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사도행전 13장 42:52,,,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추방에서

형람서원 2012. 9. 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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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42:52,,,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추방에서

 

고경태 목사(망월동 주님의교회)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회당에서 안식일 설교를 하여 안디옥의 커다란 파장을 이르켰다. 이에 유대인들은 귀부인과 관리들을 선동하여 전파를 방해하며 박해하였고, 결국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추방되었다.

 

1)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유대인과 회당에 들어간 이방인들에게 크게 반응을 일으킬 대단한 내용이었다. 사도 바울의 전한 내용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의 사랑이었고, 그 자비의 결과인 예수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그런데 그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죄사함의 근원이 되셨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음을 선언한 것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지만, 바울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선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비의 실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었고, 죄사함의 실현이었다. 이 죄사함은 예수 이름을 힘입으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사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이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첫 내용이어서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 모두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다음 안식일에 다시 말씀해석을 청하였고, 안디옥에 소동이 날정도로 대단한 반향이 일어났다. 이에 유대인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2)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반대에 대해서 마지막 선언을 한다. 즉 유대인들에게 먼저 주어졌지만 거부한다면 당연히 이방인에게로 넘어간다는 것었다. 이 선언에 이방인들은 더욱 기뻐했다. 그럼에도 영생이 주어지기로 작정된 자만 믿었다(48절).

 

3) 유대인들은 경건한 귀부인(?,, God-fearing women)과 안디옥의 유력자들을 선동했다. 경건한 귀부인이 왜 바울을 반대했을까? 그것은 회당에 들어온 이방여인이었다. 48절에,, 모든 이방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믿기로 작정된 자들이다. 즉 회당에 들어온 이방인들이라할지라도 여전히 회당의 규례를 쫓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선동하였는데, 그들은 안디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탁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에서는 유대인들이 안디옥에서 상류층의 사람들과 접촉하기 쉬었고,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4) 안디옥에서 바울의 복음을 기쁨을 영접한 제자들은 왜 박해받는 바울과 바나바를 변호하지 못하였는가? 역으로 복음을 받아드린 계층은 중, 하류층이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보호하지 못했다. 바울과 바나바도 그들이 보호하지 않음(못함)에 대해서 어떤 인간적인 배신감이나 영적침체를 보이지 않고 있다.

 

5) 더욱 큰 아이러니는 선생인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추방되었는데,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52절). 성령이 충만한 것은 이해할 수도 있는데,,, 기쁨이 충만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선생이 추방되었는데 기뻐하는 것이 제자들의 마땅한 자세란 말인가?

   분명히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추방에 큰 상심을 갖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감동하시고 역사하심으로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성도의 반향은 교회를 이루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사람이 마음먹은데로 되지 않듯이, 성령의 작용도 자기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그들이 마음이 아프고 방향감각이 없을 상태에 성령께서 감동을 주심으로 기쁨이 생겼고, 그들은 선생이 없음에도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교회의 세움은 사도의 전파가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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