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두 길, 박형룡의 길과 김세윤의 길
고경태 박사(형람서원)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보수 성격(Conservative Christianity)을 띠는 대표적인 교회이다. 보수주의는 반공(反共)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에 대립되는 성향이다. 보수주의 성향 안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가진 분들이 많고, 자유주의 성향 안에 친공(親共, 용공 (容共)) 이데올로기를 가진 분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36년과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전쟁 3년이 있었다. 미국도 남북 전쟁이 있었는데, 전쟁으로 교회가 나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이해가 아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동일한 교회이면서도 나뉜 사례이고, 우리의 전쟁은 수 많은 순교자를 파생시킨 교회 파괴적 성격이 강한 전쟁이었다. 북쪽 미국에는 교회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우리 북쪽에는 교회라고 볼 수 있는 교회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한다.
"박형룡의 길과 김세윤의 길"은 임종구 박사(대신대)가 제언한 문구이다. 우리 한국 장로 교회는 "박형룡의 길과 김세윤의 길"이 아니라, 1953년, "박형룡의 길과 김재준의 길"의 길이었다. 그리고 1959년, "박형룡의 길과 한경직의 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주의 목사는 한경직 목사일 것이다. 그런데 1960년에는 용공주의라고 평가된 WCC에 지향한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1945년 이후 한국 교회사상사에서 보수주의는 한 인물, 박형룡 박사이다. 그를 기준으로 김재준은 기장으로, 한경직은 통합으로 교단이 분열되었다. 참고로 고신 교단은 1947년 박형룡을 만주 봉산에서 모시고 와서 교단을 구축하려고 했지만, 박형룡이 서울에서 신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1951년 경남노회와 신학교 문제로 분열되었다. 그 당시에도 1948년 WCC의 용공문제가 지적되었고, 고신 교단은 용공(容共)주의에 대해서 거부했다. 공산주의는 철학, 경제, 정치를 포괄하는 거대 담론으로 가장 매력적이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교회가 공산주의를 기준으로 두 거대 담론, 반공과 친공이 형성될 정도이다. 반공주의 안에 보수주의가 있고, 신비주의, 은사주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학분별 훈련을 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신학이 아니지만, 기독교에 대한 혐오 의식이 있다(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The opium of the people or opium of the masses). 공산주의를 대체한 네오 맑시즘(신 마르크스주의)은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를 시작으로 경제, 정치에서 사회 문화 영역으로 전선을 전환시켰고, 더욱 강한 기독교 혐오 의식을 나타냈다. 그람시는 파시스트 정권에 항거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자이다. 공산주의는 사회계급(상층) 전복을 추구했지만, 신공산주의는 사회전체를 교육과 문화, 언론으로 전복을 추구한다. 이 시대에 가장 강력한 세속화를 공산주의가 추구하고 있고, 세상의 길 넓은 길이다. 교회의 신학은 계몽철학 이후 철학의 시녀가 되어 세상의 철학을 교회에 들여와 교회화시켰다. 300년이 지난 이제는 철학이 교회화된 교리가 교회의 정통 교리가 된 것 같다. 김재준과 한경직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겠지만, 박형룡은 세속화의 길, 자유주의 신학을 변호한 대표적 학자이다.
임종구 박사가 대조시킨 "박형룡의 길과 김세윤의 길"은 자유주의 신학을 변호한(기독교현대신학난제선평, 1935년 초판, 1975년 증보) 박형룡과 성경비평주의로 신학하는 김세윤을 대조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박사는 1975년 증보판 8장 신자유주의 급진신학, 12장 WCC 에큐메니칼운동 신학, 13장 신복음주의 신학 등을 추가하여 신신학을 비판했다.
필자는 "박형룡의 길과 김세윤의 길"이 아니라, "서철원의 길과 김세윤의 길"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박형룡과 서철원의 신학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다. 박형룡은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선교사들의 신학 자산을 유지했다. 그것이 역사적 전천년기론이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네덜란드 자유신학교에서 개혁신학을 훈련한 서철원은 한국 개혁신학교회에 있는 그러나 서구 개혁신학에 없는 역사적 전천년기론 수정을 제안했다. 그래서 약간의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주의 신학을 변호하는 개혁신학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신신학, 성경비평주의를 비판하는 면에서 일치한다. 김세윤은 성경비평주의로 성경을 해석한다. 그것은 2004년, 서창원과 여성안수 시비를 할 때에 드러났다. 2004년에 논의된 사안은 서창원과 김세윤이 동일하게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김세윤은 "여성안수가 복음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주장하는 복음은 성경비평주의에 의해서 형성된 개념이다.
