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07년 09월 05일] 사도행전 2:22-36. 베드로의 설교
제목: 베드로의 설교
내용: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의 증인하시며, 죽음으로 내어주시고, 부활(사망의 고통을 푸심)시키셨습니다.
22-24절)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의 증인이 되심
22절) Jesus of Nazareth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 즉시 선포하지 않고, 사람(a man)이라고 말하여 입증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개역(개정)성경에는 a man 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한 사람으로서 당신들에게 기적과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사역)
ὑποδεδειγμενον approved 가 바른 번역이며, 에라스무스의 show의 번역은 누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는 큰 (권능, 기사, 표적)으로 세 가지 다른 이름으로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보여주심으로 특별한 방식으로 기적이 나타나며 경탄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 기사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권능과 기사가 우리 마음에 그대로 머물지 않고 표적으로 인하여 더 심오한 것을 알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기적을 보다 높이 칭송하며,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런데 칼빈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기적이 정당성을 증명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왕국 또한 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인데(비록 거짓 기적이지만),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칼빈이 제시하는 것은 “우리가 만일에 볼 수 있는 눈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 안에서 교리와 직무 그 둘의 넉넉한 확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맑은 심장을 가지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가끔 자신을 나타내시게 될 때마다 순수한 내적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제시하여 거짓에 대한 유혹의 원인이 더러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23절)
By the determinate counsel 하나님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능욕과 고통, 수치스러운 죽음은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어서 거침돌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비를 탐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는 우연히, 혹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에 따라 정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앎으로써만 모든 어리석고 사악한 생각의 근거를 제거하게 되며, 또 그렇지 않았다면 마음에 생겨났을지도 모를 장애물을 제거하게 되기 때문이다.(중략)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셔야 했던 그 이유가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1)
하나님의 경륜(counsel)과 섭리(providence)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목적과 결과를 생각하는 첫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또한 우리의 삶과 죽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편적 섭리와 자녀들에게 비취는 섭리로 구별합니다.
누가는 예지(foreknowledge)가 먼저이지만, 작정과 섭리(determine, providence)를 나중에 위치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예지하시지만, 피조물에게는 아무런 필연성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정하심으로써 그의 섭리를 보여 주신 것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시는 일에서도 동일하게 섭리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일도 아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지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따라서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예지와 현세의 혼란의 조화는 매우 어렵습니다. 피조물들에게는 자유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손에서 택자를 보호하고 계신 것을 알게 하며, 신앙을 훈련시킵니다. -성경의 임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의 표본(we have an example set before us in Christ)”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뼈는 자연적으로 파괴될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았습니다(요 19:36). 즉 하나님의 예지와 하나님의 의지는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제한성(our bounds)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안목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we thrust not ourselves rashly and indiscreetly into the secrets of God, whither our eyesight doth not pierce.).
By the hands of the wicked 여기에서 하나님은 악의 창시자2)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악의를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악한 자는 징벌하시고, 택자에게는 인내의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불법한 자의 손으로 내어준바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하심에 의하여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자체 안에 악한 반역행위와 그 자체가 대단히 큰 죄악인 살인행위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생각함은 되지 않는다.”
Him have ye slain.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활보다 확실하게 믿어져야 하기에 기술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양심을 찌르는 ‘못 박아 죽였으나’고 말합니다. 유대인에게 예수의 죽음의 책임을 돌립니다. 이 죄의 선고는 회개를 위한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이 모인 장소(예루살렘)에서 선포된 말씀으로 돌아온 자들은(회개) 남은 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4절)
Having loosed the sorrows of death. 사망의 고통은 육체의 감각 이상의 어떤 것(some farther thing than the bodily sense or feeling)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죽음 자체보다도 훨씬 큰 재앙을 빚어내는 불안과 공포가 있습니다.
25-31절) 다윗이 예수를 증언함
25절)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명하고 확실한 예언에 의하여 증언되었으며, 다윗의 시편에 기록됨으로 증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활을 교육했지만 별 유익을 보지 못했습니다. 즉 참된 교리를 알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임하신 성령의 선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윗의 증언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반드시 부활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자녀들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예수를 교회의 머리라고(30절) 예언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십니다.
칼빈은 시 16:10이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언하는 다윗까지 썩었지만(29절, 무덤에 있는 다윗), 썩음이 면제되는 사람은 오직 한 분(27절, 31절)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무덤(죽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되고, 죽음의 왕국은 파멸됩니다. 부활 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즐거움은 생명의 거울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본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 양심의 영적 즐거움, 영원한 구원에 대한 소망 등은 그리스도를 주목함으로 발생되는 교리입니다. 다윗처럼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즐거워합시다.
I saw We must hold this principle. 우리는 하나님을 모실 때 우리의 눈 앞에 그를 모셔야 합니다(Coram Deo).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앞에, 우편에 계십니다. 우리의 눈 앞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동치 않게 됨”이 가능하게 됩니다. 흔들림 없는 신앙, 삶은 항상 내 눈으로 주를 뵈옵는 것입니다.
26절)
하나님을 확실하게 신뢰함으로 심장(heart)의 즐거움, 입술의 즐거움, 육체가 즐거워하게 됩니다. 육체의 희망이란 전체가 고요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과 불안 속에서 갖는 영적 안정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그들은 기뻐하는 것과 같이 영적 평안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갈 만큼 큰 고통은 없다.”
27절)
주의 거룩한 자는 아버지의 인격을 모방하고 닮는 것이 당연하기에, 온유함은 잘 드러나게 됩니다. 이 거룩한 자는 비록 음부(무덤)에 내려감(영혼의 파멸)로 정복당하지만, 구속의 확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에서 대해서 “그리스도가 음부에 내려가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이 예언자의 의도나 목적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생각으로 지나친 일이다. 여기의 영혼이라는 말은 불멸의 본질을 지니고 있는 영이기 보다는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3)
28절)
Thou hast made known 주께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회복하시는 사역을 모든 성도들이 알 수 있도록 계시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를 보이셔서 성도들이 기쁨이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기뻐하고 있나요?
