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인 청교도 신학 : 그 범교회적 문맥에 대한 예전적 접근
칼 트루만(Carl R. Trueman, 1967-)
정리 고경태 목사
빌렘 판 아셀트(Willem J. van Asselt), 에프 데커(Eef Dekker) 편
종교개혁과 스콜라주의(Reformation and Scholasticism), 한병수 역, 부흥과개혁사, 2014
약어 RS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조엘 비키, 마크 존스, 김귀탁 역, 부흥과개혁사, 2015년.
Joel R. Beeke & Mark Jones, A Puritan Theology: Doctrine for Life, Reformation Heritage Books; 1St Edition (October 12, 2012).
약어 PT
1, 도입
"1662년 잉글랜드 국교회가 예배와 기도와 의식을 통일하기 위해 마련한 통일령(the Act of Uniformity)이 가결될 당시에, 국교회 내부의 보다 철저한 종교개혁 실행을 열망하면서 교황주의 공동 기도서와 같은 맥락을 가졌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을 차마 수용할 수 없었던 인물들은 난감한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댜"(RS, 321).
트루먼은 1662년 통일령에 저항에서 2,000명이 교회를 떠나는 결정을 했다고 제시했다. 이들을 비순응 단계로 제시했다. 1660년 왕정이 복고되었고, 1661년 챨스 2세는 브레다 선언(Declaration of Breda, 1660년 4월 4일 발표)이 아닌 무효법(Act Rescissory)으로 "39개조 신앙고백서"로 전환했다. (Nonconformist, 영국국교에 대하여 순응파(Conformist)와 불순응파(Nonconformist / Dissents)로 나눠지게 되었다. 불순응파에서 다시 잔류파와 분리파로 나뉘었고, 분리파(Separatist)들은 1608년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식민지로 이주했다. 이러한 모습은 제임스 1세 시절이다. 그런데 트루먼은 스코틀랜드 교회가 당한 순교자의 숫자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교회를 떠난 2,000명이 많은 것이 아니라 통일령에 의해서 순교한 숫자는 비교할 수 없다. 1662년 찰스 2세가 공포한 통일령(Act of Uniformity)과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 복원에서, 트루먼은 청교도 시대의 마감으로 평가했다( PT, 17쪽). 그리고 1689년 평화와 공존이 시작되었다고 정리했다( PT, 17쪽). 비키와 존스는 1646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작성 과정과 스코틀랜드 언약도가 겪은 Killing Times(1679-1688)에 대한 언급이 없다.
트루먼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통일령에 의해서 해체되었는데, 그것을 청교도 사상의 해체로 분석했다(RS, 322).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1658년 사보이 선언으로 해체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사보이 선언으로 시행하려는 단계에서 왕정이 복고되면서 사보이 선언은 자취를 감췄고, 의회에 승인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무효가 되었다.
트루먼은 페리 밀러(Perry Gilbert Eddy Miller, 1905-1963)를 제시했다(RS, 322). 그런데 페리 밀러는 잉글랜드 청교도에 대한 연구가가 아니라, 뉴잉글랜드 청교도 연구가이다. 트루먼은 잉글랜드 국교회 사회에 도전은 맑시즘으로 제시한다. 크리스토퍼 힐(John Edward Christopher Hill, 1912-2003-)은 맑시즘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했다. 힐은 청교도 사상을 부르조아 발흥 및 중상주의 경제 출현을 다루었으며, 시민 전쟁은 부르조아 혁명의 시초로 평가했다.
트루먼은 청교도 연구의 대부분은 사회 경제에 대한 연구가 주종이었고, 기독교 지성에서는 제프리 너틀(Geoffrey Fillingham Nuttall, 1911–2007)이 탁월하게 전개했다고 소개했다(RS, 323). 너틀은 "성령론과 청교도의 경험에 대한 넛틀의 연구는 그런 분야의 고전으로 간주될 정도이다"(RS, 323). 너틀과 다르게 청교도 사상의 교리적 내용에 착념하는 연구 흐름도 발생했다. 이 흐름은 1950년대 이후로 잉글랜드의 비순응파 진영 내에서의 신칼빈과 출범의 결과였다. 1950년대에 출범한 "청교도 연구회"와 "진리의 깃발" 결성은 이러한 흐름의 발흥을 잘 증거하고 있으며, 여기에 탁월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즈(1899-1981)와 유명한 복음주의 학자 제임스 패커(1926-2020)의 개인적인 영향력은 참으로 지대했다(RS, 323-324).
