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고사성어

四字成語(사자성어)

형람서원 2006. 7. 1. 23:42
728x90
반응형
 

四字成語


가가대소(呵呵大笑) 呵 웃을 가, 笑 웃을 소

하도 우스워 껄껄 웃음. [출전] <晋書>

가계야목(家鷄野鶩) 鷄 닭 계, 鶩 집오리 목

어디에나 있는 흔한 것을 멀리하고, 새로운 것이나 진귀한 것을 존중함을 비유. [출전] <蘇軾>

가고가하(可高可下)

어진 사람은 지위(地位)의 상하를 가리지 않음. [출전] <國語>

가급인족(家給人足) 給 넉넉할 급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여 세상이 융성(隆盛)함. [출전] <漢書>

★가담항설(街談港說) 거리 가, 말씀 담, 거리 항, 말씀 설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 세상에 떠도는 뜬소문.

ꄨ도청도설(道聽塗說), 항간(巷間), 촌간(村間), 속간(俗間), 민간(民間), 방간(坊間), 여항(閭港), 세평(世評), 세속(世俗), 풍설(風說), 풍간(風間)

★가렴주구(苛斂誅求) 가혹할 가, 거둘 렴, 벨 주

가혹하게 착취하고 몹시 재촉함.

ꄵ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가롱성진(仮弄成眞) 弄 희롱할 롱

처음에 실없이 한 말이 나중에 정말이 된다는 말.

가무담석(家無儋石) 儋 멜 담

집에 저축이 조금도 없음. 석(石)은 한 섬, 담(儋)은 두 섬. [출전] <史記>

가부지친(葭莩之親) 葭 갈대 가, 莩 풀이름 부

아주 먼 친척. 가부(葭莩)는 지극히 얇은 것. [출전] <漢書>

가서만금(家書萬金)

여행 중에 가인으로부터 서신을 받으면 그 기쁨이 만금을 얻는데 해당한다.

가여낙성(可與樂成)

함께 일의 성공을 즐길 수 있음. [출전] <史記>

가인박명(佳人薄命) 佳 아름다울 가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다.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하고 명이 짧다.

ꄉ홍안박명(紅顔薄命), 미인박명(美人薄命)

ꄜ미인은 팔자가 사납다.

ꄵ가인(家人) : 한 집안 사람. 자기의 부인. 가인(佳人) :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 가인(可人) : 착한 사람.

▷고사 : 北宋 후기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蘇軾(字:子瞻, 號:東波)의 시 ‘薄命佳人’에서 어린 승려를 보고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을 보고 노래한 시이다.

自古佳人多命薄하니,   예로부터 아름다운 사람은 많이 운명이 기박하였으니,

閉門春盡楊花落이라.   문 닫으니 봄은 다하고 버들꽃 떨어지는구나.

☞閉(닫을 폐) 盡(다할 진) 楊(버드나무 양)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苛 가혹할 가, 政 정사 정, 猛 사나울 맹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으로,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말. [출전] <禮記>, <檀弓記>

▷고사 : 공자가 태산의 곁을 지날 때, 부인이 있어 묘지에서 곡하며 슬퍼하거늘, 공자가 엄숙히 이를 들으시고, 子路로 하여금 그에게 물어 말하되 “그대의 곡성은 한결같이 거듭 근심이 있는 것 같으니라.” 이에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옛적에 나의 시아버지도 호랑이한테 죽고, 나의 남편도 또 그것에게 죽고, 이제 나의 아들이 또 그것에게 죽었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되 “어찌 이곳을 떠나지 않았습니까?”하니 “가혹한 정치가 없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되 “제자들아 이를 들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니라.”

ꄵ ‘於’  ① 어조사 어. ‘…에, …에서, …보다’ 등의 뜻을 나타냄.

        ② 탄식하는 소리 오.  (예) ‘於乎(오호)’-감탄하는 소리.

가호위호(仮虎威狐) 威 위엄 위, 狐 여우 호

신하(臣下)로서 군주(君主)의 권위를 가지고 딴 신하를 공갈(恐喝)함. [출전] <戰國策>

각고면려(刻苦勉勵) 勉 힘쓸 면, 勵 힘쓸 려(여)

심신을 괴롭히고 노력함. 대단히 고생하여 힘써 정성을 들임.

ꄨ각고정려(刻苦精勵)

★각골난망(刻骨難忘) 刻 새길 각

은혜의 고마움이 잊혀지지 아니함.

ꄨ결초보은(結草報恩), 백골난망(白骨難忘)

각골명심(刻骨銘心) 銘 새길 명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긴다. 어떤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둠. [출전] <後漢書>

각자도생(各自圖生)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

각자무치(角者無齒)

뿔이 있는 놈은 이가 없다. 한 사람이 모든 복을 겸하지는 못한다.

★각주구검(刻舟求劍) 舟 배 주

사리에 어둡고 변통성이 없음. 어리석음. [출전] <呂氏春秋>

▷고사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한 젊은이가 양자강(揚子江)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하여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뿔싸  이를 어쩐다?’ 젊은이는 허둥지둥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 들고 칼을 떨어뜨린 그 뱃전에다 표시를 했다. 이윽고 배가 나루터에 닿자 그는 곧 옷을 벗어 던지고 표시를 한 뱃전 밑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칼이 그 밑에 있을 리가 없었다.

각촉위시(刻燭爲詩) 燭 촛불 촉

촛불이 한 치 타는 동안에 시(詩)룰 지음. [출전] <南史>

간국지기(幹國之器) 幹 줄기 간, 器 그릇 기

국가를 다스릴 기량(器量)이 있음. [출전] <後漢書>

간난신고(艱難辛苦) 艱 어려울 간

곤란하고 쓰라린 갖은 고초를 다 겪음.

간뇌도지(肝腦塗地) 肝 간 간, 腦 뇌 뇌, 塗 진흙 도

간장(肝臟)과 뇌수(腦髓)가 땅 위에 흐트러지도록 참혹한 죽음을 당함. [출전] <史記>

★간담상조(肝膽相照) 膽 쓸개 담, 照 비출 조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귄다.

▷고사 : 唐나라 유종원(柳宗元;773~819, 字:子厚)이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친구 유몽득(劉夢得)도 파주자사(播州刺史)로 가게 되었다. 유종원이 그것을 알고 울먹이면서 “파주는 몹시 궁벽한 변방인데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그 사실을 어떻게 어머니께 알릴 수 있겠는가? 내가 간청하여 몽득 대신 파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종원이 죽은 후 한유(韓愈)가 그 우정에 감복하여 유종원의 묘지명을 썼는데 ‘사람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데 마치 간담(肝膽)을 내보이는 것처럼 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으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라고 하였다. ꡔ柳子厚墓誌銘ꡕ

▷출전 : 韓愈柳子厚墓誌銘에 握手出肝膽하여 相示라하다.

** 韓 나라이름 한, 愈 나올 유, 厚 두터울 후, 誌 기록할 지, 銘 새길 명, 握 잡을 악

☞지주사는 이렇게 겸사하면서도 이 어린 청년과 주객이 肝膽相照하게 된 것을 그리고 틈이 벌어가고 한 모퉁이가 이그러져 가는 이 집을 바로 붙드는데 자기가 한 몫 거들어야 하게 된 것에 깊은 감격과 자랑을 느끼는 것이었다. [출전] <廉想涉, 三代>

간성난색(姦聲亂色) 姦 간사할 간, 亂 어지러울 난(란)

간사한 소리는 귀를 어지럽게 하고, 좋지 못한 색(色)은 눈을 어지럽게 함. [출전] <禮記>

간어제초(間於齊楚)

제나라와 초나라에 사이 하다.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의 사이에 끼어 괴로움을 받음.

간장막야(干將莫捓) 干 방패 간, 將 장차 장

오(吳)나라 사람 간장(干將)과 그의 아내 막야(莫捓). 각각 자기 이름을 붙인 보검(寶劍)을 만들었음. 후세에 보검의 별칭이 됨.

갈이천정(渴而穿井) 渴 목마를 갈, 穿 뚫을 천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한다. [출전] <說苑>

ꄜ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

  갑갑한 놈이 송사(訟事)한다.

☞버티고 볼 양이면 종수가 징역을 가야 하니 체면상 차마 못할 노릇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바라고 바라던 군수가 영영 떠내려 가겠은즉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더라고 짜나 다나 그 뒤치다꺼리를 다 하곤 했던 것입니다. [출전] <蔡萬植, 太平天下>

감개무량(感慨無量) 感 느낄 감, 慨 슬퍼할 개

마음속의 느낌이 한이 없음.

★감언이설(甘言利說)

달콤한 말과 이로운 말.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으로 꾀는 말.

감지덕지(感之德之)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를 덕으로 생각한다. 대단히 고맙게 여긴다.

★감탄고토(甘呑苦吐) 呑 삼킬 탄, 吐 토할 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사리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자기 비위에 맞으면 취하고 싫으면 버린다는 뜻. 이기주의적인 태도.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올 뿐 아니라, 어떨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가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이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해 하는 법이 없다.

(문제1) 나무의 풍모를 표현한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      ② 고독한 철인(哲人)        ③ 후덕(厚德)한 군자(君子)

④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            ⑤ 거룩한 사제(司祭)

(문제2) 밑줄 친 부분과 대조적인 현실 세태를 반영하는 한자 성어는?

① 甘呑苦吐     ② 近墨者黑     ③ 朝三暮四      ④ 權謀術數     ⑤ 易地思之

갑남을녀(甲男乙女)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 보통사람.

ꄨ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 선남선녀(善男善女), 초동급부(樵童汲婦)

갑론을박(甲論乙駁) 駁 얼룩말 박

갑이 논하면 을이 반박한다는 뜻으로, 서로 제 의견을 주장하며 논함. 또, 말다툼이 되어 논의가 통일되지 않음.

강구연월(康衢煙月) 康 오만도 강, 衢 거리 구, 煙 연기 연

강구는 사통오달의 큰 길로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 연월은 연기가 나고 달빛이 비친다. 태평한 시대의 큰 길거리에서 보는 안온(安穩)한 풍경. 태평한 시대를 이름.

강산지조(江山之助) 助 도울 조

산수(山水)의 풍경이 사람의 시정(詩情)을 도와 좋은 작품을 만들게 함. [출전] <唐書>

강상지변(綱常之變) 綱 벼리 강, 變 변할 변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에 관한 변고(變故).

강의목눌(剛毅木訥) 剛 굳셀 강, 毅 굳셀 의, 訥 말 더듬을 눌

의지가 굳고 꾸밈이 없음. [출전] <論語>

강호연파(江湖煙波) 湖 호수 호, 煙 연기 연, 波 물결 파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

★개과천선(改過遷善) 過 허물 과, 遷 옮길 천

나쁜 잘못을 바르게 고쳐서 착하게 됨. 지나간 허물을 고치고 옳은 길로 든다.

개권유득(開卷有得) 卷 쇠뇌 권

책을 펴고 글을 읽으면 새로운 지식을 얻음. [출전] <宋書>

개두환면(改頭換面) 換 바꿀 환

속마음을 그대로 두고 단지 표면(表面)만을 고침.

개물성무(開物成務) 務 일 무

사람이 아직 모르는 곳을 개발하고,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시킴. [출전] <易經>

개벽이래(開闢以來) 闢 열 벽

천지가 열린 이래. [출전] <後漢書>

개선광정(改善匡正) 匡 바로잡을 광

좋도록 고치고 올바로 잡음.

개수일촉(鎧袖一觸) 鎧 갑옷 개, 袖 소매 수, 觸 닿을 촉

상대방을 간단히 지게 만듦.

객반위주(客反爲主)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이 되다. 사물의 大小, 輕重, 前後를 뒤바꿈.

★거두절미(去頭截尾) 截 자를 절

머리와 꼬리를 끊어 버림. 앞뒤를 생략함. 간단히.

거세개탁(擧世皆濁) 擧 들 거, 濁 흐릴 탁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말로, 곧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다 올바르지 못함.

거안사위(居安思危) 居 있을 거, 危 위태할 위

편안하게 살면서 할시 위험한 때를 경계하여 생각함.

ꄨ有備無患

ꄜ鳥久止면 必帶矢라.(久安則必危也라.)

  人無遠慮면 必有近憂니라.

거안제미(擧案齊眉) 擧 들 거, 案 밥상 안, 齊 가지런할 제

밥상을 눈썹과 가지런히 하도록 공손히 들어 남편 앞에 바친다는 뜻.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을 이름.

거자일소(去者日疎) 疎 성길 소

죽은 사람을 애석히 여기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사라진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출전] <文選>

거재두량(車載斗量)

수레에 싣고 말로 헤아릴 정도의 많은 양.

거총사위(居寵思危)

득의(得意)한 때에는 실의(失意)한 때가 있을 것을 생각하여 조심하라는 말. [출전] <書經>

★건곤일척(乾坤一擲) 乾 하늘 건, 坤 땅 곤, 擲 던질 척

하늘이냐 땅이냐를 한 번 던져서 결정한다.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나 성패를 겨룬다. 또는 오직 이 한 번에 흥망성쇠(興亡盛衰)가 걸려있는 일.

ꄨ재차일거(在此一擧) : 이 한 번으로 단판을 짓다. 즉, 단 한 번의 거사로 흥하거나 망하거나 끝장을 낸다.

ꄜ단판걸이로 씨름(단판씨름), 도 아니면 모.

▷고사 : 唐․宋팔대가의 한 사람인 韓愈(768~824)의 ‘過鴻溝’의 詩에,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용과 범이 지쳐 이 강의 언덕으로 분할하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억만창생의 생명이 살아있도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누가 임금에게 권해 말머리를 돌릴 것인가?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진정 한 번 던져 하늘이냐 땅이냐로 도전한다.

홍구는 하남성에 있는데, 옛날 秦이 망하고 천하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을 때 楚의 項羽와 漢의 劉邦이 세력 다툼을 하다가 이곳을 경계로 하여 동쪽은 초가 서쪽은 한이 차지하기로 협약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그때 張良과 陣平이 유방에게 진언하기를, “漢은 천하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도 따르고 있지만, 楚는 군사가 피로하고 식량도 없습니다. 이때야 말로 하늘이 초를 멸하려 하는 것이며, 굶주리고 있을 때 쳐부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것과 같사옵니다.”하였다. 유방은 마침내 초를 해하(垓下)에서 승리하였다 한유는 이때의 싸움을 천하를 건 일대 도박으로 보고 회고시를 쓴 것.

☞鴻 기러기 홍, 溝 도랑 구, 誰 누구 수, 勸 권할 권, 賭걸 도

☞프랑스 혁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법률 앞에서 평등하게 되었으며 낡은 신분의 특권은 폐기되었다. 그 대신 소유권이 모든 것의 가치 척도가 되는 마력을 현시(顯示), 그것만 있으면 특권 이상의 안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사회 전체가 인간들의 목숨을 건 □□□□의 투기장이 되었다. 따라서 정치가, 고급 관리, 은행가, 대상인, 저널리스트, 방탕아, 사기꾼 등이 방종무궤(放縱無軌)로 날뛰는 현실은 발자크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 악몽이요, 死者들이 춤추는 행렬처럼 생각되었다.

(문제1) □□□□에 알맞은 말은?

① 乾坤一擲    ② 百尺竿頭    ③ 蚌鷸之爭    ④ 朝三暮四    ⑤ 暗中摸索

건목수생(乾木水生) 乾 마를 건

마른나무에서 물을 짜 내려한다. 엉뚱한 곳에서 불가능한 일을 이루려 한다.

걸견폐요(桀犬吠堯) 桀 홰 걸, 吠 짖을 폐, 堯 요임금 요

자기 상관에게 충성을 다함을 비유.

걸해골(乞骸骨) 빌 걸, 뼈 해, 뼈 골

몸은 임금에게 바친 것이지만 뼈만은 내려 주십시오. 늙은 신하가 사직을 청원함. [출전]《史記》〈項羽本記〉,《子春秋》

▷고사 :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에게 쫓긴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고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방은 지난해(B.C. 203) 항우가 반란을 일으킨 팽월(彭越)‧전영(田榮) 등을 치기 위해 출병한 사이에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공략했다가 항우의 반격을 받고 겨우 형양[滎陽:하남성(河南省) 내]로 도망쳤다. 그러나 수개월 후 군량(軍糧) 수송로까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자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응할 생각이었으나 아부(亞父: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란 뜻) 범증(范增)이 반대하는 바람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은 간첩을 풀어 초나라 진중(陣中)에 헛소문을 퍼뜨렸다. ‘범증이 항우 몰래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고. 이에 화가 난 항우는 은밀히 유방과 강화의 사신을 보냈다. 진평은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의 신하가 된 사람인 만큼 누구보다도 항우를 잘 안다. 그래서 성급하고도 단순한 항우의 성격을 겨냥한 이간책은 멋지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진평은 장량(張良) 등 여러 중신(重臣)과 함께 정중히 사신을 맞이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부(범증을 지칭)께서는 안녕하십니까?”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요.” 사신은 불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뭐, 초왕의 사신이라고? 난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 …….” 진평은 짐짓 놀란 체하면서 잘 차린 음식을 소찬(素饌)으로 바꾸게 한 뒤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자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범증은 크게 노했다.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오니, 전하 스스로 처리하시오소서.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에 묻힐까 하나이다.”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 책략에 걸려 유일한 모신(謀臣)을 잃고 말았다.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등창이 터져 75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검려지기(黔驢之技) 黔 검을 검, 驢 나귀 려, 技 재주 기

검(黔) 땅의 당나귀가 호랑이를 찾다가 도리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다는 고사(故事)로, 재주 없는 자의 졸렬한 기량(技倆)의 비유. [출전] <柳宗元>

★격물치지(格物致知) 이룰 격, 만물 물, 이를 치, 알 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함. [출전] 《大學》〈八條目>

▷고사 : 四書의 하나인 大學에 三綱領(明明德․新民․止於至善), 八條目(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 나온다. 朱子는 ‘格物致知’에서 ‘格’은 ‘이르다(至)’, ‘物’은 ‘사물, 만물’, ‘致知’는 ‘앎을 이루다’는 말로, “만물은 무릇 한 그루의 나무, 한 잎의 풀에 이르기까지 각각 이(理)를 갖추고 있다. 이 이치를 하나하나 캐어 들어가면, 어느 땐가 한 번 활연(豁然;환하게 터진 모양)히 만물의 표리정리(表裏精粴;겉과 속, 자세함과 거칠음)를 밝힐 수가 있다.” 이에 王陽明은 의문을 제기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格物’의 ‘物’은 ‘事’이다. 事라는 것은 어버이를 섬긴다(事)든가, 임금을 섬긴다던가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事라고 하면 거기에 마음이 있고, 마음 외에는 物도 없고 理도 없다. 그러므로 ‘格物’의 ‘格’은 ‘正’으로,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事를 바르게 함’ 곧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格物’이다. 또한, 악을 떠나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마음속에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良知를 밝힐 수 있으며 이것이 ‘知’를 이루는 ‘致’ 곧 ‘致知’이다.

또한 大學은 그 서문에 나타나 있듯이 ‘옛날 태학(太學)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책’인데,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수신(修身), 즉 일신의 수양을 근본으로 여겨야 함.(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修身爲本)”을 강조하여 밝히고 있는데, 주자는 이를 ‘대인의 학문(大人의 學問)’이라고도 밝히고 있다.

팔조목에서 格物, 致知, 誠意, 正心은 인간의 내적 성장에 관한 것을 나타내고, 齊家, 治國, 平天下는 인간의 외적성장과 외적확산의 과정을 나타내는데, 이와 같은 내적 성장과 외적확산의 2대 과정의 주체가 되는 것은 역시 인간이므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갈고 닦는 것, 즉 수신을 하고 자신의 생활을 계발(啓發)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적 심화와 외적확산의 과정이 조화되어야 개인의 인격함양이나 성장이 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적 발달이 없는 상태에서 외적확산만 하는 사람은 개인의 힘과 세력이 피상적이고 일방적인 확산에 그치게 되고, 반대로 외적확산 없이 내적 심화만을 하는 사람은 보람있는 사회활동에의 참여를 하지 못하게 되어 ‘고립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인격이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내적 성장이 계속됨에 따라 각종 사회적 관계가 더 폭넓게 되는 등의 외적 성장도 아울러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내적 성장과 외적확산이 상호보완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주] 양지 : ① 배우지 않을 수 있는 타고난 지능. ② 양명학(陽明學)에서, 마음의 본체.

★격세지감(隔世之感) 隔 사이 뜰 격

세대 차이.

격양가(擊壤歌) 擊 부딪칠 격, 壤 흙 양

땅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는 말로, 곧 태평세월을 즐겨 부르는 노래.

ꄉ고복격양(鼓腹擊壤).

격탁양청(激濁揚淸) 激 물결 부딪혀 흐를 격, 濁 흐릴 탁, 揚 오를 양

탁류(濁流)를 몰아내고 청파(淸波)를 끌어들임. 악(惡)을 미워하고 선(善)을 좋아함. [출전] <舊唐書>

격화소양(隔靴搔痒) 막을 격, 가죽신 화, 긁을 소, 가려울 양

신을 신은 위로 가려운 곳을 긁는다. 어떤 일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여 매우 안타까운 상태. 또는 답답하여 안타까움. [출전] <無門關>

ꄉ격화파양(隔靴爬痒) 爬 긁을 파

견갑이병(堅甲利兵) 堅 굳을 견

튼튼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 정병(精兵)의 뜻.

견강부회(牽强附會) 끌 견, 강요할 강, 붙일 부, 모을 회

말을 억지로 끌어다가 이치에 맞도록 함.

견개고고(狷介孤高) 狷 성급할 견, 介 끼일 개, 孤 외로울 고

자기의 의지를 굳게 지켜 속인에게서 멀리 떠나 품격을 보전하는 일.

견련지친(牽連之親) 牽 끌 견, 連 잇닿을 련(연)

서로 관련되는 먼 친척.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 되는 것을 보면 먼저 義理에 합당한가를 생각함. [출전] <論語>

견마곡격(肩摩轂擊) 肩 어깨 견, 摩 갈 마, 轂 바퀴 곡, 擊 부딪힐 격

사람의 어깨와 어깨가 서로 스치고 수레의 바퀴통과 바퀴통이 서로 마주침. 사람이나 수레의 왕래가 심하여 혼잡함을 비유. [출전] <戰國策>

견마지년(犬馬之年)

자기 나이를 낮추어 하는 말.

★견마지로(犬馬之勞)

개나 말의 수고로움. 정성껏 수고를 다하는 노력. 또는 자기의 노력을 낮추어서 일컫는 말.

☞수양은 나쁜 방면을 모름이 아니로되 그의 쉽지 않은 지혜를 높이 보아서 그를 긴히 쓰고자 함이었다. ‘대감의 지혜와 지식―국가를 다스림에 없지 못할 것이외다. 대감과 힘을 아울러 우리 전하를 도웁시다.’ ‘나으리 앞에서 견마의 노를 다 하오리라’ 수양은 인지의 손을 잡은 채 입을 닫았다. [출전] <金東仁, 首陽大君>

★견마지양(犬馬之養)

개나 말의 봉양. 부모를 봉양만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음. 봉양만 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다. [출전] <論語>

견문발검(見蚊拔劍) 蚊 모기 문, 拔 뽑을 발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움. 또는 조그만 일에 화를 내는 소견이 좁은 사람.

★견물생심(見物生心)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임.

견아상제(犬牙相制) 牙 어금니 아, 制 마를 제

개의 어금니가 서로서로 맞지 않는 것같이 국경선이 볼록 나오고 오목 들어가 서로 견제하려는 형세. [출전] <史記>

견위수명(見危授命) 危 위태로울 위, 授 줄 수

(나라가) 위태로움을 당하면 (나라에) 목숨을 바침.

견인불발(堅忍不拔) 堅 굳을 견, 拔 뺄 발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함. 의지가 굳어 꾹 참고 견디어 마음이 동하지 않음. [출전] <蘇軾>

견토방구(見兎放狗) 兎 토끼 토, 狗 개 구

토끼를 발견한 후에 사냥개를 풀어 잡게 하여도 늦지 않음. 일이 일어남을 기다린 후에 응해도 좋다는 뜻.

견토지쟁(犬兎之爭)

개와 토끼가 서로 다투다가 둘이 다 지쳐 죽어 농군이 주워 갔다는 고사(故事). [출전] 《戰國策》〈齊策〉

▷고사 : 전국 시대, 제(齊)나라 왕에게 중용(重用)된 순우곤(淳于髡)은 원래 해학(諧謔)과 변론의 뛰어난 세객(說客)이었다. 제나라 왕이 위(魏)나라를 치려고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진언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매우 발빠른 명견(名犬)이 동곽준(東郭逡)이라는 썩 재빠른 토끼를 뒤쫓았사옵니다. 그들은 수십 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바람에 개도 토끼도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나이다. 이 때 그것을 발견한 ‘전부(田父 :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田父之功]’을 하였나이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랫동안 대치하는 바람에 군사도 백성도 지치고 쇠약하여 사기가 말이 아니온데 서쪽의 진(秦)나라나 남쪽의 초(楚)나라가 이를 기화로 ‘전부지공’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왕은 위나라를 칠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오로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ꄲ‘之’ 

① 갈 지. 가다, 향하다. 예) ‘之東之西(지동지서)’-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함. 곧 마음을 질정(質定 : 갈피를 잡고 헤아려서 작정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는 뜻.

② …의. 주격‧소유격을 나타내는 접속사. 예) ‘人之常情(인지상정)’-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통 인정.

③ 이 지. 지시 대명사로 쓰임[是(시)와 같은 뜻]. 예) ‘論之(논지)’-이것을 따져서 말함.

세객 : 교묘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각처를 유세(遊說)하고 다니는 사람. 제국(諸國)의 군주(君主)가 저마다 패자(覇者)를 지향하며 패도정치(覇道政治)를 펼쳤던 전국 시대(戰國時代)에는 책사(策士)‧모사(謀士) 또는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세객이 많았음.

★결자해지(結者解之)

맺은 사람이 그것을 푼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그 일을 끝맺음.

☞이리로 생각하고 저리로 생각하니 널로 하여 생겼든지 널로 하여 못살겠다 널로 하여 죽게 되니 절로는 살길 없다 暫見復望이오 結者解之라니 다 썩고 남은 간장 고칠 길이 전혀 없다. [출전] <歌詞, 相思陳情夢歌>

★결초보은(結草報恩) 報 갚을 보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 ①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 ②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겠다. ③남의 은혜를 받고도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

ꄨ각골난망(刻骨難忘), 난망지은(難忘之恩), 명심불망(銘心不忘)

ꄜ머리털 베어 신을 삼겠다.

  털을 뽑아 신을 삼겠다.

  개새끼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친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고사 : 「晉나라의 大夫 위무(魏武)가 妾이 있었는데 병으로 앓게 되자, 그 아들 위과(魏顆)에게 일러 말하되 “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 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거늘 또 말하되 “(내가 죽으면)죽여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을 하였다. 죽음에 이르러 과가 말하되 “차라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을 좇아서 이를 개가시키리라.” 진(秦)과 진(晉)의 싸움에 이르러 위과가 노인의 풀을 묶는 것을 보고서 두회(杜回)에게 대항했는데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지니 마침내 그를 사로잡았다. 후에 위과의 꿈에 노인이 이르기를 “나는 개가를 시켜 준 부인의 아버지니라. 네가 너의 아버지의 정신이 있을 때의 유언을 좇아서 내 달을 개가를 시켜 주어서 내가 이로써 너에게 갚는 것이다.” (魏武有妾이러니 武子病이어늘 謂其子顆曰 “我死어늘 嫁此妾하라” 病極이어늘 又曰 “殺爲殉하라” 及死에 顆曰 “寧從治時命而嫁之리라” 及秦晉之戰하여 魏顆가 見老人結草하여 以抗杜回하여 回跌而顚하고 遂獲之하니라. 後에 顆夢에 老人이 云 “我而所嫁婦人之父也라 爾從治命이라. 余是以報니라.”)」 [출전] <左傳>

** 嫁 시집보낼 가, 殉 따라죽을 순, 抗 막을 항, 杜 막을 두, 顚 엎어질 전

☞낭군은 첩의 유언을 저버리지 말으사 어제의 정의를 생각하시고 이 두 딸을 어엿비 여겨 장성한 후 같은 가문에 배필을 얻어 봉황의 짝을 지어 주신다 하면 첩이 비록 명명한 가운데라도 낭군의 은택을 감축하여 結草報恩하리이다. [출전] <薔花紅蓮傳>

ꄵ再嫁․改嫁 : 일반적으로 시집갔던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 조선시대에는 엄격히 구분하여, 再嫁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다시(再)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것을 설명한 말이고, 改嫁는 남편이 죽은 다음에 다른 남자에게 고쳐(改) 시집간 것을 지칭한 말이다.(팔자를 고쳐 새롭게 시작하는 결혼)

겸인지용(兼人之勇) 兼 겸할 겸

몇 사람을 당해 낼 수 있을 만한 용기.

경거망동(輕擧妄動) 輕 가벼울 경, 擧 들 거, 妄 망령될 망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함부로 행동함.

경국지색(傾國之色) 傾 기울 경

임금이 가까이 하여 나라가 뒤집혀도 모를 만큼 잘생긴 미인.

ꄉ경성지색(傾城之色), 만고절색(萬古絶色), 絶世(代)美(佳)人

ꄨ수화폐월(羞花閉月), 국향(國香), 국색(國色)

ꄑ박색(薄色) : 매우 못생긴 여자.

▷고사 : 한(漢)나라의 무제(武帝) 때 음악에 재능이 있고 춤이 뛰어난 이연년(李延年)이 어느 날 무제 앞에서 “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데, 세상에 견줄 만한 것 없이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도 기우네. (北方有佳人한대, 絶世而獨立이네. 一顧傾人城하고, 再顧傾人國이네.)”라고 노래하였다. 무제는 이연년의 누이동생을 빗댄 노래임을 알고 그녀를 불렀다. 과연 절세 미인이었고 춤도 잘 추어 그 미모에 빠졌다. 傾國의 본뜻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다. 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고조(高祖)가 항우에게 부모 처자를 포로로 빼앗겨 괴로워하고 있을 때, 후공(候公)이 그의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찾아왔다. 이때 고조는 “이는 천하의 변사(辯士)로다. 그가 있는 곳이면 나라도 기울게 하리라.” 한 것이 본 뜻이다.

** 絶 끊을 절, 薄 엷을 박, 獨 홀로 독, 顧 돌아볼 고, 再 다시 재

☞“당신 같은 팔자 어디 있어요. 주지육림(酒池肉林)에 경국지색(傾國之色)을 모아 놓고 밤 깊도록 노시다가 갑갑하실 때쯤 때를 맞춰서 바람이나 소이시라고 나 같은 모던 미인이 자동차까지 가지고 등대를 하고…… 하하……” 경애는 야죽야죽 놀린다. [출전] <廉想涉, 三代>

경낙과신(輕諾寡信) 諾 대답할 낙, 寡 적을 과

무슨 일에나 승낙을 잘 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적어 약속을 어기기 쉽다는 말. [출전] <老子>

경세제민(經世濟民) 經 다스릴 경, 濟 구제할 제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 (준말 : 經濟)

경시호탈(輕施好奪) 施 베풀 시, 奪 빼앗을 탈

제 것을 남에게 잘 주는 이는 무턱대고 남의 것을 탐낸다는 말.

경운지서(慶雲之瑞) 慶 경사 경, 瑞 상서 서

오색의 구름이 보이는 천하태평의 상서(祥瑞).

경위지사(傾危之士)

궤변(詭辯)을 늘어놓아 국가를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아넣게 하는 인물. [출전] <史記>

경이원지(敬而遠之)

신(神)을 모시어 마음을 깨끗이 하고, 또한 화복(禍福) 때문에 마음을 유혹 당하지 아니함. 또, 존경하되 가까이 하지 않음을 이름. [출전] 《論語》〈雍也篇(옹야편)>

ꄉ경원(敬遠) : 敬鬼神而遠之.

▷고사 : 춘추 시대의 성인 공자(孔子)에게 어느 날, 조금 어리석은 번지(樊遲)라는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지(知)란 무엇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하고 ‘혼령(魂靈)이나 신(神)에 대해서는 존경하되 멀리한다면[敬 神而遠之]’ 이것을 지(知)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논어(論語)》〈옹야편(雍也篇)〉에 실려 있는 글이다.  또 〈술이편(述而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공자는 괴(怪)‧난(亂)‧신(神)을 말하지 않았다.

[子不語 怪力亂神(자불어 괴력란신)] 즉, 공자가 괴이(怪異)‧폭력(暴力)‧문란(紊亂)‧귀신(鬼神)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괴’와 ‘신’ 이하는 초월자(超越者)에게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러한 태도야말로 지(知)인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ꄲ‘존경하되 멀리한다.’는 이 ‘경원’이란 말이 오늘날에는 ‘꺼리어 피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경조부박(輕佻浮薄) 佻 방정맞을 조, 浮 뜰 부, 薄 엷을 박

언어와 행동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함.

ꄳ경박(輕薄)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을 놀래키고 땅을 뒤흔든다는 뜻으로,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함. [출전] <白居易>

경천위지(驚天緯地) 驚 놀랄 경, 緯 씨 위

온 세상을 다스림.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다스림.

경화수월(鏡花水月)

거울에 비친 꽃, 물위에 비친 달. 곧, 볼 수만 있고 가질 수 없는 것의 비유.

계구우후(鷄口牛後) 鷄‧雞 닭 계, 口 입 구, 牛 소 우, 後 뒤 후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 곧 큰 집단의 말석보다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말. [출전]《史記》〈蘇秦列傳〉

ꄦ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雞口勿爲牛後).

▷고사 : 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의 도읍 낙양(洛陽)에 소진(蘇秦: ?~B.C.317)이란 종횡가(縱橫家:모사)가 있었다. 그는 합종책(合縱策)으로 입신할 뜻을 품고,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동진(東進) 정책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한(韓)‧위(魏)‧조(趙)‧연(燕)‧제(齊)‧초(楚)의 6국을 순방하던 중 한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말했다. “전하, 한나라는 지세가 견고한데다 군사도 강병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아니하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겨 놓지 않고 계속 국토의 할양을 요구할 것이옵니다. 하오니 전하, 차제에 6국이 남북, 즉 세로[縱]로 손을 잡는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동진책을 막고 국토를 보존하시오소서.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寧爲鷄口]쇠꼬리는 되지 말라[勿爲牛後]’는 옛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선혜왕은 소진의 합종설에 전적으로 찬동했다. 이런 식으로 6국의 군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소진은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대정치가가 되었다.

