한다. 당시 개혁측은 3천여교회를 가진 대형교단으로서 구태어 합동측과 연합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동일한 신학과 신앙고백을 가진 교회는 조건 없이 합동해야 한다는 해원의 정신이 크게 작용했다. 해원의 지도력이 있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해원은 이 일을 성사시키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점에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고 할 수 있다.
2.6. 교회연합운동과 WCC
비록 해원은 연합을 추구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앙고백적 일치를 추구한 것이지 외형적인 연합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신앙고백적 일치 없는 연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WCC를 반대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진리 안에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로 단결하고 하나로 뭉치고 하나로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신학이 다르고 신앙이 다를 때는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죽어도 하나가 되거나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고,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빛과 어두움이 공존(共存)하고 타협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이 엄히 가르치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해원이 조선신학교에서 동료 51인과 함께 신앙동지회를 구성하고 김재준 등의 가르침에 반기를 든 것도, WCC를 반대하고, 성경공회를 조직하여 새로운 성경 역간을 의도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런 신념에 기초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원은 WCC를 사이비 기독교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가면을 둘러썼으나 참된 신앙에서 떠난 이단적인 교회로 규정한다. 그것은 신앙고백적 일치 없는 외형적 연합일 뿐 아니라 용공적이고 지상천국을 의도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나는 지금부터 14,5년 전, WCC 에큐메니칼 운동이 한국에 들어왔을 초기에, 이 에큐메니칼 운동이 자유주의 신신학이요, 단일종교운동이요, 용공성이 있는 운동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많은 욕설을 당했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4,5년이 지난 오늘, 에큐메니칼 운동이 자유주의, 단일 교회, 용공운동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WCC의 산하기관으로서 CCA(아시아기독교협의회)가 1949년에 조직되어, 우리나라 에큐메니칼 교회 대표자들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서 결의한 몇 가지의 내용을 보면, 1. 1949년 회의에서, “모 주석은 중국을 석권하고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교회의 임무는 기정사실화된 인민혁명을 위한 도덕적 종교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2. 1964년, “오늘 교회가 개인이 구원을 얻고 천국가려고 교회에 모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3. 1968년, “교회는 민중조직으로서 혁명대열에 참여하고 주도해야 한다.” 4. 1972년, “모 주석은 문화혁명을 개시하였으며 동시에 영구혁명을 정립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영구혁명을 위한 도구이다.” 5. 1982년, 도시산업선교계획 보고서에, “월남 민중이 세계의 최강군대와 세계강국의 기술에 항거하는 투쟁에서 보여준 그들의 의지야말로 민중의 힘을 증명한다. 그리고 중공혁명이 준 교훈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것은 인민의 승리였다.” 6. “자본주의 경제에서 돈은 도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돈은 축복의 표시가 아니라 착취의 도구이다. 기독교의 헌금제도는 헌금하는 자에게 반독선적 쾌감을 주는데 의미가 있다.” 7. “과거에 선교사나 교회가 제공한 구제 사업이나 봉사는 빈민을 노예로 만들었을 뿐이다.” 8. “우리가 과거에는 공장에 가서 노동자들에게 설교하여 영혼을 구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사회에서의 정의와 해방을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 9. “예배시의 설교도 재래식 사고방식인 성경책을 통한 맹목적인 설교는 가치가 없다.” 그러면서 CCA는 개신교와 천주교가 연합하여 “한국 기독교인 행동조직(KCAO)”이란 단체를 결성하고, 민중조직을 통한 민중혁명, 민중봉기로서의 사회혁명을 결의했습니다. 이는 벌써 참 교회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공산주의와도 타협하고 용공을 하게 됩니까? 중생되지 못한 심령, 성경관, 천국관, 내세관, 속죄관이 비뚤어질 때 윤리종교, 현실종교로 타락하고, 그리스도교나 공산주의나 지상 천국만 건설하자는데 일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해원은 교회연합과 분리에 대한 분명한 표준을 가지고 있었고 이 확신에 따라 행동했다.
2.7. 교회와 국가
해원의 설교에서 교회와 국가 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선명한 개혁주의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이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설교가 로마서 13장 1절 이하의 본문을 주해한 “사회에 대한 성도의 관계”라는 설교와 동일한 본문에 대한 설교인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각기 다른 시기에 행한 설교이지만 기본 정신이나 주의(主意)는 동일하다. 이 설교를 통해 해원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취급하면서 몇 가지 점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가와 국가 권력은 하나님이 내신 것이며 기본적으로 국가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국가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점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고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란 ‘각 영혼’이란 말로 되어 있습니다. 영혼은 인격 즉 인간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는 각 사람이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서 정부에 복종하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해원은 국가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학설을 소개하면서, 신의설(神意說)이 가장 올바른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국가는 하나님의 의지에서 세워진 제도이기 때문에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해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궁극적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발생된 것이 국가라고 합니다. 이것은 왕권신수설과는 다른 이론입니다. 왕권신수설은 독재적인 왕권을 옹호하기 위해 만든 이론입니다. 이 학설이 가장 성경적이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학설을 믿게 됩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되어 집니다. 국가제도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역사의 현상계만 보면 인간의 권력자가 지배하는 것 같으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지시고 통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몇 가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로 보건데 국가는 하나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영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규범을 주셨습니다. 자연계에는 자연법칙을 주셨고, 인간계에게는 양심을 다스릴 수 있는 도덕율을 주셨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법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국가를 세우신 이도 하나님이요, 국가에 권세를 주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를 거스리는 자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자가 됨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둘째, 교회와 국가는 소관 영역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영역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범위와 한계를 적시하는 것으로서 매우 적절한 지적을 하고 있다. 해원은 이렇게 설교하고 있다.
