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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경-05, 하나님의 능력, 430년 만에 70명에서 200만 명의 성장은 아무것도 아니다

형람서원 2014. 12. 7.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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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 성 경 연 구 원

고 경 태 목사

 

010-8525-0288, 062-401-7762

광주시 북구 석곡월산길 36번지 주님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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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오직 한 분 하나님께 경배하며 믿음을 촉구하는 방편이다. 기적은 참되고 경건한 방법으로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인간의 예언이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은 사악한 영들의 유혹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0권 12장 -

대한성경-05. 2014.12.7.주일

 

하나님의 능력, 430년 만에 70명에서 200만 명의 성장은 아무것도 아니다.

 

성경 독자들은 출애급기에서 야곱(이스라엘)의 후손이 장정만(남자 20 세 이상에서 50 세 미만까지) 603,550 명(전체 인구수 2,00만 명 이상)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서 쉽게 의문을 갖는다. 그런데 정작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숫자의 증가에 대해서 어떤 의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어떻게 백성들에게 인구폭발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고기를 주심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숫자에게~”라고 의문을 던졌다(민 11 장).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의 세계는 어디까지 인가? 가장 큰 전능은 ‘무에서 유를 창조(Creatio ex nihilo)’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다. 사람 70명의 유(有)에서 200만 명으로 성장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구폭발이 인류역사에 없었다는 것이 난점이다.

창세기와 출애급기 사이(출 1:1-7), 430 년 동안에 인류 역사에 유래가 없이 인구가 급성장하였다. 출애급 연도를 BC 15세기(1400년)로 본다면 요셉의 죽음은 역 BC 1830년으로 볼 수 있다. 요셉(110세), 야곱(147세), 이삭(180세), 아브라함(175세)에 죽었다. 족장들은 가나안에서 약 200년을 거주했고, 애급에서 평안한 시대로 약 100년을 거주하였다. (구약성경의 기준 연도: 솔로몬 성전 건축. BC 966년 왕상 6:1의 ‘출애급 480년’)

요셉의 죽음으로 족장 시대를 마감하고 12 지파 시대, 이스라엘 시대(출애급기)가 도래하였다. 성경에서는 행간의 시간을 잘 인식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성경을 이해할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성경은 구속의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배려가 약하다. 그러나 독자는 시간의 길이에 대해서 잘 인식하는 것은 성경을 명료하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전 글에서 창세기의 끝이 사도행전과 유사하여, 12 아들은 구약에서, 12 제자는 교회에서 유효함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 복음을 강론함으로 유지됨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다시 창세기와 출애급기 그리고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처음과도 비교해 본다. 창세기의 70 명에서 출애급기에서 장정 60만 명으로 성장했다면, 복음서에서 120 명은 사도행전에서 남자만 두 번 설교에 남자만 8,000 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인구의 대폭발은 하나님의 경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인적 자원이기 때문에 시작에서 많은 인구가 조성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한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기본 인구 숫자, 혹은 교회를 열방에 확장시키기 위한 기본 성도의 구성을 이루신 것이다.

성경의 기적에 대해 불신하는 독자들이 종종 있다.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인데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어찌할까?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어려운 지식이다. 인류의 지성에서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가르치지 않는다. 어떤 기원설이나 이론에서는 무(無)가 아닌 어떤 근원물질인 유(有)가 있다. 빅뱅에서는 ‘가스’, 지구에서는 ‘아미노산’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 보다 훨씬 쉬운 70 명에서 200만 명이 되는 것은 거부한다. 차라리 물고기가 날고 싶어 한다거나, 젖소가 바다에서 살겠다는 생각은 더 잘 믿는다.

필자^^는 신대원 시절에 ‘인구증가’에 대해서 갑자기 난제(難題)가 되어 당혹스러웠다. 그 때 둘째를 거부하고 한 아들로 만족하려고 했다. 첫 아이 출산 때 아내의 난산(難産)에 큰 충격과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구증가에 대해 고민이 깊어 회의가 될 때, 그만 ㅠㅠ 아내가 임신을 하고 말았다. 그 때 실존적으로 이 말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생명의 태어남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하시는구나, 하고 아들의 이름인데도 ‘은(恩)’이라고 지었다. 둘째 아들인 ‘은’은 자기의 이름이 여자 이름이라고 불평하지도 않고, 지금까지 여자이름이라고 놀림 받은 적도 없는 것 같다. 성경의 기록을 믿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다. 오직 주의 성령의 감동과 감화로만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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