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신학&개혁신학

청교도 신학이 개혁 신학일까?

형람서원 2023. 8. 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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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신학이 개혁 신학일까?

조엘 비키, 마크 존스의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A Puritan Theology: Doctrine for Life, 김귀탁 역, 부흥과 개혁사, 2015)에서 조엘 비키와 폴 스몰리의 <개혁파 조직신학, Reformed Systematic Theology, 박문재 역, 부흥과개혁사, 2021-2023>으로 진행되었다.

참고로 교리(doctrine)와 한 신학(theory 혹은 thesis)을 구분해야 한다. L. 벌코프의 조직신학(systemaic theology)는 교리(doctrine)이 아니라 한 신학(theological theory)이다. 교리(doctrine)은 공적으로 규범화된 내용이다.

조엘 비키(Joel R. Beeke, 1952 - )개혁파(1900년 초기 설립된 NRC. Netherlands Reformed Congregations에서 1993년 HRC. Heritage Reformed Congregations 설립) 사역자인데, 퓨리턴 리폼드 신학교(PRTS.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을 설립해서 잉글랜드 퓨리턴을 결합시킨 신학 체계를 구체화시켰다.

NEC와 HRC의 차이점은 HRC는 웨스트민스터 문서를 표준 체계에 포함시킨 것이다. 고경태는 "퓨리턴(잉글랜드와 뉴잉글랜드)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비키는 잉글랜드 퓨리턴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채택한 비역사적 행위를 한다. 비키의 불합리한 모습을 한국 교회에 받았다. 그것은 청교도주의와 청교도주의에서 거부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결합된 모습이다. 청교도주의자들 중에서도 장로파가 있었는데, 독립파 청교도주의(올리버 크롬웰, 존 오웬, 토마스 굳윈 등등)에 의해서 1648년 프라이드 대령의 군사력에 의해서 배척되었다. 독립파는 1658년 사보이 선언으로 독립파 청교도주의 혁명을 구체화시켰다. 식민지로 이주한 뉴잉글랜드 청교도는 1648년 캠브리지 선언(Cambridge Declaration)으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다른 회중주의 체계로 교회를 선언해서 '회중파'가 되었다.

조엘 비키는 네덜란드 개혁파, 회중주의에서 퓨리턴으로 신학을 진행했다. 신학 진행은 퓨리턴으로 진행하면서, 명칭은 개혁파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개혁파에서 청교도주의로 신학을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목표 지향성에 맞게 청교도주의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런데 <청교도 신학>에서 <개혁파 조직신학>으로 학문을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개혁파 진영에서 청교도 진영의 방향성을 갖고 있으면서, 개혁파 진영에 청교도주의를 이식 혹은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청교도주의, 뉴잉글랜드 청교도와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신학 성향이 같지 않지만 회중주의 정치 제도에서 일치한다. 회중주의와 장로주의 정치제도의 차이는 개혁신학 진영에서 가장 근접한 차이를 갖는 집단일이다. 그러나 회중주의와 장로주의의 정치 제도 차이는 신학적 이견은 선명하다. 17세기 교회 이해에서 가장 민감한 논쟁은 두 왕국 이해, 교회와 국가 관계, 에라스투주의에 있었다. 감춰진 갈등이 장로주의와 회중주의 이해이다. 전자는 일반계시적 이해이지만 후자는 특별계시적 이해이다. 즉 교회의 주인과 성격에 대한 이해이다.

