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 교수님 부활절설교
(본문; 요 1:29-34, 계 1:13-18)
어린양으로 죽고 생명의 주로 부활하사
요단강 세례터였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요단강으로 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렛에서 요단강으로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이상한 선포를 하였습니다. 도저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포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들이 많았어도 아무에게도 그런 선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에게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이 어린양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어린양은 성전에서 제사할 때 제물로 쓰는 동물입니다. 그런 짐승을 사람에게 적용하여 한 사람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또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면 성전에서 속죄제사를 할 때 쓰는 어린양이 되어야함을 말합니다.
어린양이면 언제든지 어린양이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할 때 제물로 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린양이면 어떻게 됩니까? 한 사람을 어린양이라고 지목하고서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만 해서도 잘못 알아들을까 염려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어린양이면 제물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양은 다른 사람의 범죄를 인해 제사할 때 제물이 되어 대신 죽습니다. 어린양은 성전제사의 제물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어린양이면 죄 때문에 대신 죽어야할 사람임을 말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어린양이 되어 제물로 죽을 수 있습니까? 도저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포를 세례요한이 하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냥 어린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세웠다는 말씀입니다. 어린양은 성전제사에서 속죄제사를 위해서 제물로 죽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도 속죄제물로 죽도록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세상 죄를 다 지고 어린양으로 죽게 되어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선포로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세상 죄를 다 지고 죽게 되어있음을 말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죄를 지고 죽도록 작정된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세우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세우셨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두 번이나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한 사람을 세워 세상 죄를 지는 어린양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세우셨습니다. 그것도 세상 죄를 전부 다 지는 어린양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상 죄를 다 지워 죽게 하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세상 죄를 다 속량하기로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우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므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하셨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음으로 주 예수는 세상 죄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전가 받았습니다. 이제 세상 죄를 지고 세상 죄를 속량하기 위하여 죽게 되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전가 받았으므로 일생 십자가를 앞에 두고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늘 눈에 두고 살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슬픔과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유월절이 닥쳐왔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정해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세상의 모든 죄과를 그에게 지우셨으므로 십자가에서 죽어야했습니다.
유월절이 닥쳐왔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급 기념일이고 대 속죄일입니다. 그러므로 거국적인 속죄제사가 진행됩니다. 이 대속죄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어린양으로 죽어야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가 유월절에 죽을 때 세상 죄를 다 지고 죽음으로 세상 죄를 다 속량하기로 하였습니다. 세상 죄를 속량하려면 그 죄값대로 죽어야합니다. 죄값대로 죽어야할 뿐만 아니라 그 죄과에 상응하는 형벌을 다 받아야 했습니다. 죄값에 상응하는 형벌은 죽음과 그 죽음에 이르는 형벌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의 죄와 그 죄에 상응하는 형벌고통과 죽음을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우셨습니다. 그냥 십자가에 매어 달려 죽음으로 죄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죄값에 해당하는 모든 고통을 다 당해야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지만 그 죄를 다 속량하려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통을 다 당해야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은 목을 따서 죽게 하기 전에 모진 고통을 다 당하였습니다.
그 당한 첫째 형벌고통이 바로 채찍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가죽끈으로 채찍을 만들고 그 끝에 납이나 쇳덩어리를 달았습니다. 채찍으로 치면 맞은 자리가 그냥 부어오릅니다. 살이 부어오르면서 피가 그냥 솟아나게 됩니다. 이런 가죽채찍을 온몸에 가했습니다. 등과 가슴과 배와 다리에 채찍을 수없이 가했습니다. 그 세게 내리치는 채찍의 아픔은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로마병사들의 채찍 끝에는 쇠나 납덩어리가 붙어있었습니다. 가죽 채찍이 몸을 내려치고 다시 잡아당길 때 가죽채찍 끝에 붙어있는 납조각이나 쇳조각은 살점을 툭툭 떼어냈습니다.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을 때까지 로마병사들은 어린양 예수를 채찍으로 내리쳤습니다.
