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 박사의 히브리서 11-13장 강해를 하루 종일 들으며...
교회? 구원? 성장? 생존? 숫자? 등 다양한 것이 생각났다.
세미나를 개최하면 성황리에 이루어지는 곳이 있고, 적은 숫자로 조용히 하는 곳이 있다. 서철월 박사의 성경과 신학 세미나에는 후자의 경우이다. 그곳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몇 번은 결석했지만, 참석하고 있다.
10여년의 강의에서 변하지 않는 내용을 강의하시는 것 같다. 아마 신학교 강의에서도 변하지 않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청강생들이 새로운 정보를 듣기 원한다면 구식같은 어쩌면 뻔히 아는 내용같은 내용을 하루 종일, 수 년동안 진행 반복하시는 것 같다.
왜 그런 강의를 해야하는 것이고, 왜 듣고 있는 것일까? 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할까?
무엇이 그가 세계적인 석학으로 칭송받을만한 내용인가?
나는 그것을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지식을 아는 것과 표현하는 것이 있는데, 학문은 아는 것과 표현하는 것을 배운다. 그런데 정작 안다면서도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서철원 박사는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요구한다.
대학원에서 한 학생이 아마도 "루터의 십자가 신학"의 유사한 제목의 논문 지도를 받으려고 왔었다. 교수님 왈 "십자가가 무엇인가?"
학생은 그 질문에 너무나 의아해 하는 것으로 느꼈다. 당연한 것을 질문하느냐?는 듯했다. 그런데 답을 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도대체 "십자가"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 강의에서 서철원 박사는 십자가에 대해서 수 없이 반복하고 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의 유일한 방편"이다. 그렇다면 루터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에는 "고난의 십자가"라고 보인다. 신학도는 자기 이해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서철원 박사는 자기 이해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고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말하고 싶다. 지식을 총합해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취득해서 자기화하여 자기의 것으로 제시할 수 있는 학문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서철원 박사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의 저서는 어떤 신학저술과 내용은 유사하지만 제시방법은 유사하지 않다. 그래서 학도들이 당황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2002년인가? 03년인가?에 안양대학교에서 열린 세계복음주의신학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세계의 신학자들이 모두 참석한 것이가 보다. 기억에 스텐리 그렌츠도 강연을 했고, 한국 신학 대학은 물론 세계의 신학자들이 모였다. 영어도 잘 모르는데 하루 종일 영어로 강연하는 것을 들으면서 보낸 적이 있다. 그 때 한국의 한철하 박사님께서 강연이 끝날때마다 질문은 "죄사함"은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한 것이 인상 깊었다. 그 뒤 우연하게 한철하 박사님의 댁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내 성경책에 사인을 부탁했다. 자연스럽게 사인을 해주어 그 책은 나의 보배가 되었다.
그 세계적인 석학들이 노 신학자의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무시하는, 왜 그런 것을 질문하는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누구도 그 질문에 찬성(동조)이나 답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신학이 무엇이길래~~ 신학은 교회에서 복음을 선포하여 죄사함과 은혜의 부요하심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아젠다(Agenda)가 무엇인지,,, 담론이 무엇인지... 사회를 어떻게 바르게 해야할지... 그런 것을 다루는데 세계 신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한 것이었다.
2015년 서철원 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페친들이 참석하여 매우 기뻤다. 그들은 이 강의를 어떻게 들었을까? 하루 종일 반복되는 내용을 어떻게 잘 들었을까?하는 생각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그 강의를 1995년부터 20년동안 듣고 있다. 선배들은 더 많이 들을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듣고 있다.
이번 강의에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만.. 서 교수님은 늦은 진행이 특징이라고 본다. 그래서 히브리서 강의를 수년 동안해오고 있었다. 히브리서 11장 9절?에서부 시작된다. 도저히 끝나지 못할 분량이다. 그래서 세미나 전 회의에서 이번에는 꼭 끝내 달라고 부탁했고 끝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끝나는 시간은 오후 4:30으로 했다. 그래도 속독으로 진행하셨고 그래도 끝날 수 없는 분량이었다. 나는 도중에 끝낼 줄 알았고 시간 종료 사인을 계속 보냈다. 그런데도 무시하시고 중간 생략을 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한 시간을 더 연장해서 오후 5:30에 끝냈다. 그러니 마이크는 놓으신다.
신학교에서도 교재의 마지막까지가는 유일한 과목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교재의 한 토시를 빼지 않고 마지막까지 학생들에게 전달해줌으로 강의가 종료된다. 그래서 학생들은 좋지 않는 시험점수에 교재를 외우지 못해서 점수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시험 점수는 D를 맞았었다. D 를 맞고서 기분이 좋은 과목은 서교수님의 과목이었다. 왜 나는 D를 맞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교수님의 답은 출석100%과 과제물 완료 그리고 약간의 내용만 있으면 D는 준다는 것이었다. 출석점수와 과제점수가 50점이었다. 10점을 못맞아서 과락이 된 것이다. 10점을 맞고 행복한 과목이었다니... 교수님의 시험은 명확한 자기 답을 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복음, 교회를 살리는 복음의 내용이어야 하는 것이 문제다. 교회의 보고는 결정된 것이 있다. 그 결정된 보고를 익히는 것이 신학교의 신학이고, 교회의 신학은 확장되는 것으로 본다. 결정된 보고를 익히지 못하면 절대로 새로운 복음의 보화를 깨낼 수가 없다. 서철원 교수님은 복음의 보화를 발굴할 첫번째 소양을 성실(출석)과 정직으로 본다. 그래서 학생의 본문은 수업으로 강력하게 제시한 것으로 본다.
세미나를 마친 뒤에 이거저거가 생각이 나서 중얼중얼 읖조리는 소리를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