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바울종교의 기원]제 2 장 바울의 개종 이전 (48-67/번역본 58-92)

형람서원 2012. 8. 1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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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바울의 개종 이전

(48-67/번역본 58-92)

 

메이첸은 바울의 개종 이전 시대에 대한 이해를 제시했다. 개종 이전의 사울은 바리새파로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박해하였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면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바울의 일생] 바울의 종교 기원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생애에서 그가 변화한 시대에 대한 고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바울이 개종 전에 예루살렘에는 역사적 예수와 초기 예루살렘 교회(the historical Jesus and with the primitive Jerusalem Church)가 있었다. 바울의 사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제시하고 2 장에서는 바울의 생애에 집중한다.

 

[바울: 다소 출생]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길리기아의 수도인 다소 출생(Tarsus)이다. 1890년 크렌켈(Krenkel)은 사도행전을 신뢰하지 않고 근대적 사고에 적합하게 재구성하여 다소 출생을 부정하였다. 크렌켈은 바울이 헬라 문화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바울 서신의 초기 문헌에 헬라어에 대한 탁월한 구사로 크렌켈의 주장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현대 비평가들의 다수도 바울이 헬라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즉 바울이 다소 출생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다.

제롬(Jerome)은 바울이 갈릴리의 기샬라(Gischala in Galilee) 출생이라 보았다. 이에 메이첸은 제롬이 선천적으로 사물을 혼란시키는 버릇이 있다며 사도행전의 진술의 확실성을 강조했다. 잔(Zahn) 기샬라에 대해서 논문과 저술로 더 깊게 고찰했다. 근래에(1920년대) 바울의 부모가 갈릴리 기샬라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은 신빙성이 있다. 기샬라는 B.C 67년경에 유대가 로마에 항전하였던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것은 바울에 있는 히브리적인 사고(Aramaic and Palestinian)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소는 안디옥이나 고린도보다는 못하지만 지리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또한 학문적으로도 스토아 철학자 아테노도루스(Athenodorus)가 있는 유명한 지역이었다. 다소는 상황에 대해서는 램지(Ramsay)와 보릭(Böhlig)에 의해 전문적으로 연구되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로마 시민권을 지닌 사울의 집안은 다소에서 상류층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의 시민권 문제는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도행전은 명백하지만, 바울서신에서는 로마의 태형을 세 번이나 맞은(고후 11:25) 이유에 대해 난점이 있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특권을 포기함으로 쉽게 해소될 수 있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에서 바울이 시민권을 소유하였다고 인정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

바울은 헬라사상과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여 이방세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다. 그런데도 그의 가정에서는 엄격하게 분리된 유대인이었다. 이것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 모두 증명된다(고후 11:22, 빌 3:5). 사도행전 6장에서는 유대인이 헬라파와 히브리파로 구별되었다. 바울은 빌 3:5에서 자신을 아람어를 말하는 유대인으로 선언했다. 사울은 유대인 부모에게 유대주의를 계승받은 펠레스타인 유대인이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는 견해는 일축되어야 한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 바리새인의 아들이었다(행 23:6). 라이프풑(J. B. Lightfoot, 1828-1889)은 바리새인의 아들을 혈통적으로 보이지 않고 교육적인 관계로 보았지만, 메이첸은 혈통적인 관계로 이해하려고 했다. 둘은 바울이 유년기부터 바리새인 교육을 받음에는 일치한다.

 

[바울: 배타적 팔레스타인 유대주의] 바울은 “관용주의적 유대주의(liberal Judaism)”인 디아스포라 유대인(Dispersion)이 아닌 이방인에 대해 배타적인 팔레스타인 유대주의(a Jew of Palestine)였다.

사도행전을 따르면, 초기 바울은 가말리엘(Gamaliel)로 교육을 받았고, 개종직전까지 예루살렘 교회와 다메섹까지 박해하였다.

 

최근(1920년대)에 몸젠(Mommsen), 뷰셋(Bouset), 하이트뮬러(Heitmüller), 로이지(Loisy)가 바울이 개종 전에는 예루살렘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해한 지역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다메섹이며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이는 원시 기독교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었다. 바울은 예수를 백성을 속죄하신 초자연적인 신적 그리스도로 숭배(종교적 신앙)했기 때문이다(Pauline Christology). 자연주의 학자들은 어떻게 바울이 한 사람에게 그런 개념이 발생했는지가 의문이었다. 메이첸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거주했다면, 하찮은 나사렛의 인간 예수에 대한 정보를 그가 알아 신적 그리스도인 두 정보가 어울리기 어렵기 때문에 예루살렘 거주설을 거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메이첸은 바울이 갈릴리 선생의 특성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설정은 불합리하다고 하였다.

 

[바울: 예루살렘 거주] 메이첸은 비록 바울이 개종 이전에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다할지라도, 개종 이후에 베드로와 만남, 팔레스타인 제자들과 교제할 때에 전혀 갈등의 모습이 없음을 제시했다. 바울의 기독론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했던 제자들의 견해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자연주의가 시도하는 바울과 예수를 분리하려는 것은 실패한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거주한 것은 사도행전에서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의 자리에 있는 것으로 기록했고, 사도행전에서는 가말리엘과 관계에 대한 자기증거가 있고, 바울의 생질(행 23:16-22)이 예루살렘에서 은밀한 정보를 알 정도로 거주민이었다. 바울은 개종 이전에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다.