김세윤은 2015년 최덕성으로부터 "유보적 칭의론"이라는 비평을 받았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서 이신칭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놓으려 했지만, 최덕성 박사의 유보적 칭의론 개념화에 대립되어 성사되지 못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이신칭의 유지와 이신칭의 재해석을 놓고 대립 중인 세계 교회의 유일한 지역이다. 세계 교회에 이신칭의가 재해석되어 이신칭의를 유지하는 교회는 소수 혹은 극소수에 있다. 이미 루터파, 감리파가 이신칭의 부분에서 1517년 이전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와 화해 협약을 맺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사역자를 교류하는 매뉴얼을 만들었다.
"박형룡의 길과 김세윤의 길"은 한국 교회의 두 길을 의미한다. 박형룡은 김재준, 한경직(WCC), 김세윤과 대조를 이룬다. 김세윤은 서철원, 서창원, 최덕성과 대조를 이룬다.
서철원 박사나 최덕성 박사는 박형룡 박사에 대해 아쉬움을 피력하는 연구자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에 대해서 존중한다. 역사, 지난 학자는 그 책으로 말할 뿐이다. 박형룡의 사상은 그의 책에 있다. 후진들은 그 책을 가지고 더 성경과 교리에 부합하는 신학 자산을 책으로 남겨야 한다. 서철원은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전집을 발간했고, 최덕성 박사도 많은 역사신학 분야 그리고 WCC에 대한 분석, 기독교사상사에 대한 분석 저술들이 있다. 서철원, 최덕성, 서창원은 아직 생존하는 연구자이니 우리에게 살아 있는 선생이다. 김세윤은 박형룡, 서철원, 최덕성, 서창원과 대립되는 연구자이다.
2008년(자살과 동성애 비유), 2015년에 김세윤은 동성애에 대한 발언도 있다. 김세윤은 동성애를 이혼에 비유하며, 이혼이란 죄가 더 크다고 발언했다. 그는 한국의 율법주의자 목사들(김세윤의 표현)이 이혼은 용인하면서 동성애에 대해서 비판하는 소리에 대해서 역으로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속임수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는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전제를 통과시킨 뒤에 어려운 전제를 연속 배치해서 설득하는 구도이다. 긍정의 답을 자연스럽게 요구한 뒤에, 그 긍정을 반복해서 자기 주장에 동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혼과 동성애의 비교는 적절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혼을 가볍게 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동성애와 비교해서 한 묶음으로 재단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이혼은 인류 문화 일반 자산이고, 동성애도 인류 문화 특수 자산이다. 그 특수 자산이 일반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일반화를 자연이 아닌 법제화를 통해서, 반대 진영을 악마화하면서 진행한다. 자연에서도 세속화는 증가한다. 그런데 법제화를 통해서 세속화를 진행시키는 것은 자연을 억압하는 것이다. 그러한 젠더 시대가 이뤄진 사회에서 화장실, 탈의실이 남과 여로 구분하는 것이 성차별이라는 주장이 일반화되어 문제점이 심각하는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청문회 영상이 유투브에 있다.
박형룡은 세속화의 길에 교회가 서지 않기를 기대한 신학자이다. 김세윤은 세속화의 길에 서지 않으면 복음의 본질이 아니라고 해석한 신학자이다. 우리는 두 신학자의 길을 보아야 한다. 최근 로잔대회는 두 신학의 길에 선 제3의 길을 표방하는데, 이 제3의 길이 만나는 길은 두 길 중에 어느 길인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참고1] 박형룡(1897-1978)이 박형룡이 되는 것에는 두 사람의 기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 분은 송상석(1896-1980)이고, 또 한 분은 정규오(海園 丁奎五, 1914-2006)이다. 박형룡 박사께서 소천하신 뒤에 정규오는 천대받는 합동 교단에 머물 이유가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교단 분열이 있었고(1979년), 그럼에도 2005년 합동 교단으로 다시 합류한 것은 한국 보수교회를 위한 마지막 헌신이었다.
[참고2] 한국교회는 반공과 친공(용공)의 두 길이 아니라, 보수(성경무오사상)와 진보(성경비평사상)의 두 길로 세워야 한다. 성경무오와 성경비평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방식에 큰 차이를 갖는다. 대표적 차이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이다. 보수의 길이면 보수신앙으로 진보의 길이면 진보신앙으로 가면 될 것이다. 나는 보수의 길을 간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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