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적 권위에 대해서
고경태 목사
010-8525-0288
현대 기독교 신학에서 추진하는 "역사적 예수"연구는 나사렛 예수와 사도의 연결을 끊고, 기독교의 원점을 "역사적 예수"에 두려는 것이다. 마치 예수께 더 집중하는 것처럼하는 것이지만, 예수를 믿지 않겠다는 교묘한 도식이다. 예수를 바르게 믿는 것은 사도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교회가 사도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따름의 증표는 주일 성수이다. 성경에 없는 주일을 지키는 것은 사도들이 제정한 주의 날을 안식일을 떠나 신앙의 양심을 갖고서 지키는 것이다. 주일을 거부하는 기독교(안식교)를 이단으로 정죄한다. 그런데 "역사적 예수"와 "사도의 절대 권위"를 분리하면서 주일을 지키는 것은 또한 논리적인 일치가 되지 않는다.
사도와 오순절 이후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차이점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중생시킨 독특한 구원의 방식을 갖고 있다. 첫째,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알려주셨다고 했다.(16-17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즉 베드로가 고백한 지식은 아버지께서 사도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지식은 성령에 의한 지식이다. 후일에 사도들도 성령에 의해서 명확하게 알게 되었지만, 그 씨앗은 아버지께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도식이 사도와 현재 그리스도인에서 차이가 있다.
둘째, 변화산에서 사도들은 아버지께 직접 주님을 섬기라는 위임을 받았다(마태복음 17장). (17:4-8.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사도들은 아버지께 직접 받은 위임으로 예수를 섬기는 것이고, 현재 우리는 성령의 조명하심과 감동에 의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다. 현재에 누구도 사도들처럼 아버지께 직접 위임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받은 사울에게도 없었다. 사울은 직접 주께 부름을 받았다. 이것은 베드로와 사울의 부름과 구원의 도식에서 구분이 있다. 현재에도 아버지께 부름의 불가능함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부름의 방식을 성령의 사역으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작정은 때에 따라서 변칙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작정이다.
셋째,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실수는 사도의 권위를 증가시킨다. 복음서에 베드로의 실수는 신앙고백에서, 최후의 만찬에서, 공회의에서 종종 등장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외식하는 베드로를 책망했다고 하였다(갈 2:11-14).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진술함으로 주의 영광이 나타남에 기뻐했다. 주의 경륜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에 대해서, 바울의 책망을 기꺼이 수용하였다.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는 용기도 놀랍지만, 그 책망을 순순히 수용하는 베드로의 순종은 더욱 놀라운 것이다.
사도는 임시직분(extraordinary minister, minister extraordinarius)이다. 즉 사도는 오직 12명의 사도와 바울에게 한정된 직분이다. 교회의 설립자로서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그래서 사도들에게는 기적과 표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혹이 현재 기적을 펼치면서 사도성을 주장하는 것은, 사도들이 갖는 복음의 순수성과 능력과 존재까지 이루어야 한다. 기적은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기적으로 사도성을 주장할 수 없다.
사도는 오직 그리스도께 받은 그들에게 한정되며, 그들의 권위는 교회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 2012년 2월 18일(수)
'고 목사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2 장 삼위일체 하나님. (3)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 (0) | 2012.03.25 |
---|---|
「제 1 장 성경. (10) 성경의 최종 권위」 (0) | 2012.03.04 |
「제 1 장 성경. (6) 성경의 명료성과 충족성」 (0) | 2012.02.05 |
「제 1 장 성경. (5) 성령의 내적 교사」 (0) | 2012.01.28 |
Clyde Reid offered the perspective of religious professionals: (0) | 2011.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