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12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
고경태 목사(010-8525-0288)
케플러는 17세기의 독일 천문학자이며 루터교의 목사를 위한 신학 수업을 하던 중에 수학교사로 전향하였습니다. 1606년에 “뱀주인자리의 발 부분에 있는 신성 De Stella Nova in Pede Serpentarii”을 발표했습니다(케플러 신성). 이 케플러 신성에 대한 연관된 자료가 대한민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인 1604년 10월 8일에 보이다가 사라져 버린 “손님의 별”로 기록하였습니다. 케플러의 관측치와 우리 왕조실록의 기록을 합치면 ‘1604년에 터진 “손님 별”의 밝기의 변화가 “손님 별”이 터진 날부터 몇 주 동안 그 밝기가 유지되다가, “손님 별”의 밝기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양’을 알 수 있고, 그 모양을 곡선으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이 곡선을 알게 됨으로써 400년 전 땅꾼별자리에서 폭발한 별이 오래된 백색 왜성이란 작은 별이 주위의 동반자 별로부터 질량을 빨아 당겨서 너무 비대해짐으로서 폭발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 회장). 이와 비슷한 초신성이 1987년 2월에 발견되었습니다. 약 400년 간격으로 초신성이 반복된다는 것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탄생 연대를 측정하였습니다. 1000년이 넘는 역사에서는 1-2년의 차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의 별을 케플러의 별로 많이 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고, 기원전 4년으로 합의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통상 서기가 예수님의 탄생연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해도 무방합니다. 그것은 10년 차이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꼭 기원전 4년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연대계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무렵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정보(이야기)가 “베들레헴”에 집중됩니다. 반면 누가복음에서는 나사렛에서 어떻게 베들레헴에 왔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 즉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임을 단정적으로 말씀합니다. 그런데 나사렛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올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로 베들레헴으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예수님께서 사역과 관련이 전혀 없는 땅입니다. 그러나 메시야께서 태어나신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베들레헴은 예수님의 탄생 교회가 있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묘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묘지는 예루살렘에도 베들레헴에도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가장 작은 도시이지만, 메시야께서 태어나신 이유로 가장 유명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나사렛은 가장 시골 동네였지만, 메시야께서 사생애를 지낸 고을이기에 유명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메시야의 사역, 약한 자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메시야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당대의 번성했던 가버나움, 고라신, 벳세다는 지금은 고대 박물관에 불과하며,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과 나사렛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합니다. 예수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나사렛에 이주하였기 때문에, 나사렛에서는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기독교의 도시가 이스라엘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 2:6에서도 베들레헴이 유다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작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목자가 태어나심 그 한 역사로 베들레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큽니까? 예수님이 큽니까?
아직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이 가장 위대한 이스라엘의 인물입니다. 베들레헴의 도시의 역사에서 이미 예수님의 탁월성과 능력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증명된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것은 파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을 죽이고 부활의 증인의 선포를 거부한 제사장들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나 요한복음에서는 전혀 성전 파괴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명한 심판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전할 것이 악인의 심판이 아니라, 죄사함을 받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이스라엘의 목자는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이십니다.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예수의 복음에 집중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윗의 번성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회복도 아니고, 오직 예수의 복음에 집중하도록 한 것입니다.
시골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발자취에서 약한 자는 위로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신 복음의 내용을 전해야 바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고 목사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1 장 성경. (5) 성령의 내적 교사」 (0) | 2012.01.28 |
---|---|
Clyde Reid offered the perspective of religious professionals: (0) | 2011.08.15 |
사도행전 3:11-26 제목: 베드로의 설교(2) (0) | 2011.04.10 |
성경. 사도행전 2:43-47 왕성한 주님의 교회 (0) | 2011.03.20 |
창세기 41 장 요셉: 애굽의 총리가 됨 (0) | 2011.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