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ready ~ not yet... 이미~ 그러나 아직~
고경태
우리는 신학명제를 사용하는데 간혹 출처를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마가복음 우선설’(The Markan Hypothesis)도 마치 정설처럼 받아드리지만, 1835년 라흐만(1793-1851, Karl Lachmann)에서 한 논문집에 기고한 논문에서 최초로 시작된 가설일 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신학 용어는 어떤 신학자들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다. 일상적인 단어의 개념이 아니라, 한 신학자 혹은 다수의 신학자에 의해서 신학화된 것이다. 그래서 그 원저자의 의도는 모르더라도, 내가 사용하는 신학 용어의 출처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필자는 “already ~ not yet”이라는 신학 문장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카알 발트의 『교회교의학, I/2』(한글., 99, KD., 75, CD., 68)에서 유사한 문장이 발견되어 소개한다. 발트는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에서 성취되었지만, 완전한 등장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가 아직 임하지 않은 상태로 제시했다. 이것은 물론 1-33년 뒤에서 여전히 같은 수준이 된다.
"already~ not yet"의 신학 개념은 누가 제안했는가? "already~ not yet"의 개념은 신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는 개념이기도 한다. 신학에서 "already~ not yet"은 “하나님 나라”신학과 밀접한 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already~ not yet"는 누가 처음에 제안한 이론인가?
'고 목사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목: 성경. (0) | 2014.07.21 |
---|---|
제목: 믿음에서 믿음으로. 로마서 1:16-17절. (0) | 2014.07.21 |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 이야기(29)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0) | 2014.04.19 |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 이야기(28) 기독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0) | 2014.04.13 |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 이야기(27) 십계명(6) (0) | 2014.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