국가의 권세는 하나님의 것까지 요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마22:21)라고 하셨습니다.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것도 잘못이며,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것도 잘못이며, 국가와 교회는 서로 공존분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마치 육체와 영혼이 서로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렇다고 분열되어서 유기적 통일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서로 도우면서 한 인격을 이루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교회는 국가에 대하여 양심의 역할을 해야 하며 국가에 대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며 국가에 대하여 기도해야 하며 정당하고 합법적인 법률과 관원에게 순종 복종해야 합니다. 한편 국가는 교회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교회의 적을 방지하고 모든 편의와 시설을 협력해야 하며, 교회의 신앙, 교회의 행정에 대하여 간섭이나 탄압을 해서는 안되고 국가는 교회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이렇게 구가와 교회는 분리되되 완전히 분리된 별개체가 아니라 영역과 사명이 다를 뿐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여기서 해원은 교회와 국가에 대한 가기 다른 네 가지 입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첫째는, 천주교의 입장인 ‘국가종속설’이라고 말한다. “천주교는 교회는 국가의 상위에 있으며, 교황은 국가와 정치까지를 지배하고 통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장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해원은 “1870년 바티칸 회의에서 결정한 교리헌법 제3장에 보면 교황의 절대권을 규정했는데, 교황은 신앙과 도덕에 속한 사물만 아니라, 또한 그 규율과 정치에 관한 사항에 있어서도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비록 해원은 황제교황주의(皇帝敎皇主義, caesar-papism)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교회의 국가 지배의 정당성을 말한 천주교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둘째, ‘교회종속설’인데, 이는 “천주교와 반대되는 견해로서 교회가 국가의 일국면에 속한 것이며 국가에서 교회를 지배, 감독하고 교직자를 임명해서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는 사상으로서, 서구에서는 16세기.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의 의사였던 에라스튜스에 의하여 주장되었고, 국수주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전개되었던 사상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비록 이 견해의 주창자를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의사였다고 말하는 등의 약간의 오류가 없지 않으나 해원은 국가의 교회 지배권을 주장하는 에라스티안주의(Erastianism)를 소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셋째는, 재세례파나 열광적인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제기된 ‘국가무용론(무정부주의)’를 소개하고, 넷째는 개혁주의의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해원은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인류를 통치하시는 방법으로 교회와 국가를 설립하셨다(행17:26, 롬13:1-10, 골1:16)”고 전제하고, 통치 영역이 다른 것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통치, 한 목적, 한 규범 안에 존재하는 교회와 국가의 활동 영역은 각각 다릅니다. 국가는 일반은총, 육에 관한 문제, 현실 구원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교회는 특별은총, 영에 관한 문제, 신앙영생, 영육구원에 관한 문제를 다룹니다. 활동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교회와 국가는 서로 적대시 하거나 충돌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각자의 사명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고 서로 서로 협력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교회가 국가를 지배한 때도 있었고, 국가가 교회를 탄압하고 핍박한 때가 많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다 교회가 부패하고 국가의 집권자들의 독재와 포악, 무지와 부패에 기인한 것입니다.
여기서 해원은 1077년의 카놋사의 굴욕사건과 히틀러나 일본 군국주의의 기독교 탄압을 사례로 제시했다. 그리고 국가는 “교회의 발전과 부흥에 지장이 없도록 적극협력 해야 하며, 교회를 탄압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또 교회는 “국가의 양심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국가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국가가 지향하는 정책에 건설적인 비판을 하고 선의의 충고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해원은 이것이 장로교 전통의 구가와 교회간의 바른 관계에 대한 인식임을 암시하고 있다. 비록 해원은 황제교회와주의나 에리스티안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장로교제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이상적이 교회-국가관의 관계임을 말하고 있다.
세 번째, 국가와 교회에 대한 해원의 이해 중 흥미로운 점은 서양기독교 전통에서 제기된 ‘저항권’ 사상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그가 이런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이런 이론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국가와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되 분명한 한계를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항권 사상이란 국가권력이 본래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신교(信敎)의 자유를 유린하는 등의 불의한 권력에 대하여는 저항할 수 있다는 사상인데, 마태복음 22:21절이나 사도행전 5: 29절을 중요한 근거로 말한다. 이 사상은 16세기 개혁자들, 특히 루터, 칼빈, 베자를 거쳐 장로교 전통의 낙스와 멜빌 등으로 계승되어 온 사상을 의미 한다. 해원은 이렇게 설교한다.
