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다니엘 주석 5 강) 다니엘 2:3-9
1. 칼빈은 4강에서 느부갓네살이 꿈을 꾼 뒤에 꿈의 내용을 잊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꿈의 내용을 밝힌 뒤에 해석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필자는 느부갓네살이 꿈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고, 꿈의 내용이 신적 계시로 파단하고, 알리지 않은 꿈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 아는 사람의 해석이 정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생각한다.
2. 칼빈은 4강에서 생략했던 직분에 대해서 설명한다.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2절)은 네 종류인가? 세 종류인가?에 대한 것이다. 영역(英譯)에서는 magicians, enchanters, sorcerers, and astrologers라는 부류와 the enchanters, and the astrologians, and the sorcerers, and the Chaldeans는 부류가 있다. לַֽחַרְטֻמִּ֜ים וְלָֽאַשָּׁפִ֗ים וְלַֽמְכַשְּׁפִים וְלַכַּשְׂדִּ֔ים
(la-ḥar-ṭum-mîm, wə-lā-’aš-šā-p̄îm, wə-lam-ḵaš-šə-p̄îm, wə-lak-kaś-dîm)
칼빈은 Hartummim은 “soothsayers(점쟁이)”로, Assaphim은 “physicians(의사)”로 혹은 astrologers(천문학자)로 제안했다, 그리고 Mecasphim은 “sorcerers(마법사)”인데 의미는 “star-gazers(마법사)”이고, Chaldees는 Mathematicians(수학자)으로 제시했다. 칼빈은 갈데아의 세 종류의 직종이든지, 네 종류의 직종이든지 큰 문제는 없다는 자세이다. 그들은 전능자의 계시를 파악하지 못함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세계 지혜의 근원이 되는 갈대아(아라비아)의 지혜가 해결하지 못한 항목이 있다는 무능이 드러난 것이다. 그들이 주장한 “왕이 말을 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4, 7, 10절)라는 주장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느부갓네살을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발언이다(12절). 이에 그 모의(謀議)에 참여하지 않았던 모든 지혜자 그룹도 몰사(沒死)하게 되었다(13절). 정복자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욕구와 감정 해소만을 추구한다. 정복자가 만족하면 선(善)이고 정복자가 불편하면 악(惡)이다. 그래서 정복자에게 권력(權力)은 있어도 정의(正義)는 없다.
3. 3-4절. 칼빈은 갈대아인들의 교만을 지적했다. 그들은 왕이 마음의 번민을 말할 때, 왕의 말을 듣지도 않고 꿈의 내용을 알려주면 말하겠다고 단언한 것이다(4절). live forever를 참고로 개역에서는 만세수라고 했고, 개역개정에서는 만수무강(萬壽無疆)으로 했다. ‘만수무강’은 일상적인 인사이고 ‘만세수’는 궁궐용어라고 생각한다. 신적용어로는 ‘영존하소서’라고 할 수 있다. 술객들은 느부갓네살을 신적수준으로 숭앙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신하들은 그런 지고한 위치에 있는 왕에게 모략을 베푼다고 하니 그들은 교만을 넘은 허영(虛榮)이라고 해야 한다. 허영이 집약된 곳이 궁궐이라고 볼 수 있다. 점쟁이들은 항상 후한 말과 후려치는 말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왕 앞이기 때문에 후한 말로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속이는 말을 뱉었다.