30절)
Therefore, seeing he was a prophet 다윗은 선지자로서 장차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윗에게 약속(다윗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 백성들이 구원과 회복(성령을 선물로 받음)으로 말미암아 심장, 혀, 육체가 기뻐하며 영광돌리길 원하십니다. 구원으로 인하여 즐겁고 활력있는 삶입니까?
2) 죽음의 권세에게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천상의 통치를 묵상하며, 부활의 첫 열매로서 소망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3) 항상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자기 앞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Coram Deo로 하나님을 신뢰하여 요동하지 않는 삶을 영위합시다.
32-36절) 하나님이 살리신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
32절)
This Jesus 그리스도의 부활을 하나님과 다윗의 증언으로 입증한 예수께서 누구인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예언한 그리스도(메시아)가 나사렛의 예수에게서 성취됨이 부활로 입증된 것입니다. 기적의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의 부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교회 전체를 그의 생명에 동참4)하도록 하셨습니다.5) 서철원은 성령을 부어주심을 승천하신 후 보고 후에 성령을 파송함으로 한 과정이 더 첨가되어 있습니다.(서철원, [성령신학], 67-69.) “우리에게 파송된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으로 획득하신 것이다.(중략) 파송될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구속 사역에 근거하여 아버지께 청구한 것이고, 구속 때문에 성령의 파송과 강림이 이루어졌다.(중략) 청구하여 획득한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가 파송한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오셔도 예수 그리스도가 파송한다.”
33절)
He being therefore exalted by the right hand of God 오른손이란 능력으로 사용됩니다. ‘약속하신 성령’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즉 언약의 성취가 성령의 강림입니다. 이 성령은 ‘아버지께 받아서’라고 성경이 말씀하므로, 중보자 인격(the person of the Mediator)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령을 보내셨다고 말할 수 있고, 성령이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6)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자신이 보내신 것이며, 또 그는 사람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기 위해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임으로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로부터(from Father) 출생한 하나님이시며,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하여(of the Father, through the Son) 발생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로 말미암아 성령이 보내지셨다고 베드로가 말한 순서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we must note this order that he saith, that the Spirit was sent by Christ after that he was exalted)” 요 7:39, 요 16:7
칼빈은 성령이 처음부터 주어졌다고 생각하지만, 보좌에 앉으심으로 훨씬 더 충만한 성령의 은혜로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부어 주리라’). “그가 육체로는 계시지 않지만 그의 성령의 은혜로써 이를테면 더 나은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현존해 계시기 때문이다.”
34) For doubtless David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으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영광, 최고의 권위를 지니시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다윗의 영혼이 복된 안식과 하늘에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는 만물을 충만케 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다윗은 그리스도의 자리를 탐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때를 바라보며 즐거워하였습니다. 다윗이 나라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유대인들도 충분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다윗 왕국 완성된, 회복된 다윗의 왕국의 도래를 기다린 것입니다.
The Lord said unto my Lord. 다윗은 통치의 명령권은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은 것은 다윗에게 정당하지 못하고,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지상의 통치자는 다윗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의 왕국은 한시적이지만,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합니다.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득세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죽음 후에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왕국이 굳건하여 졌습니다. 다윗은 주변의 몇 왕국을 정복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만유에서 만유까지를 정복하셨습니다. 시편 전체의 내용에서 그리스도의 왕국 이외에는 아무것도 이해될 수 없습니다. 다윗은 비록 제사장은 아니었지만, 코헨(cohen, greater than Aaron)이었습니다. 시편 전체에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은 이가 하늘과 땅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베드로의 주장).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통치자(왕)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이십니다. 이 사역을 성령으로 통치하시며, 성령으로 가르치시며(생각나게하심), 성령으로 통회와 자복, 기도와 간구와 도고를 하도록 하십니다.
36. Therefore, let all the house of Israel know
이스라엘의 집은 약속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믿고 있었지만,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라고 베드로가 증인이 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누가는 주(主)라는 칭호와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연결하여, 유대인들이 구속주는 일반적으로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점과 또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최고의 권력이 그에게 주어졌다는 원칙에서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7) 칼빈이 유대인들에게 교회의 머리를 지목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이 약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임재 방식에 대한 이해에서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의 정도가 결정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기다린 주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죽도록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주가 되시고 교회의 통치자가 되시며, 성령의 수여자가 된다.” 즉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를 죽임은 하나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불충이며, 신성모독이며, 반역행위 그리고 배교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주(主)께서는 이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파송된 성령을 모욕하고 훼방하는 자는 사함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늘의 영광을 경험한 무리가 하늘의 주(主)를 조롱하는 것은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심각한 죄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 나사렛 예수를 살리셨고, 오히려 하나님의 반역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베드로도 사도들도 제자들도 반역을 하였지만 은혜로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반역자들에게 나사렛 예수의 복음, 죽음과 부활 그리고 통치를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전해준 말씀-복음-을 믿고, 성령의 권능으로 하늘과 땅의 통치자는 예수라고 증언을 합시다.
2) 이 땅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을 숭배하거나(로마교회의 성자숭배, 조상숭배) 의지하지 맙시다. 완전하신 하나님, 우리의 왕을 믿고 신뢰합시다.
3) 사람의 악함을 선으로 활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하나님의 백성들 또한 악을 선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릅시다. 악에게 패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지혜가 없을 때는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능력이 없을 때에는 능력을 주실 때 까지 기다려,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나사렛 예수의 증인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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