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도성 읽기(6) 2권 1-9. 로마에 성행한 이교적 모습
2권 1장. 아우구스티누스는 약한 이해력만 있으면 자신을 회복시키는 치료약을 찾을 것인데, 고집스러운 저항, 공허한 억측과 오류 등 불합리한 주장들이 인간의 눈을 멀게 하여 왜곡된 고집을 계속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완고한 고집은 비록 자신들이 이해를 당해도 승복하지 않고 반론을 펴는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제자 마르켈리누스에게 성경을 따라 오히려 많은 변론을 펴지 않도록 권면했다(딤후 3:7).
2장. 1장은 야만인들에게 유린당한 로마에(410년) 대한 기독교 책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답변이다. 로마의 우상 제사를 금지한 기독교 때문에 멸망되었는가? 그런데 야만인들은 침략 중에도 교회당은 도략하지 않아, 그곳에 피난한 사람들은 안전했다. 그들은 자신의 범죄를 두렵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범죄하지 못해서 환란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의 복음이 거짓되고 기만적인 신들에 대해서 맹렬히 비난했더라면 기독교로 책임을 돌리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드리겠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역현장도 평안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교회내적으로 설교문제, 외적으로 로마의 패배로 심각한 지경에 있었다.
3장.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와 이교가 고난을 만날 때에 정반대되는 행동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것은 고난을 만나면 기독교의 신에 대해서는 불평을 하고, 이교의 신에게는 제물을 더 바치는 것이다.
4장.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도 남신과 여신을 숭배하는 모습이 성행했다고 술회한다. 이런 풍습은 모든 계층에서 성행했었다. 이러한 의식이 성스러운 것인가? 정화를 위한 것인가?
5장. 아우구스티누스는 원로원이 가장 선하다고 뽑는 스키피오 나시카의 행동을 예로 든다. 그는 키벨레(Cybele)를 로마로 운반하도록 했다. 키벨레는 ‘신들의 어머니’로 숭앙되지만, 가장 악질적인 성격과 외설을 갖고 있었다.
6장. 이런 신들은 자기를 숭배하는 도시에 도덕이나 순수한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회에서는 거룩한 삶에 중점을 두었다.
7장. 철학, 윤리학, 논리학을 애쓴 사람들이어도 미신적 숭배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교만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의 첫 번째 원리는 “겸손”이다. 정욕, 방종으로 신을 섬기는 것은 악마의 신전을 섬기는 것이다.
8장. 아우구스티누스는 극장의 공연의 방탕함이 생활 속에 그대로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공연은 이교의 신들을 섬기는 행위였다. 희극, 비극 모든 연극은 동일하게 거룩이 아닌, 세상의 유희와 방탕을 위한 것이었다.
9장. 로마는 연극으로 멸망한 그리스를 초기에 거부했지만, 결국 그대로 답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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