만약에 국가가 하나님의 것까지를 요구할 때 순종할 의무가 없습니다. 마땅히 거절해야 합니다. 우상숭배를 강요하거나 황제숭배를 강요할 때 거절해야 하며, 주일성수와 같은 신앙행위를 침해할 때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가의 권력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 행해지는 것이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헤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해원은 저항권 사상을 피력하면서, 통치자가 부당한 권력을 행사할 때 저항권이 어떻게 행사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점은 행원 시대의 인물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따라서 필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탁월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저항권을 말하면서도 최고 통치자가 부당한 권력을 행사할 때 일반인들의 저항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차위(次位) 권력자에게 저항권이 있고,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최종적으로 일반인들의 저항권을 말했는데, 해원은 칼빈의 이런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국가에 권세를 주신 것은 이같이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며 만인의 진정한 평등을 이루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국가의 권세는 이것을 이루는 범위 안에서만 정당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국가의 권세가 이 한계성을 모르고 오히려 국가의 권세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며 인간의 평등권을 말살시켜 버린다면 이미 권세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입니다. 이럴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사악한 지배자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니 순종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악한 통치자라도 무정부 상태에 있는 것 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 권세자들이 무법포악 잔인무도할 때는 하급관리들이 이를 제지해야 합니다. 하급관리들이 이 일을 태만히 하는 것은 민중의 자유옹호자로서 세워주신 하나님에 대한 불충입니다. 모든 관헌들이 부패했을 대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때 시민들은 무저항주의로 과감히 순종치 말아야 합니다. 칼빈은 다니엘서 주석에서 “땅 위의 왕들이 하나님을 거역할 때는 그들의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순종하기 보다는 오히려 도전해야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해원의 저항의 조건은 인권과 민주적 질서까지 해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석명되어 온 저항권사상을 피력하고 있다는 점은 당시 대부분의 보수적 인사와는 다른 일면이 있다고 하겠다.
결론
이상에서 조망하였듯이 해원의 교회관은 기본적으로 개혁교회-장로교 전통을 계승하되 한국적 상황에서 보다 호교적 성격으로 심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점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박형룡이 1930년대 이후 추구했던 호교적 성격과 같다. 해원은 1960년 대 이후 세속주의 물결, 신학적 좌경화, 종교다원주의의 대두, 인본주의적 상황에서 복음의 변증을 일생의 과제로 안고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 헌신했다.
그는 교회의 속성을 개혁교회의 전통에 준하여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 등 4가지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니케야 신조나 니케야-콘스탄티노플(381) 신조의 가르침, 곧 “우리는 한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 고백에 근거하여 교회의 4대 속성들(proprietates,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이 역사적으로 정착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성’이란 사도적 신앙의 동일성을 말하는데, 지역교회는 보편교회의 일부로 관여하고 있음을 말하고 우주적 교회를 말한다. 동시에 삼위 하나님이 교회에 충만하게 관여하고 계신다는 점을 의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되심을 선포한다. 교회의 연합이나 일치도 이 보편성에 기초하여 논하게 된다. 또 여기서 말하는 ‘사도성’이란 천주교에서 말하는 사도적 계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전파와 선교적 사명을 말하고, 사도적 전파와 교리의 계승을 말한다. 이 4가지 속성들은 교회의 표지들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 즉 4속성들이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표지에 입각해 있을 때 바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해원은 바로 이런 정통적인 개혁신학적 교회관을 중시하고 가견적 제도화된 교회를 절대시하는 천주교나 이런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무교회주의는 바른 기독교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교회’의 사명에서 ‘봉사’의 의미를 기독교적 자애와 사랑(caritas)으로 한계짓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경시하지 않았다. 또 해원은 교회의 하나됨을 추구하여 신학적 일치에도 불구하고 분열된 교회들 간의 연합을 추진하고 생애를 마감했다. 해원은 해방 이후 한국보수주의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교회 지도자이자 목회자였다.
필자 소개
이상규(李象奎, Sang Gyoo Lee)
고신대학교 신학과(신학사, BTh), 신학대학원(MDiv), 대학원(ThM)에서 수학한 이상규 교수는 호주 장로교신학대학(PTC)에서 연구하고 호주신학대학(ACT)에서 신학박사(ThD) 학위를 받고 고신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칼빈대학 방문교수, 호주 메퀘리대학 연구교수(2002-8)이기도 했다. 현재 부경 기독교역사 연구회 회장, 한국교회와 역사 연구소 소장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1992년에는 통합연구학회가 수여하는 학술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는 「교회개혁사」(1997), 「의료선교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2000),「부산지방 기독교전래사」(2001), 「교회개혁과 부흥운동」(2004), 「헬라로마적 상황에서의 기독교」(2006),「한상동과 그의 시대」(2007),「한국교회 역사와 신학」(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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