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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조선역사를 연기력으로 표현하다

형람서원 2015. 9. 3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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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조선역사를 연기력으로 표현하다
기사입력 2015-09-28 오전 12:58:00 | 최종수정 2015-09-28 00:58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는 9월 16일에 개봉해서 13일만에 누적 관객수 400만을 돌파하고 있다. 영화 사도 흥행 두 배우(영조 역 송강호, 사도세자 역 유아인)의 탁월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선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바탕에 두고 관객에게 조선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좋은 영화이다. 영화는 픽션이기 때문에 객관적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 역사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인 역사가 흥미를 유발하는 독특한 현상을 갖은 것이다.

학교에서 영조는 조선 역사에서 훌륭한 왕 중의 대표적 위인이다. 탕평책을 펴서 당파 갈등을 해소한 탁월한 업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사도 세자와 역학적 관계에 대해서는 "광인의 난동"이라는 극중대사를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그런데 역사 사료에 근거하면 학교 강단의 교육보다 영화의 장면이 더 객관적일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뒤주에 갇힌 "1762년 4월 3일"을 명시하며 죽은 8일간 뒤주 속의 사도 세자와 뒤주 밖의 영조의 회상으로 구성한 독특한 구조이다. 그러나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뒤죽박죽의 전개에도 몰입에 전혀 방해되지 않고 영조와 사도세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기법으로 성공했다. 영조, 사도세자, 이산(정조)의 삼자에서 사도 세자의 심리는 매우 복잡했고, 배우는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사도 세자는 부인(혜경궁 홍씨)에게 "무섭다", "자기 자신 밖에 모른다"는 소통이 없고 신뢰가 없는 관계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영화에서 사도 세자는 아버지 영조에게 있는 "경종독살사건"에 대해서 사실로 받아드리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신하들과 약조한 의리를 근거한 화평이 탕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영조는 그것이 역모로 주장했고, 자기의 왕좌에 대한 부족한 심리를 왕좌를 부인하면서 타인에 의해서 증명받으려는 심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조의 마지막 왕비를 간택하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정순왕후는 사도 세자와 갈등 요소가 되었고, 어린 왕비이지만 당찬 모습을 보여주어 후세에 조선 역사를 흔든 위인임을 보여주었다. 
 
영화 "사도"에서는 학교 역사에 보이지 않았던 대비의 역할, 사도 세자 어머니의 모습 등이 나타났다. 영화는 교과서도 역사 연구도 아니다. 조선 역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들이 많이 흥행했다. 그런데 영화 사도는 사료에 근거해서 사료대로 영화한 것으로 보인다. "왕의 남자"는 광해군과 연관했지만 전적으로 픽션이었다. "광해"는 간략한 역사 사료에 근거해서 픽션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영화 사도는 사료에 근거해서 영화의 대부분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흥행에 성공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고, 사실이 오히려 소설같았고 그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영화 사도의 흥행은 한국 영화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영화 구성이 짜임새 있고 배우 심리 묘사로만 승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물이 흥행하는 것은 관객들이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물이 꾸준히 흥행하면서 더 다양하게 해석한 영화물들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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