살이 부어오르며 피가 터지는 고통을 누가 헤아리기나 하고 혹 같은 처지에 이른다면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채찍에 맞아 그렇게 살만 부어오르고 피만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살점이 온 몸에서 떨어져나가면서 살을 비틀어 찢을 때 그 아픔은 얼마나 참혹하고 처절했겠습니까? 그렇게 살을 찢어 비트는 아픔에서도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는 아무런 고함이나 울부짖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자기에게 지우신 형벌임을 알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참아냈습니다. 그렇게 채찍에 맞는 일이 몇번이나 한 열번 정도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채찍이 온 몸에 가해졌습니다. 채찍에 맞아 아픈 고통과 함께 살을 찢어 비트는 아픔을 다 당하면서도 고함치지 않았고 신음하지도 않았습니다.
로마의 반역자라고 조롱하고 비웃으며 채찍을 쳐도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참아냈습니다. 신음소리도 없이 그 모진 고통을 참았습니다. 힘있는 로마병사들이 힘있게 내려치는 채찍을 잘도 감당하였습니다. 한정없이 계속 내리치는 채찍을 맞아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고 살점들을 뜯어내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채찍에 맞은 것은 바로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었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그렇게 모진 고통을 당하므로 우리가 우리의 죄악에서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은 단지 우리의 죄값을 치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의 인격이 찢어진 것을 낫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도록 로마총독 빌라도에 의해서 판정되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주 예수는 골고다로 향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우고 가면서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습니다. 심하게 채찍에 맞아 몸을 가누기 힘들었는데 십자가형틀을 졌습니다. 아무 불평과 신음소리도 없이 십자가를 졌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너무 힘들어서 넘어지기를 13번이나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 오면서 저주하고 욕을 퍼부어댔습니다. 넘어지면 로마병사들은 그의 등에 채찍을 날렸습니다. 머리에 쓴 가시관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뼈가 아프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가 13번이나 넘어지는 것을 보고 로마병사들이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구레네 시몬을 억지로 끌어다가 그에게 십자가를 지웠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 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골고다 언덕은 예루살렘 성전이 서있는 같은 산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서있는 산과 성전이 서있는 산이 같은 줄기입니다. 둘은 별로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들은 유월절의 대속죄일에 어린양들을 잡았습니다. 성막이 세워질 때부터 계산하면 제사장들이 유월절 대속죄일을 위하여 어린양들을 15 백 년 동안 잡았습니다. 15 백 년 동안 유월절에 어린양들을 잡은 것은 실제로는 제사장들이 유월절에 잡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하나님의 어린양을 잡아 죽이는 연습을 한 것입니다. 15 백 년 동안 제사장들이 유월절 대속죄제사를 위해서 어린양들을 잡은 것은 참 어린양 세상 죄를 완전히 속량할 참 어린양 하나님의 어린양을 잡는 연습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유월절 대제사를 위해서는 어린양을 직접 잡았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대속죄제사를 바쳤습니다. 이렇게 유월절에 어린양을 대대적으로 잡은 것은 실제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잡는 사전 연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잡아서 제물로 드린 어린양은 속죄를 이루는 참되고 바른 제물이 못되었습니다. 히브리서의 가르침에 의하면 어린양과 황소로 드린 제사는 그림자였고 실체는 그리스도가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 드린 속죄제사가 참 제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15백 년 동안 제물로 어린양을 잡은 것은 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잡는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사장들은 유월절 제사를 위해서 어린양을 잡는 그 시간에 하나님의 어린양을 잡았습니다. 어린양을 잡아 바쳐드린 시간에 그들은 참 하나님의 어린양을 잡아 십자가에 매어달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어린양을 십자가에 매어달므로 레위제사장들은 자기들의 모든 소임을 다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 곧 골고다에서 제물로 바쳐드린 후 200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성막과 성전이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천오백 년 동안 제사장들이 잡은 어린양들은 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예표하였습니다.