장로주의에서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 명확하다. 장로파는 시작과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다. 침례교 신학교 교수인 제임스 개럿(James Leo Garrett, Jr)의 회중주의 정치 개념은 ""회중주의적 정치"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Christocracy, 그리스도에 의한 통치), 성령님의 지도력을 따라(pneumatophoria, 성령님의 인도하심), 어떤 상위의 혹은 권력을 가진 교회기구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autonomy, 회중의 자치 혹은 자율), 회중을 구성하는 회원 각자가 교회의 일과 교회의 결정에 목소리를 내면서(democracy, 민주주의), 회중이 스스로 통치하는(the congregation governs itself) 정치"(1)로 제시했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Christ-centered Democratic Congregationalism)인데, 회중 스스로 통치하는 정치 체계인데 반해, 장로주의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정치 체계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한다. 회중주의가 합리적이고 명확한 구도라고 볼 수 있고, 장로주의는 계시적이고 신학적으로 볼 수 있다. 장로주의와 회중주의는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치된 교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청교도주의 안에서도 일치못했고, 스코틀랜드 교회와 청교도주의도 연합을 이루지 못했다. 루터와 츠빙글리가 1529년 마르부르크 회의에서 결렬된 것을 이해못할 일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미국 대각성운동에서 융합된 현상이 발생했다. 그 때는 '교리'가 아닌 '각성(awakening)'에 대한 필요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각성 운동은 감리교 선교사에서 시작되었지만, 장로교회에서 가장 강력한 운동력을 가졌다. 부흥(revival), 갱신(renewal), 각성은 같지 않다. '각성'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제기했고, 교회 안에서는 음악이 크게 허용되었다. 그런데 '교리'는 더 약화되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각성을 주장하는 조엘 비키의 저술이 영향을 주는 것은 아이러니한 것이다. 교리를 약화시키는 체계가 합리적 문서 사역으로 교리를 약화시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회는 역사에 존재할 때에 역사적 문서를 남겼다. 기독교 연구자들은 그 문서를 체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 문서를 부당하게 인용해서 주장하는 일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당한 사례를 보았을 때에는 부당함을 게시해야 한다. 부당한 사례를 긍정적으로 따르는 것도 적지 않은 문제이지만, 부당한 사례를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필자는 청교도 신학에 대해서 탐구하면서 느낀 심각한 문제는 교리에 대한 인식의 부재이다. 교리(Dogma)와 교리(dcotrine)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데, 교리(dorctrine)와 교리(a theological theory)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바빙크의 방대한 <개혁교의학>도 신학자의 신학 정리이고, 비키와 스몰리의 <개혁파 조직신학>도 신학자의 신학의 한 정리이다. 그런데 비키와 스몰리의 학문 작업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청교도주의를 개혁파 신학으로 진행시키는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정통파 개혁주의"를 "윌리엄 퍼킨스, 존 오웬, 아 브라켈, 바빙크"로 규범화시켰다. 그런 뷴류는 비키가 말한 것보다 더 과격한 표현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비키는 <개혁파 조직신학>을 어거스틴에서 연속성으로 갖고서 저술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시 어거스틴, 루터, 칼빈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불변성에 근거한 사유 체계이다. 그 사유에서 파생된 개념은 전적타락(노예의지), 구원의 확실성, 예정 등이다. 비키의 <개혁파 조직신학>에서는 삶, 혹은 실천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거스틴, 루터, 칼빈의 신학 전개에서 '삶'이 등장하지 않는다. 루터에게는 안페이퉁이 등장한다. 신학 체계에 삶을 융합시킨 부류는 청교도주의이다. 이 청교도 운동은 대륙에 영향을 주어 경건주의와 관련된다. 그러나 바빙크의 신학 체계에 삶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신학은 특별계시 영역으로 규정한 칼빈의 규범을 따르기 때문이다. 삶의 영역은 일반계시의 영역이다. 다시 교회와 국가 관계, 그리스도인과 삶의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터툴리안이 예루살렘과 아테네의 관계에 대한 선언은 지금까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의지의 문제"가 노예의지론으로 배격되었지만, "삶"이란 테마로 다시 신학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삶을 강조할 때에 "구원의 확실성"을 주장하지 못하며 혹은 부정하게 된다.

청교도주의를 개혁신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장로파 신학은 청교도주의와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청교도주의에서 장로교의 표준문서를 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배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비키는 청교도주의를 지향하면서 웨스트민스터 문서를 표준문서로 인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아마도 이것은 마틴 로이드 존즈(David Martyn Lloyd-Jones, 1899-1981) 박사의 영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웨일즈 회중파(Welsh Congregationalist)로서 "칼빈파 매소디스트(Calvinistic Methodism)"라고 자기 정체성을 밝혔다. 개혁파는 메소디즘(Methodism)을 취하지 않는다.