ꄲ종횡가 :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제국(諸國)의 군주(君主)들을 찾아다니며 독자적인 정책을 유세(遊說)하여 그들 여러 나라를 종(縱)‧횡(橫)으로 묶어서 경륜(經綸)하려던 외교가(外交家)‧책사(策士)‧모사(謀士)의 총칭. 합종책을 설(說)한 소진과, 소진이 피살된(B.C.317) 후 합종책을 깨기 위한 연횡책(蓮衡策)을 펴 성공한 장의(張儀)가 그 대표로 꼽힘.

계군일학(鷄群一鶴) 群‧羣 무리 군, 鶴 학 학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의 비유. [출전]《晉書》〈嵇紹傳〉

ꄦ계군일학(鷄群一鶴)

ꄉ군계일학(群鷄一鶴). 계군고학(雞群孤鶴).

▷고사 :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완함(阮咸)‧혜강(嵆康)‧산도(山濤)‧왕융(王戎)‧유령(劉伶)‧상수(尙秀) 곧 죽림 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동부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다. 그런데 죽림 칠현 중 위나라 때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돼는 아들 혜소(嵇紹:?~304)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중신(重臣) 산도가 그를 무제[武帝:256~290,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에게 천거했다. “폐하,《서경(書經)》의 〈강고편(康誥篇)〉에는 부자간의 죄는 서로 연좌(連坐)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나이다. 혜소가 비록 혜강의 자식이긴 하오나 총명함이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극결(郤缺)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비書郞)으로 기용하시오소서.” “경(卿)이 천거(薦擧)하는 사람이라면 승(丞)이라도 능히 감당할 것이오.” 이리하여 혜소는 비서랑 보다 한 계급 위인 비서승에 임명되었다. 혜소가 입월하던 그 이튿날, 어떤 사람이 자못 감격하여 와융에게 말했다. “어제 구름처럼 많이 모인 사람들 틈에 끼어서 입궐하는 혜소를 보았습니다만, 그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우뚝 선 한 마리의 학[鷄群一鶴]’같았습니다.” 그러자 왕융은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혜소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는 혜소보다 훨씬 더 늠름했다네.”

계돈동사(鷄豚同社) 豚 돼지 돈

닭과 돼지가 한데 어울린다는 뜻. 한 고을 사람이 계(契)를 이룸의 비유.

계란유골(鷄卵有骨)

계란에도 뼈가 있다. 운수가 나쁜 사람의 일은 모처럼 좋은 기회가 있더라도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ꄨ설상가상(雪上加霜)

ꄜ운수가 나쁜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窮人之事는 飜亦破鼻라)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밀가루 장수를 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수를 하면 비가 온다.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의하면, 세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황희(黃喜)는 마음이 착하고 생활이 검소하였다. 황정승의 생활이 매우 빈한한 것을 상감(上監)께서 궁휼히 여기시고 어떻게 잘 살게 할 방도를 생각하시었다. 한 묘안을 얻어 명령하시되 내일은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자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이 문을 들어오는 물건을 다 황정승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폭풍우가 몰아쳐 종일토록 멎지 아니하므로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다 어두워 집에 들어가려고 할 때 무슨 까닭인지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어 이것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곧 삶아 먹으려고 하니 알마다 곯아서 한 알도 먹지 못하고 말았다 한다. ‘곯다’의 어간이 한자의 골(骨)과 음이 같은 데서 ‘뼈가 있다’로 된 듯함.

★계륵(鷄肋) 肋 갈비 륵

① 닭의 갈비를 뜻함. 닭의 갈비는 먹을 것이 없으나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다는 말로, 곧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을 뜻함. ② 닭의 갈비가 약하고 작은 것처럼 자기 몸이 약하다. [출전]《後漢書》〈楊修傳〉. 《晉書》〈劉伶傳〉

ꄨ양수집병(兩手執餠) : 양손에 든 떡. 갖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고사 : ① 촉한(蜀漢)의 유비(劉備)가 한중(漢中)을 먼저 점령하니 위(魏)의 조조(曺操)가 반격해 왔다. 그러나 조조는 수개월간의 싸움에 군량미가 떨어지고 도망병이 속출하게 되자 ‘鷄肋’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조조에게 양수(楊修)라는 은어를 잘 푸는 재주를 가진 주부(主簿)가 있었다. 그는 조조의 명령을 듣고 부리나케 수도 장안으로 돌아갈 차비를 차리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으니, “닭의 갈비는 먹으려하면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인데, 한중(漢中)을 이에 견주었으므로 왕은 곧 귀환 할 것을 결정하신 것이오.” 그 말대로 조조는 위나라 전군에게 한중으로부터 철군 명령을 내렸다. [출전] <後漢書>

② 유영(劉怜-竹林七賢)이 취흥 끝에 어떤 속인과 옥신각신 하였다. 그 속인이 팔을 걷어붙이고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니 유영은 점잖게 말하기를, “닭의 갈빗대가 허약하니 어찌 그대의 주먹을 당해 내리오.” 달려들던 속인은 어이없이 그만 두어 버렸다.

계명구도(鷄鳴狗盜) 鳴 울 명, 盜 훔칠 도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하다. ① 잔재주를 자랑함. ② 비굴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사람을 이름. ③ 行世하는 사람이 배워서는 아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 [출전]《史記》〈孟嘗君列傳〉

ꄉ함곡계명(函谷鷄鳴) : 함곡관의 닭 울음소리라는 뜻.

▷고사 :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은 갖가지 재주 있는 식객이 많았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아 가서 호백구(狐白裘)를 선물했다. 소왕은 맹상군을 임명하려 했지만 많은 신하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한편 맹상군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소왕의 애첩 총희(寵嬉)를 달래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호백구를 요구하였다. 개 흉내로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 ‘신이 능히 호백구를 얻어 오겠습니다.’하고 이에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서 호백구를 취해서 그녀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그 곳을 빠져 나오는 중에 함곡관에 이르니 닭이 울어야 객을 내보낸다는 관법으로 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꼬끼오 하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소왕은 맹상군의 귀국을 허락한 것을 뉘우치고 병사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으나 이미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 [출전] <史記, 孟嘗君傳>

계명구폐(鷄鳴狗吠) 吠 짖을 폐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 인가(人家)나 촌락(村落)이 잇대어 있다.

계명지조(鷄鳴之助)

임금을 받드는 현명한 왕비의 내조(內助). [출전] <詩經>

계주생면(契酒生面) 契 맺을 계

남의 물건으로 자기가 생색을 냄.

ꄜ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계찰괘검(季札掛劍) 札 패 찰, 掛 걸 괘

신의를 중히 여김.

▷고사 :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상국(上國)으로 사신 가는 길에 서국(徐國)을 들르게 되었는데, 그 나라의 임금이 계찰의 칼을 매우 부러워하였다. 계찰은 칼을 주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하고 사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국을 들렀으나 임금은 이미 죽은 뒤였다. 계찰은 마음 속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금의 묘에 칼을 걸어놓고 왔다.

계포일낙(季布一諾) 諾 대답할 낙

한 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킴.

▷고사 : 초(楚)나라 계포는 어떤 일에든지 ‘좋다’ 하고 한 번 내뱉은 이상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걸고 싸울 때, 계포가 초나라 대장이 되어 유방을 여러 차례 괴롭혔는데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쫓겨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을 잘 아는 자가 그를 밀고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유방에게 천거하여 사면시킨 뒤 벼슬까지 얻게 하였다.

계피학발(鷄皮鶴髮) 鶴 학 학, 髮 터럭 발

늙어서 주름살이 잡히고 백발이 됨.

고굉지신(股肱之臣) 股 다리 고, 宏 팔 굉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많나 신하.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重臣). [출전] <書經>

ꄉ고굉(股肱), 고장지신(股掌之臣)

고사 : <書經> 익직편(益稷篇)에 순(舜)임금이 말했다. “신하들이여! 옆에서 도와주시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신하가 참된 신하로다.” 하니 우(禹)가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였다. 순임금이 신하들을 둘러보며 “그대들과 같은 신하는 짐의 팔다리요, 눈과 귀로다. 내가 백성을 교화시키고 돕고자 하니 아울러 그대들도 도와주시오…….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충고해 주고 모든 동료들이 서로 공경하고 예의를 지켜 주오. 그리고 관리는 백성의 뜻을 짐에게 전하는 것이 임무이니 올바른 이치로써 선양하고 뉘우치는 자가 있으면 용서하며 그렇지 않은 자는 처벌하여 위엄을 보이도록 하시오.” 라고 당부하였다.

고군분투(孤軍奮鬪)

수가 적고 도움이 없는 약한 군대가 강한 적과 용감하게 싸움. 적은 인원과 약한 힘으로 남의 도움도 없이 힘에 겨운 일을 악착스럽게 함.

고담웅변(高談雄辯) 雄 수컷 웅, 辯 말잘할 변

물이 흐르듯 도도한 의론(議論).

고량자제(膏梁子弟) 膏 살찔 고, 梁 들보 량(양)

부귀한 집안에 자라서 고생을 모르는 젊은이.

고량진미(膏粱珍味) 珍 보배 진

살찐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ꄉ산해진미(山海珍味).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 麗 고울 려(여)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면 참을성이 부족하여 자주 변경함을 지적한 말.

ꄨ조령모개(朝令暮改), 작심삼일(作心三日), 조변석개(朝變夕改)

** 고려(高麗) : 나라 이름. 또는 남의 사려를 높이어 이르는 말.

   고려(考慮) : 생각하여 헤아림.

   고려(苦慮) : 애써 생각함.

   고려(顧慮) : 지난 일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여 봄.

고립무원(孤立無援) 孤 외로울 고, 援 당길 원

외톨이가 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

ꄉ고립무의(孤立無依)

고목발영(枯木發榮) 榮 꽃 영

고목에서 꽃이 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남의 비유.

고목사회(槁木死灰) 灰 재 회

형체가 마른나무가 선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마음은 죽은 재처럼 아무 생각이 없음. 사람의 무위무심(無爲無心)함을 이름. [출전] <莊子>

★고목생화(枯木生花) 枯 마를 고

마른나무에 꽃이 핀다는 말로, 곤궁한 처지의 사람이 행운을 만나 신기하게도 일이 잘 되는 것을 이름.

고목한암(枯木寒巖) 巖 바위 암

말라죽은 나무와 차가운 바위. 세속(世俗)에서 떠나 무심(無心)한 모양의 비유.

고문전책(高文典冊)

귀중한 문서. [출전] <西京雜記>

고복격양(鼓腹擊壤) 鼓 북‧북칠 고, 腹 배 복, 擊 칠 격, 壤 땅 양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는 뜻으로, 태평 성대를 형용하여 이르는 말. [출전]《十八史略》〈帝堯篇〉, 《樂府詩集》〈擊壤歌〉

ꄳ격양(擊壤).

ꄉ요순지절(堯舜之節) :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시대.

  태평성대(太平聖代) :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시대.

▷고사 : 먼 옛날 중국에 성천자(聖天子)로 이름난 요(堯)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온 지도 어느덧 50년이 지났다. 하루하루를 태평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요 임금은 정말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미복(微服)을 하고 민정(民情)을 살펴보러 나갔다. 어느 네거리에 이르자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요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立我烝民(입아증민)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莫匪爾極(막비이극)    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

不識不知(불식부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順帝之則(순제지칙)    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

마음이 흐뭇해진 요 임금은 어느새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 그 곳에는 하얀 한 노인이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鼓腹]’ 발로 ‘땅을 구르며[擊壤]’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일출이작 일입이식)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耕田而食 鑿井而飮(경전이식 착정이음)   밭을 갈아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帝力 何有于我哉(제력 하유우아제)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요 임금은 정말 기뻤다. 백성들이 아무 불만 없이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하고, 정치의 힘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정치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요 임금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ꄲ격양(擊壤) : 나무로 만든 신 모양의 ‘양(壤)’을 땅에 세워 놓고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양’을 던져서[擊] 맞추는 놀이라는 설과 ‘흙으로 만든 악기를 타는 일’이라는 설도 있음.

고사내력(故事來歷) 歷 지낼 력(역)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사물에 관한 유래나 역사. 또, 사물이 그런 결과가 된 이유나 경위(經緯).

고산유수(高山流水)

높은 산과 흐르는 물. 맑은 천지 자연을 형용하는 말. 또, 오묘한 음악의 비유. [출전] <列子>

고색창연(古色蒼然) 蒼 푸를 창

오래되어 옛날의 풍치가 저절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

고성낙일(孤城落日)

고립무원한 외딴 성이 해가 지려고 하는 곳에 있다. 도와 줄 사람도 없는 외롭고 서글픈 사정에 있을 때를 가리키는 말.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쓸쓸한 심경.

ꄨ사고무친(四顧無親) : 친척이 없어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로움.

고식지계(姑息之計) 姑 잠시 고, 息 숨쉴 식

잠시 모면하는 일시적인 미봉책.

ꄉ인순고식(因循姑息) : 구습을 버리지 않고 목전의 편안함을 취함.

고신얼자(孤臣孼子) 孼 서자 얼

원신(遠臣)과 서자(庶子). 임금과 어버이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신하와 자식. [출전] <孟子>

고양생제(枯楊生稊) 稊 돌피 제

시든 버드나무에 싹이 튼다는 뜻으로, 노인이 젊은 여자에게 장가듦을 이름. [출전] <易經>

고육지책(苦肉之策)

적을 속이는 수단으로서,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괴롭히는 계책. 어쩔 수 없이 쓰는 계책.

★고장난명(孤掌難鳴) 掌 손바닥 장

손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로, 혼자 힘으로는 일하기 어렵다는 뜻. 협동. 또는 맞서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출전] <傳燈錄>

ꄨ인인성사(因人成事) : 남의 일을 비어 일함.

  십시일반(十匙一飯) :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한 사람을 돕는 일은 쉽다.

ꄜ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르다.

☞새로운 낱말을 만들 때에는 몇몇 선학들이 시도했듯이 ‘매, 가름, 목’ 처럼 일상어와 인연을 맺기가 어려운 것을 쓰거나, ‘엮, 묶’과 같이 낱말의 한 부분을 따오는 방식보다는 역시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언어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고장에서는 시멘트를 ‘돌가루’라고 불렀다. 이런 말들은 자연적으로 생겨 난 훌륭한 우리 고유어인데도 불구하고, 사전에도 실리지 않고 그냥 폐어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얼마 전, 고속 도로의 옆길을 가리키는 말을 종전대로 써 오던 용어인 ‘노견(路肩)’에서 ‘갓길’로 바꾸었다는 보도를 듣고, 우리의 언어 생활도 이제 바른 방향을 잡아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문제)‘돌가루’는 사라지고 ‘갓길’은 살아남은 언어 현상과 관련하여, 아래에 들어갈 알맞은 속담은?

“〔                             〕”라는 속담도 있듯이, 말이란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 살아남고 호응을 얻지 못하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외국어도 일단 들어와서 우리 국민들이 쓰기 시작하면 순화하기 어려우므로, 처음부터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① 외손뼉이 못 울고, 한 다리로 못 간다.      ② 말은 해야 맛이요,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

③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④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고재질족(高材疾足)

키가 크고 걸음이 빠르다는 뜻으로, 뛰어난 재능과 수완이 있음. 또, 그러한 사람.[출전]<史記>

고족제자(高足弟子)

우수한 제자. [출전]<世說>

★고진감래(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ꄨ생구불망(生口不網) :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

☞밤은 깊어 삼경인듸 안자쓴들 임이올가, 누워슨들 밤이오랴. 임도 잠도 아니 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도 원수로다. 홍진비 고진감 예로부터 잇건마는 지달임도 젹지 안코……(完板春香傳)

☞이제는 살아갈 길이 막연하다. 이왕 시작한 일이라 주판지세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였으니 나중에야 설마 길한 일이 없으랴.(興夫傳)

☞소진도 일시의 곤란을 겪으며 뜻을 가다듬어 필경 육국상인을 허리에 띄였다 하니 재조와 담력을 가지고 신고를 견디어 큰 사업을 성취할지니 속담에 이르되 고진감래라 하고 궁한즉 통한다 하니 좋은 때 돌아오기를 기다릴 지로다.(李人稙, 雪中梅)

고침안면(高枕安眠) 枕 베개 침, 眠 잘 면.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뜻. 곧 ① 근심 없이 편히 잘 잠. ② 안심할 수 있는 상태의 비유. [출전]《戰國策》〈魏策 哀王〉, 《史記》〈張儀列傳〉

ꄉ고침이와(高枕而臥).

▷고사 : 전국 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종횡가(縱橫家)로서 유명한데 소진은 합종(合縱), 장의는 연형(連衡)을 주장했다. 합종이란 진(秦)나라 이외의 여섯 나라, 곧 한(韓)‧위(魏)‧제(齊)‧초(楚)가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며, 연횡이란 여섯 나라가 각각 진나라와 손잡는 것이지만 실은 진나라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소진보다 악랄했던 장의는 진나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이웃 나라를 압박했다. 진나라 혜문왕(惠文王) 10년(B.C. 328)에는 장의 자신이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침략했다. 그 후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 애왕(哀王)에게 합종을 탈퇴하고 연횡에 가담할 것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는 본보기로 한나라를 공격하고 8만에 이르는 군사를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애왕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의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애왕에게 말했다. “전하, 만약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초나라나 한나라가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로부터의 화만 없다면 전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주무실 수 있사옵고[高枕安眠]’ 나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옵니다.” 애왕은 결국 진나라와 화목하고 합종을 탈퇴했다. 장의는 이 일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섯 나라를 차례로 방문, 설득하여 마침내 주(周)나라 난왕(赧王) 4년(B.C. 311)에 연횡을 성립시켰다.

고황지질(膏肓之疾) 肓 명치끝 황

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膏 : 心臟의 아래. 肓 : 橫隔膜과 心臟의 사이.)

▷고사 : 옛날 중국 진후(晉候)가 병을 얻어, 진(秦)나라의 명의(名醫)를 청했더니, 꿈에 병이 든 소년으로 나타나서 한 놈이 「그는 명의니까 어디로 숨을까」라고 말하니 또 한 놈이 답하기를 「황의 위, 고의 아래로 들어가면 어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의원이 와 보고 병은 이미 황의 위, 고의 아래로 들어갔기 때문에 고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 강왕은 포악하고 음란하여 미인을 탐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절세미인인 시종 한빙의 아내 하씨를 발견하고는 강제로 후궁을 삼았다. 그후 아내를 빼앗긴 한빙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자, 하씨는 “시신을 한빙과 합장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격노한 강왕은 무덤을 서로 보이게 하되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으나 밤사이에 두 그루의 노나무가 각각 두 무덤 끝에서 나더니 열흘이 못되 아름드리가 되었다. 위로는 가지가 서로 얽히고 아래로는 뿌리가 맞닿았다. 그야말로 뜨거운 만남의 표현이었다. 나무 위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어 사람을 애처롭게 만들었다. 이 새를 한빙 부부의 넋이라 여겨, 그 나무를 상사수라고 했는데, 상사병(相思病)이란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고, 새는 원앙새라고 하였다.

고희(古稀) 稀 드물 희

70세.

☞고사 : 두보(杜甫)의 곡강(曲江) 시에 「술빚은 보통 가는 곳마다 있으니 결국 인생은 기껏 살아 본들 70세는 옛날부터 드물다.(酒債尋常行處有하니 人生七十古來稀라.)」란 승구 중 古 자와 稀 자만을 써서 「古稀」란 단어를 만들어 70세로 대신 쓴 것이다.

**債(빚 채) 尋(찾을 심)

ꄵ연령(年齡)을 나타내는 漢字語

지학(志學) : 공자는 <논어>에서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15세를 일컬음.

약관(弱冠) : 남자 나이 20세를 일컬음.

이립(而立) : 공자가 <논어>에서 30세가 되어 인생관이 섰다고 한 데서 나온 말. 30세를 일컬음.

불혹(不惑) : 공자가 <논어>에서 40세가 되어 사물의 이치에 의문 나는 점이 없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40세를 일컬음.

지명(知命) : 공자가 <논어>에서 50세가 되어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 데서 온 말. 50세를 일컬음.

이순(耳順) : 공자가 <논어>에서 60세가 되어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데서 나온 말. 60세를 일컬음.

화갑(華甲) : 화(華)자는 십(十)이 여섯 개에다 일(一)이 하나 있으므로 61세를 나타내며,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도 한다. 61세를 일컬음.

진갑(進甲) : 환갑보다 한 해 더 나아간 해란 듯이다. 62세를 일컬음.

고희(古稀) : 70세를 일컬음.

종심(從心) : 공자가 <논어>에서 70세가 되어 뜻대로 행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데서 나온 말. 70세를 일컬음.

희수(喜壽) : 희(喜) 자를 ‘칠’로도 썼기 때문에 喜壽는 ‘七 + 七’ 세 즉, 77세를 일컬음.

산수(傘壽) : 산(傘) 자를 ‘팔’로도 썼기 때문에 傘壽는 ‘八 + 八’ 세 즉, 88세를 일컬음.

미수(米壽) : 미(米) 자를 분해하면 ‘八 + 八’이 되기 때문에 米壽는 88세를 일컬음.

졸수(卒壽) : 90세를 일컬음.

백수(白壽) :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백(白) 즉 百에서 하나를 빼면 99세가 된다.

ꄵ결혼기념일(結婚記念日)을 나타내는 漢字語

지혼식(紙婚式) : 1주년                         상아혼식(象牙婚式) : 14주년

고혼식(藁婚式) : 2주년                         동혼식(銅婚式) : 15주년

당과혼식(搪菓婚式) : 3주년                    자기혼식(磁器婚式) : 20주년

혁혼식(革婚式) : 4주년                         은혼식(銀婚式) : 25주년

목혼식(木婚式) : 5주년                         진주혼식(眞珠婚式) : 30주년

화혼식(花婚式) : 6주년                         산호혼식(珊瑚婚式) : 35주년

전기기구혼식(電氣器具婚式) : 8주년            벽옥혼식(碧玉婚式) : 40주년

도기혼식(陶器婚式) : 9주년                    홍옥혼식(紅玉婚式) : 45주년

석혼식(錫婚式) : 10주년                       금혼식(金婚式) : 50주년

강철혼식(鋼鐵婚式) : 11주년                   회혼식(回婚式) : 60주년

마혼식(麻婚式) : 12주년                       금강석혼식(金剛石婚式) : 75주년

곡돌사신(曲突徙薪) 突 갑자기 돌, 徙 옮길 사, 薪 섶나무 신

굴뚝을 구부리고 장작을 옮겨 화재를 예방함. 미연에 재앙을 방지함의 비유. {출전}<漢書>

곡수유상(曲水流觴) 觴 잔 상

삼월 삼짇날의 주연(酒宴). 빙 돌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고 마심.

★곡학아세(曲學阿世) 曲 굽을 곡, 阿 아첨할 아

학문을 굽히어 세속(世俗)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을 이르는 말. [출전]《史記》〈儒林傳〉

ꄨ어용학자(御用學者).

▷고사 : 한(漢)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B.C. 157~141)는 즉위하자 천하에 널리 어진 선비를 찾다가 산동(山東)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시인을 등용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90세의 고령이었으나 직언을 잘하는 대쪽같은 선비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사이비 학자들은 원고생을 중상비방(中傷誹謗)하는 상소를 올려 그의 등용을 극력 반대했으나 경제는 끝내 듣지 않았다. 당시 원고생과 함께 등용된 소장(小壯) 학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산동 사람으로 이름을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늙은이라고 깔보고 무시했지만 원고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학문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서 속설(俗說)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내버려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결국 사설(邪說)로 인해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말 것일세. 자네는 다행히 젊은데다가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란 말을 들었네. 그러니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 주기 바라네.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있어서는 안 되네.” 원고생의 말이 끝나자 공손홍은 몸둘 바를 몰랐다. 절조를 굽히지 않는 고매한 인격과 학식이 높은 원고생과 같은 눈앞의 태산북두(泰山北斗)를 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공손홍은 당장 지난날의 무례를 사과하고 원고생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골육상쟁(骨肉相爭)

뼈와 살이 서로 다툼. 같은 혈족끼리 싸우는 것.

ꄨ동족상잔(同族相殘)

골육지친(骨肉之親)

부자(父子)나 형제 같은 가까운 혈족. [출전]<呂氏春秋>

공곡족음(空谷足音) 谷 굴 곡

텅 빈 산중에 사람이 찾아왔을 때의 기쁨을 이르는 말. [출전]<莊子>

공리공론(空理空論)

쓸데없고 무익한 이론.

공명정대(公明正大)

마음이 공평하고 사심이 없으며, 밝고 바름.

공서양속(公序良俗) 俗 풍속 속

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감을 뜻함.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죽을 때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

공수방관(拱手傍觀) 拱 두 손 맞잡을 공, 傍 곁 방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 손을 맞잡은 채 곁에서 보고 있기만 함.

ꄉ수수방관(袖手傍觀)

공옥이석(攻玉以石) 攻 칠 공

옥을 가는 데 돌로써 함. 곧 천한 물건으로 귀한 물건을 수리함. [출전]<後漢書>

공자왈맹자왈(孔子曰孟子曰)

공자왈맹자왈 한다. 글방 선비들이 다만 孔孟의 전적(典籍)을 읽으며 그에 하등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空理空論만 일삼음을 보고하는 말.

공전절후(空前絶後)

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이나 이후에도 없을 것으로 생각함.

공중누각(空中樓閣) 空 빌 공, 樓 다랄 루, 閣 누각 각

공중에 떠 있는 누각[蜃氣樓(신기루)]이란 뜻. 곧 ① 내용이 없는 문장이나 쓸데없는 의론(議論). ② 진실성이나 현실성이 없는 일. ③ 허무하게 사라지는 근거 없는 가공의 사물. [출전]《夢溪筆談》

ꄨ과대망상(誇大妄想).

▷고사 : 송(宋)나라의 학자 심괄[沈括:호는 몽계옹(夢溪翁)]이 저술한 일종의 박물지(博物誌)인 《몽계필담(夢溪筆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등주(登州)는 사면이 바다에 임하여 봄과 여름철에는 저 멀리 하늘가에 성시누대(城市樓臺)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것을 해시(海市)라고 이른다.

登州四面臨海 春夏時 遙見空際 城市樓臺之狀 土人謂之海市(동주사면임해 춘하시 요견공제 성시루대지상 토인위지해시)

훗날 청(淸)나라의 학자 적호(翟灝)는 그의 저서《통속편(通俗篇)》에서 심괄이 이 글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언행이 허구에 찬 사람을 일컬어 ‘공중누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일을 인용한 것이다.

今稱言行虛構者 曰空中樓閣 用此事(금칭언행허구자 왈공중누각 용차사)

이처럼 ‘공중누각’이란 말은 이미 청나라 때부터 쓰여 왔으며, 심괄의 글 가운데 ‘해시’라는 것은 ‘신기루’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갈지친(瓜葛之親) 瓜 오이 과, 葛 칡 갈

오이나 칡덩굴이 서로 얽히듯이 인척간(姻戚間)에 서로 관계가 맺어져 있음을 비유한 말.

과감지기(果敢之氣) 敢 감히 감

날카롭고 강한 기질. [출전]<王安石>

★과대망상(誇大妄想)

현재의 사실을 턱없이 과장하여 사실인 양 믿는 생각.

과목불망(過目不忘)

한 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음. [출전]<晋書>

과유불급(過猶不及) 過 지날 과, 猶 같을 유 及 미칠 급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뜻. [출전]《論語》〈先進扁〉

ꄵ조장(助長).

▷고사 : 어느 날 제자인 자공(子貢:B.C. 520~456)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합니까?” 공자는 두 제자를 비교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자장은 아무래도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겠군요?” 자공이 다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 공자는 중용[中庸: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중정(中正)함]의 도(道)를 말했던 것이다.

ꄲ자공 :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위(衛)나라 출신으로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 정치에 뛰어난 후에 노(魯)나라‧위(衛)나라의 재상을 역임함. 제자 중에서 제일 부자였으므로, 경제적으로 공자를 도왔다고 함.

자하 :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공문 십철의 한 사람으로, 시문(詩文)에 뛰어난 후에 위(魏)나라 문후(文侯)의 스승이 됨. 공문 중에서 후세에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제자로, 공자가 산정(刪定)한 《시경(詩經)》《역경(易經)》《춘추(春秋)》를 전했다고 함.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참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는다는 말로, 의심받는 일을 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뜻.

과전이하(瓜田李下) 瓜 오이 과, 李 오얏 리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출전] 《列女傳》, 《文選》〈樂府篇〉

ꄦ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ꄉ과전리 이하관(瓜田履 李下冠)

▷고사 : 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열왕(烈王) 6년(B.C. 370),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위왕이 즉위한지 9년이나 되었지만 간신 주파호(周破湖)가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왔던 탓에 나라꼴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를 보다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오니 그를 내치시고 북곽(北郭)선생과 같은 어진 선비를 등용하시오소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파호는 우희와 북곽 선생은 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우희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위왕은 마침내 우희를 옥에 가두고 관원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했으나 이미 주파호에게 매수된 관원은 억지로 죄를 꾸며내려고 했다. 그러나 위왕은 그 조사 방법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왕이 우희를 불러 직접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신첩(臣妾)은 이제까지 한마음으로 전하를 모신 지 10년이 되었사오나 오늘날 불행히도 간신들의 모함에 빠졌나이다. 신첩의 결백은 청천 백일(靑天白日)과 같사옵니다. 만약 신첩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듯이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과 신첩이 옥에 갇혀 있는데도 누구 하나 변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신첩의 부덕한 점이옵니다. 이제 신첩에게 죽음을 내리신다 해도 더 이상 변명치 않겠사오나 주파호와 같은 간신만은 내쳐 주시오소서.” 위왕은 우희의 충심 어린 호소를 듣고 이제까지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위왕은 당장 주파호 일당을 삶아 죽이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았다.

과화존신(過化存神)

성인(聖人)이 지나가는 곳에는 백성이 그 덕(德)에 화(化)하고, 성인이 있는 곳에는 그 덕화(德化)가 신묘(神妙)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말. [출전]<孟子>

관포지교(管鮑之交) 管 대롱 관, 鮑 절인 고기 포

관중(管仲)과 포숙아(鮑淑牙) 사이와 같은 사귐이란 뜻으로, 시세(時勢)를 떠나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 말. [출전]《史記》〈管仲列傳〉, 《列子》〈力命篇〉

ꄉ관포교(管鮑交).

ꄨ문경지교(刎頸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 단금지교(斷金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 교칠지교(膠漆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ꄑ시도지교(市道之交). 

▷고사 : 춘추 시대 초엽, 제(濟)나라에 관중(?~B.C. 645)과 포숙아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죽마 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관중이 공자(公子) 규(糾)의 측근(보좌관)으로, 포숙아가 규의 이복 동생인 소백(小白)의 측근으로 있을 때 공자의 아버지 양공(襄公)이 사촌 동생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시해되자(B.C. 686) 관중과 포숙아는 각각 공자와 함께 이웃 노(魯)나라와 거(莒)나라로 망명했다. 이듬해 공손무지가 살해되자 두 공자는 군위(君位)를 다투어 귀국을 서둘렀고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정적이 되었다. 관중은 한때 소백을 암살하려 했으나 그가 먼저 귀국하여 환공(桓公:B.C. 685~643)이라 일컫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아울러 관중의 압송(押送)을 요구했다. 환공이 압송된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제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시오소서.”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이윽고 재상이 된 관중은 과연 대정치가다운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倉廩實則 知禮節(창름실즉 지예절)]’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 知榮辱(의식족즉 지영욕)]’고 한 관중의 유명한 정치철학이 말해 주듯, 그는 국민 경제의 안정에 입각한 덕본주의(德本主義)의 선정을 베풀어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첫 패자로 군림케 하였다. 이같은 정치적인 성공은 환공의 관용과 관중의 재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 출발점은 역시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에 있었다. 그래서 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나는 젊어서 포숙아와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었으나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한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나를 용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成敗)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는 물러나곤 했었지만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淑牙].’”

관개상망(冠蓋相望) 冠 갓 관, 蓋 덮을 개, 望 바랄 망

수레 덮개를 서로 바라본다는 뜻으로, 앞뒤의 차가 서로 잇달아 왕래(往來)가 그치지 않음을 이름. [출전]<戰國策>

관과지인(觀過知仁)

사람의 과실은 군자와 소인에 따라 판이하여, 군자의 과오는 관대하고 냉혹하고 잔인한 것이므로, 인(仁)과 불인(不仁)은 곧 알 수 있다는 말. [출전]<論語>

관대장자(寬大長者) 寬 너그러울 관

너그럽고 덕망이 있어 여러 사람의 위에 설 수 있는 사람. [출전]<漢書>

관맹상제(寬猛相濟) 猛 사나울 맹, 濟 건널 제

정사(政事)를 해 나가는 데 관용과 위엄이 조포(粗暴)에 떨어지지 않고 우유(優柔)에 흐르지 않음을 이름. [출전]<左傳>

관슬지기(貫虱之技) 虱 이 슬

이를 쏘아 뚫는 기술. 곧, 궁술(弓術)의 묘(妙).

관인대도(寬仁大度) 度 법도 도

너그럽고 어질며 도량이 넓음. [출전]<史記>

관자여도(觀者如堵) 堵 담 도

구경하는 이가 많아 마치 담장처럼 죽 줄지어 늘어서 있음. [출전]<禮記>

관저지화(關雎之化) 關 빗장 관, 雎 물수리 저

관저(官邸)는 시경(詩經)의 첫 시(詩)로, 저구(雎鳩)의 암수가 서로 유별(有別)한 것처럼 문왕(文王)의 후비(后妃)가 덕(德)이 있음을 노래한 것. 부부의 도(道)가 행하여져 가정이 잘 다스려짐을 이름.

관중규표(管中窺豹) 窺 엿볼 규, 豹 표범 표

보는 시야가 좁고 작음. [출전]<魏志>

괄목상대(刮目相對) 刮 비빌 괄, 對 마주 볼‧대할 대

눈을 비비고 본다는 뜻. 곧 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전에 비하여 딴 사람으로 볼만큼 부쩍 는 것을 일컫는 말. [출전]《三國志》〈吳志 呂蒙傳注〉

▷고사 : 삼국시대(三國時代) 초엽, 오왕(吳王) 손권(孫權:182~252)의 신하 장수에 여몽(呂蒙)이 있었다. 그는 무식한 사람이었으나 전공을 쌓아 장군이 되었다. 어느 날 여몽은 손권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전지(戰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手不釋卷(수불석권)]’ 학문에 정진했다. 그 후 중신(重臣) 가운데 가장 유식한 재상 노숙(魯肅)이 전지 시찰 길에 오랜 친구인 여몽을 만났다. 그런데 노숙은 대화를 나누다가 여몽이 너무나 박식해진 데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여보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자네는 이제 ‘오나라에 있을 때의 여몽이 아닐세[非吳下阿蒙]’그려.”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무릇 선비란 헤어진지 사흘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대면할[刮目相對]’ 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이라네.”