제사할 때 어린양은 그냥 목을 따면 죽었습니다. 그리고 제물이 되어 제단에 올려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이 당한 목베임은 너무도 참혹하였습니다. 그냥 목을 베어 죽게해서 제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아 모든 고통을 다 당하므로 목숨이 끊어지게 하였습니다. 목숨을 끊어 제물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어린양이 당한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 고통의 깊이를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목숨이 끊어지게 하는 고통은 너무도 참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일반제사에서 어린양의 목을 따는 것과는 너무 다르게 목숨을 끊는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목 베임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목 베임을 받았으니 너무도 처절하고 가혹한 고통의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아무런 마취도 없이 양 손목에 큰 대못을 박아 십자가에 걸었습니다. 손바닥에 못을 박으면 찢어져서 몸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큰 대못을 손목에 박아서 나무에다 걸었습니다. 아파서 너무 괴로워서 몸을 비틀고 손과 팔을 비틀어도 빠져나올 수 없게 머리가 큰 대못을 박았습니다.
발에도 대못을 박았습니다. 양발을 겹쳐 얹고 다리와 발이 합치는 발목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대정맥 과 대동맥을 다치지 않게 못을 박았습니다. 피는 흘러내려도 펑펑 흘러내려 곧장 목숨이 끝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피는 조금씩 흘러내리므로 목숨은 며칠 간 혹은 10일 까지도 부지될 수 있게 했습니다.
피가 계속 흘러내리므로 목은 계속 타들어가고 눈은 감기며 심장과 폐는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양 손목과 양 발목의 상처에서 오는 고통은 말로 할 수 없도록 컸습니다. 통상 건강한 죄수들은 그 심장이 터질 것같은 고통 중에서 소리쳐 울부짖고 저주하고 욕설을 퍼부어댔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그 험한 고통을 조용히 받고 참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 죄과에 상응한 고통을 자기에게 지우신 줄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험한 고통을 조용히 받고 참았습니다. 욕하지도 않고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아파서 심장이 터질 것같고 폐가 곧 터질 것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는 모든 고통을 조용히 참았습니다. 세상 죄과에 대한 벌로 이 고통을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지우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조용히 참고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 때 로마병사들은 다리를 반쯤 편 상태로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아프고 괴로워 견딜 수 없을 때 몸을 한번이라도 똑 바로 펴서 깊은 숨을 쉴 수도 없게 하였습니다. 심장이 터지고 폐가 터지도록 아픈 아픔은 얼마나 괴로운 고통이었겠습니까? 누가 감당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험한 고통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지옥의 불을 보게하였습니다. 얼마나 참혹하여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어린양은 이 험한 고통을 가만히 아무 말 없이 혼자 다 담당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 죄과에 합당한 고통을 자기에게 지우셨음을 알므로 아무 말도 없이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당하는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과 대제사장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백성들이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모욕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의 눈에는 수건을 씌우지 않았습니다. 옛날부터서 죽임을 당하는 자들의 눈에 수건을 씌웠습니다. 죽는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게 하는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눈을 뻔히 뜨고 십자가의 험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데 모든 사람들이 그의 눈을 마주 쳐다보며 욕을 하고 저주와 조롱을 퍼부어댔습니다.
사람들이 눈을 마주쳐다보며 저주하고 욕하고 조롱할 때 그 당하는 수치와 모멸감과 인격적인 모독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조롱하고 저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혀 죽어가고 있다고 조롱하였습니다. 46년간에 걸쳐 다 지어진 성전을 헐고 삼일에 짓는다고 한 자가 아무 힘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다고 조롱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이렇게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다 믿을 것이라고 조롱하고 모욕하였습니다.
이런 백성들의 비난과 조롱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런 대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수치와 모욕과 조롱을 조용히 참았습니다. 이것도 하나님 아버지가 세상 죄과에 대한 형벌로 지우셨기 때문에 조용히 참았습니다. 이렇게 당하는 조롱과 모욕도 다 죄값을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상의 험한 고통과 조롱과 모욕을 예수 그리스도는 혼자 다 당하셨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계속 흐르고 뼈가 떨어져나가면서 오는 고통은 너무 심하였습니다. 이 육체적 고통에 조롱과 모욕과 저주의 욕소리들을 혼자 다 당하였습니다. 아무런 불평도 없이 조용히 신음소리를 참으며 그 험한 고난을 혼자 감내하였습니다.