4. 5절. 왕은 갈대아의 술사들의 감언이설에 농락당해 줄 일상적인 때가 아니었다. 칼빈은 느부갓네살이 8절 등을 근거로 꿈을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느부갓네살은 모든 책임을 술사들에게 전가시켜 잔인하게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칼빈은 느부갓네살의 분노까지 하나님의 섭리에 포함시켰다. 느부갓네살의 꿈과 분노로 숨어 있던 다니엘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5. 6절. 무자비한 왕은 폭압과 함께 상을 제시했다. 그리고 꿈의 내용과 해석을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칼빈은 상을 선언하는 것에 대해서 당시 술사(Magi)들이 예언을 통해서 부를 축적했다고 주석했다. 그리고 인도제국의 현자들(the wise men of the Indies)과 갈대아의 술사들을 비교했다. 인도계열 술사들은 검약한 행동을 하는데, 갈대아 술사들은 돈벌이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갈대아인들이 돈벌이로 예언을 판매했다고 제시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이 유사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고후 2:17). 이들을 복음을 혼미케 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익을 위해 매진하는 교사들이 존경받는 일이 없도록 경고했다. 한국 교회에서 존경받는 목사들을 본다면 바울과 칼빈이 우려했던 일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칼빈은 정직한 교사들을 공공기금으로 부양하도록 제언했다(Some honest teachers may receive support from the public treasury; but, as we have said, when any one is drawn aside by lucre, he must necessarily pervert and deprave all purity of doctrine). 그리고 순수한 교리가 훼손되지 않을 방안에 대해서 고민했다. 칼빈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문제를 해결할 때 보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보존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바벨론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
6. 7절. 왕의 엄명에 술사들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음을 토로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자기 의지가 실현되지 않으면 관련 모든 직종의 술사들을 잔인하게 죽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바벨론의 술사들의 교만과 허영은 꺾였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서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느부갓네살은 술사들의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고, 자기 결단을 진행할 것을 굳게 천명하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이전에는 술사들의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즐거워했지만, 정작 위급한 자기 일에서는 그들의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았다(9절). 느부갓네살도 충격이고 갈대아의 술사들도 충격이다. 느부갓네살이 정복한 유대의 하나님께서 준 한 꿈이 제국 전체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어 버린 것이다. 누가 정복자이고 통치자인지를 알아야 한다. 정복자는 신의 반열에 올라 아부꾼과 아첨꾼을 옆에 두어 신(神)놀이를 했었다. 그러나 한 꿈 앞에서 그 놀이는 전혀 쓸데없고, 그 놀이를 일삼는 말쟁이들까지 죽을 위기에 이르렀다.
7.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세상에서 순례자의 길을 가는 동안에 주의 영으로 은밀한 영감과 말씀을 의지해서 날마다 가르침과 다스림을 주옵소서. 또한 우리는 무지몽매의 어리석은 의식에 있나이다, 사단과 불경건한 자들의 궤계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진리를 굳건하게 붙잡고 부르심의 온전한 길에 설 수 있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칼빈 다니엘 주석 6 강) 다니엘 2:10-19
1. 갈대아 술사들은 왕에게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확언했다(10-11절). 상상이 간다. 왕이 말하지 않은 꿈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갈대아 술사들은 내용과 답변을 하는 사람은 신 지식(Divine knowledge)을 소유한 것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다니엘과 연관해서 마태복음의 동방박사(Magi)들을 추론해보기도 한다.
갈대아 술사들의 변명은 정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느부갓네살의 불과 같은 억지는 식지 않았다. 칼빈은 느부갓네살의 분노와 하나님의 충동이 갈대아 술사들의 협잡이 통하지 않도록 했다고 제시했다.
느부갓네살에게 술사들은 회유를 시도했다(11절). 술사들은 자기 모략을 신적 기원으로 호언장담하며 모략을 폈었다. 당시에 그들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들의 역할을 자처했다. 사도들은 신과 인간의 중재자 개념을 오류로 판단하고 강하게 반박했는데, 플라톤에서도 악마나 귀신이 하늘의 신성( Heavenly Deity)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하는 가르침이 가득하다.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노릇을 하면서 이득 챙기는 것은 거짓이다. 혹 악한 영의 작용으로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능한 하나님의 모략에서 누구도 지혜나 지식을 펼칠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이 갈대아 술사들에게 등장한 것이다. 평생 동안 잘난 척하며 존경을 받으며 왔는데, 정작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신들만이 알 수 있다고 비굴한 자세를 펼친다. 갈대아 술사들이 좌절했던 그 지식과 방편을 플라톤이 계승했다. 그러나 갈릴리 어부들만이 거부하며 교회를 이루었다. 인간의 육체로 파악한 신 지식을 바른 지식이라고 믿는 이 땅의 현자(賢者)들과 복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信者)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2. 어떤 회유와 만류에도 느부갓네살의 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술사들과 모든 박사들을 멸하라고 명령했다(12절). 다니엘은 아직 느부갓네살의 어좌(御座) 앞에서 모략을 펼칠 수 있는 술사는 아니었지만, 그 하급에 있었기 때문에 다니엘도 왕의 명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주었지만 꿈의 해결자까지 주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은 자기 분노에 차서 도저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길을 선택했다. 구원은 어린아이에게 있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소리까지 경청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술사들의 방편에 화가 나서 모든 박사들까지 멸절하라고 명령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가장 강력한 왕이 가장 멍청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 위대한 정복자가 얼마나 어리석고 성급한지 평범한 인간보다 못한 모습을 드러냈다. 