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교회 이야기

The Seven Ecumenical Councils, 7대 에큐메니칼 공의회

형람서원 2024. 9.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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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ven Ecumenical Councils

7대 에큐메니칼 공의회

A Church Council is an official ad hoc gathering of representatives to settle Church business. Such Councils are called rarely and are not the same as the regular gatherings of church leaders (synods, etc.). An ecumenical council is one at which the whole Church is represented. The three major contemporary branches of the Church (Orthodox, Roman Catholic, Protestant) recognize seven ecumenical councils: Nicea (325), Constantinople (381), Ephesus (431), Chalcedon (451), Constantinople II (553), Constantinople III (680), Nicaea II (787). Further ecumenical councils were rendered impossible by the widening split between Eastern Orthodox (Greek speaking) and Roman Catholic (Latin speaking) Churches, a split that was rendered official in AD 1054 and has not yet been healed.

교회 공의회는 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위한, ad hoc) 대표자 모임이다. 이러한 공의회는 드물게 소집되며 교회 지도자들(시노드 등)의 정기 모임과는 다르다. 에큐메니컬 공의회는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회의이다. 현재 교회의 세 주요한 정파(정교회, 로마 가톨릭, 개신교)는 7개의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인정한다: 7대 공의회는 니케아(325), 콘스탄티노플(381), 에베소(431), 칼케돈(451), 콘스탄티노플 2nd(553), 콘스탄티노플 3rd(680), 니케아 2nd(787)이다. AD 1054년에 공식적으로 분열된 동방 정교회(그리스어권)와 로마 가톨릭(라틴어권) 교회 간의 분열이 확정되면서 더 이상의 에큐메니컬 공의회는 불가능해졌다.

Note: In addition to these universally-acknowledged councils, the Roman Catholic Church recognizes a further fourteen ecumenical councils: Constantinople IV (869-70), Lateran I (1123), Lateran II (1139), Lateran III (1179), Lateran IV (1215), Lyons I (1245), Lyons II (1274), Vienne (1311-12), Constance (1414-18), Florence (1438-45), Lateran V (1512-17), Trent (1545-63), Vatican I (1869-70), Vatican II (1965). But these were councils of only the Catholic Church, and are not recognized by the Orthodox or Protestant Churches.

참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이 공의회 외에도 14개의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추가로 인정한다: 콘스탄티노플 4th(869-70), 라테란 1st(1123), 라테란 2nd(1199), 라테란 3rd(1179), 라테란 4th(1215), 라이언스 1st(1245), 라이언스 2nd(1274), 비엔나(1311-12), 콘스탄스(1414-18), 피렌체(1438-45), 라테란 5세(1512-17), 트렌트(1545-63), 바티칸 1st(1869-70), 바티칸 2nd(1965). 그러나 이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만 구성했으며 정교회나 개신교회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The Council of Nicaea, 325

In 324 Constantine became sole ruler of the Roman Empire, reuniting an empire that had been split among rival rulers since the retirement of Domitian in 305. Constantine, the first Christian emperor, reunified the empire but found the Church bitterly divided over the nature of Jesus Christ. He wanted to reunify the Church as he had reunified the Empire. The major dispute was over the teaching of Arius, but there were other doctrinal issues also.

니케아 공의회, 325

324년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고, 305년 도미티아누스가 은퇴한 이후 경쟁 통치자들 사이에서 분열되었던 제국을 재결합했다. 초대 기독교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을 재통일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해 교회가 격렬하게 분열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제국을 재통일한 것처럼 교회를 재통일하고 싶었다. 주요 분쟁은 아리우스의 가르침에 관한 것이었지만 다른 교리적 문제도 있었다.

  • Arianism: teaching of Arius of Alexandria (d. 335), who believed that Jesus Christ was created ex nihilo (out of nothing) by the Father to be the means of creation and redemption. Jesus was fully human, but not fully divine. He was elevated as a reward for his successful accomplishment of his mission. The Arian rallying cry was “There was a time when the Son was not.”
  • Monarchianism: defended the unity (mono arche, “one source”) of God by denying that the Son and the Spirit were separate persons.
  • Sabellianism: a form of monarchianism taught by Sabellias, that God revealed himself in three successive modes, as Father (creator), as Son (redeemer), as Spirit (sustainer). Hence there is only one person in the Godhead.

아리안주의(아리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의해 (무에서) 창조되었고 구원의 수단이 되었다고 믿었던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335년경)의 가르침.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었지만 완전한 신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고양되었다. 아리아인들의 집단의 외침은 "아들이 그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였다.

군주적 단일신론: 아들과 영이 별개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의 통합(단일한 원형, "하나의 원천")을 옹호했다.

