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격(person)에 대한 이해로서 삼위일체의 용어를 규정한다.
2. In this one essence are three persons, yet so that neither is there a triple God, nor is the simple essence of God divided. Meaning of the word Person in this discussion. Three hypostases in God, or the essence of God.
2. The three "Persons" in God.
2. But there is another special mark by which he designates himself, for the purpose of giving a more intimate knowledge of his nature. While he proclaims his unity, he distinctly sets it before us as existing in three persons. These we must hold, unless the bare and empty name of Deity merely is to flutter in our brain without any genuine knowledge. Moreover, lest any one should dream of a threefold God, or think that the simple essence is divided by the three Persons, we must here seek a brief and easy definition which may effectually guard us from error. But as some strongly inveigh against the term Person as being merely of human inventions let us first consider how far they have any ground for doing so.
When the Apostle calls the Son of God “the express image of his person,” (Heb. 1:3), he undoubtedly does assign to the Father some subsistence in which he differs from the Son. For to hold with some interpreters that the term is equivalent to essence (as if Christ represented the substance of the Father like the impression of a seal upon wax), were not only harsh but absurd. For the essence of God being simple and undivided, and contained in himself entire, in full perfection, without partition or diminution, it is improper, nay, ridiculous, to call it his express image (χαρακτερ). But because the Father, though distinguished by his own peculiar properties, has expressed himself wholly in the Son, he is said with perfect reason to have rendered his person (hypostasis) manifest in him. And this aptly accords with what is immediately added—viz. that he is “the brightness of his glory.” The fair inference from the Apostle’s words is, that there is a proper subsistence (hypostasis) of the Father, which shines refulgent in the Son. From this, again it is easy to infer that there is a subsistence (hypostasis) of the Son which distinguishes him from the Father. The same holds in the case of the Holy Spirit; for we will immediately prove both that he is God, and that he has a separate subsistence from the Father. This, moreover, is not a distinction of essence, which it were impious to multiply. If credit, then, is given to the Apostle’s testimony, it follows that there are three persons (hypostases) in God. The Latins having used the word Persona to express the same thing as the Greek ὑπόστατις, it betrays 111excessive fastidiousness and even perverseness to quarrel with the term. The most literal translation would be subsistence. Many have used substance in the same sense. Nor, indeed, was the use of the term Person confined to the Latin Church. For the Greek Church in like manner, perhaps, for the purpose of testifying their consent, have taught that there are three πρόσωπα (aspects) in God. All these, however, whether Greeks or Latins, though differing as to the word, are perfectly agreed in substance.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특별한 표시(speciali nota)로서 우상으로부터 세밀하게 자신을 구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선언하시며, 자신을 삼위 안에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묵상하도록 하셨다(in tribus persons cosiderandum proponat). 만약 우리가 이 하나님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두뇌(nostro volitat)는 참된 하나님을 배제될 뿐만 아니라, 정확히 하나님의 이름이 헛된 생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어떤 이는 삼중으로 된 하나님(triplicem Deum)을 공상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한 본질이 삼위로 나뉘었다고(putet tribus personis nacerari simplicem Dei essentiam)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간단하고 명료한 정의(brevis et facilis definitio)를 찾아 모든 오류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위(Personae)라는 낱말을 인간이 발명해낸 것처럼 혹독하게 비난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것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서 제시한다.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Filium Dei)을 그 본체의 형상(히 1:3, hypostaseos Patris nominans)이라고 부름으로써, 명백하게 성부의 실재(aliquam Patri subsistentiam)에서 성자(a Filio)를 구별하였다. 어떤 해석자들처럼 마치 초 위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성부의 실재의 표시(Patris in se substantiam repraesentaret)라고 주장하여 동일한 본질(essentia accipere)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뿐만 아니라 괴상한 생각이다.1)
하나님의 본질은 단순하여 분할될 수 없으며, 분할이나 분열이 없이 통합적으로 완전하기에, 그 형상(eius character, stamp, image)2)라고 하는 것은 부절적하며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성부께서는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 의하여 구별되시며, 자신을 성자 안에서 완전히 표현하시기(se totum in Filio expressit) 때문에, 적절한 이유로 자신의 실재를(suam hypostasin) 아들 안에서 일치하도록 나타내 보이신다(in eo conspicuam). 그래서 이것이 다음에 제시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히 1:3, esse splendorem gloriae, the brightness of his glory, the splendor of his glory)”라는 말과 일치한다. 분명하게 우리는 사도의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 안에 있는 고유한 위격(hypostasis)이 성자 안에서 빛난다는 것으로 간주한다(esse Patre hypostasin quae in Filio refulgeat). 그래서 우리는 또한 아들의 위격이 아버지의 위격과 구별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성령에게도 논리적으로(ratio) 적용된다. 그래서 성령 또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며, 그가 성부와 구별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quia et Deum esse statim probabimus, et tamen alium a Patre censeri necesse est.). 즉 성령은 본질의 구별이 아니다(Hace porro distinctio non est essentiae). 본질을 복수형으로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도의 증언을 믿는다면, 하나님 안에 삼위가 있다(tres in Deo esse hypostases, three persons (hypostases) in God, in God three hypostases). 라틴교부들은 인격(Personae, person)동일한 개념을 사용했다. 이 명백한 뜻을 갖고서 싸움을 하는 것은 지나친 까다로움이며 강퍅한 것이다. 만약 이 말에 대한 다르게 번역한다면, 실재(subsistantia, subsistance)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본질(substantiam, substance)을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였다.3) 실재(subsistantia, subsistence)와 본질(substantiam, substance)을 잘 구별해야 한다. 칼빈은 이 두 단어를 서로 혼동하여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격"(Personae, subsistantia)라는 말은 라틴 교부들만이 아니라 희랍의 교부들도 사용하였는데, 아마 이 주장에 동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 세 인격prosopa(tria πρόσωπα4) in Deo esse)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동방교회(희랍)든지 서방교회(라틴)든지 비록 단어를 다르게 사용했다할지라도 본질에 대한 사항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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