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4 일
출애굽기 9 장
[성경공부] 정규남 출애굽기 주석 참조
1-7절. 다섯 번째 재앙 - 악질
8-12절. 여섯 번재 재앙 - 독종
13-21절. 일곱 번재 재앙 - 우박 재앙 예고
22-26절. 일곱 번재 재앙 - 우박 재앙
27-35절. 바로의 죄의 고백과 번복(飜覆)
인간의 죄된 본성(2)
복된 주일, 사랑하는 주의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힘든 바로라는 사람에게 보내셨는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를 보내실 때에 쉬운 장소에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가장 쉽게 사역한 사람은 요나인데, 요나 선지자는 그 일을 가장하기 싫어하는 일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백성을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모습이 미완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직도 상대방의 티가 보이는 것은 우리의 눈에 들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우리의 옆에 두시는 것은 성도를 담대한 백성으로 그리고 완전한 백성으로 만드는 훈련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가 말을 번복할 때에 전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하겠다고 하면 여호와께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다시 말을 거역합니다. 모세의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변덕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모세도 바로의 변덕에 대해서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의 명령대로 가서 말씀을 전하고, 돌아와서 기도하고 다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악인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실패하도록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모두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선택하신 의인에게는 모진 훈련과 요구를 하십니다. 그 혹독한 환경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하신 경륜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더욱 믿음의 담력과 인내의 미덕을 겸비하게 됩니다. 봄의 전령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은 눈과 마지막 겨울의 시샘을 이기고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입니다. 5월의 꽃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봄의 전령인 복수초, 얼음 개울 위로 피어난 산수유, 매화의 아름다움과 소박함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러한 꽃들은 모진 시련을 극복하고 피어나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더 값진 아름다움입니다.
첫째, 죄된 본성은 하나님의 표적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로는 죄인의 표상입니다. 바로가 처음에는 술객들이 이적을 함께 행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술객들도 하지 못하고 항복하였음에도 인정하지 않는 완고한 고집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완고한 죄된 본성은 자기의 변명, 자기 방어를 통해서 끊임없이 핑계를 내어놓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는 표적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보는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도마는 직접 눈으로 보고 믿었습니다. 반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무덤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바로 무덤지기를 매수하여 헛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부활의 기적을 보면서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기적을 보여주어서 예수를 믿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적 신앙이 아닌 인격적인 종교입니다. 기적을 보면서 믿음이 생겼을 수는 있겠지만 자라난 예는 성경과 교회 역사에서 없습니다. 죄된 본성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로 새롭게 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둘째, 죄된 본성은 친구 불신자들이 회심하여도 자신은 회심하지 않습니다.
바로의 술객들은 일어난 제반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생각하고 인정합니다(8:19, 9:11-12, 9:20). 신하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서 순종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자(21절)들이 있습니다. 바로는 바로 혼자가 아니고, 모든 애굽의 불순종한 자들을 대표합니다. 불순종한 자의 대표는 가장 꺾기 어려운 상대이며 마지막에 꺾어야 할 대상입니다. 복음을 전도함에 있어서 대상은 항상 약한 자와 소외된 자에게 접근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공산당들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이 점점 확산된다할지라도 믿지 않는 자는 믿지 않게 됩니다.
신안의 증도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복음화율이 90%를 넘습니다. 면에 교회가 많이 있는데 시골 교회가 보통 1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도 그 속에서 믿지 않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변화와 기적을 보여주어도 믿지 않는 자는 결코 믿지 않습니다. 이러한 절대 고집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야 되지만, 만났을 때에는 온전히 권위를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작정을 인정하고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셋째, 죄된 본성은 아무리 손해가 와도 마음을 고치지 않습니다(7, 34절)
죄된 본성은 자기에게 큰 손해가 온다할지라도 마음을 고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경제적 유익을 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기복 종교, 축복 종교가 아닙니다. 삶의 문제가 해결되면 기독교가 될 줄 알지만,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십자가의 종교이며 성령의 종교입니다. 교회에서 십자가를 구속이 이루어져야 하고, 성령의 충만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고약한 사람은 자기의 손해를 무릎 쓰고 일을 추진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고집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을 추진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은 피곤하고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당사자는 자기 고집을 추진하니까 손해가 없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괜히 옆에 있기 때문에 오해와 손해를 갖게 됩니다.
우리는 경제적 손해가 왔을 때에 금방 삶을 반추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이나 경제적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 자기 상태에 대한 감찰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상태를 재정립하여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자기 신앙의 모습을 다시 재고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대도 계속 그 길을 고집하는 것은 불신자나 동일한 행동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십자가의 보혈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옛 성품을 예수의 피로 씻고 성령으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옛 성품이 다시 살아납니다. 악의 영은 단결된 힘으로 성도를 공략합니다. 모세처럼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으로 믿음의 정진과 하나님께 순종이 계속되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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