사벨리안주의: 사벨리우스가 가르친 군주적 단일신론의 한 형태로, 하나님은 아버지(창조자), 아들(구속자), 영(지속자)의 세 가지 연속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성에는 단 한 명뿐이다.

Constantine summoned the bishops at imperial expense to Nicea, 30 miles from his imperial capital in Nicomedia. Here they were to settle their differences in a council over which he presided. The council rejected Arianism. The Council issued a creed based upon an existing baptismal creed from Syria and Palestine. This creed became known as the Nicene Creed, or Confession of the Faith.

The Council also issued a set of canons, primarily dealing with church order.

콘스탄티누스는 주교들을 제국의 수도에서 30마일 정도 떨어진 니코메디아에 있는 니케아로 소집했다. 여기서 그가 주재한 공의회에서 이견을 해결하려고 했다. 공의회는 아리아주의를 거부했다. 공의회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기존 세례 신조에 근거한 신조를 발표했다. 이 신조는 니케아 신조 또는 신앙고백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공의회는 교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캐논(배격) 문장을 발표했다.

The Council of Constantinople, 381

The second council met in Constantinople, the new imperial capital. The council issued a new creed, clarifying the understanding of the Holy Spirit as a co-equal Person of the Trinitarian Godhead as expressed in the Nicene Creed adopted in 325. This creed became known as the Niceno-Constantinopolitan Creed and remains the Confession of the Faith today in the Eastern Church.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381

두 번째 공의회는 새로운 제국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되었다. 공의회는 325년에 채택된 니케아 신조에 표현된 삼위일체 신성에서, 동일한 인격으로서 성령을 명확히 했다. 이 신조는 니케노-콘스탄티노플 신조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날 동방 교회에서 신앙고백으로 유지되고 있다.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라고 규정한 것은 좋은 분류가 아니다(고경태). 니케아 신조(325년)은 니케아 신조로, 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는 콘스탄티노플 신조로 명명해서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두 문장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Later, the Roman Church, under the influence of the Franks in the 8th century, unilaterally added a single word to the Creed, inserting Filioqueand the Son” to the statement about the Spirit, so as to read “the Spirit…proceeds from the Father and the Son.” In 867 the Patriarch of Constantinople declared Rome heretical for unilaterally inserting this clause into the Niceno-Constantinopolitan Creed. To this day the Western Church (Roman Catholic and Protestant) accepts the filioque clause, while the Eastern Church (Orthodox) does not.

8세기 프랑크족의 영향력 아래 있던 로마 교회는 일방적으로 신조에 한 단어를 추가했는데, Fillioque를 추가한 것인데, '아들'이란 뜻으로,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된다"고 읽게 했다. 867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니케노-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일방적으로 단어를 추가한 로마 교회를 이단으로 선언했다. 오늘날까지 서방 교회(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필리오케를 받아들이는 반면, 동방 교회(정통)는 그렇지 않다.

The Council of Ephesus, 431

Condemned Nestorius and his teaching (Nestorianism) that Christ had two separable natures, human and divine. Declared Mary to be theotokos (lit. God-bearer, i.e., Mother of God) in order to strengthen the claim that Christ was fully divine.

에베소 공의회, 431

그리스도께서 인성과 신성이라는 두 구분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가르침(네스토리우스주의)을 비난했다. 그리스도가 완전한 신성이라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마리아를 테오토코스(하나님의 담지자, 즉 하나님의 어머니)로 선언했다.

The Council of Chalcedon, 451

Issued the Chalcedonian Formula, affirming that Christ is two natures in one person.

칼케돈 공의회, 451

칼케돈 공식을 발표하고 그리스도는 한 인격에게 두 본성이 있음을 확정했다.

The Council of Constantinople II, 553

Condemned the Three Chapters, which emphasized Christ’s humanity at the expense of his deity. Their opponents held Alexandrian theology emphasizing Christ’s deity.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553년

그리스도의 신성을 희생시키면서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한 삼장서를 비난했다. 그들의 반대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 신학을 주장했다.

The Council of Constantinople III, 680

Condemned monothelitism (Christ has a single will), affirming that Christ had a human will and a divine will that functioned in perfect harmony.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680년

단일주의(그리스도는 단일 의지를 가지고 있음)를 비난하며, 그리스도는 인간의 의지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신적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확인했다.

The Council of Nicea II, 787

Declared that icons are acceptable aids to worship, rejecting the iconoclasts (icon-smashers)

니케아 공의회, 787년

이콘이 예배에 적합한 도구임을 선언하고 이콘파괴주의(아이콘 스매셔)를 거부했다.

번역 고경태

https://firstthoughtsofgod.com/2023/02/03/the-seven-ecumenical-councils/

The Seven Ecumenical Councils

A Church Council is an official ad hoc gathering of representatives to settle Church business. Such Councils are called rarely and are not the same as the regular gatherings of church leaders (sy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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