ꄲ여몽 : 재상 노숙이 병사(病死)하자 여몽은 그 뒤를 이어 오왕 손권을 보필, 국세(國勢)를 신장하는데 힘썼음. 여몽은 촉(蜀) 땅을 차지하면 형주[荊州:호남성(湖南省)]를 오나라에 돌려주겠다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유비(劉備)의 촉군(蜀軍)을 치기 위해 손권에게 은밀히 위(魏)나라의 조조(曺操)와 화해‧제휴할 것을 진언, 성사시키고 기회를 노렸음. 그러던 중 형주를 관장하고 있던 촉나라의 명장 관우(關羽)가 중원(中原)으로 출병하자 여몽은 이 때를 놓이지 않고 출격하여 관우의 여러 성(城)을 하나하나 공략(攻略)한 끝에 마침내 관우까지 사로잡는 큰 공을 세움으로써 오나라의 백성들로부터 명장으로 추앙을 받았음.

광언기어(狂言綺語) 狂 미칠 광, 綺 비단 기

도리에 맞지 않는 말과 교묘하게 겉만 꾸민 말. 소설(小說) 따위를 일컬음. [출전]<白居易>

광음여전(光陰如箭) 陰 응달 음, 箭 화살 전

세월이 화살처럼 빠름을 비유.

광일미구(曠日彌久) 曠 빌‧멀 광, 彌 많을 미, 久 오랠 구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낸다는 뜻. [출전]《戰國策》〈趙策〉, <韓非子>

▷고사 : 전국 시대 말엽,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일이다.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은 혜문왕은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3개 성읍(城邑)을 할양한다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田單)의 파견을 요청했다. 전단은 일찍이 연나라의 침략군을 화우지계(火牛之計)로 격파한 명장인데 조나라의 요청에 따라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자 조나라의 명장 조사(趙奢)는 재상 평원군(平原君)에게 항의하고 나섰다. “아니, 조나라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제게 맡겨 주신다면 당장 적을 격파해 보이겠습니다. ”평원군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나라와 연나라는 원수간이긴 합니다만 전단은 타국인 조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강대한 조나라는 제나라의 패업(霸業)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단은 조나라 군사를 장악한 채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낼 것입니다[曠日彌久].’ 두 나라가 병력을 소모하여 피폐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평원군은 조사의 의견을 묵살한 채 미리 정한 방침대로 전단에게 조나라 군사를 맡겨 연나라 침공군과 대적케 했다. 결과는 조사가 예언한 대로 두 나라는 장기전에서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ꄲ화우지계 : 쇠뿔에 칼을 잡아매고 꼬리에 기름 바른 갈대 다발을 매단 다음 그 소떼를 적진으로 내모는 전술.

광풍제월(光風霽月) 霽 갤 제

해가 비칠 때 상쾌하게 부는 바람과 비 갠 하늘에 뜬 맑은 달. 마음속이 산뜻하게 집착이 없으며 매우 상쾌하고 명쾌함의 비유. [출전]<宋史>

괴력난신(怪力亂神) 怪 기이할 괴, 亂 어지러울 난(란)

괴이(怪異)한 것, 만용(蠻勇), 패란(悖亂) 및 귀신의 일컬음. 이성(理性)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존재의 비유. [출전]<論語>

교각살우(矯角殺牛) 矯 바로잡을 교, 殺 죽일 살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는 말로, 곧 작은 일에 힘쓰다가 큰일을 망친다는 뜻.

ꄉ교왕과직(矯枉過直)

ꄜ빈대 잡으려다 초가 산간 다 태운다.

교부초래(敎婦初來) 婦 며느리 부

신부의 교육은 시집 왔을 때에 바로 하라는 말. [출전]<顔氏家訓>

교송지수(喬松之壽) 喬 높을 교, 壽 목숨 수

교는 왕자진(王子晉), 송은 적송자(赤松子). 모두 불사(不死)의 선인(仙人)이므로 장생(長生)의 뜻으로 쓰임.

교언영색(巧言令色) 巧 교묘할 교

발라 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라는 뜻으로,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하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표정을 이르는 말. [출전]《論語》〈學而篇〉

ꄑ강의목눌(剛毅木訥), 성심성의(誠心誠意).

ꄵ눌언민행(訥言敏行).

▷고사 : 공자[孔子:이름은 구(丘).B.C.551~479]는 아첨꾼에 대해 《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라 맞추는 말과 아랑거리는 태도에는 ‘인(仁)’이 적다. [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 선의인)] 말재주가 교묘하고 표정을 보기 좋게 꾸미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뒤집어서 또 공자는 〈자로편(子路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직 의연하고 질박 어눌한 사람은 ‘인’에 가깝다. [剛毅木訥 近仁(강의목눌 근인)]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은 ‘인(덕을 갖춘 군자)’에 가깝다는 뜻.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라도 ‘인(덕을 갖춘 군자)’ 그 자체는 아니라고 공자는 〈옹야편(擁也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질 빈빈한 연후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 [文質彬彬 然後君子(문질빈빈 연후군자)] 문(文:형식)과 질(質:실질)이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군사라는 뜻이다.

교왕과정(矯枉過正) 喬 높을 교, 枉 굽을 왕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다 오히려 지나쳐 더 잘못됨.

ꄨ교왕과직(矯枉過直).

교왕과직(矯枉過直)

굽을 것을 바르게 고치려다가 지나치게 곧게 함.

교외별전(敎外別傳) 傳 전할 전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해 줌.

ꄨ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 심심상인(心心相印)

▷고사 : 경전(經典) 바깥의 특별한 전승(傳承), 언어나 문자에는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뚫어보고 불경을 얻는다.(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 直指 : ‘곧바로 가리킨다.’ 지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며 여러 군말 없이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는 마음의 전형.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성(聖)을 절(絶)하고 지(智)를 버리면 민리(民利)가 백배(百倍)하리라.”고 하여, 지식이니 학문이니 하는 것의 불필요함을 말하였다. 그러나 딱한 것은 지식이 불필요하다고 아는 것도 하나의 ‘앎’이요, 후세 사람들이 도덕경이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이 노자의 사상을 알 수 있게 마련이니, 노자의 말은 오히려 지(知) 자체를 반성한 지의 지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사람은 그 무지조차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과 다름직도 하다고 하였거니와, 노자는 지의 불필요를 하는 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듯이, 지가 불필요함을 지로써 전하는 것이라 하겠다. 결국 지(知) 이상의 것도 지를 통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문제) 밑줄 친 부분과 가장 가까운 뜻을 지닌 것은?

①身言書判   ②巧言令色   ③言中有骨   ④言過其實   ⑤敎外別傳

교주고슬(膠柱鼓瑟) 膠 아교 교, 柱 기둥 주, 鼓 북 고, 瑟 큰 거문고 슬

거문고의 기러기 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 또는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

교천언심(交淺言深) 淺 얕을 천, 深 깊을 심

교재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서로 심중을 털어놓고 이야기함. [출전]<戰國策>

교학상장(敎學相長)

남을 가르쳐 주거나 스승으로부터 배우거나 나의 학업을 증진시킨다는 말. [출전]<禮記>

▷고사 :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왕된 자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임금 노릇을 함에 교와 학을 우선으로 삼았다. 비록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진 연후에야 막힘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힘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서로 도와서 자기의 학업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구년면벽(九年面壁) 壁 벽 벽

달마 대사(達磨大師)가 숭산(嵩山) 소림굴(小林窟)에서 벽을 향하여 구 년 동안 앉아 참선(參禪)한 다음 비로소 도(道)를 깨달았다는 고사(故事).

구년지수(九年之水)

옛날 요(堯) 임금 때 구 년 동안 홍수가 계속하였음을 이름.

구미속초(狗尾續貂) 狗 개 구, 續 이을 속, 貂 담비 초

개꼬리를 담비의 꼬리에 잇는다.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 또는 쓸만한 인격자가 없어 비열한 고관(高官)에 등용함.

구밀복검(口蜜腹劍) 蜜 꿀 밀, 腹 배 복, 劍 칼 검

입 속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뜻으로, 말로는 친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은근(慇懃)히 해칠 생각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출전]《新唐書》

ꄉ소리장도(笑裏藏刀), 소중유검(笑中有劍), 소면호(笑面虎)

ꄨ면종복배(面從腹背) :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 배반함.

  경이원지(敬而遠之) : 친절한 체하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음.

  양두구육(羊頭狗肉) : 양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

  표리부동(表裏不同) : 겉과 속마음이 같지 않다.

ꄜ등치고 간 내먹는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웃고 사람 친다.)

▷고사 : 당(唐)나라 현종(玄宗: 712~756) 후기에 이림보(李林甫)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태자 이하 그 유명한 무장(武將) 안록산(安祿山)까지 두려워했던 전형적인 궁중 정치가(宮中政治家)였다. 뇌물로 환관과 후궁들의 환심을 사는 한편 현종에게 아첨하여 마침내 재상이 된 그는, 당시 양귀비(楊貴妃)에게 빠져 정사(政事)를 멀리하는 현종의 유흥을 부추기며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만약 바른말을 하는 충신이나 자신의 권위에 위협적인 신하가 나타나면 가차없이 제거했다. 그런데 그가 정적을 제거할 때에는 먼저 상대방을 한껏 추켜 올린 다음 뒤통수를 치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수법을 썼기 때문에 특히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림보를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림보는 ‘입으로 꿀 같은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이 들어 있다[口蜜腹劍].’”

ꄲ궁중 정치 : 궁정(宮廷)의 귀족(貴族) 또는 궁정의 대신(大臣)에 의해 행하여지는 정치.

구사일생(九死一生)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목숨을 건짐.

구상유취(口尙乳臭) 尙 오히려 상, 乳 젖 유, 臭 냄새 취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말로, 유치함을 형용하는 말.

ꄜ이마빼기에 피도 안 말랐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나이 오십 줄에 들어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입에서 젖내 나는 년을 집구석으로 끌어들이고 지랄을 버리는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하슈?……<廉想涉, 三代>

☞우리 집에서 새 며느리를 맞는다고 야단법석을 하며 아직도 입에서 젖내가 제대로 가시지 못한, 열 세살 먹은 꼬맹이에 관대(冠帶)를 입히고 사모(紗帽)를 씌워 나귀등에 올려 앉히고 논틀을 건느고 산모롱이를 돌아 마을 앞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 이와 같은 三十里 쯤이나 갔을 까. 역시 어떤 農村 조그마한 초가집 앞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李熙昇, 隨筆>

☞갑주를 갖추고 전문에 나서며 원수를 불러 가로되 네 한갓 혈기만 믿고 우리를 대적하려 하니 이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니라. 네 빨리 나와 나를 대적하라. 이때에 원수 의기 양양하여 웅성하고 내다라 싸워 일합이 못하여 거의 한담을 잡게 되었더니 적진이 또 쟁을 쳐 싸움을 거두거늘……<劉忠烈傳>

☞‘어디 그러면 한 번 겨뤄 보자’ 샛바람은 제 말마따나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벽에 끌러서 걸어둔 제 환도를 떼어 든다. ‘허, 이놈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 견디어 봐라’……<玄鎭健, 無影塔>

☞말을 삼가라? 나는 노골적이다! 너희 놈들처럼 뒷구멍으로 우물쭈물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애는 못 데려갈 줄 아슈. -이게 원 하룻강아지 범 무서워 할 줄 모른다드니! 설사 내가 애를 찾으러 왔다 하자. 그렇드래두 그애 하나쯤은 내 주는 게 예의가 아니냐? 내가 누구라는 걸 알면 말이다!<黃順元, 人間接木>

구십춘광(九十春光)

봄의 석 달 동안.

구여현하(口如懸河) 懸 매달 현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

ꄉ구약현하(口若懸河)

ꄨ청산유수(靑山流水) : 푸른 산에서 물 흐르듯이 말을 술술 잘함.

ꄜ말 잘하기는 소진 장의다.

  소장(蘇張)의 혀.(蘇陳張儀)

▷고사 : 진(晉)나라 때 곽상(郭象)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비범하고 어떤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 이치를 밝히기를 좋아하였다. 또한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사상을 즐기면서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학자였다. 당시 그에 게 여러 차례 관직에 나갈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고사(固辭)하고 한가롭게 살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특히 남들과 여러 사상을 이야기하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는 여러 사람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치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설명했고 아울러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였다. 왕연(王練)이 이르기를 ‘곽상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흐르는 물이 큰 물줄기로 쏟아져 마르지 않는 것과 같다’며 칭찬하였다.

구우일모(九牛一毛) 牛 소 우, 毛 털 모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서 뽑은 한 개의 (쇠)털이라는 뜻으로, 많은 것 중에 가장 적은 것의 비유. [출전] ≪漢書≫ <報任安書>, ≪文選≫ <司馬遷 報任少卿書>

ꄉ구우모(九牛毛)

ꄨ창해일속(滄海一粟) : 넓고 큰 바다에 작은 좁쌀. 넓고 넓은 가운데 하찮은 물건 하나.

 창해일적(滄海一滴), 대해일적(大海一滴) : 넓고 큰 바다에 물방울 하나.

ꄜ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 뽑기다.

ꄵ인생조로(人生朝露), 중석몰촉(中石沒鏃)

▷고사 : 한(漢)나라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B.C. 99) 5000의 보병을 이끌고 흉노(匈奴)를 정벌하러 나갔던 이릉(李陵:?~B.C. 72) 장군은 열 배가 넘는 적의 기병을 맞아 초전 10여 일간은 잘 싸웠으나 결국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듬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난전(亂戰)중에 전사한 줄 알았던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하여 후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안 무제는 크게 노하여 이릉의 일족(一族)을 참형에 처하라고 엄명했다. 그러나 중신을 비롯한 이릉의 동료들은 침묵 속에 무제의 안색만 살필 뿐 누구 하나 이릉을 위해 변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를 분개한 사마천(司馬遷:B.C. 135?~93?)이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사마천은 지난날 흉노에게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던 이광(李廣) 장군의 손자인 이릉을 평소부터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국난(國難)에 임할 용장(勇將)’이라고 굳게 믿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사가(史家)로서의 냉철한 눈으로 사태의 진상을 통찰하고 대담하게 무제에게 아뢰었다. “황공하오나 이릉은 소수의 보병으로 오랑캐의 수만 기병과 싸워 그 괴수를 경악케 하였으나 원군은 오지 않고 아군 속에 배반자까지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패전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하오나 끝까지 병졸들과 신고(辛苦)를 같이한 이릉은 인간으로서 극한의 역량을 발휘한 명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옵니다. 그가 흉노에게 투항한 것도 필시 훗날 황은(皇恩)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으로 사료되오니, 차제에 폐하께서 이릉의 무공을 천하에 공표하시오소서.” 무제는 진노하여 사마천을 투옥(投獄)한 후 궁형(宮刑)에 처했다. 세인(世人)은 이 일을 가리켜 ‘이릉의 화[李陵之禍]’라 일컫고 있다. 궁형이란 남성의 생식기를 잘라 없애는 것으로 가장 수치스런 형벌이었다. 사마천은 이를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알리는 글[報任安書]’에서 ‘최하급의 치욕’이라고 적고, 이어 착잡한 심정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법에 따라 사형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한낱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니 나와 같은 존재는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나? 그리고 세상 사람들 또한 내가 죽는다 해도 절개를 위해 죽는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나쁜 말하다가 큰 죄를 지어서 어리석게 죽었다고 여길 것이네.” 사마천이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살아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사마천은 태사령(太史令)으로 봉직했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이 임종시(B.C. 122)에 ‘통사(通史)를 기록하라’고 한 유언에 따라《사기(史記)》를 집필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사기》를 완성하기 전에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몸이었다. 그로부터  2년후에 중국 최초의 사서(史書)로서 불후(不朽)의 명저(名著)로 꼽히는 《사기》130여권이 완성(B.C. 97)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ꄲ태사령 : 조정(朝廷)의 기록‧천문‧제사 등을 맞아보던 관청의 관리. 사관(史官).

  사마천 : 전한의 역사가. 지는 자장(子長). 경칭은 태사공(太史公). 젊었을 때 전국 각처를 주유(周遊)하며 전국 시대 제후(諸侯)의 기록을 수집 정리함. 기원전 104년 공손경(公孫卿)과 함께 태초력(太初曆)을 제정하여 후세 역법(曆法)의 기틀을 마련함. 아버지 사마담(史馬談)의 뒤를 이어 태사령(太史令)이 됨. 흉노(匈奴) 토벌 중 포로가 되어 투항한 이릉(李陵)장군을 변호하다가 무제(武帝)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을 받음. 기원전 97년 불후의 명저《사기》130권을 완성함. (B.C. 135?~93?)

구이지학(口耳之學)

들은 풍월로 아무런 연구성이 없는 천박한 학문.

구절양장(九折羊腸) 折 꺾을 절, 腸 창자 장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 험하고 꼬불꼬불한 산길. 길이 매우 험한 것. 또는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

구정대려(九鼎大呂) 鼎 솥 정, 呂 음률 려(여)

하(夏)나라 우왕(禹王) 때 구주(九州), 곧 중국 전역으로부터 구리를 바치게 하여 주조한 아홉 개의 솥과, 주(周)나라 종묘(宗廟)의 대려(大呂) 곡조에 맞는 큰 종(鐘). 귀중한 것, 중한 지위, 명망 등의 비유. [출전]<史記>

구화지문(口禍之門) 禍 재화 화

입은 재앙의 문. 말을 삼가도록 경계.

국사무쌍(國士無雙) 雙 쌍 쌍

나라 안에 견줄 만한 자가 없는 인재라는 뜻으로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을 일컫는 말.  [출전]《史記》〈淮陰侯列傳〉

ꄨ일세지웅(一歲之雄) : 한 시대의 영웅이라는 말로 그 시대에는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

▷고사 : 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에 의해 진나라가 멸망한 한왕 원년(元年:B.C. 206)의 일이다. 당시 한군(漢軍)에는 한신(韓信)이라는 군관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초군(楚軍)에 속해 있었으나 아무리 군략(軍略)을 헌책(獻策)해도 받아 주지 않는 항우에게 실망하여 초군을 이탈, 한군에 투신한 자이다. 그 후 한신은 우연한 일로 재능을 인정받아 군량을 관리하는 치속도위(治粟都尉)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직책상 승상인 소하(蕭何)와도 자주 만났다. 그래서 한신이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안 소하는 그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무렵, 고향을 멀리 떠나온 한군은 향수에 젖어 도망치는 장병이 날로 늘어나는 바람에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 도망병 가운데는 한신도 끼어 있었다. 영재(英才)를 자부하는 그는 치속도위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하는 한신이 도망갔다는 보고를 받자 황급히 말에 올라 그 뒤를 쫓았다. 그 광경을 본 장수가 소하도 도망가는 줄 알고 유방에게 고했다. 그러자 오른팔을 잃은 듯이 낙담한 유방은 노여움 또한 컸다. 그런데 이틀 후 소하가 돌아왔다. 유방은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노한 얼굴로 도망친 이유를 물었다. “승상(丞相)이란 자가 도망을 치다니, 대체 어찌된 일이오?”

“도망친 것이 아니오라, 도망친 자를 잡으러 갔던 것이옵니다.” “그래, 누구를?” “한신이옵니다.” “뭐, 한신? 이제까지 열 명이 넘는 장군이 도망쳤지만, 경은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뒤쫓은 적이 있소?” “이제까지 도망친 제장(諸將) 따위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사오나, 한신은 실로 ‘국사무쌍’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옵니다. 만약 전하께오서 이 파촉(巴蜀)의 땅만으로 만족하시겠다면 한신이란 인물은 필요없사옵니다. 하오나 동방으로 진출해서 천하를 손에 넣는 것이 소망이시라면 한신을 제쳐놓고는 함께 군략을 도모할 인물이 없는 줄로 아나이다.” “물론, 과인은 천하 통일이 소망이오.” “하오면 한신을 활용하시오소서.” “짐은 한신이란 인물을 모르지만 경이 그토록 천거하니 경을 위해 그를 장군으로 기용하겠소.” “그 정도로는 활용하실 수 없사옵니다.” “그러면 대장군에 임명하겠소.” 이리하여 한신은 대장군이 되었다. 즉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국천척지(跼天蹐地) 跼 구부릴 국, 蹐 살금살금 걸을 척

높은 하늘 아래에서도 등을 굽히고 너른 대지에서도 살금살금 걸음. 몹시 두려워하여 움츠림. 또, 황송하여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감의 비유. [출전]<陸機>

★군계일학(群鷄一鶴) 鷄 닭 계, 鶴 학 학

많은 닭 중에 한 마리의 학. 평범한 사람 가운데 뛰어난 사람. 뛰어난 인물. 백미.

ꄉ학립계군(鶴立鷄群) : 학이 닭이 많은 데 선다. 눈에 띠게 훌륭함.

  출중(出衆), 출군(出群), 출등(出等), 출범(出凡), 출인(出人)

  발군(拔群), 절륜(絶倫)

ꄨ백미(白眉) : 유비(劉備)의 신하 중 마량(馬良)의 다섯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흰 눈썹을 가진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는 고사(故事).

  철중쟁쟁(鐵中錚錚) : 쇠 중에서 소리가 가장 맑다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중 특별히 뛰어난 사람.

ꄑ인중지말(人中之末) : 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뒤떨어지고 못난 사람.

ꄜ닭이 천(千)이면 봉(鳳)이 한 마리.

군맹무상(群盲撫象) 群 무리 군, 盲 소경 맹, 撫 어루만질 무, 象 코끼리 상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는 뜻. 곧 ①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의 비유. ② 범인의 좁은 식견의 비유. [출전]《涅槃經(열반경)》

ꄉ군맹모상(群盲摸象). 군맹평상(群盲評象).

▷고사 :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어느 날 맹인들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들을 궁중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코끼리를 끌어오게 한 다음 소경들에게 만져 보라고 했다. 얼마 후 경면왕은 소경들에게 물었다. “이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느냐?” 그러자 소경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예, 알았나이다.” “그럼, 어디 한 사람씩 말해 보아라.” 소경들의 대답은 각기 자기가 만져 본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달랐다. “무와 같사옵니다.” (상아) “키와 같나이다.” (귀) “돌과 같사옵니다.” (머리) “절굿공 같사옵니다.” (코) “널빤지와 같사옵니다.” (다리) “독과 같사옵니다.” (배) “새끼줄과 같사옵니다.” (꼬리)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비유한 것이고, 소경들은 밝지 못한 모든 중생(衆生)들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중생들이 석가모니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즉 모든 중생들에게는 각기 석가모니가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군분유취(群分類聚) 聚 모일 취

서로 다른 것은 분류하고, 비슷한 것은 모음. [출전]<易經>

군웅할거(群雄割據) 雄 수컷 웅, 割 나눌 할, 據 의거할 거

많은 영웅들이 각지에서 자리잡고 세력을 규합하여 대립하는 것.

군의만복(群疑滿腹) 疑 의심할 의, 腹 배 복

많은 사람이 다 의심을 품고 있음. [출전]<後出師表>

군자삼락(君子三樂)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는 말. [출전]《孟子》〈盡心篇〉

ꄦ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

ꄨ익자삼요(益者三樂)

ꄑ손자삼요(損者三樂)

▷고사 : 전국 시대, 철인(哲人)으로서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B.C. 372?~289?)는 《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君子有三樂(군자유삼락)]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父母具存 兄弟無故(부모구존 형제무고)]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怍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득천하영재 이교육지)] 한편 공자는 《논어(論語)》〈계시편(季시篇)〉에서 ‘손해 되는 세 가지 좋아함[損者三樂(손자삼요)]’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교락(驕樂:방자함을 즐김), 일락(逸樂:놀기를 즐김), 연락(宴樂:주색을 즐김).

군자표변(君子豹變) 豹 표범 표

군자는 잘못인줄 알면 곧 고쳐서 선(善)으로 옮김이 뚜렷하다는 말. 현재에는 절조 없이 생각이 금세 바뀌는 데에도 씀. [출전]<易經>

궁구물박(窮寇勿迫) 寇 도둑 구, 迫 닥칠 박

궁지에 빠진 적을 추격하지 말라는 뜻.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해를 입게 된다는 말. [출전]<孫子>

궁년누세(窮年累世) 累 묶을 누(루)

자기의 한평생과 자손 대대. [출전]<荀子>

궁절전진(弓折箭盡) 弓 활 궁, 折 꺾을 절, 箭 화살 전

활이 꺾이고 화살이 다함. 술계(術計)가 다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음. [출전]<傳燈錄>

궁조입회(窮鳥入懷) 窮 다할 궁, 懷 품을 회

쫓긴 새가 품안에 날아든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와서 의지함의 비유. [출전]<顔氏家訓>

권권복응(拳拳服膺) 拳 주먹 권, 服 옷 복, 膺 가슴 응

항상 마음속에 받들어 지녀 잊지 않음.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나 말을 늘 마음에 새기어 소중히 지킴. [출전]<中庸>

권모술수(權謀術數) 權 저울추 권, 謀 꾀할 모, 術 꾀 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는 교묘한 술책.

권불십년(權不十年)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한다. 또는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는다.

ꄉ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열흘 붉은 꽃이 없다.

★권선징악(勸善懲惡) 勸 권할 권, 懲 혼날 징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한다. 착한 일을 권하고 나쁜 일을 벌함. [출전]<漢書>

권출어일(權出於一)

권위는 단 한 사람 군주로부터 나온다는 말. [출전]<荀子>

권토중래(捲土重來) 捲 거둘 권, 重 무거울‧거듭할 중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공격(도전)해 온다는 말. [출전] 두목(杜牧)의 시〈題烏江亭〉

ꄦ권토중래(卷土重來)

ꄨ사회부연(死灰復燃) : 다 탄 재가 다시 불붙었다.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세력을 다시 잡음.

ꄵ선즉제인(先則制人), 건곤일척(乾坤一擲), 사면초가(四面楚歌).

▷고사 : 이 말은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시〈제오강정(題烏江亭)〉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勝敗兵家不可期(승패병가불가기)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으니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싸고 부끄럼을 참음이 남아로다

江東子弟俊才多(강동자제준재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증래미가지)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 없네 

오강[烏江:안휘성(安徽省)내]은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B.C. 232~202)가 스스로 목을 쳐서 자결한 곳이다. 한왕 유방(劉邦)과 해하(垓下:안휘성 내)에서 펼친 ‘운명과 흥망을 건 한판 승부[乾坤一擲]’에서 패한 항우는 오강으로 도망가 정장(亭長)으로부터 “강동(江東:江南, 양자강 하류 이남의 땅)으로 돌아가 재기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항우는 “8년 전(B.C. 209) 강동의 8000여 자제와 함께 떠난 내가 지금 혼자 ‘무슨 면목으로 강을 건너 강동을 돌아가[無面 江東]’ 부형을 대할 것인가”라며 파란 만장한 31년의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두목은 오강의 객사(客舍)에서 일세의 풍운아(風雲兒),-단순하고 격한 성격의 항우,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는 장사 항우, 사면초가(四面楚歌)속에서 애인 우미인(虞美人)과 헤어질 때 보여 준 인간적인 매력도 있는 항우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강동의 부형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으면 강동은 준재가 많은 곳이므로 권토중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자결한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이 시를 읊었다. 이 시는 항우를 읊은 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은 ‘강동의 자제는 항우를 위해 권토중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읊었고, 사마천(司馬遷)도 그의 저서《사기(史記)》에서 ‘항우는 힘을 과신했다’고 쓰고 있다.

귀거래(歸去來) 歸 돌아갈 귀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감.

ꄵ단오(端午)의 유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때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志操)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에 투신 자살을 하였는데 그 날이 바로 음력 5월 5일이었다. <열아세시기>에는 이날 밥을 수뢰(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에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귀곡추추(鬼哭啾啾) 哭 울 곡, 啾 소리 추

뜬귀신의 울음소리가 나는 모양. 으스스하고 무시무시한 모양. [출전]<杜甫>

귀모토각(龜毛兎角) 龜 거북 귀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 실제로 있을 턱이 없는 것의 비유.

귀이천목(貴耳賤目)

듣기를 잘 하고, 함부로 보지 말라는 뜻.

귀인천기(貴人賤己) 賤 천할 천

군자는 인(仁)과 용서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만사에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높인다는 뜻. [출전]<禮記>

규구준승(規矩準繩) 規 법 규, 矩 곱자 구, 準 수준기 준, 繩 줄 승

컴퍼스와 자 및 수준기(水準器)와 먹줄. 곧, 사물의 준칙(準則), 표준․법칙 등의 비유. [출전]<孟子>

귤중지락(橘中之樂) 橘 귤나무 귤

장기나 바둑을 두는 즐거움.

극기복례(克己復禮) 克 이길 극, 復 돌아올 복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쫓음.

▷고사 : 「안연(顔淵)이 어느 날 공자(孔子)에게 인(仁)에 관하여 물었는데,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 만일 사람이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온다면 그 영향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인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인은 제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남의 힘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인을 실천하는 조목은 무엇입니까?”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안회가 어리석고 불민합니다만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평생 힘쓰겠습니다.”(顔淵門仁한대 子曰 “克己復禮爲仁하고, 非禮勿廳하고, 非禮勿言하고, 非禮勿動하라.”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니이다.) [출전]《論語≫<顔淵篇>

극벌원욕(克伐怨欲) 伐 칠 벌, 怨 원망할 원, 欲 하고자 할 욕

네 가지 악덕(惡德). 남을 이기기를 즐기는 일,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는 일, 원한을 품는 일, 욕심을 내고 탐하는 일. [출전]<論語>

근묵자흑(近墨者黑) 墨 먹 묵, 黑 검을 흑

먹을 가까이 하면 검은빛이 된다는 뜻으로, 사람은 늘 가까이 하는 사람(친구)에 따라 그 영향을 받아 변하는 것이므로 이를 경계하라는 말.

ꄉ근주자적(近朱者赤) : 붉은 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됨.

ꄜ水隨方圓之器하고 人依善惡之友니라.

  從遊邪人하고 予亦自邪니라.

  蓬生麻中이면 不扶自直하고, 白沙在尼하면 與之皆黑이니라.<史記> : (꾸불꾸불한) 쑥도 (곧은) 삼 가운데에서 자라면 돕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모래도 진흙 가운데 있으면 그와 더불어 모두 검어진다.

☞어찌하여 인심을 논하는 것인가. 공자께서, ‘마을 인심이 착한 곳이 좋다. 착한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 하시었다. 또 옛적에 맹자의 어머님이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아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옳은 풍속을 가지지 아니하면 다만 자신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자손들도 반드시 나쁜 물이 들어서 그르치게 될 근심이 있다. 그러므로 살 터를 잡음에 있어서 그 지방의 풍속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李重換, 擇里地>

금과옥조(金科玉條) 科 과정 과, 條 가지 조

금이나 옥과 같은 조문. 귀중한 법률이나 규범. 

금구목설(金口木舌) 舌 혀 설

훌륭한 언설(言說)로 사회를 가르치고 이끌어 나가는 사람의 비유. [출전]<論語>

금구무결(金甌無缺) 甌 사발 구, 缺 이지러질 결

황금으로 만든 사발이 조금의 흠도 없이 온전함. 사물이 완전 무결함. 특히 국가가 견고하여 다른 나라의 략을 받지 않음을 비유. [출전]<南史>

금단옥첩(金丹玉牒) 丹 붉을 단, 牒 글씨판 첩

금단은 불로불사의 선약(仙藥), 옥첩은 선술(仙術)을 기재한 패(牌).

★금란지교(金蘭之交) 蘭 난초 란(난)

금처럼 견고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 정이 매우 두터운 친구의 사귐.

▷고사 :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은 쇠도 끊을 것이요, 마음을 같이 한 말은 그 냄새가 난초의 향기와 같다.(二人同心이면 其利斷金이요, 同心之言은 其臭如蘭이라.)

금마옥당(金馬玉堂)

한(漢)나라 때 금마문(金馬門) 옥당전(玉堂殿)은 문학하는 선비가 출사(出仕)하는 관아. 후세에 한림원(翰林院)을 일컫는 이름이 됨.

★금상첨화(錦上添花) 錦 비단 금, 添 더할 첨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좋고 아름다운 위에 더 좋은 것을 더 한다는 뜻.

ꄑ설상가상(雪上加霜) : 눈 위에 서리가 더한다. 어려운 일이 연거푸 일어난다.

  병상첨병(病上添病) : 병을 앓는 중에 도 다른 병이 겹친다.

ꄜ누이 좋고 매부(妹夫) 좋다.

  곶감 죽 먹고 엿 목판에 엎어지겠다.

▷고사 : 북송(北宋) 때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이 남경에서 은둔할 때 지은 시 ‘즉사(卽事)’에 나오는 구절이다. “강물은 남원(南苑)으로 흘러 서쪽 언덕으로 기울고 바람에 영롱한 이슬 아름답구나. 문 앞 버드나무는 옛사람 도잠(陶潛)의 집이고, 우물가 오동나무는 옛 총지(總持)의 집이라. ‘아름다운 초대 술잔 속 맑은 술 따라 마시고, 즐거운 노랫가락 비단 위에 꽃을 더하네.’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대접받으니 천원의 붉은 노을 아직도 많구나.”

☞(가) 은행나무 잎을 둘러싼 한독간의 경쟁을 실로 치열하다. 한국 대표 동방 제약과 독일 대표 슈바베 제약회사가 죽기 살기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선경이 뛰어들어 그 싸움판은 더욱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세 차례에 걸친 특허권 쟁탈전은 동방 측이 승리를 거둬 일단 기선을 제압한 셈이다.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가려지는 이 ‘과학 재판’은 슈바베사의 자충수로 동방의 손이 올라갔지만 곧 이어 통상싸움으로 비화됐다. 여기서도 통상법 301조의 특례 조항 덕택으로 동방이 슈바베를 일단 압도하고 있다.

  (나) 은행잎은 은행나무 중에서도 백미다. 더욱이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오래 전부터 연구가 진행돼 그 신비가 상당 부분 벗겨져 있다. 특히 현대 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 등 성인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고 있어 의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부작용도 거의 없어 □□□□이/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은행잎에서 추출한 의약품에 대한 논문만 2백여 편을 헤아리며 전문 과학자도 3백여 명에 이르고 있다.

(문제) (나)에 들어갈 한자성어가 맞는 것은?

① 변화난측(變化難測)    ② 금상첨화(錦上添花)    ③ 난형난제(難兄難弟)

☞더욱 좋은 것은 여느 극장 같으면 하등인 맨 앞자리는 고놈 깍정 같은 조무래기패가 옴닥옴닥 들어 박혀 윤직원 영감의 육중한 체구가 처억 그 틈에 끼어 있을라치면 들이 놀림감이 되고 그래 좀 창피했는데 오늘은 이 상둥스런 하등이 모두 점잖은 어른들이나 이쁜 기생들 뿐이요 그따위 조무래기 떼가 없어서 실로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수 있습니다.

