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칼빈 사도행전 주석 1:3-5

형람서원 2007. 8. 1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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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3-5

3. To whom also he showed himself alive, after that he had suffered, in many proofs, while that he is seen of them by the space of forty days, and he intreateth of the kingdom of God.

4. And when he had gathered them together, he commanded them that they should not depart from Jerusalem, but that they should wait for the promise of the Father; whereof, saith he, ye have heard of me:

5. Because John truly baptized with water; but you shall be baptized with the Holy Ghost, after a few days.



3절)  Unto whom,     -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1)를 보여주신 예수님

   “누가가 이 말을 첨가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확립하기 위해서인데~ 그것 없이는 복음이 전적으로 내던져지고 거기에 아무런 신앙도 남아있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부활과 승천이 복음의 권위(his whole authority)라고 제시한다. 즉 천상의 성격이 복음의 최종 권위이다.


  첫째, 사도들에게 주시는 부활의 확증 - 분명한 증거

  둘째, 사도들이 지니고 있는 어리석음이 선교의 확신을 손상시키지 않게 하려 무지의 수치를 제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He intreateth of the kingdom of God) 예수의 입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한다. 복음의 가르침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수립과 증진에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이 선포되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

  칼빈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2)을 “중생”으로 제시하고, 최종은 “통치(he briefly set down the end of the doctrine of the gospel; namely, that God may reign in us.)”이다.


Regeneration is the beginning of this kingdom, and the end thereof is blessed immortality; the middle proceedings are in a more ample going forward and increase of regeneration. (중생은 왕국의 시작이며, 종국은 영생의 축복이다. 중간 과정은 중생의 전진과 증진이다.)


 “그것의 결말과 완성이 가장 복된 영생”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칼빈의 중생 개념을 볼 수 있는 “그 둘 사이에 있는 진보는 중생의 더 완전한 전진과 증진에 있다.”라고 하여, 포괄적인 중생(칭의+성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음의 교리의 결말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와 영생’이다. 칼빈은 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기독교를 옳게 이해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즉 하나님의 개조(Reformed = doth fashion us again unto a new life), 본성적 인간의 모습을 제거하고 새생명을 묵상함, 육의 죄를 벗어버리고 영적 생명으로 새롭게 됨을 강조한다. 이 하나님 나라의 수립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피의 강조는 약하다. 아마도 이 구절이 부활에 대한 강조 구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4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Gathering them together, he commanded,) 칼빈은 부활 이전의 사도의 직무를 “정규적인 임무”가 아니라고 이해하여, 부활 후에 주신 명령이 더욱 선명한 것이라고 제시한다. 즉 이전에는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아니라, 군중들을 모여들게 하기 위한 전령자의 위치였지만, 부활 후에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다는 것이다.


  사도의 직무를 주신 후에 임무를 자제할 것을 명령하시는 예수님. - 영적 태만으로 스승을 배반한 제자들에게 회복의 기간이 됨과, 약속된 은혜를 갈망하게 함. 결정적으로 성령의 보내 주실 특정한 시기를 미리 정하셔서 그 기적이 눈에 보다 명확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함이 (사 2:3,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로 제시한다. (한글성경에는 ‘모이사’로 되어 있고, 주어가 생략되어 정확한 의미가 어렵다. “그가 사도들을 모으사”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기다리는 훈련 = 세상을 그리스도의 지배 하에 복종시킬 일을 할 사람들은 먼저 자신들이 복종하는 일에 익술할 필요가 있다.


  사도들은 오직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만을 행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깃발과 그의 지휘 밑에서 우리의 전 생애를 싸움에 바친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어느 지휘관이 자기 군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것보다 적은 권력을 자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약속한 것 =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다.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요한의 증언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라”

    예수님의 말씀 “성령 세례”을 받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직분 ab officio Christi


  하나님의 종으로서 직무를 수행함이 성령으로 주시는 세례이다. 즉 하나님의 종의 사역이 순종과 고난의 삶이지만, 성령을 수여하는 위치로 결국 하나님의 위치를 갖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칼빈은 오순절 성령 강림(불의 혀 모양)만이 성령 세례가 아니라, 지금도 택함 받은 자에게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것으로 이해하여, 그리스도의 직무를 계속해서 수행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지금의 모든 사역자들이 외부적으로 물로 세례를 베푼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성령 세례가 있다. 즉 죄사함,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힘(연합)은 그리스도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비록 사람의 손에 의한 세례이지만, 세례를 행하는 사역자나 받는 세례자는 오직 그리스도의 부분인 내적인 효력에 참된 관심을 갖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행한 세례가 헛된 것이 아님을 확증하심으로 자신의 제자들에게 재세례를 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효력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요한은 쇄햐야 하고, 그리스도는 흥해야 함이 마땅하다. - 내가 쇄하고 그리스도께서 흥함이 마땅하다.  


 몇 날이 못되어, - 조속한 시행을 예고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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