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도성 읽기(8) 2권 19-22장. 탐욕의 우상과 그의 종 로마
2권 19장.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국가 이전부터 부패했던 로마의 모습에 대해서 제시한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 강림 이전부터(카르타고 정복, 주전 146년) 도덕은 붕괴하고 있었다. 그들은 카르타고에 의해서 심각한 위협을 당할 때에 자기 신들에게 어떤 불경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로마의 환난에서 기독교를 비난한다. 본래 사람들은 엄격하고 건전한 덕보다 악의 아첨하는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인내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하늘의 국가에 자리를 얻게 된다.(아우구스티니누스는 이 땅의 변혁보다 성도의 영생에 대한 확고한 상태를 추구한다. 이 땅은 언제나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의 인내는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장.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인가? 그들은 공화국의 번성을 위해서 부자를 장려하며, 가난한 자들의 순종을 강요한다. 부자에게 쾌락과 자유와 방종을, 빈자에게 예속과 혹사를 배정한다. 왕들은 충분한 쾌락을 위해서 공창(公娼)을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크고 화려한 건축물을 세운다. 사회를 교정하고 폐지하려는 사람들을 침묵, 축출시키고, 방종을 가능하게 하는 신들을 추앙하도록 한다. 그리고 신들은 백성의 쾌락, 질병, 재앙의 위협에서 보호해 주어야 한다.
로마 공화국은 쾌락에 빠졌다. 이것은 로물루스를 숭앙하는 것보다 더 열광적으로 신전들을 봉헌하고 사제를 임명했다.
21장. 불의의 공화국과 정의의 도성. 키케로는 로마가 멸망의 위기에 있을 때에 선동으로 극복했다고 제시한다. 정의는 자기의 이익이 있을 때에만 수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화국은 불의 없이는 통치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민의 행복을 위한 불의라는 괴설을 만들었다. 불의가 정의보다 낫다고 예리한 주장을 하여, 정의로운 공화국이 무익하다고 했다. 즉 로마에는 정의가 자리 잡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공화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시 87:3)에 하나님의 도성에는 진정한 정의가 있다고 한다.
22장. 아우구스티누스는 결론적으로 로마의 파멸의 원인이 변함없는 타락과 불공평에 있다고 했다. 로마는 그리스도 강림 이전부터 최악으로 수치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었으며, 수호자인 자신들의 신들을 섬겼다. 비록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지만, 구습을 버리지 않고 유지했으며, 더 크게 활성화시켰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숭배한 신들(악마)은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했지, 숭배자들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공물을 바치고, 타락한 생활을 살도록 유도했다. 기독교가 그 신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이집트 신까지 수입하여 숭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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