금석맹약(金石盟約) 盟 맹세할 맹, 約 묶을 약

쇠와 돌같이 굳게 맹세하여 맺은 약속.

ꄉ금석뇌약(金石牢約), 금석상약(金石相約).

금석지언(金石之言)

금석과 같이 확실한 말. [출전]<荀子>

금성옥진(金聲玉振) 振 떨칠 진

재주와 지혜, 인덕(人德)을 충분히 조화 있게 갖추고 있음을 비유. 또, 인격이 대성(大成)함의 비유. 특히 공자(孔子)의 완성된 인격을 기리는 말로 쓰임. [출전]<孟子>

금성철벽(金城鐵壁) 鐵 쇠 철, 壁 벽 벽

금으로 만든 성, 철로 된 벽, 매우 굳고 든든한 성.

금성탕지(金城湯池) 湯 넘어질 탕, 池 못 지

황금으로 만든 성과 끊는 물을 채운 못. 매우 견고한 성과 해자(垓字). 전하여, 침해하기 어려운 장소의 비유. [출전]<後漢書>

금수지장(錦繡之腸) 錦 비단 금, 繡 수 수, 腸 창자 장

비단같이 고운 마음씨를 이름. 아름다운 마음씨의 所有者.

금실부조(琴瑟不調) 調 고를 조

부부가 서로 화락하지 못함.

금실지락(琴瑟之樂) 琴 거문고 금, 瑟 큰 거문고 실

부부사이의 다정하고 화목한 즐거움.

ꄉ연리지(連理枝) : 연리의 가지.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의 사이. [백낙천(白樂天)은 당(唐)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바랑을 노래한 ‘장한가(長恨歌)’에서 양귀비의 맹세로 ‘하늘에 있어서는 원컨데 비익조가 되고 당에서는 원컨데 연리지가 되기를(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鳥 連理枝)’라고 노래하였다.]

ꄲ비익조(比翼鳥) : 날개가 하나씩인 새로 두 마리가 합하여야 두 날개를 갖추게 되어 날 수 있다 하여 연리지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금심수구(錦心繡口) 

비잔처럼 아름다운 마음과 수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언어. 아름다운 생각이나 말을 갖추고 시문(詩文)의 재능이 뛰어남을 비유.

금오옥토(金烏玉兎) 烏 까마귀 오, 兎 토끼 토

금오는 해, 옥토는 달. 즉 해와 달을 이름.

금옥군자(金玉君子)

금옥같이 굳세고 변함없는 사람. [출전]<宋史>

금옥만당(金玉滿堂) 滿 찰 만, 堂 집 당

금옥 같은 보물이 집에 가득함. 조정에 어진 사람이 가득함의 비유. [출전]<老子>

금의야행(錦衣夜行) 錦 비단 금, 夜 밤 야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뜻. 곧 ① 아무 보람없는 행동의 비유. ② 입신 출세(立身出世)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음의 비유. [출전]《漢書》〈項籍傳〉.《史記》〈項羽本紀〉

ꄉ의금야행(衣錦夜行) : 비단 옷을 입고 밤에 다닌다.

  야행피수(夜行被繡) : 밤길을 가는데 수놓은 옷을 입다.

ꄑ금의주행(錦衣晝行) : 비단옷을 입고 낮에 다닌다.

  의금지영(衣錦之榮) : 비단옷을 입는 영화로움.

  금의환향(錦衣還鄕) :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가다.

ꄜ어두운 밤눈 깜짝이기.

  달밤에 삿갓 쓰고 나온다.

  밑 빠진 가마에 물 길어다 붓기.

  절 모르는 시주하기.

  죽은 자식 나이 세기.

  죽은 자식 눈 열어 보기.

  동무 몰래 양식(糧食) 내기.

▷고사 : 한(漢)나라와 초(楚)나라가 동맹관계에 있을 때 유방(劉邦)이 먼저 진(秦)나라를 점령하였다. 항우(項羽)가 늦게 진나라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하여 진나라 왕 자영(子嬰)을 죽이고 궁궐을 불살랐으며 재보(財寶)와 여자들을 손 안에 넣고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돌아가려 하자 신하가 “함양은 산과 강이 험하여 사방이 막혀 있고 땅이 기름지므로 여기에 도읍을 삼으면 패자(覇者)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부귀하더라도 고행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富貴하나 不歸故鄕이면 如衣錦夜行이라.)라고 말하고 함양을 떠났다.<漢書, 項籍篇>

금의옥식(錦衣玉食) 食 밥 식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 사치스러운 생활의 비유. [출전]<宋史>

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옴. 다른 고장에 가서 성공하여 고귀(高貴)한 신분이 되어서 고행으로 돌아온다.

☞오직 멀리 떨어져 있는 자기 남편이 몸 성히 있기를 축수하고 하루 바삐 성공을 해서 금의환향(錦衣還鄕) 하기를 삼추(三秋)와 같이 기다리는 것을 도리어 난을 삼고 모든 고생을 달게 여기며……<沈熏, 탈춤>

금전옥루(金殿玉樓) 殿 큰 집 전, 樓 다락 루(누)

황금이나 옥으로 꾸민 궁전.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

★금지옥엽(金枝玉葉) 葉 잎 엽

금 가지에 옥 잎사귀. ① 임금의 자손이나 매우 귀한 집의 자손. ② 가장 귀중한 물건.

☞황막한 눈 쌓인 벌판 요동 벌 천리를 거쳐 온 노국공주는 아무리 씩씩하고 발랄한 기상을 가진 여자지마는 그래도 나어린 금지옥엽(金枝玉葉)의 귀한 몸이었다.<朴種和, 多情佛心>

금자탑(金子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번역한 말. 그 모양이 금(金)자와 비슷한 데서 온 말. 길이 후세에 전해질 많나 가치가 있는 불멸의 업적.

급류용퇴(急流勇退) 急 급할 급, 退 물러날 퇴

급류를 건너듯 용감하게 미련을 가지는 벼슬자리를 단연 버리고 물러감을 비유.

급전직하(急轉直下) 

사태․상황․정세 등이 급격히 크게 변화함. 또, 사태․정세 따위가 갑자기 바뀌어서 해결되고 결말이 남. 또는, 그와 같은 방향으로 다가가고 향함.

기고만장(氣高萬丈) 丈 어른 장

기운이 만장이나 뻗치었다. 펄펄 뛸 만큼 크게 성이 남. 또는 일이 뜻대로 되어 나가 씩씩한 기운이 대단하게 뻗침.

기린아(麒麟兒) 麒 기린 기, 麟 기린 린(인)

슬기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젊은이.

기망(旣望) 旣 이미 기, 望 바랄 망

음력(陰曆)으로 16일. 이미 망월(望月:15일)이 지났다는 뜻에서 16일.

▷고사 : 소동파(蘇東波)의 적벽부(赤壁賦)에 말하되 [임술년의 가을 7월 16일 소동파가 객(客)과 더불어 배를 적벽강에 띄우고 놀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의 파도가 일어나지 않고 잔잔하니라.(任戌之秋七月旣望에 蘇者 與客으로 泛舟遊赤壁之下할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

기상천외(奇想天外) 奇 기이할 기

상식에 벗어난 아주 엉뚱한 생각.

기승전결(起承轉結) 承 받들 승, 轉 구를 전

한시(漢詩)의 구의 구성법의 하나. 절구(絶句)에서는 제 1구가 기(起), 제 2구가 승(承), 제 3구가 전(轉), 제 4구가 결(結)이고, 율시(律詩)에서는 제 1․2구가 기, 제 3․4구가 승, 제 5․6구가 전, 제 7․8구가 결임. 기에서는 시의(詩意)를 일으키고, 승에서는 이를 받으며, 전에서는 앞의 구를 일전(一轉)시켜서 별개의 경지를 열고, 결에서는 전체를 맺고 마무리 지음. 전하여, 널리 일반적으로 사물의 전개에도 비유적으로 쓰일 때가 있음.

기여보비(寄與補裨) 寄 부칠 기, 補 기울 보, 裨 도울 비

사회나 어떠한 일에 대하여 공헌을 함.

기왕불구(旣往不咎)

이미 지난 일은 어쩔 도리가 없고, 오직 장래의 일이나 삼가야 한다는 말. 이왕 지난 일은 탓해야 쓸데없음. [출전]<論語>

기운생동(氣韻生動) 韻 운 운

글씨나 그림 등의 기품․품격․정취가 생생하게 약동함의 뜻.

기인지우(杞人之優) 杞 나라 이름 기, 優근심 우

기(杞)나라 사람의 군걱정이란 뜻. 곧 쓸데없는 군걱정. 헛 걱정. 무익한 근심. [출전]《列子》〈天瑞篇(천서편)〉

ꄳ기우(杞優).

ꄉ기인우천(杞人優天).

ꄨ오우천월(吳牛喘月).

▷고사 : 주왕조(周王朝) 시대, 기나라에 쓸데없는 군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만약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진다면 몸둘 곳이 없지 않은가?’ 그는 이런 걱정을 하느라 밤에 잠도 못 이루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자 ‘저러다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된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하늘은 (공)기가 쌓였을 뿐이야. 그래서 기가 없는 곳이 없지. 우리가 몸을 굴신(屈伸:굽힘과 폄)하고 호흡을 하는 것도 늘 하늘 안에서 하고 있다네. 그런데, 왜 하늘이 무너져 내린단 말인가?” “하늘이 과연 기가 쌓인 것이라면 일월성신(日月星辰:해와 달과 별)이 떨어저 내릴 게 아닌가?” “일월성신이란 것도 역시 쌓인 기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일 뿐이야. 설령 떨어져 내린다 해도 다칠 염려는 없다네.” “그럼, 땅이 꺼지는 일은 없을까?” “땅은 흙이 쌓였을 뿐이야. 그래서 사방에 흙이 없는 곳이 없지. 우리가 뛰고 구르는 것도 늘 땅 위에서 하고 있다네. 그런데 왜 땅이 꺼진단 말인가? 그러니 이젠 쓸데없는 군걱정은 하지 말게나.” 이 말을 듣고서야 그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기저일가(機杼一家) 機 틀 기, 杼 북 저

베틀로 베를 짜듯이 일가(一家)를 이룬 독특한 문장을 지어냄을 이름. [출전]<北史>

기진맥진(氣盡脈盡) 盡 다될 진, 脈 맥 맥

기운이 없어지고 맥이 풀렸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버리다.

기치선명(旗幟鮮明) 旗 기 기, 幟 기 치, 鮮 고울 선

깃발의 빛깔이 산뜻하다는 뜻으로, 주의․주장․태도 등이 확실함의 비유.

기호지세(騎虎之勢) 騎 말탈 기, 虎 범 호, 勢 기세‧형세 세

호랑이를 자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 곧 ①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형세. ② 내친걸음. [출전]《 書》〈獨孤  傳〉

ꄦ기수지세(騎獸之勢).

ꄨ기호난하(騎虎難下).

▷고사 :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엽인 581년,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 양견(楊堅)은 즉시 입궐하여 국사를 총괄했다. 외척이지만 한족(漢族)이었던 그는 일찍이 오랑캐인 선비족(鮮卑族)에게 빼앗긴 이 땅에 한족의 천하를 회복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에 선제가 죽은 것이다. 양견이 궁중에서 모반을 꾀하고 있을 때 이미 양견의 뜻을 알고 있는 아내 독고(獨孤) 부인으로부터 전간(傳簡)이 왔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이므로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騎虎之勢 不得下].’만약 도중에서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호랑이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디 목적을 달성하시오소서.” 이에 용기를 얻은 양견은 선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나이 어린 정제(靜帝)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라 일컫고 국호를 수(隋)라고 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589년, 문제는 남조(南朝) 최후의 왕조인 진(陳:557~589)나라마저 멸하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

기화가거(奇貨可居) 奇 기이할 기, 貨 재물 화, 居 살‧있을 거

진귀한 물건을 사 두었다가 훗날 큰 이익을 얻게 한다는 뜻. 곧 ① 좋은 기회를 기다려 큰 이익을 얻음. ② 훗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돌봐 주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림. ③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음. [출전]《史記》〈呂不韋列傳〉

▷고사 : 전국시대 말, 한(韓)나라의 큰 장사꾼인 여불위(呂不韋:?~B.C.235)는 무역을 하러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에 갔다가 우연히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의 손자인 자초(子楚)가 볼모로서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이 장사꾼의 머리에는 기발한 영감이 번뜩였다. ‘이것이야말로 기화로다. 사 두면 훗날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여불위는 즉시 황폐한 삼간 초가에 어렵게 살아가는 자초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귀공의 부군이신 안국군(安國君)께서 머지 않아 소양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정빈(正嬪)인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는 소생이 없습니다. 그러면 귀공을 포함하여 20명의 서출(庶出) 왕자 중에서 누구를 태자로 세울까요? 솔직히 말해서 귀공은 결코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소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오?” “걱정 마십시오. 소생에게는 천금(千金)이 있습니다. 그 돈으로 우선 화양부인에게 선물을 하여 환심을 사고, 또 널리 인재를 모으십시오. 소생은 귀공의 귀국을 위해 조나라의 고관들에게 손을 쓰겠습니다. 그리로 귀공과 함께 진나라로 가서 태자로 책봉되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만약 일이 성사되면 그대와 함께 진나라를 다스리도록 하겠소.” 여불위는 자기 자식을 회임한 조희(趙姬)라는 애첩까지 자초에게 양보하여 그를 완전히 손아귀에 넣은 뒤 재력과 능변(能辯)으로 자초를 태자로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초가 왕위에 오르자[장양왕(莊襄王)] 그는 재상이 되었으며, 조희가 낳은 아들 정(政)은 훗날 시황제(始皇帝)가 되었다.

길굴오아(佶屈聱牙) 佶 건장할 길, 屈 굽을 굴, 聱 말을 듣지 아니할 오

문장이 어려워 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움. [출전]<韓愈>


나부지몽(羅浮之夢) 羅 새 그물 나(라), 浮 뜰 부

수(隋)나라 조사웅(趙師雄)이 나부산(羅浮山)의 매화촌(梅花村)에서 꿈속에 담장소복(淡粧素服)한 미인을 만나 즐겁게 놀다가 깨 보니 달빛만이 차갑게 흐르고 있을 뿐 미인은 온데간데 없다는 고사(故事). [출전]<유종원(柳宗元)>

낙극애생(樂極哀生) 極 다할 극, 哀 슬플 애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 [출전]<열녀전(列女傳)>

낙락장송(落落長松) 落 떨어질 낙(락)

가지가 축축 늘어진 오래된 소나무.

낙점(落點) 點 점 점

벼슬아치를 뽑을 때 임금이 뽑을 사람의 이름 위에 점을 찍던 일.

☞조선시대에 관리를 임명하는 데에는 원칙이 있었으니, 인사를 담당한 이조나 병조에서 ‘비삼망(備三望)’이라 해서 세 사람을 추천하여 왕에게 올리면 왕은 자신의 의중에 드는 한 사람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서 뽑았다. 점이 찍힌 사람의 편에서 보면 ‘수점(受點)’으로 되지만 점을 찍은 왕의 편에서 보면 ‘낙점(落點)’으로 되는 것이다.

ꄵ천거(薦擧)란 관리로 등용할 수 있는 인재를 추천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 중앙과 지방의 정3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은 3명의  인재를 추천할 의무를 가졌으며, 인재를 추천하는 사람을 거주(擧主)라고 했다. 만약 추천하나 사람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연대 책임을 졌다.

낙양지가(洛陽之價)

낙양의 종이 값. 훌륭한 글을 다투어 베끼느라고 종이의 수요가 늘어서 값이 등귀한 것을 말함이니 문장의 장려함을 칭송하는 데 쓰이는 말.

▷고사 : 진(晉)나라 좌사(左思)가 삼도(三道-蜀의 成都, 吳의 建業, 魏의 鄴)의 賦를 지었을 때,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그 책을 전사(傳寫)하였기 때문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라갔다.

낙양지귀(洛陽紙貴) 洛 물 이름 락, 陽 볕 양, 紙 종이 지, 貴 귀할 귀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하는 뜻. 곧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 셀러가 됨을 이르는 말. [출전]《晉書》〈文 傳〉

ꄦ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ꄉ낙양지가고(洛陽紙價高).

▷고사 : 진(晉:265~316)나라 시대,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추남에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일단 붓을 잡으면 장려한 시를 썼다. 그는 임치에서 집필 1년만에《제도부(齊都賦)》를 탈고하고 도읍 낙양[洛陽:하남성(河南省) 내]으로 이사한 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도읍 성도(成都), 오(吳)나라의 도읍 건업(建業:南京), 위(魏)나라의 도읍 업(鄴)의 풍물을 읊은《삼도부(三都賦)》를 10년만에 완성했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張華)라는 유명한 시인이《삼도부》를 읽어보고 격찬했다. “이것은 반(班)‧장(張)의 유(流)이다.” 후한(後漢) 때《양도부(兩都賦)》를 지은 반고[班固:《한서(漢書)》저술],《이경부(二京賦)》를 쓴 장형(張衡)과 같은 대시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삼도부》는 당장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환관‧문인‧부호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껴 썼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올랐다[洛陽紙價貴]’고 한다.

낙이망우(樂以忘憂) 

쾌락에 도취되어 근심을 잃음. [출전]<論語>

낙이불음(樂而不淫) 淫 음란할 음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출전]<論語>

낙정하석(落穽下石) 穽 허방다리 정

사람이 함정에 빠진 것을 보고도 그 위에서 돌을 던진다는 말로, 남이 환난을 당했을 때에 더욱 해를 끼침의 비유. [출전]<韓愈>

낙지군자(樂只君子) 只 다만 지

도(道)를 즐기는 군자. [출전]<詩經>

ꄲ지(只)는 조사(調査).

낙화유수(落花流水)

남녀의 상사(相思)하는 그리운 심정을 비유한 말. [출전]<白居易>

난공불락(難攻不落) 攻 칠 공

공격하기가 어려워 함락시키지 못했다.

난의포식(暖衣飽食) 暖 따뜻할 난, 飽 물릴 포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먹음.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충족한 생활의 비유. [출전]<孟子>

난중지난(難中之難)

어려운 가운데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말. [출전]<무량수경(無量壽經)>

난최옥절(蘭摧玉折) 蘭 난초 난(란), 摧 꺾을 최

난초는 꺾이고 옥은 깨짐. 미인 또는 현인(賢人)의 죽음의 비유. [출전]<수서(隋書)>

난해난입(難解難入)

법화(法華)의 법리(法理)가 깊어서 깨닫기 어려움. [출전]<法華經>

난형난제(難兄難弟)

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다. 어느 편이 낫다고 우열을 가리기가 곤란할 때 쓴다. 서로 비슷함. [출전]<世說>

ꄨ막상막하(莫上莫下) : 어느 것이 위고 아래인지 분간할 수 없다.

  백중지세(伯仲之勢) : 우열을 분간할 수 없다.(伯仲之間)

  호각지세(互角之勢) : 서로 조금도 낫고 못함이 없는 자세.

  우열난분(優劣難分) : 뛰어나고 열등함을 분간할 수 없다.

  대동소이(大同小異) : 거지반 같고 조금만 다름. 즉, 거의 같음.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 조금의 차이는 있으나 크게 보아서는 본질상 차이가 없음.

ꄜ콩야 팥이야 한다.(네 콩이 크니 내 콩이 크니 한다.)

  막둥이 씨름하듯.

  두꺼비씨름 누가 질지 누가 이길지.

▷고사 : 후한(後漢) 말의 학자 진식(陳寔)은 덕망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그의 아들 진기(陳紀), 진심(陳諶)과 더불어 세 군자로 불리어졌다. 진기의 아들 진군(陳群)도 역시 뛰어난 수재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었다. 진군이 어렸을 때 어느 날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놀다가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논하였는데 서로 자기 아버지가 낫다고 하여 결말을 짓지 못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물으니, “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구나.”라고 대답하였다.<세설신어(世說新語)>

남가일몽(南柯一夢) 柯 가지 가, 夢 꿈 몽

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곧, ① 덧없는 한때의 꿈. ②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출전]《南柯記》. 《異聞集》

ꄉ남가지몽(南柯之夢). 남가몽(南柯夢). 괴몽(槐夢).

ꄨ한단지몽(한鄲之夢). 무산지몽(巫山之夢). 일장춘몽(一場春夢).

▷고사 : 당(唐)나라 9대의 황제인 덕종(德宗:780~804년)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淳于棼)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태수를 제수(除授)받고 부임했다.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간의 치적을 인정받아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대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해야 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주] 제수(除授) : 천거(薦擧)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시킴.

남가지몽(南柯之夢) 柯 자루 가

남쪽 가지 밑에서 꾼 한 꿈. 일생과 부귀영화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ꄉ의몽(蟻夢) : 개미의 꿈.

ꄨ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 꿈.

  한단지몽(邯鄲之夢) : 한단의 꿈.

  부생약몽(浮生若夢) : 뜬 인생이 꿈과 같다. 인생이란 한갓 허무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ꄜ인생은 풀 끝 이슬.

  만사가 모두 꿈 같다.

  인생은 뿌리 없는 평초(萍草)

☞明沙十里 매당花야 꽃 진다고 슬퍼 마라. 明年三月 도라오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가련하다. 우리 인생 뿌리 없는 萍草라. 紅顔白髮이 절로 가 긴들 아니 늦거운가.<歌詞, 勸酒歌>

남귤북지(南橘北枳) 橘 귤나무 귤, 枳 탱자나무 지

강남의 귤을 강북으로 옮기면 탱자로 변한다.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약하게도 된다.

남남북녀(南男北女)

‘남쪽 지방은 남자가 잘 생기고, 북쪽은 여자가 곱다.’라는 데서 온 말.

남래여왕(男來女往)

남년간에 왕래하여 서로 사귐. [출전]<북제서(北齊書)>

남만격설(南蠻鴃舌) 蠻 오랑캐 만, 鴃 때까치 격

이민족의 뜻이 통하지 않는 말을 멸시하여 일컫는 말. [출전]<孟子>

남부여대(男負女戴) 負 짐질 부, 戴 일 대

‘남자는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인다.’의 뜻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살 곳을 찾아다님을 이르는 말.

남상(濫觴) 濫 넘칠 람, 觴 술잔 상

겨우 술잔[觴]에 넘칠[濫]정도로 적은 물이란 뜻으로, 사물의 시초나 근원을 이르는 말. [출전] 《荀自》〈子道篇〉.《孔子家語》〈三恕篇〉

ꄨ효시(嚆矢). 권여(權與).

▷고사 : 공자의 제자에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공자에게 사랑도 가장 많이 받았지만 꾸중도 누구보다 많이 듣던 제자였다. 어쨌든 그는 성질이 용맹하고 행동이 거친 탓에 무엇을 하든 남의 눈에 잘 띄었다. 어느 날 자로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자 공자는 말했다. “양자강(揚子江 : 長江)은 사천(四川)땅 깊숙이 자리한 민산(岷山)에서 흘러내리는 큰 강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겨우 술잔에 넘칠 정도[濫觴]’로 적은 양의 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하류로 내려오면 물의 양도 많아지고 흐름도 빨라져서 배를 타지 않고는 강을 건널 수가 없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배조차 띄울 수 없게 된다. 이는 모두 물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니라.” 공자는, 매사는 시초가 중요하며 시초가 나쁘면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 했던 것이다. 공자의 이 이야기를 들은 자로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ꄲ양자강 : 티베트 고원의 북동부에서 발원하여 동중국해로 흘러 들어감. 장강(長江)이라고도 불림. 길이 5800Km.

  민산 : 사천(四川)‧청해(靑海) 두 성(省)의 경계에 위치한 산.

남선북마(南船北馬) 

중국의 남쪽은 강이 많아 배를 타고 다니고, 북쪽은 들이 넓어 말을 타고 다닌다 함이니, 사방으로 바쁘게 돌아다닌다. 이곳 저곳을 부지런히 여행함. 곳곳을 쉴 새 없이 여행함을 비유.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須 모름지기 수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실을 만한 많은 책을 읽으라는 말.

남전북답(南田北畓) 沓 유창할 답

가지고 있는 논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음을 이르는 말.

남전생옥(藍田生玉) 藍 쪽 람(남)

현명한 아버지라야 현명한 아들을 둔다는 말. [출전]<三國志>

남존여비(男尊女卑) 尊 높을 존, 卑 낮을 비

사람은 타고나면서부터 권리와 지위에 있어 남자가 높고 여자가 낮다는 말. [출전]<列子>

남주북병(南酒北餠) 餠 떡 병

옛날에 서울 남촌(南村)의 술과 북촌(北村)의 떡이 유명하다는 말.

남혼여가(男婚女嫁) 嫁 시집갈 가

자녀의 혼인을 일컬음.

남흔여열(男欣女悅) 欣 기뻐할 흔

부부가 화락함을 일컬음.

낭중지추(囊中之錐) 囊 주머니 낭, 錐 송곳 추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드러남의 비유. 또는 아무리 감추려 하나 숨겨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드러나 善惡을 가리게 된다. [출전]《史記》〈平原君列傳〉

ꄉ추낭(錐囊), 추처낭중(錐處囊中)이 어원이다.

ꄜ주머니 속에 들어간 송곳이라.

▷고사 : 전국 시대 말엽,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균(平原君 : 趙勝)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사람을 뽑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이 때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자천(自薦)하고 나섰다.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평원군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이제 3년이 됩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 “그건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만 한다면 끝뿐 아니라 자루[柄]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이 재치 있는 대답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國賓)으로 환대 받으면서 구원군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낭중취물(囊中取物) 囊 주머니 낭, 取 취할 취

주머니 속에 든 것을 꺼내 가지는 것과 같이 아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ꄜ식은 죽 먹기.

  누워 떡 먹기.

☞듣자오니 특제라 하는 자객이 있어 사람 죽임을 낭중취물(囊中取物)같이 한다 하오니 천금을 주어 밤에 들어가 해하오면 상공이 알으시나 할 길 없사오리니 부인은 재삼 생각하소서……<홍길동전(洪吉童傳)>

내강외유(內剛外柔) 剛 굳셀 강, 柔 부드러울 유

겉으로 보기에는 유순하지만 속마음은 단단하고 굳셈.

ꄉ외유내강(外柔內剛)

ꄑ내유외강(內柔外剛)

내우외환(內憂外患) 憂 근심할 우, 患 근심 환

나라 안에도 근심스런 문제가 있고 나라 밖으로부터도 외적이 쳐들어오는 불완전한 시국. 국내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외국으로부터 받는 근심.

내자가추(來者可追) 追 쫓을 추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미래의 일은 잘 할 수 있다는 말. [출전]<論語>

내청외탁(內淸外濁) 濁 흐릴 탁

마음은 깨끗하나 행동은 흐림.

냉한삼두(冷汗三斗) 汗 땀 한, 斗 말 두

식은땀이 서 말이나 날 정도로 무서운 생각이나 부끄러운 생각이 난다는 말.

노당익장(老當益壯) 當 당할 당, 益 더할 익, 壯 씩씩할 장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진다. 그런 사람을 이른다.

ꄳ노익장(老益壯)

노마지지(老馬之智) 智 슬기‧지혜 지

늙은 말의 지혜란 뜻으로,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 [출전]《韓非子》〈說林篇〉

ꄉ노마지도(老馬知道).

▷고사 : 춘추 시대, 오패(五霸)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재위 B.C.685~643)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B.C.645)과 대부 습붕(隰朋)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省) 내]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 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 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자(韓非子:韓非, ?~B.C.233)는 그의 저서《한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ꄲ‘노마지지’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요즈음에도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음.

★노발대발(怒發大發)

대단히 노함.

★노승발검(怒蠅拔劍) 蠅 파리 승, 拔 뺄 발

파리를 보고 화를 내어 칼을 빼어 들고 쫓는다는 말로, 사소한 일에 화를 잘 냄.

★노심초사(勞心焦思)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너무 깊게 함. 매우 애쓰며 속을 태움.

☞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莊 : 전당포)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 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하…오(좋소).”하고 내어 준다. 그는 “하…오”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문제)밑줄 친 부분에 드러난 인물의 심리를 적절히 밝힌 것은?

① 勞心焦思   ② 自暴自棄   ③ 戰戰兢兢   ④ 輾轉反側   ⑤ 右往左往

노이불공(勞而不功)

힘껏 일하였으나 공(功)이 없음. 도로(徒勞). [출전]<莊子>

노이불원(勞而不怨)

효자의 행위. [출전]<論語>

노파심절(老婆心切) 婆 할미 파

남을 위하여 지나치게 걱정함. [출전]<傳燈錄>

ꄵ흔히, ‘절(切)’을 떼고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함.

녹림(綠林) 綠 초록빛 록,

푸른 숲이란 뜻으로, 도둑 떼의 소굴을 일컫는 말. [출전]《漢書》〈王莽傳〉.《後漢書》〈劉 傳〉

ꄉ녹림호객(綠林豪客)

ꄨ백랑(白浪). 백파(白波). 야객(夜客).

▷고사 : 전한(前漢:B.C. 202~A.D. 8) 말, 왕실의 외척인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은 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신(新:8~24)이라 일컬었다. 왕망은 농지, 노예, 경제 제도 등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책을 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복잡한 제도에 걸려 농지를 잃고 노예로 전락하는 농민들이 점점 늘어났다. 또한 화폐가 8년 동안에 네 차례나 바뀌는 등 경제정책 역시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백성들의 생활은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왕망은 백성들은 물론 귀족들로부터도 심한 반감을 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서북 변경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이를 기회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호북성 당양현(湖北省當陽縣) 내의 녹림산에 근거지를 둔 8000여의 한 무리는 스스로를 ‘녹림지병(綠林之兵)’이라 일컫고 지주의 창고와 관고(官庫)를 닥치는 대로 털었다. 그 후 이 녹림지병은 5만을 헤아리는 대세력으로 부상했는데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25~57) 유수(劉秀)는 그들을 십분 이용하여 왕망의 신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녹양방초(綠楊芳草) 芳 꽃다울 방

푸른 버들과 아름다운 풀.

녹음방초(綠陰芳草) 芳 꽃다울 방

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꽃다운 풀. 여름의 아름다운 경치.

녹의홍상(綠衣紅裳) 裳 치마 상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 젊은 여자의 곱게 치장한 복색.

ꄨ단순호치(丹脣皓齒) : 붉은 입술과 흰 이. 미인의 얼굴.

  설부화용(雪膚花容) : 흰 살결에 고운 얼굴.

  유미봉요(柳尾蜂腰) : 버들같은 눈썹에 개미같은 허리.

녹이상제(綠珥霜蹄) 珥 귀엣고리 이, 蹄 굽 제

매우 좋은 말.

논공행상(論功行賞)

공을 다 따져 각각 알맞은 상을 주는 일.

농가성진(弄仮成眞) 

장난으로 한 것이 참으로 한 결과가 되었다.

ꄉ가농성진(仮弄成眞)

농단(壟斷) 壟 언덕 롱(농), 斷 끊을 단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 곧 ① 재물을 독차지함. ② 이익을 독점함. [출전]《孟子》〈公孫추篇(공손추편)〉

ꄦ농단(籠斷).

▷고사 : 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을 위해 제국을 순방 중이던 맹자는 제나라에서도 수년간 머물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려 했다. 그러자 선왕은 맹자에게 높은 봉록을 줄 테니 제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맹자는 거절했다. “전하,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봉록에 달라붙어서 ‘재물을 독차지[壟斷]’할 생각은 없나이다.” 이렇게 말한 맹자는 ‘농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농단’은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인데, 전하여 ‘재물을 독차지한다’, ‘이익을 독점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데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에는 시장에서 물물 교환을 했었다. 그런데 한 교활한 사나이가 나타나 시장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 좌우를 살펴서 장사함으로써 ‘이익을 독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나이의 비열(卑劣)한 수법을 증오(憎惡)하고 그에게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때부터 장사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농와지경(弄瓦之慶) 弄 희롱할 롱(농), 瓦 기와 와, 慶 경사 경

딸을 낳은 기쁨.

▷고사 : 옛날 중국에서 딸을 낳으면 벽돌(瓦)을 장난감으로 주었으므로 이름.

농와지희(弄瓦之喜) 

딸 낳은 즐거움을 한문 투로 이르는 말.

농위국본(農爲國本)

농업은 국정(國政)의 기본임.

농장지희(弄璋之喜) 璋 반쪽 홀 장

아들을 낳은 기쁨. [출전]<詩經>

▷고사 : 옛날 중국에서 아들을 낳으면 구슬(璋)의 장난감을 준 고사.

누란지위(累卵之危) 累 여러‧포갤 루, 卵 알 란, 危 위태할 위

알을 쌓아(포개) 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의 비유. [출전]《史記》〈范雎列傳〉

ꄳ누란(累卵). 

ꄉ위여누란(危如累卵). 누란지세(累卵之勢),

  누기(累碁) : 바둑돌을 쌓아 올린 듯하다.

ꄨ여리박빙(如履薄氷) : 엷은 얼음을 밟는 것과 같다.

  백척간두(百尺竿頭) : 백 척이나 되는 장대 위에 매달려 있다.

  풍전등화(風前燈火) : 바람 앞의 등불.

  초미지급(焦眉之急) : 눈썹에 불이 붙음. 일각의 여유도 둘 사이 없이 다급함.

ꄵ원교근공(遠交近攻).

ꄜ강가에 나간 아이와 같다.

  눈먼 말 타고 벼랑 가기다.

  봄 얼음 건너가는 것 같다.

▷고사 :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모두 책사(策士)‧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 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 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 후 범저(장록)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擇 가릴 택, 筆 붓 필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곧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데 종이나 붓 따위의 재료 또는 도구를 가리는 사람이라면 서화의 달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 [출전]《唐書》〈歐陽詢傳〉

▷고사 : 당나라는 중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의 하나였다. 당시 서예의 달인으로는 당초 사대가(唐初四大家)로 꼽혔던 우세남(虞世南)‧저수량(褚遂良)‧유공권(柳公權)‧구양순(歐陽詢)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배워 독특하고 힘찬 솔경체(率更體)를 이룬 구양순이 유명한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물었다. “내 글씨와 구양순의 글씨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낫소?” 우세남은 이렇게 대답했다. “구양순은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으면서도[不擇筆紙]’ 마음대로 글씨를 쓸 수 있었다[能書]고 하오. 그러니 그대는 아무래도 구양순을 따르지 못할 것 같소.” 이 말에는 저수량도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능서불택필’은 ①《왕긍당필진(王肯堂筆塵)》과 ②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에 각각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속설은 구양순까지이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붓이나 종이를 문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②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니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전서(篆書)‧예서(隸書)를 쓰는 경우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능소능대(能小能大)

모든 일을 임기응변으로 잘 처리함.


