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형람성경] 고린도전서 2장: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성령, 복음, 능력, 지혜

형람서원 2024. 5. 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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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람성경] 고린도전서 2장: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성령, 복음, 능력, 지혜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복음은 ‘하나님의 증거’이다. 그것은 죄사함과 영생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진리이다. 하나님의 증거는 참되며 확실하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 복음의 진리성은 하나님께서 증거하셨다는 사실에 있지 사람의 달변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기독교 복음은 그 전달 방법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 복음의 가치는 그 내용에 있다. 그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전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겠다고 작정하고 결심했다. 사람이 복음을 아름다운 말로 단장한다고 복음이 더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효력은 사람의 아름다운 말에 있지 않고 그 내용 자체에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이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된다.

[3-5절]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 능력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에 머물었을 때에 사람으로서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구원의 능력으로 사용하셨으나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인 바울 자신은 약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오히려 복음의 능력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그 내용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잘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스스로 약하다고 느낄 때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충실히 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전도하며 설교할 때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으로 했다. 여기에 전도자의 바른 자세가 있다. 복음 전도자는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전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그는 단순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 단순한 복음 전파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신다. 그 능력은 과거에 외적으로 나타난 기적들 뿐만 아니라, 또한 어느 시대나 내면적 변화의 능력, 즉 죄인을 회개시키고 믿게 하는 구원의 능력을 가리킨다.

복음의 성격이 그러하듯이, 성도의 믿음도 사람의 지혜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믿음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우리를 믿게 하셨다.

[6-7절]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성경은 ‘온전한 자(the mature)’나 ‘온전함’에 대해 많이 말한다(고전 14:20; 엡 4:13; 히 5:14; 빌 3:15; 골 1:28; 4:12; 마 5:48; 약 1:4; 3:2). ‘온전한 자’란 구원의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과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주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 즉 신앙 인격에 성숙한 자를 가리킨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온전한 자들 가운데서는 지혜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God’s wisdom)이다. 그것은 ‘비밀한 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해 미리 정하셨고 오랫동안 감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라는 말은 구원의 목표를 보인다. 그것은 영화 즉 영광스런 상태의 회복이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고 영광스러운 자로 창조되었었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그 거룩하고 의롭고 영광스러운 형상을 잃어버렸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 본래의 영광스러운 상태의 회복을 주시는 것이다.

택자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모든 일들에 대한 완전한 설계자요 계획자이시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인류 구원의 일도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구원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작정하신 방법이다.

[8-9절]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 세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이 비밀한 지혜, 감취었던 지혜를 알지 못하였다. 만일 로마 총독 빌라도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죽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they would not have crucified the Lord of glory). 바울이 예수님을 ‘영광의 주’라고 부른 것은 그의 신성(神性)을 증거한다. 그는 초라한 유대인 사형수에 불과한 자가 아니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주이셨다. 당시에 사울을 포함한 누구도 영광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은 세상 지혜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 곧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이나 귀나 마음에 알려지지 않았다(사 64:4). 그것은 오직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섞여 살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 곧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사랑하고 죄악된 삶에 빠져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말씀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을 사모하지만,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은 이 세상의 헛되고 죄악된 것들, 곧 돈과 육신의 쾌락과 덧없이 지나가는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다.

[10-11절] 오직 하나님이[하나님께서] 성령으로[그의 영으로, the Spirit]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has revealed) 성령은[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십자가 당시에도 그러했고 언제나 성령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신성(神性)을 가지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령으로 택자(우리)에게 구원경륜을 보이신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 모든 것을 아심 즉 전지(全知)의 속성은 하나님만의 속성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기운이나 세력이 아니고 인격적 존재이시다. 그는 무엇을 아시는 분이시다. 인격적 존재가 아닌 것은 무엇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영이시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구별되신 성령에 대해 증거한다(요 14:16).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는 구별되신다.

[12-13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하나님의 깊은 것도 아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감취었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 진리를 사도들에게 계시해주셨다. 사도들은 ‘하나님께로 온 영’ 곧 성령을 받았고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성령께서 주신 진리 곧 영적인 진리이다. 우리는 동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이 전한 복음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그는 사도들을 통해 주신 신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셨고 믿고 구원 얻게 하셨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상의 지혜로 분별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분별할 수 있다.

[14절] 육에 속한 사람[육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판단]함이니라.

‘육에 속한’ 즉 ‘육적인’(프쉬키코스)이라는 말은 ‘영적인’ (프뉴마티코스)이라는 말과 대조되는 말로 육신의 욕구와 격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육적인 사람은 구원 얻지 못한 일반 사람, 즉 믿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이다. 이단자들도 육적인 자들(프쉬키코이)이다(유 19). 육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고전 1:21) 깨닫지 못하고(롬 3:11) 하나님을 경외함과 섬김이 없고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롬 1:21; 3:18)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롬 1:23).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고 사탄과 악령들을 따라 육체의 욕심대로 온갖 죄와 부도덕에 빠져 있다(마 15:19; 롬 3:12-15; 엡 2:2-3; 4:17-19).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교훈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다. 그는 성령께서 계시하신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되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15-16절] 신령한 자[영적인 사람]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생각]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But we have the mind of Christ.).

‘영적인 사람’은 성령을 받아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은 자이다.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다. 사람이 중생(重生)하고 구원을 얻을 때 성령께서 그 속에 들어오시며 그 안에 영원히 거하시고 그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신다. 성도는 성령을 받은 자이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엡 1:13).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오셨다. 영적인 사람은 성령의 활동하심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고 믿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분별하고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께서 주신 지식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사도들은(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단순히 전하는 것이며 그것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늘날도 우리는 사람의 아름다운 말이나 언변으로가 아니고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의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능력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오직 성령으로 깨닫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광의 주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이 진리를 깨달았고 믿었다. 믿는 자들은 성령의 가르치심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더욱 배워 온전함에 이르러야 하고 구원의 최종 목표는 영광의 상태의 회복이다.

셋째로,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함과 섬김이 없고 그에게 감사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 그에게는 복음이 미련하게 보인다. 오직 성령을 받은 영적인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깨닫고 믿고 구원을 얻는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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