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 마음에서 잡아 사랑으로 행동하게 한다
논적들은 굉장한 노력을 투자해서 진리를 대항할 목적으로 성경 구절을 수집한다. 쉬지 않고 모으지만 이기지 못한 역사 전력에 의해서 더 많은 성경 구절로 바른 교리를 압도하려고 한다.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근거와 연계성이 약한 오합지졸 같은 성경구절로 결국 십자가의 진을 공격하지만 십자가 군사의 공격에 너무나 쉽게 흩어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공격하는 모든 무리들에게 일일이 응전을 할 필요가 없다.
진리를 대적하는 무리들의 행동은 강하고 화려한 진영을 구축해서 교훈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주장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계명을 인간이 수행할 능력에 적합하다고 가르친다. 각각의 임무들을 나열하여서 개인이 수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측정하도록 한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긍정 명령(거룩, 경건, 순종, 정절, 사랑, 온유)을 실행하는 것과 부정 명령(불결, 우상숭배, 불신, 분노, 도둑질, 교만)을 행동하지 않는 것을 유도한다. 인간의 무능과 부패를 주장하면 인간의 가치를 무시한다고 주장하며 공격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칼빈은 인간의 단계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 인간이 하나님께 회개(개종)하는 것이고, 둘째 선포된 말(복음 선포)에 순종하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 은혜의 견인에 착념하는 것이다(Alia primam ad Deum conversionem exigunt; alia simpliciter de legis observatione loquuntur; alia perseverare in recepta Dei gratia iubent). 칼빈은 바로 세 종류에 대해서 서술하지 않고 다음에 기술한다고 연기했다.
칼빈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율법으로 사람의 능력을 측정하는 모습이 있었다고 하였다.이것이 진리처럼 당연하게 인식하였지만, 율법을 모르는 무지에서 생긴 것이다. 율법을 준수할 수 없다고 말하면 무서운 죄악으로 생각하면서 율법을 준 목적을 모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이 죄를 만들어낸다고까지 하였고, 율법이 죄를 더한다고 하였다(롬 7장).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아야 한다. 칼빈은 율법의 역할을 연약함을 깨닫는 것과 사랑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율법의 몽학선생 기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율법은 근본 의미는 사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기 전에는 몽학선생의 기능이 있고,구속을 성취한 뒤에는 죄를 깨닫고 연약함에서 성취한 구주를 고백하도록 인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율법을 귀로만 듣는다면 울리는 징소리와 같이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감동(Deus inspirare)된 마음에 율법이 들릴 때에는 사랑이 넘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할 때에 성도들의 마음에 사랑이 넘치도록 기도하였다.
7. 율법은 은혜의 인도와 힘으로 유용성을 발휘한다
만약 성경의 가르침이 명확하게 율법, 생활의 법이라면 칼빈은 의심할여지 없이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 인정할 것을 제시하였다. 성경은 신실하고 명확한 율법의 중요 설명 문장을 제시하지만, 인간이 행동할 때에는 해석이 필요하다. 율법을 해석하여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적당한 답이 나온 것에 대해서 순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Dei bonatis)에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율법을 지킬 능력을 준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약속이 있다. 명령만 있고 약속이 없다면 단순하게 명령만 지켜야할 위치이다. 그러나 이렇게 약속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신적 은혜(divinae gratiae)를 주어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이 율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이 주께서 제정하신 의의 규례를 지킬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의 힘에 비추어서 가르치지 말자. 모든 것은 주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약함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전능하시고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한다.
주께서 목석(木石)을 위해서 율법을 제정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는 악한 사람도 목석은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스스로 있으면 무기력해진다. 하나님의 율법을 율법의 근본 목적에 맞게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적절하게 제시하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명령하여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게 하신다(iubet Deus quae non possumus, ut noverimus quid ab ipso petere debeamus)” “만약 자유의지를 상당하게 평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다 영예롭게 한다면 훈련의 유용성은 크다(magna est praeceptorum utilitas, si libero arbitrio tantum detur, ut gratia Dei amplius honoretur)” “믿음은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성취한다, 그래서 율법이 명령한 것을 완수한다. 참으로 율법이 명령하는 것은 율법을 통해서 명령된 것을 믿음이 성취하기를 원해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믿음 자체를 요구하시지만, 찾으시는 것을 먼저 주시지 않으며 그것을 요구하려고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며, 주시려는 것을 명령하시게 하라(fides impetrat quod lex imperat imo ideo lex imperat. ut impetret fides quod imperatum erat per legem; imo fidem ipsam exigit a nobis Deus, et non invenit quod exigat, nisi dederit quod inveniat. Item: det Deus quod iubet, et iubeat quod vel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