다기망양(多岐亡羊) 岐 가닥 나뉠 기

달아난 양을 찾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서 양을 잃었다는 뜻. 곧 ① 학문의 길이 다방면으로 갈려 진리를 찾기 어려움의 비유. ② 방침이 많아 갈 바를 모름. [출전]《列子》〈說符篇〉

ꄉ망양지탄(亡羊之歎). 

ꄨ독서망양(讀書亡羊).

▷고사 :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이름은 주(朱), B.C.395?~335?]와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집사람들은 물론 양자네 집 하인들까지 청해서 양을 찾아 나섰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 찾는데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섰느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예, 양이 달아난 그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현명한 제자가 선배를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스승인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다다익선(多多益善) 益 더할 익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뜻. [출전]《史記》〈淮陰侯列傳〉

ꄉ다다익판(多多益瓣) :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처리한다.

▷고사 :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은 명장으로서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인 초왕(楚王) 한신(韓信)을 위험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계략을 써 그를 포박한 후 회음후(淮陰侯)로 좌천시키고 도읍 장안(長安)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어느 날, 고조는 한신과 여러 장군들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렇게 물었다. “과인은 몇 만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장수감이라고 생각하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께서는 한 10만쯤 거느릴 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하나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예, 신(臣)은 ‘다다익선’이옵니다.” “다다익선? 핫핫핫…‥.” 고조는 한바탕 웃고 나서 물었다. “다다익선이란 그대가 어찌하여 10만의 장수감에 불과한 과인의 포로가 되었는고?” 한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오나 폐하,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수가 아니오라 장수의 장수이시옵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의 전부이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여러 가지로 일이 많고 몹시 어려움.

다사제제(多士濟濟) 濟 건널 제

뛰어난 사람이 많음. 인재가 풍부함. [출전]<詩經>

다재다예(多才多藝) 藝 기예 예

재능과 기예가 많음. [출전]<書經>

다천과귀(多賤寡貴) 寡 적을 과

모든 상품은 다과(多寡)에 의해서 그 값의 고하(高下)가 이루어짐.

단간영묵(斷簡零墨) 簡 대쪽 간, 零 조용히 오는 비 영(령), 墨 먹 묵

글로 쓴 것의 일부나 천 조각에 쓴 문장. 대수롭지 않은 글월의 비유.

단갈불완(短褐不完) 褐 털옷 갈

가난한 사람의 제대로 차리지 못한 옷차림. ‘단갈’은 짧은 잠방이. [출전]<荀子>

단금지교(斷金之交)

친구의 정의(情誼)가 썩 깊음. [출전]<晋書>

단기지계(斷機之戒) 斷 끊을 단, 機 틀 기, 戒 경계할 계

베를 끊어서 훈계했다. 학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 [출전]<後漢書>

ꄉ맹모단기(孟母斷機)

▷고사 : 맹자가 자라서 어느 날 유학을 갔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맹모가 바야흐로 베를 짜다가 묻기를 “학문이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느냐?” 맹자가 말하기를 “전과 같습니다.”하니 맹모가 칼로써 베를 끊으면서 말하기를 “자식이 학문을 버림은 내가 이 베를 끊는 것과 같다.”하니 맹자가 두려워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학문하였다. 맹자는 마침내 천하의 명유(明喩)가 될 수 있었다.<列女傳, 母儀>

단말마(斷末魔) 魔 마귀 마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단도직입(單刀直入)

한 자루의 칼을 들고 곧바로 쳐들어 감. 서두를 빼고 요점이나 본문제로 들어간다. 또는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서슴지 않고 정면으로 대번에 용건을 들어 말하는 것. [출전]<傳燈錄>

☞원자력 발전은 부족한 에너지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대안이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이 갖는 위기 변수적 속성, 즉 발생할 확률은 적으나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속성 때문에 우리를 딜레마 상황으로 몰고 간다. 또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우라늄이라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번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지만 재처리를 통한 농축 우라늄이 만들어 낼지도 모를 원자탄이라는 가공할 무기 때문에 이를 허용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우리는 빠지고 만다.

(문제)밑줄 친 부분의 문맥상 의미와 가장 가까운 것은?

① 沒入한다   ② 直面한다     ③ 脫落한다     ④ 逢着한다     ⑤ 眈溺한다

단병접전(短兵接戰) 接 사귈 접

짧은 무기로 가까이 가서 육박(肉薄)하는 싸움. [출전]<史記>

단사표음(簞食瓢飮) 瓢 박 표

변변치 못한 음식이라는 말로, 매우 가난한 살림을 뜻함. 청빈한 살림. [출전]<漢書>

ꄉ단표누항(簞瓢陋巷)

▷고사 : 공자가 말씀하시되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심으로 좁고 더러운(누추한) 집에 있음을 사람들이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속에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회여!”<論語>

단사호장(簞食壺醬) 壺 병 호, 醬 젓갈 장

도시락밥과 장병. 여행할 때 싸 가지고 다니는 음식. [출전]<孟子>

단순호치(丹脣皓齒) 脣 입술 순, 皓 흴 호

붉은 입술과 흰 이. 곧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

단장(斷腸) 斷 끊을 단, 腸 창자 장

창자가 끊어졌다는 뜻. 전하여,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의 비유. [출전]《世說新語》<黜免(출면)> 채염(蔡琰)의 <胡笳歌(호가가)>

ꄨ구회지장(九回之腸).

▷고사 : 진(晉 : 東晉, 317~420) 나라의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이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었다. 이윽고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강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벼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는 100여 리쯤 나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다.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환온은 크게 노하여 원숭이 새끼를 붙잡아 매에 실은 그 부하를 매질한 다음 내쫓아 버렸다고 한다.

ꄲ삼협 : 사천(四川)‧호북(湖北) 두 성(省)의 경계에 있는 양자강(揚子江 : 長江) 중류의 세 협곡(峽谷). 곧 구당협(瞿塘峽)‧무협(巫峽)‧서릉협(西陵峽). 예로부터 유명한 경승지(景勝地). 현재 큰 댐을 건설하는 공사가 진행 중에 있음.

단장보단(斷長補短) 補 기울 보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을 메워서 들쭉날쭉한 것을 곧게 함. [출전]<禮記>

단장취의(斷章取義) 取 취할 취

시(詩)를 해석하는 법으로, 지은이의 본뜻에 거리낌없이 자기 소용으로 만듦. [출전]<孟子>

단표누항(簞瓢陋巷) 陋 좁을 누(루), 巷 거리 항

도시락, 표주박과 누추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소박한 시골 살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담대심소(膽大心小) 膽 쓸개 담

대담하고 배짱이 좋으며, 게다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 [출전]<舊唐書>

담론풍발(談論風發)

담화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짐.

담판(談判) 談 말씀 담, 判 판가름할 판

어떤 일의 시비(是非)를 가리거나 결말을 짓기 위하여 논의하다. 부당한 일에 대하여 강력히 항의하여 시정하도록 하다.

당구풍월(堂拘風月) 拘 잡을 구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한다. 무식쟁이라도 유식한 사람과 사귀면 견문이 넓어진다. 또는 무슨 일 하는 것을 오래 오래 보고 듣고 하면 자연히 할 줄 알게 된다.

ꄜ堂拘三年에 吠風月이라.

  산 까마귀 염불한다.

  얻어들은 풍월.

당금무배(當今無輩) 輩 무리 배

이 세상에서는 어깨를 겨눌 사람이 없음. [출전]<三國志>

당동벌이(黨同伐異) 黨 무리 당, 伐 칠 벌

도리가 있고 없고 간에 또 옳고 그르건 간에, 같은 당파끼리는 편을 들고, 다른 당파 사람은 배척하거나 공격하는 일. [출전]<後漢書>

당랑거철(螳螂拒轍) 螳 버마재비 당, 螂 버마재비 랑, 轍 수레바퀴 자국 철

사마귀[螳螂]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가로막는다는 뜻. 곧 ① 허세. ② 미약한 제 분수도 모르고 강적에게 항거하거나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의 비유. [출전]《韓語外傳》<卷八>,《文選》

ꄉ당랑지부(螳螂之斧) : 사마귀가 앞발을 머리 위로 올린 것. 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

  당비당거(螳臂當車) : 사마귀의 팔뚝이 수레를 당하다. 용감무쌍한 것.

  당랑당거철(螳螂當車轍), 당랑지력(螳螂之力).

ꄨ당랑규선(螳螂窺蟬).

ꄜ생쥐가 고양이에게 덤비는 격이다.

▷고사 : ①《한시외전(韓時外傳)》〈권팔(卷八)〉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B.C.794~731)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螳螂之斧]’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다. “허, 맹랑한 놈이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 장공이 묻자 수레를 호종하던 신하가 대답했다. “사마귀라는 벌레이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은 모르는 놈이 온데, 제 힘도 생각지 않고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다. “저 벌레가 인간이라면 틀림없이 천하 무적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가도록 하라.”

ꄲ《한시외전》에서의 ‘당랑지부(螳螂之斧)’는 사마귀가 먹이를 공격할 때에 앞발을 머리 위로 추켜든 모습이 마치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과 흡사한데서 온 말이나 ‘당랑거철’과 같은 뜻으로 쓰임.

        ②《문선(文選)》에 보면 ‘당랑거철’은 삼국 시대(三國時代)로 접어들기 직전, 진림(陳琳)이란 사람이 유비(劉備) 등 군웅(群雄)에게 띄운 격문(檄文)에도 나온다. “조조(曺操)는 이미 덕을 잃은 만큼 의지할 인물이 못된다. 그러니 모두 원소(袁紹)와 더불어 천하의 대의를 도모함이 마땅할 것이다. ……지금 열악한 조조의 군사는 마치 ‘사마귀가 제 분수도 모르고 앞발을 휘두르며 거대한 수레바퀴를 막으려 하는 것[螳螂拒轍]’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당로지인(當路之人)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 [출전]<孟子>

대간사충(大姦似忠) 姦 간사할 간, 似 같을 사

간사한 사람의 짓은 매우 교묘해서 언뜻 보기에는 충성을 다하는 것 같다는 말. [출전]<宋史>

대갈일성(大喝一聲) 喝 더위먹을 갈

크게 한 번 소리침. [출전]<수호전(水滸傳)>

대교약졸(大巧若拙) 巧 공교할 교, 拙 졸할 졸

훌륭한 기교는 도리어 졸렬한 듯하다는 말. [출전]<老子>

대기만성(大器晩成) 器 그릇 기, 晩 늦을 만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뜻. 곧 ①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의 비유. ② 만년(晩年)이 되어 성공하는 일. ③ 과거에 낙방한 선비를 위로하여 이르던 말. [출전]《三國志》〈魏志 崔琰傳〉.《後漢書》〈馬援傳〉.《老子》〈四十一章〉

ꄇ대방무우(大方無隅). 

ꄉ대기난성(大器難成).

ꄨ대재만성(大才晩成).

▷고사 : ① 삼국 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란 풍채 좋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촌 동생인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못 하고 일가 친척들로부터도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큰 종(鐘)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대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하는 그런 형이야. 두고 보라구.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테니…….” 과연 그 말대로 최림은 마침내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②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25~57)때 마원(馬援)이란 명장이 있었다. 그는 변방의 관리로 출발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까지 된 인물인데, 복파장군이란 전한(前漢) 이후 큰 공을 세운 장군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이다. 마원이 생전 처음 지방 관리가 되어 부임을 앞두고 형인 최황(崔況)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는 이른바 ‘대기만성’형이야. 솜씨 좋은 대목이 산에서 막 베어낸 거친 원목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재목으로 다듬어내듯이 너도 네 재능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부디 자중(自重)하라.”

        ③《노자(老子)》에도 ‘큰 네모[四角]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大方無隅 大器晩成]’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ꄲ긴 안목으로 봐 주자는 자애어린 이 말이, 요즈음에는 각 분야에서 ‘늦되는 사람’에게 위로 겸 농담조로 얼버무릴 때에도 쓰임.

대기소용(大器小用)

큰 그릇을 작은 데에 씀. 큰 인물을 미관말직에 임용하는 따위. [출전]<後漢書>

대대손손(代代孫孫)

대대로 이어오는 자손.

ꄉ자자손손(子子孫孫), 세세손손(世世孫孫)

대동단결(大同團結) 團 둥글 단

많은 사람. 여러 갈래의 당파가 큰 덩어리로 한 데 뭉치다.

대동소이(大同小異)

크게는 같은 대 작게는 다르다. 거의 같음. [출전]<莊子>

대명천지(大明天地)

매우 밝은 세상. 크게 밝은 하늘과 땅.

대서특필(大書特筆)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하다.

대용불기(大勇不忮) 忮 해칠 기

큰 용기를 가진 자는 함부로 남을 해치지 않음. [출전]<莊子>

대의멸친(大義滅親) 滅 멸할 멸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뜻으로,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부모 형제의 정도 돌보지 않는다는 말. [출전]《春秋左氏傳》〈隱公三‧四年條〉

▷고사 :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원년(元年:B.C.719)의 일이다. 위(衛)나라에서는 공자(公子) 주우(州吁)가 환공(桓公)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후의 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 형제간으로서 둘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선군(先君) 장공(莊公) 때부터 충의지사로 이름난 대부 석작(石碏)은 일찍이 주우에게 역심(逆心)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석후(石厚)에게 주우와 절교하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은 환공의 시대가 되자 은퇴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석작이 우려했던 주우의 반역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은 일단 성공했으나 백성과 귀족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지 않자 석후는 아버지 석작에게 그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석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역시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왕실을 예방하여 천자(天子)를 배알(拜謁)하고 승인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천자를 배알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왕실과 각별한 사이인 진(陳)나라 진공(陳公)을 통해서 청원하도록 해라. 그러면 진공께서 선처해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고하도록 일렀다. “바라옵건대, 주군(主君)을 시해한 주우와 석후를 잡아 죽여 대의를 바로잡아 주시 오소서.” 진나라에서는 그들 두 사람을 잡아 가둔 다음 위나라에서 파견한 입회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했다고 한다.

대지여우(大智如愚) 愚 어리석을 우

대인 군자의 소행은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음. [출전]<蘇軾>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의 첫째로, 십억국토(十億國土)를 이름. [출전]<유마경(維摩經)>

대천지수(戴天之讐) 戴 일 대, 讐 원수 수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 임금이나 어버이에 대한 원수는 하늘을 함께 하고 살지 않는다.

ꄉ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讐), 불공대천(不共戴天), 철천지원(徹天之怨).

  살부지수(殺父之讐), 무수지수(貿首之讐) : 아버지를 죽인 원수.

ꄜ아비 죽인 원수다.

▷고사 : 《禮記≫ 곡예편(曲禮篇)에 “아버지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지 못하고 형제의 원수는 병기를 돌이키지 않고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지 않는다.”

덕무상사(德無常師)

덕을 닦는 데는 일정한 스승이 없음. [출전]<書經>

도견와계(陶犬瓦鷄) 陶 질그릇 도

질그릇으로 만든 개와 애벌구이한 닭. 형태는 그럴듯하나 쓸모없는 것의 비유. [출전]<金樓子>

도남지익(圖南之翼) 翼 날개 익

큰 사업을 계획함의 비유. [출전]<莊子>

도로무익(徒勞無益)

헛되이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다.

도로아미타불은 옛날 어떤 고을로 동냥을 갔던 젊은 중이 아리따운 처녀를 보고 그만 상사병에 걸렸다. 중은 번민 끝에 처녀에게 청혼을 했다. 처녀는 10년 동안 한방에서 동거하되 손목도 잡지 말고 바라만 보고 친구처럼 지내면 10년 후에는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동거가 시작되어 어언 내일이면 10년이 되는 날 밤, 중은 사랑스런 마음에 그만 하루를 못 참고 처녀의 손을 잡으니, 깜짝 놀란 처녀는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이리하여 10년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즉 순간의 실수로 애쓴 일이 소용없이 되어 처음과 같음을 일컫는다.

☞만사휴의(萬事休矣)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보았지만 달리 해결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여 모든 일이 헛수고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로 《송사(宋史)≫의 <고씨세가(高氏世家)>에서 비롯된 말로 남평(南平)이라는 나라의 보훈(保勛)이라는 임금은 어렸을 때 편애를 받고 자란 영향으로, 항상 웃고 살았다. 당시 송나라가 강성해지고 있던 시기였기에 국력 강화에 힘을 기울여야 함에도 만사 걱정이 없는 태도로 일관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남평 사람들은 만사휴의(萬事休矣 :모든 것이 끝났다.)요, 이제 그에게 기대를 걸어 볼 수 없으니 남평은 곧 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룡지기(屠龍之技) 屠 잡을 도

용을 잡는 재주. 곧, 쓸데없는 재주. [출전]<莊子>

도마죽위(稻麻竹葦) 稻 벼 도, 葦 갈대 위

벼, 삼, 대, 갈대가 빽빽이 나 있음. 또, 그와 같이 사람이나 물건이 많이 무리 지어 있음. 또,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모양의 비유. [출전]<法華經>

도방고리(道傍苦李) 傍 곁 방

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사람에게 버림받음의 비유. [출전]<世說>

도불습유(道不拾遺) 拾 주울 습

나라가 평화롭고 풍습이 아름다워서,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음. [출전]<孔子家語>

도소지양(屠所之羊) 屠 잡을 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곧, 죽음이 목전에 닥친 자의 비유.

도외시(度外視) 度 법도 도

① 가욋것으로 봄. 안중에 두지 않고 무시함. ② 문제삼지 않음. 불문에 붙임. [출전]《後漢書》〈光武記〉

ꄨ치지도외(置之度外). 

ꄑ문제시(問題視).

ꄵ오합지중(烏合之衆), 정중지와(井中之蛙).

▷고사 : 후한의 시조 광무제(光武帝)때의 일이다. 광무제 유수(劉秀)는 한(漢:前漢)나라를 빼앗아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을 멸하고 유현(劉玄)을 세워 황제로 삼고 한나라를 재흥했다. 대사마(大司馬)가 된 유수는 그 후 동마(銅馬)‧적미(赤眉) 등의 반란군을 무찌르고 부하들에게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으나 천하 통일에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윽고 제(齊) 땅과 강회(江淮) 땅이 평정되자 중원(中原)은 거의 광무제의 세력권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벽지인 진(秦) 땅에 웅거하는 외효(隗囂)와 역시 산간오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 거점을 둔 공손술(公孫述)만은 항복해 오지 않았다. 중신들은 계속 이 두 반군의 토벌을 진언했다. 그러나 광무제는 이렇게 말하며 듣지 않았다. “이미 중원은 평정(平定)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문제시할 것 없소[度外視].” 광무제는 그간 함께 많은 고생을 한 병사들을 하루 속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쉬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도원결의(桃園結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하다.

ꄉ결의형제(結義兄弟) : 의형제를 맺음.

▷고사 : 후한(後漢) 말기 환관들의 횡포가 몹시 심하여 정사가 혼란했고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피폐함이 극에 달했다. 또한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 국중이 시끄러울 때 유비(劉備)는 선조의 왕조를 되찾겠다는 큰 뜻을 품고 도원 안에서 세 사람이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하며 맹세하여 말하기를 생각하건 데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씨는 다르나 이미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곤궁함을 구제하고 위태로움을 부축하여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리라고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제사하고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죽기로 맹세하고 의형제를 맺었다.

ꄵ사생계활(死生契濶) : 生死를 같이 함.

  의기투합(意氣投合) : 서로 마음을 합함.

  일심동체(一心同體) : 한 마음 한 몸. 즉 서로 행동을 같이 함.

도처춘풍(到處春風)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 즉 좋은 얼굴로 남을 대하여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처신하는 사람. 가는 곳마다 기분 좋은 일.

도청도설(道聽塗說) 聽 들을 청, 塗 길 도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한다는 뜻. 곧 ① 설들은 말을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옮김. ②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뜬소문. [출전]《論語》〈陽貨篇〉,《漢書》〈藝文志〉,《荀子》〈勸學篇〉

ꄨ구이지학(口耳之學), 가담항설(街談巷說), 유언비어(流言蜚語).

▷고사 : ①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논어(論語)》〈양화편(陽貨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道聽塗說]’은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德之棄也].” 길거리에서 들은 좋은 말[道聽]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는 것[塗說]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좋은 말은 마음에 간직하고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덕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고, 천도(天道)를 지상(地上)에서 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공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억제하고 인덕(仁德)을 쌓으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덕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논어》에서 이르고 있다.

        ② 후한시대, 반고(班固)가 엮은《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대체로 소설이란 것의 기원은 임금이 하층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세상 이야기라든가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道聽塗說]’ 무리가 지어낸 것이다.” 소설이란 말은 이런 의미에서 원래는 ‘패관(稗官:하급 관리) 소설’이라고 일컬었으나 나중에 그냥 ‘소설’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③《순자(荀子)》〈권학편(權學篇)〉에는 다언(多言)을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오고[口耳之學]’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口耳四寸].’ 이처럼 짧은 거리를 지날 뿐이라면 어찌 일곱 자[七尺] 몸을 훌륭하게 닦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학문을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닦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배운 것을 금방 다른 사람에게 고하고 자기를 위해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배의 학문은 인간을 못쓰게 망쳐 버린다. 그래서 묻지 않은 말도 입밖에 낸다. 이것을 ‘잔소리’라 하며,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饒舌]’라고 한다. 둘 다 잘못되어 있다. 참된 군자(君子)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어느 세상에도 오른쪽 귀로들은 것을 왼쪽 사람에게 털어놓는 수다쟁이 정보통이 많다. 더구나 그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사이에 점점 꼬리를 끌게 마련이다. ‘이런 무리는 해가 있을 뿐’이라며 공자, 순자는 경계하고 있다.

★도탄지고(塗炭之苦) 塗 진흙 도, 炭 숯 탄

진흙이나 숯불에 빠졌다는 말로, 몹시 고생스러움을 이름. 가혹한 정치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심한 고통을 겪는 것. [출전]<書經>

ꄜ도탄(塗炭)에 빠졌다.

도필지리(刀筆之吏)

글씨를 쓰는 천한 구실아치. [출전]<戰國策>

독립독행(獨立獨行)

남을 믿지 않고 저 혼자서 생각하고 판단하여, 자기가 믿는 길을 나아감.

독불장군(獨不將軍)

혼자서는 장군을 못한다. 저 혼자 잘난 체하며 뽐내다가 남에게 핀잔을 받고 고립된 처지에 있는 사람. 또는 가장 잘난 체하며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編義自見) 見 나타날 현

뜻이 어려운 글도 자꾸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

▷고사 : 후한 말기에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을 해가면서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황문시랑(黃門侍郞)이란 벼슬에 올라 임금님의 글공부의 상대가 되었으나, 조조(曺操)의 의심을 받아 현직으로 쫓겨났다. 각처에서 동우의 학덕을 흠모하여 글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배우려 하기보다 집에서 그대 혼자 책을 몇 번이고 자꾸 읽어보게. 그러면 스스로 그 뜻을 알게 될 걸세.”하고 넌지시 거절하였다.

독서삼도(讀書三到)

책을 읽는 데는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독서삼매(讀書三昧) 昧 새벽 매

아무 생각 없이 오직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

독서상우(讀書尙友) 尙 오히려 상

책을 읽어서 옛 현인(賢人)을 벗삼는다는 말. [출전]<孟子>

독수공방(獨守空房)

결혼한 여자가 남편 없이 홀로 방을 지키다.

독안룡(獨眼龍) 獨 홀로 독, 龍 용 룡

애꾸눈의 용이란 뜻. 곧 ① 애꾸눈의 영웅 또는 용맹한 장수. ② 애꾸눈의 고덕(高德)한 사람. [출전]《五代史》〈唐記〉,《唐書》〈李克用傳〉

▷고사 : 당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873~883)때의 일이다.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 지 5년만에 10여 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856~908)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 !‘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883~903)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멸되었고 황소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隴西:감숙성(甘肅省)]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852~912,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귀순한 뒤 황소 토멸에 공을 세워 동평군왕(東平郡王)이 됨]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903~907)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後梁:907~923)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李存勗:후당(後唐)의 초대 황제인 장종(莊宗)]에게 멸망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해《오대사(五代史)》〈당기(唐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이라고 했다.”

독양불생(獨陽不生)

혼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듯이,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 [출전]<곡량전(穀梁傳)>

돌돌괴사(咄咄怪事) 咄 꾸짖을 돌, 怪 기이할 괴

놀랍고 괴상한 일. 해괴하고 마땅찮은 일. [출전]<晋書>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정처 없으며 의식주가 곤란하다. 두 가지 좋은 일을 아울러 가지려 함. 빌어먹는 생활.

▷고사 : 옛날 제(齊)나라 사람이 혼기에 찬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두 곳에서 동시에 혼담이 들어왔다. 동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이 넉넉하지만 얼굴이 못생겼고, 서쪽에 사는 남자는 얼굴은 잘 생겼으나 집안이 가난했다. 그 부모가 딸에게 말하기를 “네가 동쪽에 가고 싶으면 왼손을 들고, 서쪽에 가고 싶으면 오른손을 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두 손을 다 들었다. 이에 부모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밥은 동쪽에 가 먹고, 잠은 서쪽에서 자면 되잖아요.” 하였다.

동가홍상(同價紅裳)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이왕이면 창덕궁. 같은 조건이면 좀 더 낫고 편리한 것을 택함.

☞마누라와는 다시는 제대로 들어설 수 없고 그렇다고 마누라가 죽을 때만 바라고 언제까지 홀아비생활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무어나 하나 얻고야 말테니 동가홍상이면 이 계집을 다시 붙드는 것이 상책이요 그렇게 되면 아이 문제도 원만히 해결되는 것이다. ,廉想涉, 三代>

★동고동락(同苦同樂)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즐거워함.

동공이곡(同工異曲)

기술이나 재주, 또는 솜씨는 같으나, 그 표현형식이나 내용, 또는 맛은 서로 다름. [출전]<韓愈>

동공일체(同功一體)

같은 공(功)으로 같은 처지에 있음. [출전]<史記>

동남동녀(童男童女)

사내아이와 여자아이. [출전]<史記>

동량지재(棟樑之材) 棟 용마루 동, 樑 들보 량(양)

집의 들보가 될 나무와 같이 한 사회, 한 나라의 중심인물이 될 사람.

★동문서답(東問西答)

묻는 말에 대하여 아주 딴판의 소리로 대답함.

동문위붕(同門爲朋)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벗. [출전]<論語>

동방화촉(洞房花燭) 燭 촛불 촉

부인의 방에 촛불이 아름답게 비침. 혼례(婚禮)의 뜻. [출전]<유신(庾信)>

ꄜ동방화촉(洞房花燭) 노(老)도령이 숙녀(淑女) 만나 즐거운 일 : 매우 즐거운 일.

☞좋을 좋을 좋을 시고. 어사 서방이 좋을시고. 세상 사람들 다 듣거라. 청춘 금방 괘명하니 소년등과 즐거운 일 동방화촉(洞房花燭) 노도령이 숙녀 만나 즐거운 일 천리 타향 고인 만나 반가워서 즐거운 일 삼춘고한 가물 적에 감우 오니 즐거운 일 칠십 노인 구대 독자 생남하여 즐거운 일 많건마는 이런 일도 또 있는가.<古本春香傳>

☞남녀간의 부부 됨을 일러 結婚이라 하지만 우리 전통으로는 婚姻이다. 婚은 원래 昏, 즉 해가 진 후에 예를 치른다는 뜻이고 姻은 ‘여자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성례한다’는 뜻이다. 結婚이란 저녁에 맺어진다하여 생긴 말이다. 고구려 때는 혼인식을 저녁에 베풀었다. 사위가 될 신랑이 저녁 무렵 신부집 문밖에 꿇어앉아 큰절을 하며 신부와 동침케 해줄 것을 애걸하면, 고자세가 된 장인 장모가 밤 늦게야 미리 마련한 사위방에 들인다. 결혼하는 것을 장인 장모 집에 든다하여 ‘장가든다’고 한 것은 이 같은 풍습에서 연유된 것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 憐 불쌍히 여길 련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엽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딱하게 여겨 동정하고 돕는다는 말. [출전]《吳越春秋》〈闔閭內傳〉

ꄉ양과분비(兩寡分悲) : 두 과부가 슬픔을 함께 나눈다.

ꄨ호사토읍(虎死兎泣) : 여우가 죽으니 토끼가 운다. 같은 것 끼리의 불행을 슬퍼함.

  유유상종(類類相從) : 같은 무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사귐.

  초록동색(草綠同色) : 풀빛과 녹색은 한 빛깔. 같은 처지의 사람과 어울리거나 기우는 것.

  동우상구(同優相救), 동주상구(同舟相救), 동기상구(同氣相救), 동악상조(同惡相助),동류상구(同類相救), 오월동주(吳越同舟), .

ꄜ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

ꄵ와신상담(臥薪賞膽).

▷고사 : 전국시대인 기원전 515년, 오(吳)나라의 공자 광(光)은 사촌 동생인 오왕 요(僚)를 시해한 뒤 오왕 합려(闔閭)라 일컫고, 자객을 천거하는 등 반란에 적극 협조한 오자서(伍子胥)를 중용했다. 오자서는 7년 전 초나라의 태자 소부(太子少傅)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있던 아버지와 역시 관리였던 맏형이 처형당하자 복수의 화신이 되어 오나라로 피신해 온 망명객이었다. 그가 반란에 적극 협조한 것도 실은 유능한 광(합려)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초나라 공략의 길이 열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 해 또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백비(伯嚭)가 오나라로 피신해 오자 오자서는 그를 오왕 합려에게 천거하여 대부(大夫) 벼슬에 오르게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자서는 대부 피리(被離)에게 힐난을 받았다. “백비의 눈길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으니[鷹視虎步], 이는 필시 살인할 악상(惡相)이오. 그런데 귀공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인물을 천거하였소?” 피리의 말이 끝나자 오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 별다른 까닭은 없소이다. 하상가(河上歌)에도 ‘동병상련’ 동우상구(同憂相救)란 말이 있듯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백비를 돕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요.” 그로부터 9년 후 합려가 초나라를 공략, 대승함으로써 오자서와 백비는 마침내 부형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오자서는 불행히도 피리의 예언대로 월(越)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모함에 빠져 분사(憤死)하고 말았다.

ꄲ오자서 : 춘추 시대의 초(楚)나라 사람. 이름은 원(員). 초나라의 태자소부(太子少傅)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아버지 오사(吳奢)와 형 오상(伍尙)이 초나라 평왕(平王)에게 처형당하자 오나라로 망명함. 9년 후 오왕 합려를 도와 초나라의 도읍 영(郢)으로 쳐들어가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어 300대나 매질하고 나서야 원한을 풀었다고 함.

ꄵ일모도원(日暮途遠).

☞그믐달은 요염하게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삼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만은,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 등에 정든 님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이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생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쳐다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만,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만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恨)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보아준다.

내가 만일 여자(女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문제)윗 글의 서술자가 그믐달에게 갖는 태도를 표현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① 以心傳心   ② 附和雷同     ③ 泉石膏肓     ④ 同病相憐     ⑤ 易地思之

★동분서주(東奔西走)

이리저리 바삐 쏘다니는 것.

★동상이몽(同床異夢)

한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 같은 처지에서 서로 딴 생각을 함.

동선하로(冬扇夏爐) 扇 사립문 선, 爐 화로 로(노)

겨울의 부채와 여름의 화로. 아무 소용이 없는 물건. [출전]<論衡>

동성상응(同聲相應) 應 응할 응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한다는 말. 의견을 같이하면 자연히 서로 합친다는 뜻. [출전]<易經>

동이불화(同而不和)

겉으로는 동의를 표시하면서 속마음은 그렇지 않음. [출전]<論語>

동정서벌(東征西伐)

여러 나라를 이리 저리로 정벌함.

동족방뇨(凍足放尿) 凍 얼 동, 尿 오줌 뇨

언 발에 오줌 누기. 잠시의 효력이 있을 뿐, 그 효력은 없어지고 마침내는 더 나쁘게 될 일을 한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고식지계(姑息之計)를 비웃는 말.

☞민주사는 드디어 병석에 눕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약국 집 주인 영감이 분명히 그를 위하여 일표를 던져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샘터 주인 김첨지가 즐겨서 쓰는 문자마따나 언 발에 오줌누기로, 그까짓 것이 별 효력이 있을 턱없이 민주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예상대로 그대로 좇아, 가엾게도 낙선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천변풍경(川邊風景)>

동행서주(東行西走)

사방으로 바쁘게 다님.

동호지필(董狐之筆) 董 동독할 동, 狐 여우 호, 筆:붓 필

‘동호의 직필(直筆)’이라는 뜻. 곧 ① 정직한 기록. 기록을 맡은이가 직필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이름. ②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기는 일. [출전]《春秋左氏傳》〈宣公二年條〉

ꄉ태사지간(太史之簡).

▷고사 : 춘추 시대, 진(晉)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대신인 조천(趙穿)이 무도한 영공(靈公)을 시해했다. 당시 재상격인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영공이 시해되기 며칠 전에 그의 해학을 피해 망명길에 올랐으나 국경을 넘기 직전에 이 소식을 듣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다. ‘조순, 그 군주를 시해하다.’ 조순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고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대감이 분명히 하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감은 당시 국내에 있었고, 또 도읍으로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거나 처벌하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은 공식적으로는 시해자(弑害者)가 되는 것입니다.” 조순은 그것을 도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훗날 공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을 지켜 올곧게 직필했다. 조선자(趙宣子:조순)도 훌륭한 대신이었다.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오명을 감수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경을 넘어 외국에 있었더라면 책임은 면했을 텐데…….”

두남일인(斗南一人)

두남은 북두칠성의 남쪽. 온 천하에서 제일 가는 현재(賢才). [출전]<唐書>

★두문불출(杜門不出) 杜 막을 두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 집안에 들어앉아 세상밖에 나가지 안은.

두소지인(斗莦之人) 莦 모진 풀 소

한 말 두 되가 드는 대그릇처럼 식견과 기량이 좁은 사람. [출전]<論語>

두찬(杜撰) 撰 지을 찬

저술(著述)에 전거(典據)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문자를 쓰거니 오류가 많음.

▷고사 : 두묵(杜黙)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좋은 시상이 떠오르기에 지필(紙筆)을 꺼내어 시를 한 수 지었는데, 운율이 맞지 않는 데가 여러 군데 있었다. 이일로 인하여 일을 함에 있어 격(格)에 맞지 않는 것을 두찬(杜撰)이라 일컫게 되었다.(撰은 著作이란 뜻.)

득롱망촉(得隴望蜀) 隴 땅 이름 롱, 蜀 나라 이름 촉

농을 얻고 나니 촉을 갖고 싶다는 뜻. 곧 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 ② 한 가지 소원을 이룬 다음 또다시 다른 소원을 이루고자 함을 비유. ③ 만족할 줄 모름의 비유. [출전]《後漢書》〈光武記〉〈獻帝記〉.《三國志》〈魏志〉

ꄳ망촉(望蜀). 