* 패커는 옥스포드에서 리쳐드 박스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D. Phil., 1954). 죠오지 너트올(Geoffrey Fillingham Nuttall, 1911–2007)의 지도하에서 그가 쓴 논문은 “리쳐드 박스터 사상에서의 인간의 구속과 회복”(The Redemption and Restoration of Man in the Thought of Richard Baxter)이라는 400페이지가 넘는 논문이었다. 패커는 2003년에 출판했다[Carlisle: Paternoster Press, 2003]).
로이드 존즈와 제임스 패커의 업적으로 이러한 흐름으로 청교도 연구가 확장되었다. 이 흐름에 대해서 로버트 켄달이 이의를 제기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동시대의 교의학적 관심사에 휘둘리는 경향도 다소보였다. 이 전통은 여러 측면으로 보건대 로버트 켄달(Robert T. Kendal)의 『칼빈과 1649년까지의 잉글랜드 칼빈주의」(Calvin and English Calvinism to 1649, 1979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 책은 저자가 제출한 옥스퍼드 박사 학위 논문을 개정한 것이며 구속의 연장과 확신의 본질에 대해 잉글랜드의 신칼빈파 진영 내에서 이루어진 논쟁에 기여하는 글이었다. 여기서 켄달은 칼빈에 대한 아미랄드식의 독법에 대한 연민을 여실히 드러냈고 청교도를 '실험적 예정론자' 정도로 여겼으며 청교도들의 신학은 그들이 반대했던 아르미니우스 인물들의 신학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켄달의 논지는 학문적 신학적 공동체 내부에서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켄달이 속한 '칼빈주의자들과 대립되는 칼빈' 전통은 방법론과 자료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법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한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켄달의 문헌에서 변증적인 요소를 꾸준히 발견하려 한다. 하지만 그 결함은 이 전통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어 보일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었다(RS, 324). (10) 켄달 주장에 대한 최초의 가장 혹독한 비판들 중의 하나는 Paul Helm, Calvin and the Calvinists (Edinburgh: Banner of Truth, 1981)다. * 필자는 서창원 박사가 폴 햄의 견해로 로버트 켄달을 비판하는 서창원 박사에게, 로버트 캔달의 논문이 옥스퍼드의 박사논문인데 그렇게 형편없는 수준인가?라고 질문했었다. 로버트 캔달의 사상이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던 공로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하이코 오버만의 연구와 데이빗 스타인메츠의 해석학적 탐구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 16세기 연구는 이제 미래가 촉망되는 분야다. 이 분야에서 16세기의 사상들은 맹렬한 관심을 촉발했고 그 시대의 역사는 조직신학 전문가와 극단적 물질주의 모두의 학술적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RS, 325). 트루먼은 스타인메츠 이후의 리차드 멀러로 이어지는 구도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멀러 테제(Muller Thesis)와 밀러 테제(Miller Thesis)의 대조로 제시한 적이 있다. 밀러 테제는 뉴잉글랜드에 대한 이해이고, 멀러 테제는 로마 카톨릭과 개혁교회의 거시적 담론에 대한 이해이다. 그 범주 안에 잉글랜드 청교도가 포함되어 있다. 불연속과 연속에 대한 역사 이해는 목표에서도 차이가 있다. 밀러는 단순한 학문적 의견으로 볼 수 있는데, 멀러에게는 거대 담론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 기독교 역사에 대한 구도를 확립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지향성과 목표점을 알아야 한다.
