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2장 1-9절]
주제: 거짓 교사의 광포에 두려워 말라
거짓 교사들은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으로 행하면서 권위를 멸시한다. 대담하고 자의적으로 떨지도 않으면서 영광스러운 사도들을 비방한다. 더우기 더 큰 능력과 권세가 있는 천사들도 주 앞에 그들을 비방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죽기 위해서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처럼,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면서 그들의 멸망에서 멸망될 것이다. 불의의 삯의 틀림으로 고난을 당하지만, 한 때에 즐거움을 당연히 여긴다. 그들은 점과 흠 투성이면서도, 너희를 대상으로 축제를 열며 속임수를 즐거워한다.
거짓 교사들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를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불안전한 영혼들을 유혹한다. 그들은 탐욕으로 심장이 오염되었다. 저주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바른 길을 저버리고 반역했다. 그들은 발람의 길과 브올의 아들을 따라서 불의의 소득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기의 불법으로 책망을 받는데, 말 못하는 당나귀가 인간의 소리로 말하여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했다.
1) 거짓 교사들은 교회의 권위를 멸시하면서 자기 욕심을 채운다. 거짓 교사의 분별법 중에 하나는 “교회의 권위와 질서”의 수립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이다.
2) 거짓 교사들은 사도와 사도의 직분을 비방한다. 현재는 목사의 직분과 권위에 대해서 도전하면서 비방한다. 자신이 목사이면서 목사의 직분과 권위에 대해서 비방하는 것은 거짓 교사의 모습이다.
3) 교회의 직분에 대해서 천사들도 아무런 비난이 없다. 교회에 대한 훼방은 사탄의 역사다. 사탄의 종인 거짓 교사가 교회의 권위와 질서, 목사의 직분과 권위에 대해서 비방하면서 폄훼한다.
4) 거짓 교사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마치 아는 것처럼 위장하여 떠버린다. 그들이 자신들이 모르는 소리를 하기에 두려움이 있지만,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취에 빠져 즐거움을 누린다. 거짓 교사들 자신은 점과 흠 투성이면서도, 교회와 목사에 대해서 난도질하는 축제의 장을 열어 향락을 즐긴다.
5) 거짓 교사는 음란한데, 그 거짓 교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드로 사도는 그들이 불완전한 영혼이고, 심장이 오염되었으며, 저주의 자녀라고 하였다. 이는 거짓 교사와 따르는 사람이 동일한 인격이다.
6) 거짓 교사는 절대로 돌이키지 않는다. 발람이 여호와의 계시를 무시하고 진행하려 할 때 당나귀의 소리를 듣고서 잠시 멈췄지만, 발람의 죄를 백성에게 유포시켜 심각하게 부패시켰다. 거짓 교사는 직분을 받아 오염되었기 때문에 돌이키지 않는다.
거짓 교사들은 물 없는 샘이며, 바람에 밀려가는 안개로, 그들을 위해서는 캄캄한 어둠이 준비되었다. 그들이 허망한 자랑의 말을 뱉으며 그릇된 길에서 겨우 나온 사람들에게 음란으로 육체의 정욕을 유혹한다.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미혹하지만, 자신들이 멸망의 종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누구든지 진 사람은 그 사람의 종이 된다.
만약 그들이 우리 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세상의 더러움에서 피한 뒤에 다시 더러움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된다. 의의 도를 안 뒤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는 더 낫다. 좋은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했던 것을 먹고, 돼지가 씻은 뒤에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뒹근다”는 말이 있는데, 이와 같은 일에 대한 것이다.
1) 거짓 교사는 짧은 시간만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지만, 금방 어둠이 그들에게 엄습한다.
2) 거짓 교사는 세상의 죄악에서 겨우 빠져 나온 사람들을 미혹해서 음란과 육체의 정육의 길로 다시 들어가게 한다. 교회 안에서 주어진 위험이다.
3)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이 전하는 것이 자유의 선언이라고 한다. 멸망의 종, 사탄의 종이 선언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가?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거짓 교사의 획책에 넘어가지 않도록 권면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영혼의 안위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분별과 결단을 해야 한다.
4) 은사를 맛본 사람이 타락하면 더 심한 지경에 이른다(마 12:43-45). 그래서 함부로 축귀를 하는 것도 주의를 해야 한다. 축귀와 죄사함은 구분된다. 축귀가 오히려 더 심각한 지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필자는 “개가 그 토했던 것을 먹음”에 대해서 개신교에서 구교로 가는 형태로 적용하기도 한다.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다시 구교로 가는 것은 개와 같은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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