ꄉ평롱망촉(平隴望蜀), 망촉지탄(望蜀之歎).

ꄨ계학지욕(谿壑之慾), 차청차규(借廳借閨), 거어지탄(車魚之歎), 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

ꄵ계륵(谿肋).

▷고사 : ①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하여 이를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A.D. 26)의 일이다. 당시 전한의 도읍 장안을 점거한 적미지적(赤眉之賊)의 유분자(劉盆子)를 비롯하여 농서(隴書:감숙성)에 외효(隗囂), 촉(蜀:사천성)에 공손술(公孫述), 수양(睢陽:하남성)에 유영(劉永), 노강(盧江:안휘성)에 이헌(李憲), 임치(臨淄:산동성)에 장보(張步) 등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그중 유분자‧유양‧이헌‧공손술 등은 저마다 황제를 일컫는 세력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외효와 공손술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무제에게 토벌되었다. 외효는 광무제와 수호(修好)하고 서주 상장군(西州上將軍)이란 칭호까지 받았으나 광무제의 세력이 커지자 촉 땅의 공손술과 손잡고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僭稱)하는 공손술은 외효의 사신을 냉대하여 그냥 돌려보냈다. 이에 실망한 외효는 생각을 바꾸어 광무제와 수호를 강화하려 했으나 광무제가 신하가 될 것을 강요하므로 외효의 양다리 외교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건무(建武) 9년(32), 광무제외 대립 상태에 있던 외효가 병으로 죽자 이듬해 그의 아들 외구순(隗寇恂)이 항복했다. 따라서 농서 역시 광무제의 손에 들어왔다. 이때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더니 이미 ‘농을 얻고도 다시 촉을 바라는구나[得隴望蜀].’” 그로부터 4년 후인 건무 13년(37), 광무제는 대군을 이끌고 촉을 쳐 격파하고 천하 평정의 숙원을 이루었다.

        ② 광무제 때로부터 약 200년 후인 후한 헌제(獻帝:189~226)말, 즉 삼국 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의 일이다. 헌제 20년(220), 촉을 차지한 유비(劉備)가 강남의 손권(孫權)과 천하 대사를 논하고 있을 때 조조(曹操)는 단숨에 한중(漢中:섬서성 서남쪽 한강 북안의 땅)을 석권하고 농(隴) 땅을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명장(名將) 사마의[司馬懿:자(字)는 중달(仲達),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의 할아버지]가 진언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진격하면 유비의 촉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란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이미 농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라지 않소.” 이리하여 거기서 진격을 멈춘 조조는 헌제 23년(223), 한중으로 진격해 온 유비의 촉군(蜀軍)과 수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계륵(鷄肋)’이란 말을 남기고 철수하고 말았다.

득일망십(得一忘十)

하나를 알면 다른 열 가지를 잊어버림. 기억력이 좋지 못함을 이르는 말. [출전]<陸游>

득친순친(得親順親)

부모의 뜻에 들고, 부모의 뜻에 순종함. 효자의 행실. [출전]<孟子>

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하여는 낮은 곳부터 밟아야 한다는 뜻. 일의 진행에는 차례가 있음. 또는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겸손해야 한다.

등루거제(登樓去梯) 梯 사다리 제

누상에 오르게 하여 놓고, 오른 뒤 사다리를 치워버린다 함이나, 처음에는 이롭게 하는 체하다가 뒤에 괴롭힌다는 뜻. 나무에 오르게 하고 흔드는 격.

등용문(登龍門) 

용문에 오른다는 뜻. 곧 ① 입신 출세의 관문을 일컫는 말. ② 영달의 비유. ③ 주요한 시험의 비유. ④ 유력자를 만나는 일. [출전]《後漢書》〈李應傳〉

ꄑ점액(點額). 용문점액(龍門點額).

▷고사 : 용문(龍門)은 황하(黃河) 상류의 산서성(山西省)과 섬서성(陝西省)의 경계에 있는 협곡의 이름인데 이곳을 흐르는 여울은 어찌나 세차고 빠른지 큰 물고기도 여간해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오르기만 하면 그 물고기는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따라서 ‘용문에 오른다’는 것은 극한의 난관을 돌파하고 약진의 기회를 얻는다는 말인데 중국에서는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입신 출세의 제일보라는 뜻으로 ‘등용문’이라 했다.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을 ‘점액(點額)’이라 한다. ‘점(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액(額)’은 이마인데 용문에 오르려고 급류에 도전하다가 바위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말한다. 즉 출세 경쟁에서의 패배자, 중요 시험에서의 낙방자를 가리킨다. 후한(後漢) 말, 환제(桓帝:146~167)때 정의파 관료의 지도적 인물에 이응[李應:자는 원례(元禮)]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청주자사(靑州刺史)‧촉군태수(蜀郡太守)‧탁료장군(度遼將軍)을 거쳐 하남윤(河南尹:하남 지방의 장관)으로 승진했을 때 환관의 미움을 받아 투옥 당했다. 그러나 그 후 유력자의 추천으로 사예교위(司隸校尉:경찰청장)가 되어 악랄한 환관 세력과 맞서 싸웠다. 그러자 그의 명성은 나날이 올라갔다. 태학(太學)의 청년 학생들은 그를 경모하여 ‘천하의 본보기는 이원례’라 평했으며 신진 관료들도 그의 추천을 받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알고, 이를 ‘등용문’이라 일컬었다.

ꄲ황하 : 청해성(靑海省)의 암네 마친 산맥에서 발원하여 황토 고원을 침식하면서 동쪽의 발해만(渤海灣)으로 흘러 들어감.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 길이 4100Km. 황하(黃河)의 큰 지류인 위수(渭水) 유역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임.

등하불명(燈下不明)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도리어 잘 모른다. 또는 남의 일은 잘 알 수 있으나 제 일은 잘 모른다.

ꄜ도회 소식 들으려면 시골로 가거라.

  두메 앉은 이방(吏房)이 조정(朝廷) 일 알 듯.

  법(法) 밑에 법(法) 모른다.

☞그야 헛소문이 난게지. 자식 속이야 애비만큼 알 수가 없는 법이오. 그야 지자는 막역부(知者는 莫逆父)란 말이 없잖아 있지마는…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으로 어버이 아는 것이 외문만 못한 수도 더 많으니까.<玄鎭健, 無影塔>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을 가까이 하여 책읽기에 좋다. 가을밤은 심신이 상쾌하므로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읽기가 좋음.

ꄨ천고마비(天高馬肥) :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찜.

  신량등화(新凉燈火) : 가을의 서늘한 기우니 처음 생길 무렵에 등불 밑에서 글읽기가 좋다.


마부작침(磨斧作針) 磨:갈 마.  斧:도끼 부.  作:지을(만들) 작.  針:바늘 침.

[동의어] 철저성침[鐵杵成針(鍼)]. 마저작침[磨杵作針(鍼)].

[유사어] 우공이산(愚公移山). 수적천석(水滴穿石).

[유사어]《唐書》〈文藝(苑)傳〉.《方與勝覽(방여승람)》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 곧 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함의 비유. ② 노력을 거듭해서 목적을 달성함의 비유. ③ 끈기 있게 학문이나 일에 힘씀의 비유.

▷고사 : 시선(詩仙)으로 불리던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자는 태백(太白), 701~762]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백은 아버지의 임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서 자랐다. 그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수학(修學)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항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일설에는 쇠공이[鐵杵])를 갈고 있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磨斧作針].”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이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여기서 생각을 바꾼 그는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 후 이백은 마음이 해이해지면 바늘을 만들려고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던 그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곤 분발했다고 한다.

마이동풍(馬耳東風) 馬:말 마.  耳:귀 이.  東:동녘 동.  風:바람 풍.

[유사어] 우이독경(牛耳讀經). 오불관언(吾不關焉). 대우탄금(對牛彈琴). [출전]《李太白集》〈券十八〉

말의 귀에 동풍(東風:春風)이 불어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뜻. 곧 ①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그대로 흘려 버림의 비유. ② 무슨 말을 들어도 전혀 느끼지 못함의 비유. ③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음의 비유.

▷고사 :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李白)이 벗 왕십이(王十二)로부터〈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추운 방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느낀 바 있어서)]〉라는 시 한 수를 받자 이에 답하여〈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라는 시를 보냈는데 ‘마이동풍’은 마지막 구절에 나온다. 장시(長詩)인 이 시에서 이백은 “우리네 시인들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이 세상 속물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

세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네

[世人聞此皆掉頭(세인문차개도두)]

마치 동풍이 쏘인 말의 귀처럼

[有如東風射馬耳(유여동풍사마이)]

[주] 동풍은 봄바람의 뜻. 그 동풍이 말의 귀를 쏘아(스쳐) 봤자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을 것임. 즉 세인들이 시인의 말이나 걸작에 기울이는 관심도가 그 정도로 낮다 - 무관심하다고 이백은 비분(悲憤)하고 있는 것임.

마중지봉(麻中之蓬) 蓬 쑥 봉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자연히 꼿꼿하게 자란다. 환경에 따라 악도 선도 고쳐진다.

막역지우(莫逆之友)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리는 일이 없는, 死生을 같이 할 수 있는 친밀한 벗.

만가(輓歌) 輓:수레 끌 만.  歌:노래 가.

[출전]《古今洼》〈音樂篇〉,《晉書》〈禮志篇〉,《古詩源》 〈薤露歌〉〈蒿里曲〉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고사 :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酈食其)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렸다. 전횡은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가(薤露歌)‧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부추 잎의 이슬은 어찌 그리 쉬이 마르는가 [薤上朝露何易晞(해상조로하이희)]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露晞明朝更復落(노희명조갱부락)]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다기 돌아오나 [人死一去何時歸(인사일거하시귀)] -해로가-

호리는 뉘 집터인고 [蒿里誰家地(호리수가지)]

혼백을 거둘 땐 현‧우가 없네 [聚斂魂魄無賢愚(취렴혼백무현우)]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鬼伯一何相催促(귀백일하상최촉)]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 [人命不得少踟躕(인명부득소지주)] -호리곡-

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 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주] 해로가 : 인생은 부추 잎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음을 노래한 것.

    호리 : 산동성(山東省)의 태산(泰山) 남쪽에 있는 산 이름. 옛 중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넋이 이곳으로 온다고 믿어 왔음.

만경창파(萬頃蒼波) 頃 밭 넓이 단위 경, 蒼 푸를 창

만 이랑의 푸른 물결.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

만구성비(萬口成碑) 碑 돌기둥 비

많은 사람의 입이 비를 이룬다.

만단정회(萬端情懷)

여러 가지 생각.

만만불가(萬萬不可)

전혀 옳지 않음.

만사휴의(萬事休矣) 萬:일만 만.  事:일 사.  休:그칠‧쉴 휴.  矣:어조사 의(…이다).

[유사어] 능사필의(能事畢矣). [출전]《宋史》〈荊南高氏世家〉

모든 일이 끝장났다(가망 없다)는 뜻으로, 어떻게 달리 해볼 도리가 없다는 말.

▷고사 : 당나라가 망하고 송(宋:北宋, 960~1127) 나라가 일어날 때까지 53년 동안에 중원에는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의 다섯 왕조가 일어났다가 쓰러지곤 했는데 이 시대를 오대[五代:후오대(後五代)의 준말]라 일컫는다.

또 다시 중원을 벗어난 각 지방에는 전촉(前蜀)‧오(吳)‧남한(南漢)‧형남(荊南)‧오월(吳越)‧초(楚)‧민(閩)‧남당(南唐)‧후촉(後蜀)‧북한(北漢)등 열 나라가 있었는데 역사가는 이를 오대 십국(五代十國)이라 일컫고 있다.

이들 열 나라 중에는 형남과 같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왕인 고종회(高從誨)는 아들 고보욱(高保勖)을 분별없이 귀여워했다. 그래서 고보욱은 남이 아무리  노한 눈으로 쏘아보아도 싱글벙글 웃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일이 끝장났다[萬事休矣].’

과연 고보욱의 대(代)에 이르러 형남은 멸망하고 말았다.

만수운환(漫垂雲鬟)

구름처럼 흩어져 늘어진 머리.

만시지탄(晩時之歎)

기회를 잃고 때가 지났음을 한탄하는 것.

★만신창이(滿身瘡痍)

온 몸에 상처를 입음.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또는 사물이 쓸만한 데가 없을 정도로 결함이 많음.

만학천봉(萬壑千峰)

첩첩이 많은 여러 골짜기와 산봉우리.

만화방창(萬化方暢)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람.

만휘군상(萬彙群象)

가지가지의 일과 물건. 우주의 수많은 현상.

망국지음(亡國之音) 亡:망할 망.  國:나라 국.  之:갈 지(…의).  音:소리 음.

[동의어] 망국지성(亡國之聲). [유사어] 정위지음(鄭衛之音).

[출전]《韓非子》〈十過篇〉.《禮記》〈樂記〉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 곧 ① 음란하고 사치한 음악. ②망한 나라의 음악. ③ 애조(哀調)를 띤 음악.

▷고사 : ① 춘추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던 도중 복수[濮水:산동성(山東省) 내] 강변에 이르자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멋진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영공은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잠시 넋을 잃고 듣다가 수행중인 사연(師涓)이란 악사(樂師)에게 그 음악을 잘 기억해두라고 했다.

이윽고 진나라에 도착한 영공은 진나라 평공(平公)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들은 새로운 음악’이라고 자랑했다. 당시 진나라에는 사광(師曠)이라는 유명한 악사가 있었는데 그가 음악을 연주하면 학이 춤을 추고 흰 구름이 몰려든다는 명인이었다. 위나라 영공이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입궐한 사광은 그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황급히 사연의 손을 잡고 연주를 중지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亡國之音]’이오.”

이 말에 깜짝 놀란 영공과 평공에게 사광은 그 내력을 말해 주었다.

“그 옛날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는 사연(師延)이란 악사가 있었사옵니다. 당기 폭군 주왕은 사연이 만든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미(淫蘼:음란하고 사치함)한 음악에 도취하여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서 음일(淫佚)에 빠졌다가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나이다. 그러자 사연은 악기를 안고 복수에 토신 자살했는데, 그 후 복수에서는 누구나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국의 음악’이라고 무서워하며 그곳을 지날 땐 귀를 막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사옵니다.”

②《예기(禮記)》〈악기(樂記)〉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복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망국지음’이다.”

망양보뢰(亡羊補牢)

평소에 대비가 없었다가 실패한 다음에 뒤늦게야 깨달아 대비함을 이름. 이미 일을 그릇친 뒤에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말.

망양지탄(望洋之歎) 洋 바다 양, 歎 탄식할‧감탄할 탄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 곧 ①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함의 비유. ② 제 힘이 미치지 못할 때 하는 탄식.

ꄵ정중지와(井中之蛙). [출전]《莊子》〈秋水篇〉

▷고사 : 먼 옛날 황하 중류의 맹진(孟津:하남성 내)에 하백(河伯)이라는 하신(河神)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자라였다. “그럼, 황하보다 더 큰 물이 있단 말인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해 뜨는 쪽에 북해(北海)가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강이 사시 장철 그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그 넓이는 실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 큰 강이 있을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네.” 황하 중류의 맹진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하백은 늙은 자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갑절이나 넓어졌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지난날 늙은 자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한번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잘 왔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북해가 크다는 말을 듣고도 이제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단견(短見)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망자계치(亡子計齒)

죽은 자식 나이 세기.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기다.

망중한(忙中閑) 忙 바쁠 망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가로운 때.

망지소조(芒知所措)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

매처학자(梅妻鶴子)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음. 풍아한 생활.

맥수지탄(麥秀之歎) 麥:보리 맥.  秀:빼어날‧팰 수.  之:갈 지.  歎:탄식할‧감탄할 탄.

[원말] 서리맥수지탄(黍離麥秀之歎).

[동의어] 맥수서유(麥秀黍油). 맥수지시(麥秀之詩).

[참조] 은감불원(殷鑑不遠). 주지육림(酒池肉林).

[출전]《史記》〈宋微子世家〉.《詩經》〈王風篇〉

보리 이삭이 무성함을 탄식한다는 뜻. 곧 고국이 멸망한 탄식.

▷고사 :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 주왕이 음락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한 신하 중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서 누차 간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도 망명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왕을 보좌하던 세 제후)의 한 사람이었던 서백[西伯:훗날의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誅殺)당하고 천하는 주왕조(周王朝)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武王) 발은 은왕조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왕(宋王)으로 봉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치 못한 기자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麥秀漸漸兮(맥수점점혜)]

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 [禾黍油油兮(화서유유혜)]

교활한 저 철부지(주왕)가 [彼狡童兮(피교동해)]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不與我好兮(불여아호혜)]

[주] 기자 동래설(箕子東來說):기자는 주왕의 횡포를 피하여, 혹은 주나라 무왕이 조선왕으로 책봉함에 따라 조선에 들어와 예의‧밭갈이‧누에치기‧베짜기와 사회 교화(敎化)를 위한 팔조지교(八條之敎)를 가르쳤다고 하나 이는 후세 사람들에 의한 조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라고 함. 왜냐하면 진(晉)나라의 무장(武將)‧정치가‧학자인 두예(杜預:222~284)가 그의 저서《춘추석례(春秋釋例)》의 주(註)에서 “기자의 무덤이 양(梁)나라의 몽현(夢縣)에 있다”고 적고 있는 만큼 ‘기자 동래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임.

맹귀우목(盲龜遇木) 盲 소경 맹, 龜 거북 귀

눈먼 거북이가 다행히 물에 뜬 나무를 붙잡게 되었다. 매우 힘든 행운.

맹모단기(孟母斷機) 孟:맏 맹.  母:어미 모.  斷:끊을 단.  機:베틀 기.

[원말]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동의어] 단기지계(斷機之戒). 단기계(斷機戒).

[유사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출전]《列女傳》〈母儀傳〉.《蒙求(몽구)》

맹자의 어머니가 [유학(遊學) 도중에 돌아온 맹자를 훈계하기 위해] 베틀에 건 날실을 끊었다는 뜻으로, 학문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

▷고사 : 전국 시대를 살다 간 맹자의 어머니의 훈육 일화이다. 집을 떠나 타향에서 공부하던[遊學] 어린 맹자가 어느 날 느닷없이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때 맹자의 어머니는 베틀에 앉은 채 맹자에게 물었다.

“그래, 글은 얼마나 배웠느냐?”

“별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머님.”

맹자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리고 이렇게 타일렀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이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린 것과 다를 게 없다.”

크게 깨달은 맹자는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가 전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공자(孔子)에 버금가는 명유(名儒)가 되었다고 한다.

맹모삼천(孟母三遷) 孟:맏 맹.  母:어미 모.  三:석 삼.  遷:옮길 천.

[원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동의어] 삼천지교(三遷之敎).

[유사어] 현모지교(賢母之敎).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출전]《列女傳》〈母儀傳(모의전)〉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교사.

▷고사 : 전국 시대, 유학자(儒學者)의 중심 인물로서 성인(聖人) 공자에 버금가는 아성(亞聖) 맹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맹자의 어머니는 처음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묘지 파는 흉내만 내며 놀았다. 그래서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이곳 역시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제구(祭具)를 늘어놓고 제사 지내는 흉내를 냈다. 서당에서는 유교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예절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런 곳이야말로 자식을 기르는데 더할 나위 없이 놓은 곳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면벽구년(面壁九年)

고승 달마가 산중에서 구년간 벽을 대하고 앉아 수도하여 마침내 형태가 돌 속으로 들어갔다. 정성을 다하면 금석이라도 뚫을 수 있다.

면종복배(面從腹背)

표면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명경지수(明鏡止水) 明:밝을 명.  鏡:거울 경.  止:그칠 지.  水:물 수.

[출전]《莊子》〈德充符篇〉

맑을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뜻으로, 티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이르는 말.

▷고사 : 《장자(莊子)》〈덕충부편(德充符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왕태(王駘)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교의 비조(鼻祖)인 공자와 맞먹을 만큼 많은 제자들은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인 상계(常季)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올자(兀者)는 어째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울 대신 비쳐볼 수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가만히 정지(靜止)해 있는 물이니라.”

또 같은〈덕충부편〉에는 이런 글도 실려 있다.

“거울에 흐림이 없으면 먼지가 앉지 않으나 먼지가 묻으면 흐려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오랫동안 현자(賢者)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맑아져 허물이 없어진다.”

[주] 올자 : 형벌(刑罰)에 의해 발뒤꿈치를 잘린 불구자.

명약관학(明若觀火)

불을 보듯이 환하게 분명히 알 수 있음.

명재경각(命在頃刻)

숨이 금방 끊어질 지경에 이름.

모순(矛盾) 矛:창 모.  盾:방패 순.

[유사어] 자가당착(自家撞着).

[출전]《韓非子》〈難勢篇〉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

▷고사 : 어느 날 초나라 장사꾼이 저잣거리에 방패[盾]와 창[矛]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자, 여기 이 방패를 보십시오. 이 방패는 어찌나 견고한지 제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랑한 다음 이번에는 창을 집어들고 외쳐댔다.

“자, 이 창을 보십시오. 이 창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구경꾼들 속에서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

장사꾼은 대답을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목불식정(目不識丁)

아주 무식함. 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목불인견(目不忍見)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일.

묘항현령(猫項懸鈴) 猫 고양이 묘, 項 목 항, 懸 매달 현, 鈴 방울 령(영)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실행하지 못할 일을 공연히 의논만 함.

무골호인(無骨好人)

뼈없이 좋은 사람. 지극히 순하고 남의 비위를 두루 맞추는 사람.

무궁무진(無窮無盡)

끝이 없고 다함이 없다.

★무념무상(無念無想)

일체의 상념을 떠나 마음이 빈 듯이 담담한 상태.

무뢰한(無賴漢) 賴 힘입을 뇌(뢰)

일정한 직업이 없어 나다니는 불량한 자.

무릉도원(武陵桃源)

속세와 떨어진 별천지.

무산지몽(巫山之夢) 巫:무당 무.  山:메 산.  之:갈 지(…의).  夢:꿈 몽.

[동의어] 조운모우(朝雲暮雨). 천침석(薦枕席).

[유사어] 무산지운(巫山之雲). 무산지우(巫山之雨).

[출전]《文選》〈宋玉 高唐賦〉

무산(巫山)의 꿈이란 뜻으로, 남녀간의 밀회(密會)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

▷고사 : 전국 시대, 초나라 양왕(襄王)의 선왕(先王)이 어느 날 고당관(高唐館)에서 노닐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잤다. 그러자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첩(小妾)은 무산에 사는 여인이온데 전하께오서 고당에 납시었다는 말씀을 듣자옵고 침석(枕席:잠자리)을 받들고자 왔나이다.”

왕은 기꺼이 그 여인과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을 나누었다. 이윽고 그 여인은 이별을 고했다.

“소첩은 앞으로도 무산 남쪽의 한 봉우리에 살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 머물러 있을 것이옵니다.”

여인이 홀연히 사라지자 왕은 꿈에서 깨어났다. 이튿날 아침, 왕이 무산을 바라보니 과연 여인의 말대로 높은 봉우리에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곳에 사당을 세우고 조운묘(朝雲廟)라고 이름지었다.

무용지물(無用之物)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

무위도식(無爲徒食)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

무장공자(無腸公子)

담력이나 기개가 없는 사람을 비웃어 하는 말.

무지몽매(無知蒙昧) 蒙 입을 몽

아는 것이 없이 어리석음.

묵묵부답(黙黙不答) 黙 묵묵할 묵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

묵적지수(墨翟之守) 墨:먹 묵.  翟:꿩 적.  之:갈 지(…의).  守:지킬 수.

[준말] 묵수(墨守)  [출전]《墨子》〈公輸盤篇〉

‘묵적의 지킴’이란 뜻. 곧 ①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킴. ② 융통성이 없음의 비유.

▷고사 : 춘추 시대의 사상가로서 ‘자타 차별 없이 서로 똑같이 사랑하고 이롭게 하자’는 겸애교리설(兼愛交利說:兼愛說)과 비전론(非戰論)을 주창한 묵자[墨子:이름은 적(翟), B.C. 480~390]의 이야기이다.

초(楚)나라의 도읍 영[郢:호북성(湖北省) 내]에 도착한 묵자는 공수반(公輸盤)을 찾아갔다. 그가 초왕을 위해 운제계(雲梯械)라는 새로운 공성기(攻城機:성을 공격하는 기계)를 만들어 송(宋)나라를 치려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북방에 나를 모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가 나를 위해 죽여 줄 수 없겠소?”

그러자 공수반은 불쾌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의(義)를 중히 여기는 만큼 살인은 안하오.”

“사람 하나 죽이지 않는 게 ‘의’라면 왜 죄 없는 송나라 백성을 죽이려 하시오?”

답변에 궁한 공수반은 묵지를 초왕 앞으로 안내했다.

“전하, 새 수레를 소유한 사람이 이웃집 헌 수레를 훔치려 하고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 이웃집 누더기를 훔치려 한다면 전하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겠나이까?”

“그건 도벽이 있어서 그럴 것이오.”

“하오면, 사방 5000리 넓은 국토에다 온갖 짐승과 초목까지 풍성한 초나라가 사방 500리밖에 안돼는 가난한 송나라를 치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옵니까?”

“과인은 단지 공수반의 운제계를 한번 실험해 보려 했을 뿐이오?”

“하오면, 외신(外臣)이 여기서 그 운제계에 의한 공격을 막아 보이겠나이다.”

이리하여 초왕 앞에서 기묘한 공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묵자는 허리띠를 풀어 성 모양으로 사려 놓고 나뭇조각으로 방패를 만들었다. 공수반은 모형 운제계로 아홉 번 공격했다. 그러나 묵자는 아홉 번 다 굳게 지켜냈다. 이것을 본 초왕은 묵자에게 송나라를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문경지교(刎頸之交) 刎:목 찌를 문.  頸:목 경.  之:갈 지(…의).  交:사귈‧벗 교.

[동의어] 문경지계(刎頸之契).

[유사어] 관포지교(管鮑之交). 금란지계(金蘭之契). 단금지계(斷金之契).

[참조] 완벽(完璧). [출전]《史記》〈廉頗藺相如列傳〉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 또 그런 벗.

▷고사 :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 목현(繆賢)의 식객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名玉)인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원상태로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됐다.

그리고 3년 후(B.C. 280), 소양왕과 혜문왕을 욕보이려는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그에게 망신을 주었다. 인상여는 그 공으로 종일품(從一品)의 상경(上卿)에 올랐다.

그리하여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염파(廉頗)보다 더 높아졌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城)을 쳐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 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는 병을 핑계 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돌아가곤 했다. 이 같은 인상여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부하가 작별 인사를 하로 왔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로 소양왕이지요.”

“나는 그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혼내 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염파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위기를 생각하고 염파장군을 피하는 거야.”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그는 곧 ‘윗통을 벗은 다음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荊杖)을 짊어지고[肉粗負荊:사죄의 뜻을 나타내는 행위]’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무릎을 끓었다.

“내가 미욱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를 맺었다고 한다.

문과식비(文過飾非) 飾 꾸밀 식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꾸민다.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 아니라 도리어 외면하고 도리어 잘난 체함.

문방사우(文房四友)

글을 쓰는 네 가지  벗. 종이, 붓, 벼루, 먹. 지필연묵(紙筆硯墨).

문외한(門外漢)

어떤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거나 관계가 없는 사람.

문전성시(門前成市) 門:문 문.  前:앞 전.  成:이룰 성.  市:저자‧도시‧시가 시.

[유사어] 문전여시(門前如市). 문정여시(門庭如市).

[반의어] 문외가설작라(門外可設雀羅). 문전작라(門前雀羅).

[출전]《漢書》〈孫寶傳〉〈鄭崇傳〉

문 앞이 저자(市]를 이룬다는 뜻으로, 권세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빈다는 말.

▷고사 : 전한(前漢) 말, 11대 황제인 애제(哀帝:B.C. 6~1) 때의 일이다. 애제가 즉위하자 조정의 실권은 대사마(大司馬:국방 장관) 왕망[王莽:훗날 전한을 멸하고 신(新)나라를 세움]을 포함한 왕씨 일족으로부터 역시 외척인 부씨(傅氏:애제의 할머니), 정씨(丁氏:어머니) 두 가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당시 20세인 애제는 동현(董賢)이라는 미동(美童)과 동성연애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충신들은 간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그중 상서 복야(尙書僕射:장관) 정숭(鄭崇)은 거듭 간하다가 애제에게 미움만 사고 말았다. 그 무렵, 조창(趙昌)이라는 상서령(尙書令)이 있었는데 그는 전형적인 아첨배로 왕실과 인척간인 정숭을 시기하여 모함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애제에게 이렇게 고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정숭의 집 ‘문 앞이 저자를 이루고 있사온데[門前成市]’ 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오니 엄중히 문초하시오소서.”

애제는 즉시 정숭을 불러 물었다.

“듣자니, 그대의 ‘문전은 저자와 같다[君門如市]’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예, 폐하. ‘시의 문전은 저자와 같사오나[臣門如市]’ 신의 마음은 물같이 깨끗하옵니다. 황공하오나 한 번 더 조사해 주시 오소서.”

그러나 애제는 정숭의 소청을 묵살한 패 옥에 가뒀다. 그러자 사례(司隷)가 상소하여 조창의 참언(讒言)을 공박하고 정숭을 변호했으나 애제는 손보를 삭탈관직(削奪官職)하고 서인(庶人)으로 내쳤다. 그리고 정숭은 그 후 옥에서 죽고 말았다.

[주] 삭탈 관직 : 죄 지은 벼슬아치의 벼슬과 품계[品階:직품(職品)과 관계(官階)]를 빼앗고 사판(仕版: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깎아 버림.

문전작라(門前雀羅) 門:문 문.  前:앞 전.  雀:참새 작.  羅:벌일 라.

[원말] 문외가설작라(門外可設雀羅). [반의어] 문전성시(門前成市).

[출전]《史記》〈汲鄭列傳〉. 백거이(白居易)의〈寓意詩〉

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권세를 잃거나 빈천(貧賤)해지면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진다는 말.

▷고사 : 전한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賢臣)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 각기 구경(九卿:9개 부처의 각 으뜸 벼슬)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둘 다 개성이 강한 탓에 좌천‧면직‧재등용을 되풀이하다가 급암은 회양 태수(淮陽太守)를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이들이 각기 현직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되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이어 사마천(司馬遷)은《사기(史記)》〈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이렇게 덧붙여 쓰고 있다.

“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열 배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또 적공(翟公)의 경우는 이렇다.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빈객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가 면직되자 빈객은 금새 발길을 끊었다. 집 안팎이 어찌나 한산한지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 얼마 후 적공은 다시 정위가 되었다. 빈객들이 몰려들자 적공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一死一生 卽知交情(일사일생 즉지교정)]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貧一富 卽知交態(일빈일부 즉지교태)]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은 나타나네

[一貴一賤 卽見交情(일귀일천 즉현교정)]

물심일여(物心一如)

마음과 형체가 구분됨이 없이 하나로 일치한 상태.

★물아일체(物我一體)

외물(外物)과 자아(自我), 물계(物界)와 심계(心界), 또는 객관과 주관이 한데 어울려 한 덩어리가 됨.

물외한인(物外閒人)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

미봉(彌縫) 彌:더할‧많을 미.  縫:꿰맬 봉.

[유사어] 고식(姑息). 임시변통(臨時變通).

[출전]《春秋左氏傳》〈桓公五年條〉

빈 구석이나 잘못된 것을 그때그때 임시 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꾸며 댐.

▷고사 :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13년(B.C. 707)의 일이다. 환왕은 명목상의 천자국(天子國)으로 전락한 주나라의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정(鄭)나라를 치기로 했다. 당시 정나라 장공(莊公)은 날로 강성해지는 국력을 배경으로 천자인 환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왕은 우선 장공으로부터 왕실 경사(卿士)로서의 정치상 실권을 박탈했다. 이 조치에 분개한 장공이 조현(朝見:신하가 임금을 뵙는 일)을 중단하자 환왕은 이를 구실로 징벌군을 일으키고 제후(諸侯)들에게 참전을 명했다.

왕명을 받고 괵(虢)‧채(蔡)‧위(衛)‧진(陳)나라 군사가 모이자 환왕은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 정나라를 징벌하러 나섰다. 이런 일이 곧 천자(天子)의 자장 격지(自將擊之)는 춘추 시대 240여년 동안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윽고 정나라의 수갈(繡葛:하남성 내)에 도착한 왕군(王軍)은 장공의 군사와 대치했다. 공자(公子)인 원(元)은 장공에게 진언했다.

“지금 좌군(左軍)에 속해 있는 진나라 군사는 국내 정세가 어지럽기 때문에 전의(戰意)를 잃고 있습니다. 하오니 먼저 진나라 군사부터 공격하면 반드시 패주할 것입니다. 그러면 환왕이 지휘하는 중군(中軍)을 혼란에 빠질 것이며 경사(卿士)인 괵공(虢公)이 이끄는 채‧위나라의 우군(右軍)도 지탱하지 못하고 퇴각할 것입니다. 이 때 중군을 치면 승리는 틀림없습니다.”

장공의 원의 진언에 따라 원형(圓形)의 진(陣)을 쳤는데 이는 병거(兵車:군사를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보병(步兵)을 뒤따르게 하는 군진(軍陣)으로서 병거와 병거 사이에는 보병으로 ‘미봉’했다. 원이 진언한 전략은 적중하여 왕군은 대패하고 환왕은 어깨에 화살을 맞은 채 물러가고 말았다.

[주] 자장격지(自將擊之) : 남을 시키지 않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움.

미생지신(尾生之信) 尾:꼬리 미.  生:날 생.  之:갈 지(…의).  信:믿을 신.

[동의어] 포주지신(抱柱之信).

[출전]《史記》〈蘇秦列傳〉.《莊者》〈盜跖篇〉

미생의 믿음이란 뜻. 곧 ① 약속을 굳게 지킴의 비유. ②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의 비유.

▷고사 :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尾生高)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나이였다.

어느 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전국 시대,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연(燕)나라 소왕(昭王)을 설파할 때 신의 있는 사나이의 본보기로 미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같은 전국 시대를 살다간 장자(莊子)의 견해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었다. 장자는 그의 우언(寓言)이 실려 있는《장자》〈도척편(盜跖篇)〉에서 근엄 그 자체인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유명한 도둑 도척(盜跖)의 입을 통해 미생을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이런 인간은 책형(磔刑:죄인을 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 죽이던 형벌)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명목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

미증유(未曾有)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일이 없음.

민생도탄(民生塗炭)

=>도탄지고(塗炭之苦).


박물군자(博物君子)

모든 사물에 능통한 사람.

박이부정(博而不精)

널리 알기는 하나 그것이 정확하고 자세하지 못함. 

★박장대소(拍掌大笑)

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 

박주산채(薄酒山菜)

맛이 변변하지 않은 술과 산나물.