2. 예전적인 사태로서 이해된 청교도 문헌들(RS, 326)
20세기 후반의 정치철학의 흐름들 가운데 역사(학)의 관계 설정의 문제를 둘러싼 주요한 네 가지 흐름들, 즉 미국 시카고 학파를 형성한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의 정치철학, 스키너(Quentin Skinner)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 케임브리지 학파, 코젤렉( Koselleck)을 중심으로 하는 독일의 개념사 그리고 아날학파와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르포르(Lefort) 및 로장발롱(Rosanvallon)의 정치철학이 있다. 트루먼은 캠브리지의 근대사 연구를 주도한 스키너의 연구를 제시한다(RS, 326). 스키너는 로버트 켄달의 사상과 같지 않다. 트루먼은 캔달을 비판한 폴 햄(Paul Helm)이 아닌 스키너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트루먼은 스키너의 연구에 긍정적인 자세만을 글에서 제시한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 텍스트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스키너의 태도에서는 청교도 사상의 문헌 연구를 통해서 진행하는 것이다(RS, 328).
트루먼은 에드워드 6세와 엘리자베스 1세에서 일어난 "예전 논쟁"에 대해서 제시한다(RS, 329). "의복 논쟁(Vestment Controversy)"이라 하기도 한다. 존 후퍼(John Hooper, 1495-1555; father of nonconformity)가 에드워드 6세 시절에 잉글랜드 교회에서 사제 예복을(제단에서) 거부한 것을 시작으로 1549년 <공동 기도서>와 1550년 <성직자 조례>가 되었고,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에서 부활했다. 스키너는 텍스트의 지표 아래 감추어진 사회적 경제적 관심사와 관련된 언어적 의미와 궁극적인 중요성을 신중히 사려한다. 트루먼의 스키너의 연구 방안인 "청교도 자기 시대의 언어를 활용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발견되기 위해서는 ..."(RS, 330). 청교도 신학과 스코틀랜드 신학의 연계된 사안을 제시하면서 단락을 종결하고 있다. 즉 과제를 제시하는 수준이고,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 퓨리턴과 스코틀랜드 언약도의 신학과 성향 체계는 유사하지 않다. 그것은 잉글랜트 퓨리탄 내부에 다양한 신학 성향이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파악된 칼라는 잉글랜드 장로파, 청교도 독립파(獨立派, Independents), 제5왕국파, 특수침례파, 머글튼파(Mugglectoniansts), 수평파(Levellers), 디거파(Diggers), 크롬웰과 디거파의 논쟁, 이승영, 『17세기 영국의 수평파 운동』(서울: 민연, 2001). * 수평파는 1646년에 시작해서 1649년에 종결된 운동(좌익적 재세례파, J Liburne(릴번), R. Overton, J. Wildman, W, Walyn, 재세례파). 낭만적인 자연법 사상, 인민주권설,
3. 존 오웬의 신학에 나타난 인과율적 언어(RS, 331)
스키너의 접근법. 존 오웬의 1647년 <그리스도 죽음에서 사망에 삼키운 바된 죽음>. 제한속죄, 특정한 구속, 택자만을
스키너는 오웬이 아리스토텔레스 언어를 사용한 것에 주목했다(RS, 331). 그래서 오웬의 제한속죄의 특징도 아리스토텔레스 언어에 전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RS, 332). 스키너는 17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가 폭 넓게 수용되었음을 밝혔다(RS, 333). 오웬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율적 언어를 활용했다는 것이다(RS, 333-334), 인과율적 언어는 알미니안, 로마 카톨릭, 존 오웬 등 17세기 일반적 현상이었다(RS, 334), 17세기 개혁파 진영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비판하는 학자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언어를 사용했다(RS, 335). 이러한 형태는 20세기 불트만, 하이데거까지 진행되었다(RS, 335),
트루먼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언어와 사유 체계에 대해서 상당한 분량을 설명한다. 우리가 먼저 확립해야 할 것은 아리스토텔르스와 플라톤의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이 자기 범주로 미지의 영역을 규정하며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제한된 범위의 담론을 위한 것이다. 매우 주의해야 할 행동이다.
4. 결론(RS, 348)
트루먼은 스키너의 언어학적 접근법으로 청교도 사상의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되, 청교도의 신학적 문헌들이 주로 교의적인 것이며 보다 넓은 역사적 문맥에서 추상화된 것이라고 여기려는 유혹을 극복하는 탁월한 방식을 제공한다(RS, 348).
빌렘 판 아셀트(Willem J. van Asselt), 에프 데커(Eef Dekker) 편
종교개혁과 스콜라주의(Reformation and Scholasticism), 한병수 역, 부흥과개혁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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