 

바울이 개종한 장소는 갈라디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이 갈 1:17에서 다메섹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화이트뮬러나 자연주의자들은 예수 사역 현장에 훨씬 더 먼 곳을 지목했을 것이다. 바울의 개종 장소는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서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발생한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거주하지 않았다고 반문하는 성경구절은 유일하게 갈라디아서 1:22의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이다. 이에 메이첸은 막 3:7-8을 근거로 “유대”를 “예루살렘”과 분리된 외곽지역으로 제시했다. 비록 포함한다할지라도 바울의 소식은 알지만 얼굴을 모두가 알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갈라디아서 1:22절은 23절과 연결되어야 한다. “유대”, “얼굴을 알지 못함” 그리고 “우리”이다. 우리는 유대 지방의 모든 제자들이다. 이것은 바울의 박해활동이 유대 모든 지역까지 퍼진 주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바울의 예루살렘 거주론과 함께 바리새적 생활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결국 뷰셋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거주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가말리엘의 제자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따른다면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받음이 충분하다(행 22:3). 또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예루살렘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철저한 랍비 교육을 받았고, 헬라어에도 능통했다.

 

예루살렘과 다소의 거리가 약 700Km가 되었다(참고 안디옥에서 다소까지 100Km). 당시에는 여행이 안전하고 쉬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은 다소에서 거주하는 방식과 같이 오랫동안 이루어졌을 것이다.

 

[바울: 십자가 이전의 예수를 보았는가?] 지금까지 전개에서 바울은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를 선지자로 평가했고, 바울이 그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고린도후서 5:16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육체로 알았으나”에서 “지식”의 수준에 대해서는 해석에 차이가 있다. 메이첸은 바울이 당대의 사람들이 알았던 예수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은 영적인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이미 육체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메이첸은 바울의 지식이 미성숙에서(unmature) 성숙으로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했다. 기독교인이 됨과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 비교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바울이 개종한 초기에는 낮은 수준인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대적 메시아 이해에서 그리스도 신성의 높은 이해로 전환했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높으신 부활하신 주 예수를 만났다.

 

“그리스도”에서 관사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메시아적 개념이고 예수의 구체적인 인격이다. 또한 고후 5:16에서 “우리”는 모든 신자가 아닌 예수를 알고 있는 일부의 제자들이다. 바울 서신에서 “우리”의 해석 용례는 거의 동일하다. 팔레스타인에서 바울은 생활했고, 예수를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면했는지는 명확한 암시가 없다.

 

[바울: 개종 이전에 예수를 만났는가?] 바이스(Weiss)는 바울의 개종 그 자체만을 보려했다. 바울이 환상에서 나타난 그를 어떻게 예수인줄을 알았는가? 바이스는 다메섹에서 만난 그를 정확히 나사렛 예수로 인정했다고 평가하며, 이전에 예수를 보았다고 단정했다. 또한 자연주의에서는 그 현상을 환각(幻覺, hallucination)으로 보았다. 메이첸은 바이스의 견해가 사도행전의 본문의 증거를 벗어난 것으로 평가했다. 성경에서는 바울이 알아보지 못했고, 주 예수의 대답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메이첸은 자연주의가 주장한 바울이 예수를 보았다는 것을 거부했다. 또 누가복음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옆에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다메섹에서는 바울이 이전에 예수의 얼굴을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

 

[바울: 개종 이전에 예수를 앎] 바울서신에서 바울과 예수의 어떤 접촉에 대한 제시가 없다. 바울은 교회를 박해함에 대해서 깊은 반성에 대해서 기록했다. 그러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침에 대한 기술은 없다. 즉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이전에는 예수에게 어떤 박해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울이 예수를 본 적이 없다할지라도 예수에 관한 소식은 들었을 것이다. 예수의 전도는 유대와 갈릴리에서 널리 퍼졌었고, 명절에는 예루살렘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메이첸은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 이전에는 무관심하다, 죽음 후 몇 년이 지나 적극적인 박해자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바울: 급진적 개종] 또한 바울이 개종 이전에 예수를 알았다할지라도, 그 지식으로 기독교로 접근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서신서의 견해와 명백하게 반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개종에서 심리적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여러 시도들이 있다.

초자연주의 견해(supernaturalistic view)에서는 다메섹의 체험은 부활의 그리스도를 봄(vision)이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Paul actually "saw" the risen Lord). 근대 자연주의 견해(naturalistic view)에서는 자연 속에 하나님의 창조적인 개입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바울의 경험을 태양열이나 강한 천둥과 같은 현상으로 제시했다.

