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 장 2009년 8월 30일(주일 오전)
요셉: 시험을 주는 자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였고, 그 대처방법까지 다 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2인자인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요셉이 통치하는 7년은 계속되는 풍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받은 계시대로 8년부터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랫동안의 풍년은 백성의 마음을 느슨하게 하여 닥쳐온 흉년에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계시에 의해서 준비한 요셉과 바로의 나라만 형통했습니다. 요셉의 계획에 강성한 애굽은 전쟁을 하지 않고 많은 토지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흉년은 애굽 뿐만 아니라 야곱이 살고 있는 지역까지 동일하게 이루어졌습니다(41:57).
요셉이 성공을 하였을 때에 야곱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1-2절).
사랑하는 요셉의 죽음으로 살았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기근이라는 큰 환란을 주셨습니다(1절).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환란은 요셉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야곱 아래에 있었으면, 사랑받은 아들로 있었겠지만 애굽의 총리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받은 환란으로 총리가 되었으며, 야곱이 받은 환란으로 죽은 아들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환란에서 미래에 펼쳐진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야곱은 오직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식량을 구해야 했습니다. 야곱은 10명의 아들을 애굽으로 보내었는데, 성경에서는 “요셉의 형 10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요셉과 10명의 형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자기 옆에 두고 10명만을 보냅니다.
둘째, 요셉에게 절을 하는 10명의 형들(6절) 그리고 완전히 굴복당함
애굽의 총리에게 형들은 절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형들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감히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총리에게 절을 하고, 극존칭 존대를 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하대(下待)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더욱 큰 시험이 놓여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형제의 사랑과 연합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형들이 여전히 요셉을 미워하고 있다면 요셉 앞에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길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의 복은 오히려 가족의 관계에 더욱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받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아버지나 형들을 오히려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요셉과 형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서로의 사랑의 확인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정탐(스파이)이라고 심문을 합니다(9절). 그러나 형들은 순수하게 곡식을 사러온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11-12절).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가족에 대한 소개를 합니다. 요셉은 그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지적합니다(14절). 그리고 사실의 증명을 위해서 담보(볼모)를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16절). 그리고 요셉은 형들을 감옥에 투옥시킵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형들은 요셉에 의해서 감옥에 들어가도 그것에 대한 불평을 할 수 없었고, 오직 가족을 구할 방법에 대해서 토의하였습니다(21-22절).
요셉은 형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올 수 있도록 볼모로 시므온을 결박하고, 나머지는 식량과 함께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23-25절). 그리고 곡식에 돈을 넣어서 보냈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아버지, 어머니 전체를 사랑했습니다(23절). 그러나 자기의 정체를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사랑은 조건과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닌 무조건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사랑은 무조건적 헌신적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요셉과 형들도 무조건적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총리가 된 요셉에 대해서 사랑하는 것은 조건적이고 굴복적인 사랑이 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경륜을 잘 알아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자기를 판 형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거부했던 형들은 요셉을 팔았고, 지금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런 형들을 이젠 훈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는 허물은 자기 존재의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허물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완전히 덮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간절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경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사는가?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말미암아 유익되다면 나의 존재의 목적은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내가 호흡이 있는 동안 기회를 주신다면 힘써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 결 론 ]
형들을 만난 요셉은 큰 기쁨을 얻었지만 쉽게 다가 설 수 없었습니다. 요셉에게도 상처가 있었지만, 형들에게도 큰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를 회복시킬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사랑했고, 형들을 시험하여 관계를 회복하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경륜을 알았음으로 자기를 죽이려는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군인들과 군중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충만하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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