진정한 인간은 자리가 아니라 내면의 평화, 평안(平安)과 평강(平康)이다. 내면의 평안이 있는 인간이 정복자보다 강한 사람이다(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 왕의 명령은 바로 집행되었다(13절). 그 집행을 위해서 모든 박사들을 체포했다. 다니엘과 친구들도 포함되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칙령)을 집행하는 아리옥에게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제의했다(14절). 칼빈은 왕의 칙령의 부당함을 밝혔다고 제시했다. 하나님께서 정복자의 어리석음을 폭로한 것으로 제시했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느부갓네살은 이미 다니엘과 세 친구의 지혜를 경험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묻지도 않고 모든 박사들을 죽이는 결정을 했다. 왕이 포로에 대한 자세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4. 다니엘은 아리옥에게 더 살필 것을 부드럽게 제시했다(15절). 왕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왕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리옥은 과정을 다니엘에게 알려주었다(15절). 칼빈은 다니엘이 사태의 진상을 알지 못해서 두려움에 쌓여있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미 계시를 받은 상태였을 것이다.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죽을 고초와 항해에서 죽을 고초를 당했지만 반드시 로마에 도착할 것을 알았다. 다니엘도 70년의 인고의 기간을 견딜 것을 알았을 것이다. 죽음에 임박한 죽음의 심판관 앞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죽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과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계시가 없을 지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은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며 생명이 끝난 뒤에는 영생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계시를 진행할 여호와의 종이고, 우리는 구원을 성취한 예수를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종은 주인의 분노 외에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두려움이 없다면 평안한 상태에서 온전한 판단과 모략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 그래서 의인은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5. 다니엘은 아리옥에게 왕 앞에 알현(謁見)할 일정 기간을 요구했다.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오지 않았지만, 다니엘은 그 계시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기 자신이 죽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분노한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요구를 용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느부갓네살이 얼마나 꿈과 해석에 갈망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호의를 굳게 믿고 모략을 펼쳤다. 우리시대에는 이러한 모략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기업은 자기 전문 기술과 지식이다. 자기 삶에 전문 지식(모략)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성공한 인생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이 복된 것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모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복된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기 때문에 복되고 유익하다.
6. 다니엘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세 친구(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에게 모든 일을 알렸다(17절). 하나님의 호의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자기와 친구들 그리고 누구도 의미 없는 죽음에 이르지 않기를 구하도록 했다(18절). 갈대아 술사들 때문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죽을 뻔하고, 다니엘과 세 친구 때문에 갈대아 술사들은 살 수 있다. 바벨론의 박사들은 생명의 은인에 대한 감사를 잃지 않아야 한다.
7. 그리고 밤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이상(vision)으로 비밀을 알려주셨다(revealed the secret). 개역개정에서 ‘이상(異象)’을 ‘환상(幻想)’으로 번역했다. ‘환상’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이지만, 계시를 보는 현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vision은 어떤 상(象)을 본 것이다. ‘환상(幻像)’으로 번역했다고 해도 좋은 번역으로 보기 어렵다.
다니엘은 응답을 확신을 갖고 세 친구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밤에 여호와께서 이상(vision)을 주셨다. 하나님께는 믿고 구하는 자에게 확실한 이상을 주신다고 칼빈은 주석했다. 다니엘의 기도는 믿음과 성실의 기도였다. 믿고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은 확실하다(시 145:18, 마 7:7).
8.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폭군의 잔인함 때문에, 악마 때문에, 위험한 상황 때문에 주께서 주신 진리에 침묵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우리의 생명을 주께서 주관하시고 돌보시고 보호하심을 믿나이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헛되이 자랑하지 않게 하옵시고 주의 이름을 선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인생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가고 있고, 언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보화를 주시는 것을 믿나이다. 영원토록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螢藍書院 五恩 高炅兌 형설청람(螢雪靑藍), ex fide in fidem
'형람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형람성경] 누가복음 10 장. 복음 전파, 마르다와 마리아 (찬 484 장) (0) | 2018.02.26 |
---|---|
[스크랩] [형람성경] 누가복음 9 장. 예수 가르침을 전함 그리고 예수를 따름 (찬 461 장) (0) | 2018.02.25 |
[스크랩] [형람성경] 누가복음 7 장.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찬 452 장) (0) | 2018.02.22 |
[스크랩] [형람성경] 누가복음 6 장. 베드로와 친구들, 레위를 부르시며 사역하심 (찬 386 장) (0) | 2018.02.22 |
[스크랩] [형람성경] 누가복음 5 장. 베드로와 친구들, 레위를 부르시며 사역하심 (찬 149 장) (0) | 2018.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