형람서원 고경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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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ames Leo Garrett, Jr., Systematic Theology: Biblical, Historical, and Evangelical, second ed. [North Richland Hills, Texas: BIBAL Press, 2001], 2:644).

[참고문헌]

이상조, "뉴잉글랜드 회중교회의 교회론 ‐ 『케임브리지 강령』(Cambridge Platform, 1648)의 작성 배경과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 <장신논단>, 54권 3호(2022년).

뉴잉글랜드 회중교회의 교회론 ‐ 『케임브리지 강령』(Cambridge Platform, 1648)의작성 배경과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

Ecclesiology of the New England Congregational Church: Focusing on the background and content analysis of The Cambridge Platform(1648)

장신논단

약어 : 장신논단

2022, vol.54, no.3, pp. 37-70 (34 pages)

 

발행기관 :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

연구분야 : 인문학 > 기독교신학 > 기타기독교신학

이상조 /Lee, Sang Jo 1

1장로회신학대학교

초록

본 논문은 아메리카 식민지 뉴잉글랜드 회중교회의 교회 정치체제를 기술한 『케임브리지 강령』(The Cambridge Platform, 1648)에 나타난 회중교회의 교회론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케임브리지 강령』은 잉글랜드 장로파의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1648년에 작성되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사추세츠의 종교 헌법으로 간주 되었다. 이 강령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온 교리를 대부분 승인하면서도 뉴잉글랜드 에서 실행되고 있는 회중주의 교회 정치를 옹호한 공식 문서이다. 『케임브리지 강령』은 서문과 1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존 코튼(John Cotton)이 쓴 서문은 뉴잉글랜드 교회에 대한 다양한 비판에 맞서고 그들의 정통 성을 옹호하고 있다. 17개의 장으로 구성된 『케임브리지 강령』은 회중교회가 장로 교회와 어떻게 다른지를 기술하면서 ‘회중들이 교회’요 ‘오직 회중들이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구성된 가시적인 교회’임을 천명하였다. 이러한 『케임브리지 강령』은 법적 구속력 없이 단지 교회 정치체제에 대한 설명만을 목적으로 했지만, 곧 목사와 평신도 모두가 이를 매사추세츠의 종교 헌법으로 간주하여 교회와 교인의 권리를 보장하게 되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헌법과 신학은 장로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에도 실제로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지도자 중심의 교권주의와 개교회주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는 신학과 헌법은 장로교회의 틀을 유지하고 있으나 실제로 교회의 운영이나 정치 방식은 회중교회의 모습을 띠고 있기에 그러하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회의 모습을 보다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회중교회의 뿌리인 뉴잉글랜드 회중교회의 정치구조를 서술한 『케임브리지 강령』에 대한 연구는 충분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analyze the ecclesiology of the Congregational Church in The Cambridge Platform(1648), which describes the church political system of the Congregational Church in New England in the American colonies. The Cambridge Platform was written in 1648 in response to criticism from the Presbyterians of England, and over time was regarded as the religious constitution of Massachusetts. It is the official document of the Congregational Church politics practiced in New England, while approving most of the doctrines found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The Cambridge Platform consists of an introduction and 17 chapters. The foreword by John Cotton counters various criticisms of the New England Church and defends their orthodoxy. The 17-chapter Cambridge Platform describes how the Congregational Church differs from the Presbyterian Church, declaring that “the congregations are the church” and that “only the congregations are visible churches formed by voluntary participation in the holy covenant with God.” Although this Cambridge Platform was for explanatory purposes only without being legally binding, it was soon regarded by both pastors and lay people as the religious constitution of Massachusetts, guaranteeing the rights of the church and its members. Although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has the appearance of a Presbyterian Church in its constitution and theology, it has a leader-centered ecclesiastical authority and local churchism in the way it actually runs the church. The theology and constitution maintain the framework of the Presbyterian Church, but in reality, the fundamental roots and process of establishment of the Church take the form of a Congregational Church. Therefore, in order to understand the appearance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more fully, the study of the Cambridge Platform, which describes the political structure of the New England Congregational Church, the root of the American Congregational Church, has sufficient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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