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성경] 사도행전 5 장. 교회의 권징과 담력 (찬 220)
1. 사도행전 4장 32절에 등장한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 유력한 사람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마 6:24).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둘을 동시에 갖고 싶었다. 속이는 일은 남편이 주도했고, 아내도 암묵적으로 시인했다(2절). 아나니아는 그 값을 가지고 베드로에게 드렸다. 베드로 사도는 아나니아의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임을 지적했고, 아나니아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행 5:5). 그리고 세 시간 뒤에 아내 삽비라가 나올 때에 땅값에 대해서 물었고 거짓을 말하는 삽비라도 죽었다.
[교회의 헌금 수납 원리: (1) 교회는 바른 예물을 수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거짓 예물을 분별하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드려진 예물을 조건 없이 취득하지 않는다. 까닭없는 헌금은 거절한다. 주님의 교회는 천만원 이상(과도한) 헌금이 들어왔을 때에는 반드시 제직회를 열어서 수납한다. (2)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소득을 주 앞에 내놓지 말라.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방법은 부정한 형제에게 주어라(눅 16:10). (3) 부정한 재물을 탐하면 교회는 부패하여 패망한다.]
2. [행 5:12-16] 사도들이 표적을 일으키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서 많은 표적과 기사가 발생했다. 솔로몬 행각에 모였고 백성들은 칭송했다. 믿은 사람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14절). 예루살렘 교회는 5,000명에서 큰 무리로 성장했다. 몇 년의 시간이 경과되었을 것이다. 수 많은 병든 자들이 베드로 사도에게 나왔고, 그림자라도 닿기를 바랐다(15-16). 그것을 사도들이 기뻐했을까? 사도행전은 말하지 않지만 사도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많은 무리를 피하신 것처럼 하지는 않았다. 많은 무리들과 함께 있지만, 그 무리들이 말씀이 아닌 병치료를 위해서 나오는 것을 불쌍하게 여겼을 것이다. 사도에게 주어진 권위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복음 전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3. [행 5:17-42] 사도들이 기적에 기적을 일으켜도 사두개인의 화는 증가한다. 기적이 일어나면 구원이 일어날 것처럼 생각하지만, 믿기로 작정된 자만 믿는다. 사두개인은 오히려 화가 증가했다. 감옥 문을 열고 나갔는데 성전에서 복음을 전했다(23-25절). 사도 베드로를 다시 공회 앞에 끌어다가 심문했다. 사도 베드로는 전과 같은 말을 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4:18, 5:28). 그리고 예수를 당신들이 죽였는데,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살리셨고,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사함을 주시려고 주와 구주를 삼으셨다(30-31절). 그것을 공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이 임무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성령께서 이 일을 한다고 고백했다(5:32). 사도 베드로의 마지막 고백은 멋진 문장이다. καὶ ἡμεῖς ἐσμεν μάρτυρες τῶν ῥημάτων τούτων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ὃ ἔδωκεν ὁ θεὸς τοῖς πειθαρχοῦσιν αὐτῷ.(32절). 사도 베드로는 자기가 한 증거는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것으로, 듣는 자가 성령과 베드로가 동일시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베드로 사도의 극진한 믿음과 겸손 그리고 담력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모든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있음을 증거한 것이고, 성령이 임하면 예수 증인이 됨의 필연성을 고백한 것이다(행 1:8).
※ 사도행전에서는 복음이 흥왕하면 필연적으로 복음전도자는 그곳에서 떠나게 된다. 이는 현재 교회가 사도행전 교회를 적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다. 사도행전의 말씀은 원리이지 실행 매뉴얼이 아니다.
4. [행 5:33-42] 가말리엘의 경륜. 가말리엘이 성전에서 펼친 경륜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다. 필자는 가말리엘을 기회주의 자세로 평가하고, 불가지론적 발언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진리는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는 매우 신중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지만, 진리는 자기양심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학문하는 사람으로 진리를 드러내기 쉽지 않음은 양손에 떡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은 진리이고, 생활은 정치이다. 학문하는 사람은 생활도 학문이 되어야 한다(학행일치,學行一致). 가말리엘은 힐렐의 손자로 당대 최고의 학자이다. 바울이 가말리엘에게 배웠다고 하는 말에 의해서 힐렐 학파로 분류하지만, 유력한 학자들은 샴마이 학파로 제시한다. 힐렐과 샴마이가 원리는 같겠지만 방법은 전혀 다르다.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에 있었다는 것은 샴마이와 힐렐을 융합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가말리엘은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는데, 사도들을 처리할 때 매우 객관적인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경륜을 옳게 여겼는데, 채찍질을 했다(40절). 무고한 자를 채찍질한 것은 자기 체면 때문에 불법을 자행한 것이다. 사도들은 그러한 능욕을 게의치 않았고, 애매한 고난을 오히려 기뻐했다(41절). 그리고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42절). 성전과 집은 두 회집 형태를 의미한다. 예루살렘에서는 성전과 집, 밖에서는 회당과 집 형태로 구성하다가, 집으로 고착된다. 성전과 집이 혼재될 때에는 유대인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며, 회개를 선포했다. 그러나 집 시대에는 이미 믿은 자들과 함께 협력하여 복음을 전파한다.
5. 전능하신 하나님, 사도들의 담력을 주옵소서. 진리의 빛이 세상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블랙홀 속에서 빛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어둠의 예루살렘에서, 그 어둠의 중세에서 빛을 발하신 것처럼, 참빛을 발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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