계속 흘러내리는 피는 그의 목을 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목마르다 하였습니다. 이 때 로마병사들이 독한 초에 쓸개를 탄 것을 그의 혀와 입과 코에 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거부하였습니다. 독한 초를 십자가상의 죄수에게 대어 주는 것은 그 무서운 고통을 조금이라고 잊도록 하기 위해서 한 인도적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어린양은 이것도 거부하였습니다. 죄값대로 모든 고통을 다 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죄값을 치르면서 당하는 모든 고통을 참아냈습니다. 그 험한 십자가상의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그의 심장을 터지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어린양은 세상의 죄과에 대한 값을 다 치렀습니다. 그래서 숨을 거두며 다 이루었다고 소리쳤습니다. 십자가상의 고통과 죽음이 죄값을 다 치름이어서 세상 구속을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구속을 다 이루었다고 소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목을 따서 제물이 되는 일이 이렇게 힘들고 험하였습니다. 그냥 성전에서 제사할 때 제물로 드리는 어린양은 그냥 칼로 목을 따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추겨들어 피를 빼고 가죽을 벗기면 제단 위에 올라갈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은 십자가상에서 그렇게도 모진 고통과 고난을 당하여 숨을 거둠으로 목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험한 고통을 당하여 숨을 거두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목베임을 당한 것입니다. 목베임이 되어 숨을 거둘 때 하나님의 어린양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모든 고통을 혼자 당하면서 숨을 거두므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직임을 다 감당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을 구원하는 제물이 되심으로 세상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내 죄를 다 담당하고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험한 고통아래 죽으므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소임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삼아 그에게 세상 죄과를 다지워서 그 죄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세상을 완전히 구속하기로 하셨습니다. 나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주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시므로 세상 죄를 다 속량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와 여러분을 속량 받을 자 중에 넣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 죄를 지고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려 죽음으로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로 맞아들이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3일간 무덤에 누어있으므로 완전한 죽음을 겪은 것입니다. 주 예수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죄값은 죽음인데 그 죄값대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덤에 묻힌 3일간은 나와 여러분을 완전하게 구원하셨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주 예수로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묻히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으로 세상의 죄를 다 속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지고 죽으므로 세상을 완전히 속량하셨습니다.
세상의 죄값을 지불하고 죽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는 그를 살리기로 하셨습니다. 죄값을 대신 치러 죽음에 이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어린양을 그냥 죽음에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그대로 내버려두셨으면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닐 것입니다. 죄값을 치렀지만 죽어있는 것은 죄에 마땅한 벌이 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냈습니다. 그 험한 고통으로 죽었으니 부활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어린양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로 부활하였습니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온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 자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내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은 생명의 주로 살아나셨습니다.
생명의 주로 부활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죽느냐 사느냐 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렸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누구이든지 간에 주 예수를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죽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생명과 사망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는 단지 두 길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에 이르느냐 아니면 그를 믿지 않고 거부함으로 죽음밖에 없느냐 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살고 영생하고 그를 믿지 않으면 죽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주 예수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이 고난주간과 이어지는 부활절주간에 주 예수의 십자가상의 고난과 그 죽음을 묵상해야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당하신 십자가상의 고통과 죽음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통과 죽음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물로 주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면 우리는 고난주간에 할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고난과 죽음으로 내가 구원되어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마음에 담으면 됩니다. 이 방식으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감사해야합니다.
또 내 죄용서와 완전한 구속을 위해 부활하신 주 예수를 믿고 묵상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주간과 부활주간에 해야할 일입니다. 이 방식으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는 것 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 고난주간과 부활절주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죽음과 부활을 우리의 구원으로 깊이 묵상하고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아멘
'서철원 -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기도문-펌- (0) | 2007.04.18 |
---|---|
성령신학, 서철원 저 (0) | 2007.04.11 |
고난주간 - 죽음의 고난으로 (0) | 2007.03.30 |
개혁신학의 파수꾼이 되어 서철원(교의신학, 본지 편집인) (0) | 2007.03.26 |
서철원 교수 겨울 세미나 (0) | 2007.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