★박학다식(博學多識)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음.

반근착절(盤根錯節) 盤:서릴‧쟁반 반.  根:뿌리 근.  錯:섞일 착.  節:마디 절.

[출전]《後漢書》〈虞栩傳〉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라는 뜻으로, 얼크러져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사건의 비유.

▷고사 : 후한(後漢) 6대 황제인 안제(安帝: 106~125)때의 일이다. 안제가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모후(母后)인 태후(太后)가 수렴 청정(垂簾聽政)을 하고 태후의 오빠인 등즐(鄧騭)이 대장군이 되어 병권을 장악했다.

그 무렵, 서북 변경은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의 침략이 잦았다. 그러나 등즐은 국비 부족을 이유로 양주(凉州:감숙성)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낭중(郎中) 벼슬에 있는 우허(虞栩)가 반대하고 나섰다.

“함곡관(函谷關)의 서쪽은 장군을 내고 동쪽은 재상을 낸다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양주는 많은 열사와 무인을 배출한 곳인데 그런 땅을 강족에게 내준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입니다.”

중신들도 모두 우허와 뜻을 같이했다. 이 때부터 우허를 미워하는 등즐은 때마침 조가현(朝歌縣:안휘성 내)의 현령이 비적(匪賊)에게 살해되자 우허를 후임으로 정하고 비적 토벌을 명했다. 친구들이 모여 걱정했으나 우허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盤根錯節]’에 부딪쳐 보지 않고서야 어찌 칼날의 예리함을 알 수 있겠는가.”

현지에 도착한 우허는 우선 전과자들을 모아 적진에 침투시킨 다음 갖가지 계책으로 비적을 토벌했다고 한다.

반목질시(反目嫉視)

서로 눈을 흘기며 미워함.

반식재상(伴食宰相) 伴:짝 반.  食:밥‧먹을 식.  宰:재상 재.  相:서로 상.

[동의어] 반식대신(伴食大臣).

[유사어] 시위소찬(尸位素餐). 녹도인(祿盜人). 의관지도(衣冠之盜)

[출전]《舊唐書》〈盧懷愼傳〉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대신)을 비꼬아 이르는 말.

▷고사 : 당나라 6대 황제인 현종(玄宗)을 도와 당대 최성기(唐代最盛期)인 ‘개원(開元)의 치(治)’를 연 재상은 요숭(姚崇)이었다.

개원 2년(713), 현종이 망국의 근원인 사치를 추방하기 위해 문무 백관의 호사스런 비단 관복을 정전(正殿) 앞에 쌓아 놓고 불사른 일을 비롯, 조세와 부역을 감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형벌 제도를 바로잡아 억울한 죄인을 없애고, 농병(農兵) 제도를 모병(募兵) 제도로 고친 것도 모두 요숭의 진언에 따른 개혁이었다.

이처럼 요숭은 백성들의 안녕을 꾀하는 일이 곧 나라 번영의 지름길이라 믿고 늘 이 원칙을 관철하는 데 힘썼다. 특히 정무재결(政務裁決)에 있어서의 신속 적확(迅速的確)함에는 그 어느 재상(宰相:大臣)도 요숭을 따르지 못했는데 당시 황문감(黃門監:환관 감독부서의 으뜸 벼슬)인 노회신(盧懷愼)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회신은 청렴 결백하고 근면한 사람이었으나 휴가중인 요숭의 직무를 10여일간 대행할 때 요숭처럼 신속히 재결하지 못함으로 해서 정무를 크게 정체시키고 말았다. 이 때 자신이 요숭에게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한 노회신은 매사를 요숭에게 상의한 다음에야 처리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회신을 가리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伴食宰相]’이라고 냉평(冷評)했다.

★반신반의(半信半疑)

어느 정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하는 일.

반포(反哺)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함을 말함.

발본색원(拔本塞源)

폐단의 근본을 아주 뽑아 버려 다시 고치려는 것.

방약무인(傍若無人) 傍:곁‧의지할 방.  若:갈을 약.  無:없을 무.  人:사람 인.

[출전]《史記》〈刺客列傳〉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의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마구 행동함을 이르는 말.

▷고사 : 전국 시대도 거의 막을 내릴 무렵, 즉 진왕(秦王) 정(政:훗날의 시황제)이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포학 무도한 진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자객 중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 사람이었으나 위나라 원군(元君)이 써주지 않자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연(燕)나라에서 축(筑: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를 만났다. 형가와 고점리는 곧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매일 저자에서 술을 마셨다.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감회가 복받치면 함께 엉엉 울었다.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傍若無人]’…….

배반낭자(杯盤狼藉) 杯:잔 배.  盤:쟁반 반.  狼:이리‧어지러울 낭.  藉:어지러울 자.

[출전]《史記》〈滑稽列傳(골계열전)〉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 곧 ① 술을 마시고 한창 노는 모양. ② 술자리가 파할 무렵 또는 파한 뒤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양.

▷고사 : 전국 시대 초엽,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은 위왕은 언변이 좋은 순우곤(淳于髡)을 조(趙)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이윽고 순우곤이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초나라 군사는 밤의 어둠을 타서 철수하고 말았다. 전화(戰禍)를 모면한 위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어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치하하며 환담했다.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고?”

“신(臣)은 한 되[升]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斗]을 마셔도 취하나이다.”

“허,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고?”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만약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신다면 두려워서 한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오며, 또한 근엄한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마신다면 자주 일어서서 술잔을 올려야 하므로 두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옵니다.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그땐 대여섯 되쯤 마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동네 남녀들과 어울려 쌍륙(雙六:주사위 놀이)이나 투호(投壺: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는 놀이)를 하면서 마신다면 그땐 여덟 되쯤 마시면 취기가 두서너 번 돌 것이옵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취흥이 일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지고[杯盤狼藉]’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신(臣) 곁에서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헤칠 때 색정적(色情的)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땐 한 말이라도 마실 것이옵니다.”

이어 순우곤은 주색을 좋아하는 위왕에게 이렇게 간했다.

“전하,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樂極偯生]’고 하였사오니 깊이 통촉하시오소서.”

위왕은 그후 술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순우곤을 옆에 앉혀 놓고 마셨다고 한다.

배수지진(背水之陣) 背:등 배.  水:물 수.  之:갈 지(…의).  陣:진칠 진.

[동의어] 배수진(背水陣). [참조] 천려일실(千慮一失).

[출전]《史記》〈准陰侯列傳〉.《十八史略》〈漢太祖高皇帝〉

물을 등지고 친 진지라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어떤 일에 대처하는 경우의 비유.

▷고사 :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제위에 오르기 2년 전(B.C.204)의 일이다. 명장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에 따라 위(魏)나라를 쳐부순 다음 조(趙)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20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인 정형(井陘)의 협도(狹道) 출구 쪽에 성채(城砦)를 구축하고 방어선을 폈다. 이에 앞서 군략가인 이좌거(李左車)가 재상 진여(陳餘)에게 ‘한나라 군사가 협도를 통과할 때 들이치자’고 건의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간첩을 통해 이 사실을 안 한신은 서둘러 협도를 통과하다가 출구를 10리쯤 앞둔 곳에서 일단 행군을 멈췄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한신은 2000여 기병을 조나라의 성채 바로 뒷산에 매복시키기로 하고 이렇게 명했다.

“본대(本隊)는 내일 싸움에서 거짓 패주(敗走)한다. 그러면 적군은 패주하는 아군을 추적하려고 성채를 비울 것이다. 그때 제군은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우도록 하라.”

그리고 한신은 1만여 군사를 협도 출구 쪽으로 보내어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한 다음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채를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한나라 군사가 북을 울리며 진격하자 조나라 군사는 성채를 나와 응전했다. 2,3차 접전 끝에 한나라 군사는 퇴각하여 강가에 진을 친 부대에 합류했고, 승세(勝勢)를 탄 조나라 군사는 맹렬히 추격했다. 그 틈에 2000여 기병대는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웠다. 강을 등진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에 견디지 못한 조나라 군사가 성채로 돌아와 보니 한나라 깃발이 나부끼고 있지 않은가. 전쟁은 한신의 대승리로 끝났다. 전승 축하연 때 부하 장수들이 배수진을 친 이유를 묻자 한신을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군사는 이번에 급히 편성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아닌가? 이런 군사는 사지(死地)에 두어야만 필사적으로 싸우는 법이야. 그래서 ‘강을 등지고 진을 친 것[背水之陣]’이네.”

배중사영(杯中蛇影) 杯:술잔 배.  中:가운데 중.  蛇:뱀 사.  影:그림자 영.

[유사어] 의심암귀(疑心暗鬼), 반신반의(半信半疑).

[출전]《晉書》〈樂廣傳〉,《風俗通義》

술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란 뜻으로, 쓸데없는 의심을 품고 스스로 고민함의 비유.

▷고사 : 진(晉:265~316) 나라에 악광(樂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늘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훗날 수재(秀才)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역시 매사에 신중했다.

악광이 하남 태수(河南太守)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자주 놀러 오던 친구가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아오지 않았다. 악광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찾아가 물어 보았다.

“아니, 자네 웬일인가? 요샌 통 얼굴도 안 비치니…….”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번에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얘길세. 그때 술을 막 마시려는데 잔 속에 뱀이 보이는 게 아니겠나.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마셨지. 그런데 그 후로 몸이 좋지 않다네.”

악광은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술자리는 관가(官家)의 자기 방이었고, 그 방 벽에는 활이 걸려 있었지? 그렇다. 그 활에는 옻칠로 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안광은 그 친구를 다시 초대해서 저번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히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어떤가? 뭐가 보이나?”

“응, 전번과 마찬가지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 그림자일세.”

그 친구는 그제서야 깨닫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백년하청(百年河淸) 百:일백 백.  年:해 년.  河:물 하.  淸:맑을 청.

[원말] 백년사하청(百年俟河淸).

[동의어] 천년하청(千年河淸).[유사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출전]《春秋左氏傳》〈襄公八年條〉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 곧 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사물(事物)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의 비유. ② 확실하지 않은(믿을 수 없는) 일을 언제까지나 기다림(기대함)의 비유.

▷고사 : 춘추 시대 중반인 주(周)나라 영왕(靈王) 7년(B.C. 565), 정(鄭)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초(楚)나라의 속국인 채(蔡)나라를 친 것이 화가 되어 초나라의 보복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곧 주신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은 초나라에 항복하자는 화친론(和親論)과 진(晉)나라의 구원군을 기다리며 싸우자는 주전론(主戰論)으로 나뉘었다.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대부인 자사(子駟)가 말했다.

“주나라의 시에 ‘황하의 흐린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해도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진나라의 구원군을 기다린다는 것은 ‘백년하청’일 뿐이오. 그러니 일단 초나라에 복종하여 백성들의 불안을 씻어 주도록 합시다.”

이리하여 정나라는 초나라와 화친을 맺고 위기를 모면했다.

백면서생(白面書生) 白:흰 백.  面:얼굴 면.  書:글 서.  生:날 생.

[출전]《宋書》〈沈慶之傳〉

오로지 글만 읽고 세상일에 경험이 없는 젊은이를 이르는 말.

▷고사 :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송(宋)나라 3대 황제인 문제(文帝:424~453) 때 오(吳:절강성) 땅에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힘써 무예를 닦아 그 기량이 뛰어났다. 전(前)왕조인 동진(東晉:317~420)의 유신(遺臣) 손은(孫恩) 장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로 일단(一團)의 사병(私兵)을 이끌고 반란군과 싸워 번번이 승리하여 무명(武名)을 떨쳤다.

그의 나이 40세 때 이민족(異民族)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다. 문제에 이어 즉위한 효무제(孝武帝:453~464) 때는 도읍인 건강(建康:南京)을 지키는 방위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 후 또 많은 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總帥)로 부임했다.

어느 날 효무제는 심경지가 배석한 자리에 문신들을 불러 놓고 숙적인 북위(北魏:386~534)를 치기 위한 출병을 논의했다. 먼저 심경지는 북벌(北伐)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이렇게 말했다.

“폐하, 밭갈이는 농부에게 맡기고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하옵니다. 하온데 폐하께서는 어찌 북벌 출병을 ‘백면서생’과 논의하려 하시나이까?”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百:일백 백.  聞:들을 문.  不:아니 불.  如:같을 여.  一:한 일.  見:볼 견.

[출전]《漢書》〈趙充國傳〉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무엇이든지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

▷고사 : 전한(前漢) 9대 황제인 선제(宣帝:B.C. 74~49)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이 쳐들어왔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응전했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인 병길(丙吉)에게 후장군(後將軍) 조충국(趙充國)을 찾아가 토벌군의 장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어 보라고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나이 70이 넘은 노장(老將)이었다. 그는 일찍이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휘하 장수로 흉노 토벌에 출전했다가 포위되자 불과 100여 명의 군사로써 혈전(血戰) 끝에 포위망을 뚫고 전군을 구출했다. 그 공으로 거기 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그는 이때부터 오랑캐 토벌전의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조충국을 찾아온 병길은 이렇게 말했다.

“강족을 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장군에게 물어 보랍시는 어명을 받고 왔소이다.”

그러자 조충국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어디 노신(老臣)을 능가할 사람이 있겠소?”

선제는 조충국을 불러 강족 토벌에 대해 물었다.

“강족을 토벌하는데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또 병력은 얼마나 필요하오?”

조충국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옵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軍事)란 실지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오니 원컨대 신을 금성군[金城郡:감숙성 난주(甘肅省蘭州) 부근]으로 보내 주시 오소서. 계책은 현지를 살펴 본 다음에 아뢰겠나이다.”

선제는 기꺼이 윤허했다.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충국은 기병(騎兵)보다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상주했다. 그 후 이 계책이 채택됨으로써 강족의 반란도 수그러졌다고 한다.

[주] 둔전병 : 변경(邊境)에 주둔(駐屯)‧토착(土着)시켜 평상시에는 농사도 짓게 하던 군사.

백미(白眉) 白:흰 백.  眉:눈썹 미.

[출전]《三國志》〈蜀志 馬良傳〉

흰 눈썹[白眉]을 가진 사람이 가장 뛰어났다는 뜻. 곧 ① 형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②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일컫는 말.

▷고사 : 천하가 위(魏)‧오(吳)‧촉(蜀)의 세 나라로 나뉘어 서로 패권을 다투던 삼국 시대의 일이다. 유비(劉備)의 촉나라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마량(馬良)이라는 이름난 참모[후에 시중(侍中)이 됨]가 있었다. 그는 제갈량[諸葛亮:자는 공명(孔明)]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사이로, 한번은 세 치[三寸]의 혀 하나로 남쪽 변방의 흉포한 오랑캐의 한 무리를 모두 부하로 삼는데 성공했을 정도로 덕성(德性)과 지모(智謀)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오형제 중 맏이인 마량은 태어날 때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백미(白眉)’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들 오형제는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유명한 마속을 포함하여 모두 재주가 비범했는데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 씨(馬氏)네 오형제 중에서 ‘백미’가 가장 뛰어났다며 마량을 특히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 때부터 ‘백미’란 같은 부류의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白:흰 백.  髮:터럭 발.  三:석 삼.  千:일천 천.  丈:길 장.

[출전] 이백(李白)의 시〈秋浦歌〉

흰 머리털의 길이가 삼천 길[仞]이란 뜻으로, 중국 문학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

▷고사 : ‘백발삼천장’이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추포가(秋浦歌)〉17수 중 한 수인 오언절구(五言絶句)에서 나온 말이다.


흰 머리털이 (자라 어느새) 삼천 길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근심으로 인하여 이처럼 길어졌네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알지 못해라 밝은 거울 속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고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이 시는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이백이 추포(秋浦:안휘성 내)에 와서 거울을 보고 이미 늙어버린 자기 모습에 놀라서 지은 연작(連作) 중 한 수이다. 이 유명한 ‘백발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표현은 중국 문항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인데 요즈음에는 ‘과장된 것을 비웃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다.

백아절현(伯牙絶絃) 伯:맏 백.  牙:어금니 아.  絶:끊을 절.  絃:악기 줄 현.

[준말] 절현(絶絃). [동의어] 백아파금(伯牙破琴).

[유사어] 지음(知音), 고산유수(高山流水).

[출전]《列子》〈湯問篇〉

백아가 거문고의 줄을 끊었다는 뜻. 곧 ① 서로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벗[知己]의 죽음을 이르는 말. ② 친한 벗을 잃은 슬픔.

▷고사 :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 높은 백아(伯牙)에게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잘 감상해 주는 친구 종자기(鐘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그려내려고 시도하면 옆에서 귀를 기율이고 있던 종자기의 입에서는 탄성이 연발한다.

“아, 멋지다. 하늘 높이 우뚝 솟는 그 느낌은 마치 태산(泰山)같군.”

“응, 훌륭해.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황하(黃河)같군.”

두 사람은 그토록 마음이 통하는 연주자였고 청취자였으나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한 나머지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기(知己)를 가리켜 지음(知音)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백안시(白眼視) 白:흰 백.  眼:눈 안.  視:볼 시.

[유사어] 백안(白眼).

[반의어] 청안시(靑眼視).

[출전]《晉書》〈阮籍傳〉

남을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

▷고사 : 위진 시대(魏晉時代 : 3세기 후반)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노장(老莊)의 철학에 심취하여 대나무숲 속에 은거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에 완적(阮籍)이 있었다. 그는 예의 범절에 얽매인 지식인을 보면 속물이라 하여 ‘백안시’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의 형 혜희(嵇喜)가 완적이 좋아하는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완적이 업신여기며 상대해 주지 않자 혜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도망가듯 돌아갔다.

이처럼 상대가 친구의 형일지라도 완적은 그가 속세의 지식인인 이상 청안시(靑眼視)하지 않고 ‘백안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조야(朝野)의 지식인들은 완적을 마치 원수를 대하듯 몹시 미워했다고 한다.

백의종군(白衣從軍)

관직, 직책 없이 일에 복무함.

백전백승(百戰百勝) 百:일백 백.  戰:싸울 전.  勝:이길 승.

[동의어] 연전연승(連戰連勝). [유사어] 백발백중(百發百中).

[반의어] 백전백패(百戰百敗). [출전]《孫子》〈謀攻篇〉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으로,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말.

▷고사 :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서 오왕(吳王) 합려(闔閭:B.C. 514~496)를 섬긴 병법가 손자(孫子:孫武)가 쓴《손자》〈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승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서 얻는 승리와 적을 공격한 끝에 얻는 승리인데 전자는 최상책(最上策)이고 후자는 차선책(次善策)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百戰百勝]’해도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

곧, 최상책은 적이 꾀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상책은 적의 동맹 관계를 끊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적과 싸우는 것이며, 최하책은 모든 수단을 다 쓴 끝에 강행하는 공성(攻城)이다.”

[주] 여기서 ‘백(百)’이란 단순과 숫자상의 ‘100’이 아니라 ‘삼(三)’ ‘구(九)’ ‘천(千)’ ‘만(萬)’등과 마찬가지로 ‘많은 횟수’를 가리키는 것임.

백절불굴(百折不屈)

굳은 의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覆:엎을 복.  水:물 수.  不:아니 불.  返:돌이킬 반.  盆:동이 분.

[동의어] 복배지수(覆杯之水), 복수불수(覆水不收).

[유사어] 낙화불반지(落花不返枝), 파경부조(破鏡不照), 파경지탄(破鏡之歎). [출전]《拾遺記(습유기)》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뜻. 곧 ① 한번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의 비유. ②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의 비유.

▷고사 :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마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한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 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나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覆水不返盆]’ 한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법이오.”

부마(駙馬) 駙:곁말 부.  馬:말 마.

[원말] 부마도위(駙馬都尉). [출전]《搜神記(수신기)》

임금의 사위. 공주의 부군(夫君).

▷고사 : 옛날 농서[隴書:감숙성(甘肅省)] 땅에 신도탁(辛道度)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옹주(雍州)로 가던 도중 날이 저물자 어느 큰 기와집의 솟을대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하녀가 나와 대문을 열었다.

“옹주로 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 재워 줄 수 없겠습니까?”

하녀는 잠시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그를 안방으로 안내했다. 방안에는 잘 차린 밥상이 있었는데 하녀가 사양 말고 먹으라고 한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들어왔다.

“저는 진(秦)나라 민왕(閔王)의 딸이온데 조(曹)나라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사별을 하고 이제까지 23년 동안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처럼 찾아 주셨으니 저와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세요.”

신도탁은 그런 고귀한 여인과 어찌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겠느냐고 극구 사양했으나 여인의 끈질긴 간청에 못 이겨 사흘 낮 사흘 밤을 함께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여인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좀더 함께 지내고 싶지만 사흘 밤이 한도예요. 이 이상 같이 있으면 화를 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헤어져야 하지만 제 진심을 보여 드릴 수 없는 게 슬프군요. 정표로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여인은 신도탁에게 금베개[金枕]를 건네주고는 하녀에게 대문까지 배웅하라고 일렀다. 대문을 나선 신도탁이 뒤돌아보니 그 큰 기와집은 간데 없고 잡초만이 무성한 허허 벌판에 무덤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품속에 간직한 금베개는 그대로 있었다.

신도탁은 금베개를 팔아 음식을 사 먹었다. 그후 왕비가 금베개를 저잣거리에서 발견하고 관원을 시켜 조사해 본 결과 신도탁의 소행임이 드러났다. 왕비는 그를 잡아다가 경위를 알아본 다음 공주의 무덤을 파고 관을 열어 보니 다른 부장품(副葬品)은 다 있었으나 금베개만 없어졌다. 그리고 시체를 조사해 본 결과 정교(情交)한 흔적이 역력했다. 모든 사실이 신도탁의 이야기와 부합하자 왕비는 신도탁이야말로 내 사위라며 그에게 ‘부마도위(駙馬都尉)’하는 벼슬을 내리고 후대했다고 한다.

부화뇌동(附和雷同)

남이 하는 대로 모방.

분서갱유(焚書坑儒) 焚:불사를 분.  書:글 서.  坑:묻을 갱.  儒:선비 유.

[출전]《史記》〈秦始皇紀〉,《十八史略》〈秦篇〉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다는 뜻으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가혹한 법[苛法]과 혹독한 정치[酷政]을 이르는 말.

▷고사 : 기원전 222년, 제(齊)나라를 끝으로 6국을 평정하고 전국 시대를 마감한 진나라 시황제 때의 일이다.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자 주(周)왕조 때의 봉건 제도를 폐지하고 사상 처음으로 중앙집권(中央執權)의 군현제도(郡縣制度)를 채택했다.

군현제를 실시한 지 8년이 되는 그 해(B.C. 213) 어느 날, 시황제가 베푼 함양궁(咸陽宮)의 잔치에서 박사(博士)인 순우월(淳于越)이 ‘현행 군현 제도하에서는 황실의 무궁한 안녕을 기하기가 어렵다’며 봉건제도로 개체할 것을 진언했다. 시황제가 신하들에게 순우월의 의견에 대해 가부를 묻자 군현제의 입안자(立案者)인 승상 이사(李斯)는 이렇게 대답했다.

“봉건시대에는 제후들 간에 침략전이 끊이지 않아 천하가 어지러웠으나 이제는 통일되어 안정을 찾았사오며, 법령도 모두 한 곳에서 발령(發令)되고 있나이다. 하오나 옛 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선비들이 있사옵니다. 하오니 차제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심과 아울러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醫藥)‧복서(卜筮)‧종수(種樹:농업)에 관한 책과 진나라 역사서 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없애 버리소서.”

시황제가 이사의 진언을 받아들임으로써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속속 불태워졌는데 이 일을 가리켜 ‘분서’라고 한다. 당시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므로, 책은 모두 글자를 적은 댓조각을 엮어서 만든 죽간(竹簡)이었다. 그래서 한번 잃으면 복원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이듬해(B.C. 212) 아방궁(阿房宮)이 완성되자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神仙術法)을 닦는 방사(方士)들을 불러들여 후대했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노생(盧生)과 후생(侯生)을 신임했으나 두 방사는 많은 재물을 사취(詐取)한 뒤 시황제의 부덕(不德)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 시황제는 진노했다. 그 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시중의 염탐꾼을 감독하는 관리로부터 ‘폐하를 비방하는 선비들을 잡아 가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황제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다. 엄중히 심문한 결과 연루자는 460명이나 되었다. 시황제는 그들을 모두 산 채로 각각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는데 이 일을 가리켜 ‘갱유’라고 한다.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讎) 不:아니 불.  俱:함께 구.  戴:머리에 일 대.  天:하늘 천.  讎:원수 수.

[준말] 대천지수(戴天之讎), 불공대천(不共戴天).

[동의어]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讎),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

[출전]《禮記》〈曲禮篇〉,《孟子》〈盡心篇〉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란 뜻으로,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

▷고사 : ①《예기(禮記)》〈곡례편(曲禮篇)〉에는 ‘불구대천지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父之讎弗與共戴天(부지수불여공대천)]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으며[兄弟之讎不反兵(형제지수불반병)]

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해서는 안 된다. [交遊之讎不同國(교유지수부동국)]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를 만났을 때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놓쳐서는 안 되므로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서 같이 살 수 없으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던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 한다.

오늘날 이 말은 아버지의 원수에 한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없을 정도로 미운 놈’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 이 말은《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맹자의 말과 비교가 되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이제야 남의 아비를 죽이는 것이 중한 줄을 알겠노라. 남의 아비를 죽이면 남이 또한 그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이 또한 그 형을 죽일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제 아비나 형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니라.”

불수진(拂鬚塵) 拂:떨칠 불.  鬚:수염 수.  塵:티끌‧먼지 진.

[준말] 불수(拂鬚).

[출전]《宋史》〈寇準傳〉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준다는 뜻. 곧 ① 윗사람이나 권력자에게 아부(아첨)함의 비유. ② 상사(上司)에 대한 비굴한 태도의 비유.

▷고사 : 송(宋:北宋, 960~1127)나라의 4대 황제인 인종(仁宗:1022~1063) 때 강직하기로 유명한 구준(寇準)이라는 정의파 재상이 있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여러 유능한 인재를 발탁, 천거했는데 참정(參政:從二品) 정위(丁謂)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구준이 정위를 포함한 중신들과 회식(會食)을 하는데 음식찌꺼기가 수염에 붙었다. 이것을 본 정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소맷자락으로 공손히 털어 냈다. 그러자 구준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허, 참. 참정이라면 나라의 중신인데, 어찌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주는[拂鬚塵]’ 그런 하찮은 일을 하오?”

정위는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물러갔다고 한다.

불입호혈 부득호자(不入虎穴不得虎子) 不:아니 불.  入:들 입.  虎:범 호.  得:얻을 득.  子:아들 자.

[참조]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출전]《後漢書》〈班超傳〉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는 뜻으로, 모험을 하지 않고는 큰 일을 할 수 없음의 비유.

▷고사 : 후한(後漢) 초기의 장군 반초(班超)는 중국 역사서의 하나인《한서(漢書)》를 쓴 아버지 반표(班彪), 형 반고(班固), 누이동생 반소(班昭)와는 달리 무인(武人)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초는 후한 2대 황제인 명제(明帝) 때(74년) 서쪽 오랑캐 나라인 선선국[鄯善國: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떠났다.  선선국왕은 반초의 일행36명을 상객(上客)으로 후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대는 박대(薄待)로 돌변했다. 반호는 궁중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즉시 부하 장수를 시켜 진상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부하 장수는 놀라운 소식을 갖고 왔다.

“지금 신선국에는 흉노국(匈奴國)의 사신이 와 있습니다. 게다가 대동한 군사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흉노는 옛부터 한족(漢族)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침입을 막았을 정도로 영맹(獰猛)한 유목민족이다. 반초는 즉시 일행을 불러모은 다음 술을 나누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흉노국의 사신이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 있다고 한다. 신선국왕은 우리를 다 죽이거나 흉노국의 사신에게 넘겨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모두들 죽을 각오로 싸우자고 외쳤다.

“좋다. 그럼 오늘밤에 흉노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쳐들어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不入虎穴不得虎子]’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날 밤 반초 일행은 흉노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 일을 계기고 선선국이 굴복했음은 물론 인근 50여 오랑캐의 나라들도 한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기게 되었다.

불혹(不惑) 不:아니 불.  惑:미혹할 혹.

[동의어] 불혹지년(不惑之年).

[출전]《論語》〈爲政篇〉

미혹(迷惑)하지 아니함. 나이 마흔 살의 일컬음.

▷고사 : 공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논어》〈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열 다섯 살 때 학문에 뜻을 두었고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志學]

서른 살 때 입신했다.

[三十而立(삼십이입)-而立]

마흔 살 때는 미혹하지 않고

[四十不惑(사십불혹)-不惑]

쉰 살 때 하늘의 명을 알았다.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知命]

예순 살 때는 귀에 따랐고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耳順]

일흔 살이 되니 마음 내키는 대로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從心]

[주] 20세 : 약관(弱冠),《예기(禮記)》에서 온 말. 60세 : 환갑(還甲). 70세 : 고희(古稀), 두보의 시 ‘人生七十古來稀’에서 온 말. 77세 : 희수(喜壽), ‘喜’의 초서체(草書體)는 七七이라 읽을 수 있음. 88세 : 미수(米壽), ‘米’자를 분해하면 八十八이 됨.

사면초가(四面楚歌) 四:넉 사.  面:낯‧겉‧대할 면.  楚:초나라 초.  歌:노래 가.

[준말] 초가(楚歌).[동의어] 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참조] 건곤일척(乾坤一擲), 권토중래(捲土重來), 걸해골(乞骸骨).

[출전]《史記》〈項羽本紀〉

사면에서 들려 오는 초나라 노래란 뜻. 곧  ① 사방 빈틈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 ② 주위에 반대자 또는 적이 많아 고립되어 있는 처지. ③ 사방으로부터 비난받음의 비유.

▷고사 :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섬서성(陝西省)의 한강(漢江) 북안의 땅]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진평(陳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 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고?’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의 진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리는 애인 우희(虞姬)와 추(騅)라는 준마가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읊고 또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時不利兮騅不逝(시불리혜추불서)]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騅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편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땅,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빙자옥질(氷姿玉質)

매화.


사고무친(四顧無親)

의지할 곳이 없음.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이 모두 막힘. 고립됨.

사이비(似而非) 似:같을 사.  而:어조사 이.  非:아닐 비.

[원말] 사이비자(似而非者).

[출전]《孟子》〈盡心篇〉,《論語》〈陽貨篇〉

①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전혀 다름.

② 진짜같이 보이나 실은 가짜임.

▷고사 : 전국 시대, 아성(亞聖)으로 불리던 맹자에게 어느 날 만장(萬章)이라는 제자가 물었다.

“한 마을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런 사람을 어디를 가든 훌륭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들을 가리켜 ‘향원[鄕原:지방의 토호(土豪)]은 덕(德)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을 비난하려 해도 들어서 비난할 것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없으나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한다. 또 집에 있으면 충심(忠心)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하면 청렴결백한 척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는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공자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느니라.

‘사이비한 것[似而非者]을 미워한다…‥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아악(雅樂)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사족(蛇足) 蛇:뱀 사.  足:발 족.

[원말] 화사첨족(畵蛇添足).

[출전]《戰國策》〈齊策〉,《史記》〈楚世家〉

뱀의 발. 곧 ① 쓸데없는 것. 무용지물(無用之物)의 비유.  ② 있는 것보다 없는 편이 더 나음의 비유. ③ 공연히 쓸데없는 군일을 하다가 실패함의 비유.

▷고사 : 전국 시대인 초(楚)나라 회왕(懷王) 때의 이야기이다. 어떤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여러 하인들 앞에 술 한 잔을 내놓으면서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이런 제안을 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신다면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 다 마시기로 하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세.”

하인들은 모두 찬성하고 제각기 땅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뱀을 다 그린 한 하인이 술잔을 집어들고 말했다.

“이 술은 내가 마시게 됐네. 어떤가, 멋진 뱀이지? 발도 있고.”

그때 막 뱀을 그린 다른 하인이 재빨리 그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발 달린 뱀이 어디 있나!”

술잔을 빼앗긴 하인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 ‘사족’은 제(齊)나라를 방문한 진(秦)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이 제나라 민왕(湣王)의 요청으로, 초나라 재상 소양(昭陽)을 만나 제나라에 대한 공격 계획을 철회하라고 설득할 때 인용한 이야기임.

★사필귀정(事必歸正)

진실의 승리.    

살신성인(殺身成仁) 殺:죽일 살.  身:몸 신.  成:이룰 성.  仁:어질 인.

[출전]《論語》〈衛靈公篇〉

몸을 죽여 어진 일을 이룬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 또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말.

▷고사 : 이 말은 춘추 시대, 인(仁)을 이상의 도덕으로 삼는 공자(孔子)의 언행을 수록한《논어(論語)》〈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志士仁人(지사인인)]

삶을 구하여 ‘인’을 저버리지 않으며

[無求生以害仁(무구생이해인)]

스스로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

[有殺身以成仁(유살신이성인)]

공자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인’의 도는 제자인 증자(曾子)가《논어(論語)》〈이인편(里仁篇)〉에서 지적했듯이 ‘충(忠)과 서(恕)’에 귀착한다.

부자(夫子:공자에 대한 경칭)의 도는 ‘충’‘서’일 뿐.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부자지도 충서이이의)]

‘충’이란 자기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정신이고, ‘서’란 ‘충’의 정신을 타인에게 미치게 하는 마음이다. 증자는 공자의 ‘인’이 곧 이 ‘충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주] 증자: 춘추 시대 의 유학자(儒學者). 이름은 삼(參), 자(字)는 자여(子與). 높이어 증자(曾子)라고 함.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으나 효성이 지극하고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온후 독실(溫厚篤實)해서 죽을 때까지 몸에 작은 상처 하나 남기지 않았다고 함. 공자의 덕행과 학설을 정통으로 주술(祖述)하여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孔汲)에게 전했음. 맹자는 자사의 계통을 이은 것으로 알려짐.《효경(孝經)》의 저자라고 알려짐.(B.C. 505~436).

삼고초려(三顧草廬) 三:석 삼.  顧:돌아볼 고.  草:풀 초.  廬:풀집 려.

[준말] 삼고(三顧).

[동의어] 초려삼고(草廬三顧), 삼고지례(三顧之禮).

[유사어] 삼고지우(三顧知遇). [참조] 수어지교(水魚之交).

[출전]《三國志》〈蜀志 諸葛亮專〉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 곧 ① 사람을 맞이함에 있어 진심으로 예를 다함[三顧之禮] ② 윗사람으로부터 후히 대우받음의 비유.

