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7일(목) 광신대 목회자반 강의
1. 나는 개혁주의인가? 복음주의인가?
많은 개혁파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개혁 신학인지? 복음주의인지 혼란을 갖는다. 그것은 ‘복음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유익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어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분명한 구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어떠한 말인가? 우리는 ‘개혁주의’는 곧 ‘칼빈주의’로 생각한다.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칼빈주의’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은 루터파 진영에서 자기들과 구별하여 ‘칼빈주의’라고 규정하였다. 당시에는 칼빈이 훨씬 소수였고 미비했기 때문에 칼빈은 자신의 이름이 특정하게 불리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1) ‘칼빈주의’라는 용어를 학문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문서는 루터파 신학자인 요하힘 베스트팔이 1552년에 스위스 종교개혁자들의 성찬론을 비판하는 책자에서 제시하였다.2) 그러나 칼빈주의가 유럽에 계속 확대되면서 프로테스탄트 진영에 한 축을 감당하게 되었다. ‘칼빈주의’라고 불리는 진영에서 행하는 신학이 바로 ‘개혁신학’이 된다.
2. 기독교의 분파에 대한 분류
먼저 기독교는 크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류한다. 동방교회는 희랍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으로 구분한다. 동방교회 지역은 이슬람 지역이어서 기독교가 세계의 정신세계에 크게 작용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공산화되면서 침체되었다. 그러나 서방교회는 유럽의 정신을 장악하며 산업과 문학 그리고 철학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어 세계정신을 장악하였다. 서방교회는 크게 로마교회(구교회)와 개신교회로 나뉜다. 다시 개신교회는 루터파와 칼빈파로 나눈다. 이러한 나뉜 진영을 프로테스탄트로 규정하며 이들은 다양한 분파들이 발생하여 서로 연결되며 새로운 분파들을 창출하였다.
개혁파는 신학의 독특성 때문에 순수한 교리를 주창하며 끊임없는 투쟁이 계속되었다. 네델란드에서는 알미니우스를 중심으로 개혁 신학에 대한 항론에 대해서 1618년 돌트(Dolt)회의를 열어 정죄하고(1619년) 5대 항론에 대한 5대 반박을 답(TULIP)을 제시하였다. 이것인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특별히 예정 교리가 부각되어 칼빈 사상이 예정 교리에 중점된 것으로 오해되기도 했다.
영국은 계속되는 개혁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실행하면서 자체 국가 교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순수 개혁파들을 정죄하고 핍박하였다. 그러한 개혁의 산물인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조(Westminster Confession, 1643-1649)가 수립되었다. 영국 국교회는 이 신앙고백서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채택하였다(1647년).
독일는 루터파의 아성이지만, 스위스와 인접하였던 하이델베르그에서 개혁파 신학이 이루어졌다. 16세기에 독일의 팔쯔(Pfalz)에서 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는 성경 본문에 기반한 신앙고백 작성을 위해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와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가 주된 역할을 맡았다. 여기서 작성된 요리문답은 팔쯔의 수도인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총회에서 채택되었다(1563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주는 위로가 탁월하여 많은 개혁파 신도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서들이 있지만 소수로 개혁파 신학을 세우기에는 부족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전쟁(1562년 - 1598년)으로 말미암아 개혁파 세력이 유혈 전쟁으로 소진되었다. 1559년의「프랑스 신앙고백」과 1561년의「벨직 신앙고백」를 제정하여 개혁 신학의 한 틀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개혁 신학 진영 외의 루터파, 알미니안과 그 기반위에 선 감리교, 오순절, 성결교, 구세군, 영국 국교회, 신정통주의 신학 등이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다. 그러므로 개혁신학과 복음주의는 명백한 구별을 갖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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