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서원]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해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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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한계시록은 해석할 수 없다" 라는 말은 어떤 한 개인의 해석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요한계시록은 해석에서 겸손과 온유를 훈련시키는 정경이다.
2. 포이쓰레스의 <요한계시록 맥 잡기>(유상섭 역)에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을까?라고 시작한다. 그리고 전제와 목적을 세우면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제와 목적은 연구자 개인의 것으로 보편타당을 주장하기 어렵다. 둘째 포이쓰레스 교수는 요한계시록을 쉽고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쉽고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 그랬다면 정경화 과정에서 혼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의 기본 원리가 명료성과 확실성이 있다. 그러나 성경 본문 해석으로 명료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에서 그렇다.
3. 칼빈은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았다. 맞다. 그러나 칼빈은 더 많은 성경을 주석하지 않았다. 사사기, 잠언, 에스겔 일부, 요한 2, 3 서 등을 주석하지 않았다. 에스겔서는 소천 직전까지 강의한 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칼빈과 같은 신학자는 없다. 그것은 신학과 성경주석을 병행한 것이다. 자기 신학을 성경으로 입증한 유일한 기독교 신학자이다. 종교개혁은 사라진 교부들의 가르침을 재현시키는 것이다. 교부들은 예수님의 체취를 기억하는 사역자들이다. 그러나 1,000년이 지난 뒤 교회에 의해서 질식된 진리를 복원시키는 방법은 오직 성경 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성경 중 가장 심각한 오염은 알레고리칼 해석이다. 알레고리칼 해석은 기독론적 해석이다. 벳세메스로 가는 암소를 해석하는 것은 윤리적 해석으로 기독론적 해석이 아니다. 성경 본문을 알레고리칼하게 해석하면서, 본문의 의미를 상실시키며 기독론적으로 해석한 부분을 역사적-문법적 해석으로 체계화했다. 성경 본문으로 진리를 복원하고 교회를 세우려고 했다. 그래서 칼빈은 당시 알레고리칼 해석의 온상인 시편을 많이 연구했다. 21세기 한국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야 한다. 1992년 다미선교회의 강타 후에 요한계시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립했어야 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으로 한국 교회를 농락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요한계시록을 축을 확립해서 이단이 더 이상 주의 거룩한 말씀으로 농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4. 요한계시록은 저급한 이단이 공격하는 무기로 삼았고, 고급 자유주의와 현대신학에서는 다니엘을 근거로 기독교의 근간을 파며 흔들었다. 두 성경은 반드시 정립해야 한다.
5. 혹시 요한계시록을 잘 해석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은 "너희 해석일 뿐" 이라고 생각하라. 요한계시록 자기 해석을 절대화시키는 사람을 만나거든, "너는 이단이거나 이단 일 수 있는데" 라고 생각하라. 요한계시록은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푯대를 제공한다. "요한계시록은 해석할 수 없다". 자기 해석을 절대화시키지 말고, 타인의 해석을 절대적으로 수용하지도 말라. 요한계시록 해석을 통해서 무한한 자기 겸비가 발생하면 좋겠고, 믿음의 주를 깊게 생각하며 경배하면 좋겠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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