메이첸은 자연주의자들이 제시한 환각에 대해서 제시한다. 바울이 환각을 경험했다면 병리적인 문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연결 본문으로 고후 12:1-8에서 환상과 계시에 대한 언급, 갈 4:14에서 간질병으로 평가해, 다메섹의 현상을 간질의 부수적인 증세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에서 “환상”은 사탄의 난동(the buffetings of the angel of Satan)과 달랐다. 환상과 난동이 구별되었다. 바울은 환상에서는 기쁨은 난동에서는 중지를 기도했다. 또한 크렌겔이 갈 4:14절에서 “토해낸다”에서 간질환자가 침을 뱉는 수단과 연결시킨 것은 검토할 필요가 없이 거부되어야 한다. 환상과 난동이 연결되지 않으며, 바울이 경험한 다메섹의 경험은 환각(幻覺, hallucination)이 아니라 환상(幻像, vision)이다. 바울이 겪는 다메섹의 환상(vision)과 고린도후서의 환상(vision)은 구별된다.

바울에게 발생한 특이한 현상이(?)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정신적인 현상이라면 다메섹의 경험은 이미 존재했던 자연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베이슬락(Beyschlag, 1856-1935)은 자연주의 해석으로 바울이 경험한 환상을 일상적인 현상으로 해석했다. 그들은 사도행전 27:14을 근거로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가는 회심 이전 바울의 심리의 변화과정을 제시했다. 그러나 메이첸은 그러한 견해에 대해서 바울이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거부가 확실하여 맹렬한 박해를 했지만, 그에게 진정한 평안은 없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비록 바울은 평안함이 없었지만, 마음의 번민이 없이 더욱 강력하게 기독교를 박해했다(딤전 1:13). 바울은 후기에 자신이 교회를 박해함에 깊이 뉘우쳤지만, 박해 당시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행동으로 생각했었다. 즉 바울이 회심 전에 어떤 심리적 변화 과정이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 동의될 수 없는 진술이다. 사도행전 26:14(네게 고생이니라)에서 회심에서 심리적 변화를 주장하려하지만, 오히려 반대되는 구절이다. 자연주의에서는 회심에서 심리적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영혼의 깊이를 심리적으로 밝힐 수는 없을 것이다.

 

로마서 7장이 박해자인 바울이 겪는 갈등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홀스텐(Karl Christian Johann Holsten, 1825-1897)이 주장하며, 바울의 심리에 대해서 정교하게 해설했다. 홀스텐은 바울이 비록 기독교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해 박해했지만, 그의 심중에는 필연적으로 믿음에 대한 회의가 있었을 것으로 제안했다. 이는 이사야 53장의 대리적 수난의 구절 등을 바울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회의와 번민이 다메섹 체험에서 끝났단 것이다.

 

또한 로마서 7장이 회심 전의 상태이며, 바울이 회심 전에 율법에 겪은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율법이 주는 죄의식 때문에 회심 이전에 바울이 갈등했다는 것이다. 율법은 몽학선생(schoolmaster)이었으며, 환상(vision)을 볼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두 설명은 모두 제자도의 특성에 의해서 바울의 마음이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박해자의 놀라운 열심도 심리 발전의 역설적인 것이다. 즉 기독교를 박해할수록 바울은 기독교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사야 53장의 대리적 수난의 사상, 바리새적인 견해에서 부활이 종말에 이루어짐의 사상들이 기독교 회심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율법에 의한 죄의식에서 바울이 구주를 받아드렸다는 것인데, 바울이 회심 전에 죄의 갈등에 대한 증거는 없다. 또한 로마서 7:7-25이 중생후 모습인지, 중생전의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진행중이다. 전자일지라도 바울의 직접 체험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 혹 중생이전의 상태일지라도 중생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주 이전에 인간이 전적무능을 자각하거나, 죄의식으로 구주를 영접하려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회심 이전에 바울은 율법의 열정으로 더욱 강력히 박해를 추진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을 쓴 바울이 남자, 여자 관계없이 감옥에 마구잡이로 투옥시키려 했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도덕의 완전성이 아니라, 인간 본질의 변화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서 바울의 모습에서 관용과 낭만은 바울의 모습과 일치되지 않는다.

 

바울의 회심은 다메섹 도상의 체험으로 바울의 사상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바울이 한 순간의 체험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면 인격이 파괴될 것이다. 메이첸은 바울이 회심 전에 예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초자연적인 모습에 이르지 못하여 믿음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의 체험에서 받은 것은 십자가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과거 예수에 대한 ‘사실(fact)’에서 박해를 진행했지만, 새롭게 ‘해석(interpretation)’된 예수에서 믿음의 대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사실(fact)은 진리(truth)가 아니다. 진리는 오직 주 예수를 바르게 아는 지식이다. 바울은 다메섹 체험에서 혁명적 변화를 이루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겪은 경험이 습관적인 환각(hallucination)이었다면 대변혁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바울이 겪은 다메섹의 체험은 인격과 만남이었다. 즉 바울의 변화는 마술적이나 기계적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변화시키려하실 때에 어떤 도구가 아닌 인격으로 이루셨다.

 

바울의 개종은 도덕적이나 심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종교적인 변화이다. 바울의 개종은 다른 그리스도인과 다른 유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제자들의 가르침이나 삶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사도적 권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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