▷고사 : 후한 말엽, 유비[劉備:자는 현덕(玄德), 161~223]는 관우[關羽:자는 운장(雲長), ?~219]‧장비[張飛:자는 익덕(益德), 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을 통솔할 군사(軍師)가 없어 늘 조조군(曹操軍)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에게 군사를 천거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伏龍)이나 봉추(鳳雛)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후 제갈량[諸葛亮:자는 공명(孔明), 181~234]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 땅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저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 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가 되어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유비는 그후 제갈량의 헌책에 따라 위(魏)나라의 조조,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三分)하고 한실(漢室)의 맥을 잇는 촉한(蜀漢)을 세워 황제 [소열제(昭烈帝), 221~223]를 일컬었으며, 지략과 식견이 뛰어나고 충의심이 강한 제갈량은 재상이 되었다.

삼년불비 우불명 (三年不飛又不鳴) 三:석 삼.  年:해 년.  不:아니 불.  飛:날 비.  又:또 우.  鳴:울 명.

[원말] 삼년불비 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동의어] 삼년불비불명(三年不飛不鳴).

[유사어] 자복(雌伏). [출전]《呂氏春秋》〈審應覽〉,《史記》〈滑稽列傳〉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훗날 웅비(雄飛)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

▷고사 : 춘추시대 초엽, 오패(五霸)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초(楚)나라 장왕(莊王:B.C. 613~591)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오.”

그 후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은 돌보지 않은 채 주색(酒色)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오거(五擧)는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諫言)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차마 직간(直諫)할 수가 없어 수수께끼로써 우회적으로 간하기로 했다.

“전하,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까 하나이다.”

“어서 내보내시오.”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三年不飛又不鳴].’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이겠나이까?”

장왕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오.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제 그대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으나 장왕의 난행(亂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전에 나아가 직간했다. 그러자 장왕은 꾸짖듯이 말했다.

“경(卿)은 포고문도 못 보았소?”

“예, 보았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서오서 국정에 전념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다. 3년 동안 장왕이 주색을 가까이했던 것은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 장왕은 국정에 임하자마자 간신을 비롯한 부정 부패 관리 등 수백 명에 이르는 반윤리적 공직자를 주살(誅殺)하고 수백 명의 충신을 등용했다. 그리고 오거와 소종에게 정치를 맡겨 어지러웠던 나라가 바로잡히자 백성들은 장왕의 멋진 재기를 크게 기뻐했다.

삼순구식(三旬九食)

자주 굶음.

삼십육계 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 十:열 십.  六:여섯 륙.  計:꾀할 계.  走:달아날 주.  爲:할 위.  上:위 상.

[유사어] 주여도반(走與槄飯).

[출전]《資治通鑑》〈卷百四一〉,《齊書》〈王敬則專〉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에서 피하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란 뜻으로, 일의 형편이 불리할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

▷고사 : 남북조 시대, 제(齊:南齊, 479~502)나라 5대 황제인 명제(明帝) 소도성(蕭道成)의 종질(從姪:사촌 형제의 아들)로서 고제의 증손(曾孫)인 3대‧4대 황제를 차례로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簒奪)한 황제이다. 그는 즉위 후에도 고제의 직손(直孫)들은 물론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잡아 죽였다.

이처럼 피의 숙청이 계속되자 고조 이후의 옛 신하들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개국 공신인 회계(會稽) 태수 왕경측(王敬則)의 불안은 날로 심해졌다. 불안하기는 명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부 장괴(張壞)를 평동(平東)장군에 임명하여 회계와 인접한 오군(五郡:강소성 내)으로 파견했다. 그러자 왕경측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도읍 건강(建康:南京)을 향해 진군하여 불과 10여 일 만에 건강과 가까운 흥성성(興盛城)을 점령했다. 도주에 농민들이 가세함에 따라 병력도 10여 만으로 늘어났다.

한편 병석의 명제를 대신하여 국정을 돌보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패전 보고서를 받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경측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단장군(檀將軍)의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三十六計走爲上計]’이었다고 하더라. 이제 너희 부자(父子)에게 남은 건 도망가는 길밖에 없느니라.”

이 말은 ‘단장군이 위(魏:北魏)나라 군사와 싸울 때 도망친 것을 비방한 것이다’라고 주석을 붙인 책도 있다.

그 후 관군에게 포위 당한 왕경측은 난전중(亂戰中)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주] 단장군 : 송(宋:420~479)나라 무제(武帝:420~422)의 건국(建國)을 도운 명장 단도제(檀道濟)를 가리킴.

삼인성호(三人成虎) 三:석 삼.  人:사람 인.  成:이룰 성.  虎:범 호.

[준말] 시호(市虎).

[동의어] 시유호(市有虎), 시호삼전(市虎三傳),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유사어] 증삼살인(曾參殺人), 십작목무부전(十趵木無不顚).

[출전]《韓非子》〈內儲設〉,《戰國策》〈魏策 惠王〉

세 사람이 짜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이듣는다는 말.

▷고사 : 전국 시대, 위(魏:梁)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태자와 중신 방총(龐葱)이 볼모[人質]로서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심각한 얼굴로 혜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그땐 믿을 것이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 신은 이제 한단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방총이 한단으로 떠나자마자 혜왕에게 참언을 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으나 혜왕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주] 방총 :《韓非子》에는 방공(龐恭)이라고 되어 있고《戰國策》에는 방총(龐葱)이라고 되어 있음.

상전벽해(桑田碧海)

크게 변함.

새옹지마(塞翁之馬) 塞:변방 새.  翁:늙은이 옹.  之:갈 지(…의).  馬:말 마.

[원말]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

[동의어] 새옹마(塞翁馬), 북옹마(北翁馬).

[유사어] 새옹득실(塞翁得失), 새옹화복(塞翁禍福), 화복규목(禍福糾纆), 화복규승(禍福糾繩).

[출전]《淮南子》〈人生訓〉

세상 만사가 변전무상(變轉無常)하므로, 인생의 길흉 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 길흉화복의 덧없음의 비유.

▷고사 :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한다.

서시빈목(西施矉目) 西:서녘 서.  施:베풀 시.  矉:눈살 찌푸릴 빈.  目:눈 목.

[원말] 효빈(效顰).

[동의어] 서시봉심(西施捧心), 서시효빈(西施效矉).

[출전]《莊子》〈天運篇〉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 곧 ① 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의 비유, ②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의 비유.

▷고사 : 춘추 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그러나 서시는 가슴앓이로 말미암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늘 눈살을 찌푸리고 걸었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의 흉내를 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겁을 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장자(莊子)》〈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원래 반유교적(反儒敎的)인 장자가 외형에만 사로잡혀 본질(本質)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실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춘추 시대 말엽의 난세(亂世)에 태어난 공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 정치(理想政治)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시키려는 것은 마치 ‘서시빈목’을 흉내 내는 추녀의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서제막급(噬臍莫及) 噬:씹을 서.  臍:배꼽 제.  莫:아닐‧없을 막.  及:미칠 급.

[원말] 서제(噬臍).

[동의어] 후회막급(後悔莫及).

[출전]《春秋左氏專》〈莊公六年條〉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미치지 않는다는 뜻. 곧 기회를 잃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음의 비유.

▷고사 : 기원전 7세기 말엽, 주왕조(周王朝) 장왕(莊王) 때의 이야기이다.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었던 신(申)나라를 치기 위해 역시 하남성에 있었던 등(鄧)나라를 지나가자 등나라의 임금인 기후(祁侯)는 ‘내 조카가 왔다’며 반갑게 맞이하여 진수성찬으로 환대했다. 그러자 세 현인(賢人)이 기후 앞으로 나와 이렇게 진언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머지 않아 저 문왕은 반드시 등나라를 멸하고 말 것이옵니다. 하오니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옵니다[噬臍莫及].’”

그러나 기후는 펄쩍 뛰며 듣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문왕은 군사를 이끌고 등나라로 쳐들어왔다. 이리하여 등나라는 일찍이 세 현인이 예언한 대로 문왕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선시어외(先始於隗) 先:먼저 선.  始:비로소 시.  於:어조사 어(…에,…에서,…보다).  隗:높을 외.

[출전]《戰國策》〈燕策 昭王〉

‘먼저 외(隗)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나(너)부터 또는 말한 사람(제안자)부터 시작하라는 말.

▷고사 : 전국 시대, 연(燕)나라가 영토의 태반을 제(齊)나라에 빼앗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즉위한 소왕(昭王)은 어느 날, 재상 곽외(郭隗)에게 실지(失地) 회복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방법을 물었다. 곽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옛날에 어느 왕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천리마를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 얻지 못했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잡일을 맡아보는 신하가 천리마를 구해 오겠다고 자청하므로 왕은 그에게 천금을 주고 그 일을 맡겼나이다. 그는 석 달 뒤에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고 달려갔으나 애석하게도 그 말은 그가 도착하기 몇 일 전에 죽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죽은 말의 뼈를 오백 금(五百金)이나 주고 사 오자[賈死馬骨]’ 왕은 진노하여 ‘과인이 원하는 것은 산 천리마야. 누가 죽은 말뼈에 오백 금을 버리라고 했느냐’며 크게 꾸짖었나이다. 그러자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천리마라면 그 뼈조차 거금으로 산다는 것을 안 만큼 머지 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끌고 올 것’이라고 말했나이다. 과연 그 말대로 1년이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전하께오서 진정으로 현재(賢才)를 구하신다면 ‘먼저 신 외부터[先始於隗]’ 스승의 예를 받도록 하오소서. 그러면 외 같은 자도 저렇듯 후대를 받는다며 신보다 어진 이가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스스로 모여들 것이옵니다.”

소왕은 곽외의 말을 옳게 여겨 그를 위해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짓고 스승으로 예우했다. 이 일이 제국(諸國)에 알려지자 천하의 현재가 다투어 연나라로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조(趙)나라의 명장 악의(樂毅)를 비롯하여 음양설(陰陽說)의 비조(鼻祖)인 추연(鄒衍), 대정치가인 극신(劇辛)과 같은 큰 인물도 있었다. 이들의 보필을 받은 소왕은 드디어 제국(諸國)의 군사와 함께 제나라를 쳐부수고 숙원을 풀었다.

[주] 매사마골 : 쓸데없는 것을 사서 요긴한 것이 오기를 기다린다. 쓸데없는 것이라도 소중히 다루면 현인은 그에 끌려 자연히 모여든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선즉제인(先則制人) 先:먼저 선.  則:곧 즉(…그러면), 법 칙.  制:억제할 제.  人:사람 인.

[대응어]~후즉위인소제(後則爲人所制).

[유사어] 진승오광(陳勝吳廣).

[출전]《史記》〈項羽本記〉,《漢書》〈項籍專〉

선손을 쓰면(선수를 치면) 남을 제압할 수 있다는 뜻.

▷고사 : 진(秦)나라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의 일이다. 진시황(秦始皇) 이래 계속되는 폭정에 항거하여 대택향[大澤鄕:안휘성 기현(安徽省 蘄縣)]에서 9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궐기한 날품팔이꾼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단숨에 기현을 석권하고 진[秦:하남성 회양(河南省淮陽)]에 입성했다. 이어 이곳에 장초(張楚)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진승은 옛 6개국의 귀족들과 그 밖의 반진(反秦) 세력을 규합하여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강동(江東)의 회계군수(會稽君守) 은통(殷通)은 군도(郡都) 오중[吳中:강소성 오현(江蘇省吳縣)]의 유력자인 항량(項梁)을 불러 거병을 의논했다.

항량은 진나라 군사에게 패사(敗死)한 옛 초(楚)나라 명장이었던 항연(項燕)의 아들인데, 고향에서 살인을 하고 조카인 적[籍:항우(項羽)의 이름]과 함께 오중으로 도망온 뒤 타고난 통솔력을 십분 발휘하여 곧 오중의 실력자가 된 젊은이다.

“지금 강서(江西:안휘성‧하남성) 지방에서는 모두들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는데, 이는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코자 하는 시운(時運)이 되었기 때문이오, 내가 듣건대 ‘선손을 쓰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先則制人]’ 뒤지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後則人制] 했소. 그래서 나는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 하오.”

은통은 오중의 실력자일 뿐 아니라 병법에도 조예가 깊은 항량을 이용, 출세의 실마리를 잡아볼 속셈이었으나 항량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거병하려면 우선 환초부터 찾아야 하는데,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제 조카인 적뿐입니다. 그러니 지금 밖에 와 있는 그에게 환초를 불러오라고 하명하시지요.”

“그럽시다. 그럼, 그를 들라 하시오.”

항량은 뜰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항우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이렇게 일렀다.

“내가 눈짓을 하거든 지체 없이 은통의 목을 치도록 하라.”

항우를 데리고 방에 들어온 항량은 항우가 은통에게 인사를 마치고 자기를 쳐다보는 순간 눈짓을 했다. 항우는 칼을 빼자마자 비호같이 달려들어 은통의 목을 쳤다. 항량과 항우가 은통에 앞서 ‘선즉제인’을 몸소 실행한 것이다.

항량은 곧바로 관아를 점거한 뒤 스스로 회계 군수가 되어 8000여 군사를 이끌고 함양으로 진격하던 중 전사하고 말앆다. 뒤이어 회계군의 총수가 된 항우는 훗날 한왕조(漢王朝)를 이룩한 유방(劉邦)과 더불어 진니라를 멸망시켰다(B.C. 206). 그러나 그후 유방과 5년간에 걸쳐 천하의 패권을 다투다가 패하여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설상가상(雪上加霜)

엎친 데 덮친 격.

성혜(成蹊) 成:이룰 성.  蹊:지름길(샛길) 혜.

[원말]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참조] 중석몰촉(中石沒钃).

[출전]《史記》〈李將軍列傳〉

샛길이 생긴다는 뜻. 곧 덕(德)이 높은 사람은 자기 선전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듦의 비유.

▷고사 : 전한 6대 황제인 경제(景帝:B.C. 157~141)때 이광(李廣)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당시는 북방 흉노족(匈奴簇)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때인 만큼 이광의 무용담(武勇談)도 자연히 흉노족과의 전쟁과 결부된 이야기가 많은데 이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어느 날, 이광은 불과 100여 기(騎)를 이끌고 적 후방 깊숙이 쳐들어가 목적한 기습 공격에 성공했다. 그러나 곧 적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광은 부하 장병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침착하라. 그리고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어라.”

적은 깜짝 놀랐다. 그 행동이 너무나 대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표를 찔린 적은 필연 뭔가 계략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믿고 주춤했다. 이때 이광은 10여 기를 이끌고 질풍처럼 적진에 돌입하여 한칼에 적장을 베었다. 그러자 적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났다. 이리하여 이광은 한 사람의 병사도 잃지 않고 개선했다. 그 후에도 많은 무공을 세운 이광을 칭송하여 사마천(司馬遷)은 그의 저서《사기(史記)》〈이장군 열전(李將軍列傳)〉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장군은 언변은 좋지 않았으나 그 덕과 성실함은 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복숭아와 오얏 꽃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桃李不言:덕 있는 사람의 비유] 그 아름다움에 끌려 사람들이 모여들므로 ‘나무 밑에는 자연히 샛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下自成蹊].’”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少:젊을 소.  易:쉬울 이.  老:늙을 로.  學:배울‧학문 학.  難:어려울 난.

[출전] 주자(朱子)의《朱文公文集》〈勸學文〉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말.

▷고사 : 이 말은 남송(南宋:1127~1279)의 대유학자(大儒學者)로서 송나라의 이학(理學)을 대성한 주자(朱子:朱熹)의《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이다.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少年易老 學難成(소년이로 학난성)]

순간 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一寸光陰 不可輕(일촌광음 불가경)]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未覺池塘 春草夢(미각지당 춘초몽)]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

[階前梧葉 已秋聲(계전오엽 이추성)]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놓침.

송양지인(宋襄之仁) 宋:송나라 송.  襄:도울 양.  之:갈 지(…의).  仁:어질 인.

[출전]《十八史略》〈卷一〉

송나라 양공(襄公)의 인정이란 뜻. 곧 ① 쓸데없는 인정을 베푸는 것의 비유. ② 무익한 동정이나 배려.

▷고사 :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부가 위(位)에 올라 양공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7년 후(B.C.643), 춘추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제‧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걱정했다.

이듬해 여름, 양공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하남성 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가 참다못해 진언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劣勢)한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죽고 말았다.

수서양단(首鼠兩端) 首:머리 수.  鼠:쥐 서.  兩:두 량.  端:바를‧끝‧실마리 단.

[동의어] 수시양단(首施兩端). [유사어] 좌고우면(左顧右眄).

[출전]《史記》〈魏其武侯列傳〉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라는 뜻. 곧 ① 진퇴‧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태. ② 두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봄.

▷고사 : 전한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의 일이다. 5대 문제(文帝)의 황후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竇嬰)과 6대 경제(景帝)의 황후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은 같은 외척이었지만 당시 연장자인 두영은 서산 낙일(西山落日)하는 고참 대장군이었고, 전분은 욱일 승천(旭日昇天)하는 신진 재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영의 친구인 관부(灌夫) 장군이 고관 대작(高官大爵)들이 모인 주연에서 전분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사건의 발단은 관부가 두영을 무시한 한 고관을 힐책(詰責)하는데 전분이 그를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부가 한사코 사죄를 거부하자 이 일은 결국 조의(朝議)에 오르게 되었다. 양쪽 주장을 다 들은 무제는 중신들에게 물었다.

“경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영의 추종자로 알려진 내사(內史:도읍을 다스리는 벼슬) 정당시(鄭當時)조차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어사대부(御史大夫:감찰 기관의 으뜸 벼슬) 한안국(韓安國)도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폐하,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

중신들의 불분명한 태도에 실망한 무제가 자리를 뜨자 조의는 거기서 끝났다. 전분은 화가 나서 한안국을 책망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首鼠兩端]’처럼 망설였소? 이 사건은 시비 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인데…‥.”

수구초심(首邱初心)

향수를 뜻함.

수석침류(漱石枕流) 漱:양치질 수.  石:돌 석.  枕:베개 침.  流:흐를 류.

[동의어] 침류슈석(枕流漱石).

[유사어] 견강부회(牽强附會), 아전인수(我田引水), 추주어륙(推舟於陸), 궤변(詭辯).

[참조] 영천세이(潁川世耳), 청담(淸談).

[출전]《晉書》〈孫楚專〉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 곧 ①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씀. 억지로 발라 맞춰 발뺌을 함. ② (남에게 지기 싫어서 좀처럼 체념을 안하고) 억지가 셈의 비유.

▷고사 : 진(晉:265~317)나라 초엽, 풍익 태수(馮翊太守)를 지낸 손초(孫楚)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대부간에는 속세의 도덕‧명문(名聞)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哲理)를 중히 여겨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손처도 죽림 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流漱石]’고 해야 할 것을, 반대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漱石枕流]’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웃으며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데다 문재(文才)까지 뛰어난 손초는 서슴없이 이렇게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사(隱士)인 허유(許由)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해서라네.”

★수수방관(袖手傍觀)

일을 보고만 있음.

수적천석(水滴穿石) 水:물 수.  滴:물방울 적.  穿:뚫을(통할) 천.  石:돌 석.

[동의어] 점적천석(點滴穿石).

[유사어] 우공이산(愚公移山), 적토성산(積土成山), 적수성연(積水成淵), 산류천석(山溜穿石).

[출전]《鶴林玉露》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 곧 ①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②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의 비유. 큰 힘을 발휘함의 비유.

▷고사 : 북송(北宋:960~1127)때 숭양 현령(崇陽縣令)에 장괴애(張乖崖)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관아를 돌아보다가 창고에서 황급히 튀어나오는 한 구실 아치를 발견했다. 당장 잡아서 조사해 보니 상투 속에서 한 푼 짜리 엽전 한 닢이 나왔다. 엄히 추궁하자 창고에서 훔친 것이라고 한다. 즉시 형리(刑吏)에게 명하여 곤장을 치라고 했다. 그러자 그 구실 아치는 장괴애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사또, 그까짓 엽전 한 푼 훔친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이 말을 듣자 장괴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네 이놈! 티끌 모아 태산[塵合泰山]이란 말도 못 들었느냐? 하루 한 푼[一文]이라도 천 날이면 천 푼이요,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뚫는다[水滴穿石]’고 했다.”

장괴애는 말을 마치자마자 층계 아래 있는 죄인 곁으로 다가가 칼을 빼어 목을 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상관을 무시하는 구실 아치의 잘못된 풍조를 고치려는 행위였다고《옥림학로(玉林鶴露)》는 쓰고 있다.

[주] ‘수적천석’은 우리 나라의 속담(俗談) ‘낙숫물이 댓돌[臺石]을 뚫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고사 성어임.

구실 아치 : 각 관아(官衙)에서 벼슬아치(官員)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 아전(衙前). 이속(吏屬). 서리(胥吏). 소리(小吏). 하전(下典).

수즉다욕(壽則多辱) 壽:목숨 수.  則:곧 즉, 법 칙.  多:많을 다.  辱:욕될‧욕 욕.

[출전]《莊子》〈天地篇〉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망신스러운 일을 많이 겪게 된다는 말.

▷고사 : 전국시대를 살다간 사상가 장자(莊子:莊周)의 저서《장자(莊子)》〈천지편(天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그 옛날 성천자(聖天子)로 이름 높은 요(堯) 임금이 순행(巡幸)중에 화(華)라는 변경에 이르자 그곳의 관원이 공손히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수하시오소서.”

그러자 요 임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장수하기를 원치 않네.”

“그러시면 부자가 되시오소서.”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네.”

“그러시면 다남(多男)하시오소서.”

“그것도 나는 원치 않네. 다남하면 못난 아들도 있어 걱정의 씨앗이 되고, 부자가 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아져 번거롭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은 법이네[壽則多辱].’”

이 말을 들은 관원은 실망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대듯 말했다.

“요 임금은 성인이라고 들어 왔는데 이제 보니 군자(君子)에 불과하군. 아들이 많으면 각기 분수에 맞는 일을 맡기면 걱정할 필요 없고, 재물이 늘면 는 만큼 남에게 나누어주면 될텐데…‥. 진정한 성인이란 메추라기처럼 거처를 가리지 않으며 병아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잘 먹고, 새가 날아간 흔적 없는 자리처럼 자유 자재이어야 하는 법. 그리고 세상이 정상이면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그 번영을 누리고, 정상이 아니면 스스로 덕을 닦고 은둔하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한 100년쯤 장수하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그때 신선이 되어 흰구름을 타고 옥황상제(玉皇上帝)가 계시는 곳에서 놀면 나쁠 것도 없지…‥.”

관원은 말을 마치자 마자 그 자리를 떠났다. 허를 찔린 요 임금은 좀더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으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주] 요 임금 : 중국 전설상의 유가적(儒家的) 성제(聖帝).

옥황상제 :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하느님.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水:물 수.  淸:맑을 청.  無:없을 무.  大:클 대.  魚:고기 어.

[원말]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

[동의어] 수청어불(주)서(水淸魚不(住)棲). 수청무어(水淸無魚).

[참조] 불입호혈 부득호자(不入虎穴不得虎子).

[출전]《後漢書》〈班超專〉,《孔子家語》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물을 숨기지 못해)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남이 가까이하지 않음의 비유.

▷고사 : 후한 시대 초엽,《한서(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에 반초(班超)라는 무장이 있었다. 반초는 2대 황제인 명제(明帝)때(74년)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鄯善國: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4대 화제(和帝)때인 영원(永元) 3년(91)에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庫車: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되었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사찰(査察)하여 이반(離叛)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영원 14년(102), 반초가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반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淸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임상의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安帝) 때(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하고 말았다. 따라서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순망치한(脣亡齒寒) 脣:입술 순.  亡:망할‧잃을 망.  齒:이 치.  寒:찰 한.

[대응어] 보거상의(輔車相依)~.

[동의어] 순치지국(脣齒之國), 순치보거(脣齒輔車).

[유사어] 조지양익(鳥之兩翼), 거지양륜(車之兩輪).

[출전]《春秋左氏專》〈僖公五年條〉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 곧 ① 이웃 나라가 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온전하기 어려움의 비유. ② 서로 도우며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 또는 서로 도움으로써 성립되는 관계의 비유.

▷고사 : 춘추 시대 말엽(B.C. 655), 오패(五霸)의 한 사람인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아버지 헌공(獻公)이 괵(虢)‧우(虞) 두 나라를 공략 할 때의 일이다.

괵나라를 치기로 결심한 헌공은 통과국인 우나라의 우공(虞公)에게 길을 빌려주면 많은 재보(財寶)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우공이 이 제의를 수락하려 하자 중신 궁지기(宮之奇)가 극구 간했다.

“전하,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 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오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덧방 나무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란 말이 있사온데, 이는 곧 괵나라와 우나라를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되옵니다. 그런 가까운 사이인 괵나라를 치려는 진나라에 길을 빌려준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옵니다.”

“경은 진나라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 진나라와 우나라는 모두 주황실(周皇室)에서 갈라져 나온 동종(同宗)의 나라가 아니오? 그러니 해를 줄 리가 있겠소?”

“괵나라 역시 동종이옵니다. 하오나 진나라는 동종의 정리를 잃은 지 오래이옵니다. 예컨대 지난날 진나라는 종친(宗親)인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초(楚)나라 장공(莊公)의 겨레붙이까지 죽인 일도 있지 않사옵니까? 전하, 그런 무도한 진나라를 믿어선 아니 되옵니다.”

그러나 재보에 눈이 먼 우공은 결국 진나라에 길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자 궁지기는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일가권속(一家眷屬)을 이끌고 우나라를 떠났다.

그 해 12월, 괵나라를 멸하고 돌아가던 진나라 군사는 궁지기의 예언대로 단숨에 우나라를 공략하고 우공을 포로로 잡아갔다.

시오설(視吾舌) 視:볼 시.  吾:나 오.  舌:혀 설.

[동의어] 상존오설(尙存吾舌).

[참조] 계구우후(鷄口牛後), 고침안면(高枕安眠).

[출전]《史記》〈張儀列傳〉

‘내 혀를 보아라’는 뜻. 곧 혀만 있으면 천하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

▷고사 : 전국 시대, 위(魏)나라에 장의(張儀)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언변과 완력과 재능이 뛰어난 그는 권모 술수에 능한 귀곡자(鬼谷子)에게 배웠다. 따라서 합종책(合從策)을 성공시켜 6국이 재상을 겸임한 소진(蘇秦)과는 동문이 된다. 장의는 수업(修業)을 마치자 자기를 써 줄 사람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초(楚)나라 재상 소양(昭陽)의 식객이 되었다.

어느 날, 소양은 초왕(楚王)이 하사한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진귀한 구슬을 부하들에게 피로(披露)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연석에서 구슬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모두가 장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가난뱅이인 장의가 훔친 게 틀림없다’고

그래서 수십 대의 매질까지 당했으나 장의는 끝내 부인했다. 마침내 그가 실신하자 소양은 할 수 없이 방면했다. 장의가 초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쩌다가 그래, 이런 변을 당했어요?”

그러자 장의는 느닷없이 혀를 쑥 내밀며 보인 다음 이렇게 물었다.

“‘내 혀를 봐요[視吾舌].’ 아직 있소, 없소?”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혀야 있지요.”

“그럼 됐소.”

몸은 가령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상관없으나 혀만은 상(傷)해선 안 된다. 혀가 건재해야 살아갈 수 있고 천하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의는 그 후 혀 하나로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연횡책(連衡策)으로 일찍이 소진이 이룩한 합종책을 깨는 데 성공했다.

[주] 합종책 : 전국시대,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6국 동맹책.

귀곡자 :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모사). 성명‧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반 지식에 통달했다고 함. 그가 숨어살던 귀곡(산서성 내)이란 지명을 따서 호를 삼고 종횡설의 법(法)을 적은《귀곡자(鬼谷子)》3권을 지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음.

연횡책 : 6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하는 정책.

식자우환(識字憂患)

아는 것이 병이됨.

★십시일반(十匙一飯)

협동 정신.


아전인수(我田引水)

제 논에 물 대기. 이기적.

안서(雁書) 雁:기러기 안.  書:글‧쓸‧편지‧책 서.

[동의어] 안찰(雁札), 안신(雁信), 안백(雁帛).

[참조] 인생조로(人生朝露). [출전]《漢書》〈蘇武專〉

철따라 이동하는 기러기가 먼 곳에 소식을 전한다는 뜻으로, 편지를 일컫는 말.

▷고사 : 한(漢)나라 소제(昭帝)는 19년 전, 선제(先帝)인 무제(武帝) 때(B.C. 100) 포로 교환차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匈奴)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억류당한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의 귀환을 위해 특사를 파견했다. 현지에 도착한 특사가 곧바로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에게 소무의 석방을 요구하자 선우는 ‘소무는 벌써 여러 해 전에 죽었다’며 대화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상혜(常惠)라는 사람이 은밀히 특사의 숙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무를 따라왔다가 흉노의 내란에 말려 일행이 모두 잡힌 뒤 투항한 사람 중하나요. 그런데 그때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소무는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당한 뒤 아직도 그곳에서 혼자 어렵게 살아가고 있소.”

이튿날 특사는 선우를 만나 따지듯이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황제께서 사냥을 하시다가 활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기러기 발목에는 헝겊이 감겨 있었소. 그래서 풀어 보니 ‘소무는 대택(大澤:큰 못) 근처에 있다’고 적혀 있었소. 이것만 봐도 소무는 살아 있는 게 분명하지 않소?”

안색이 변한 선우는 부하와 몇 마디 나누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제가 잘 모르고 실언을 한 것 같소. 그는 살아 있다고 하오.”

꾸며댄 이야기가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며칠 후 흉노의 사자(使者)가 데려온 소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그의 손에는 한나라 사신의 증표인 부절(符節)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이 고사에 연유하여 그 후 편지를 안서라고 일컫게 되었다.

안중지정(眼中之釘) 眼:눈 안.  中:가운데 중.  之:갈 지(…의).  釘:못 정.

[동의어] 안중정(眼中釘). [출전]《新五代史》〈趙在禮專〉

눈에 박힌 못이라는 뜻. 곧 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의 비유. ② 몹시 싫거나 미워서 항상 눈에 거슬리는 사람(눈엣가시)의 비유.

▷고사 : 당나라 말, 혼란기에 조재례(趙在禮)라는 악명 높은 탐관오리가 있었다. 그는 하북 절도사(河北節度使) 유인공(劉仁恭)의 수하 무장이었으나 토색(討索)질한 재무를 고관대작에게 상납, 출세 길에 오른 뒤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의 세 왕조에 걸쳐 절도사를 역임했다.

송주(宋州:하남성 내)에서도 백성들로부터 한껏 착취한 조재례가 영흥(永興) 절도사로 영전, 전임하게 되자 송주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 놈이 떠나가게 되었다니 이젠 살았다. 마치 ‘눈에 박힌 못[眼中之釘]’이 빠진 것 같군.”

이 말이 전해지자 화가 난 조재례는 보복을 하기 위해 1년만 더 유임시켜 줄 것을 조정에 청원했다. 청원이 수용되자 그는 즉시 ‘못 빼기 돈[拔釘錢(발정전)]’이라 일컫고 1000푼씩 납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미납자는 가차없이 투옥하거나 태형에 처했다. 이처럼 악랄한 수법으로 착취한 돈이 1년간에 자그마치 100만 관(貫)이 넘었다고 한다.

암중모색(暗中摸索) 暗:어두울 암.  中:가운데 중.  摸:더듬을 모.  索:찾을 색.

[준말] 암색(暗索). [동의어] 암중모착(暗中摸捉).

[유사어] 오리무중(五里霧中). [출전]《隋唐佳話》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찾는다는 뜻으로, 어림짐작으로 찾는다(혹은 추측한다)는 말.

▷고사 :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였던 즉천무후(則天武后:690~705) 때 허경종(許敬宗)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경망한데다가 방금 만났던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할 적도로 건망증이 심했다. 어느 날, 친구가 허경종의 건망증을 비웃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자네 같은 이름 없는 사람의 얼굴이야 기억할 수 없지만 조식(曹植)이나 사령운(謝靈運) 같은 문장의 대가라면 ‘암중모색’을 해서라도 알 수 있다네.”

[주] 조식 :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 뛰어난 시재(詩才)를 시기하는 형 문제[文帝:후한을 멸하고 위(魏)나라를 세운 조비(曹丕), 220~226]의 명을 받고 지은〈칠보시(七步詩)〉는 특히 유명함.

사령운 : 남북조 시대 남송(南宋)의 시인. 별명 사강락(謝康樂). 여러 벼슬을 지냈으나 치적(治積)을 쌓지 못하자 그의 글재주를 아끼는 문제(文帝:424~453)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임. 이후 막대한 유산으로 연일 수백 명의 문인(文人)들과 더불어 산야(山野)에서 호유(豪遊)하다가 반역죄에 몰려 처형됨. 서정(抒情)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 문화 사상에 산수시(山水詩)의 길을 열어 놓음에 따라 ‘산수 시인’이라 불리기도 함.《산수시》《산거적(山居賊)》 등의 시집을 남김.(385~433).

양금택목(良禽擇木) 良:어질‧좋을 량.  禽:새 금.  擇:가릴 택.  木:나무 목.

[동의어] 양금상목서(良禽相木棲).

[출전]《春秋左氏專》〈衷公十八年條〉,《三國志》〈蜀志〉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는 뜻으로,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키워 줄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김의 비유.

▷고사 : 춘추 시대, 유가(儒家)의 비조(鼻祖)인 공자가 치국(治國)의 도를 유세(遊說)하기 위해 위(衛)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공문자(孔文子)가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하기 위해 공자에게 상의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선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자리를 물러 나온 공자는 제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일렀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한시라도 빨리 위나라를 떠나야겠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良禽擇木]고 했다. 마찬가지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하느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공문자는 황급히 객사로 달려와 공자의 귀국을 만류했다.

“나는 결코 딴 뜻이 있어서 물었던 것이 아니오. 다만 위나라의 대사에 대해 물어 보고 싶었을 뿐이니 언짢게 생각 말고 좀더 머물도록 하시오.”

공자는 기분이 풀리어 위나라에 머물려고 했으나 때마침 노(魯)나라에서 사람이 찾아와 귀국을 간청했다. 그래서 고국을 떠난 지 오래인 공자는 노구(老軀)에 스미는 고향 생각에 사로잡혀 서둘러 노나라로 돌아갔다.

약롱중물(藥籠中物) 藥:약 약.  籠:농 롱.  中:가운데 중.  物:만물 물.

[동의어] 약롱지물(藥籠之物). [참조] 양약고구(良藥苦口).

[출전]《唐書》〈狄仁傑專〉

약농 속의 약품이란 뜻으로, 항상 곁에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인물(심복)을 이르는 말.

▷고사 : 당나라 3대 황제인 고종(高宗:628~683)의 황후였던 즉천무후(則天武后)때의 이야기이다. 14세 때 2대 황제인 태종(太宗)의 후궁이 된 그녀(무후)는 26세 때 태종이 죽자 여승이 되었으나 재색(才色)을 탐낸 고종의 명예 따라 환속(還俗), 그의 후궁으로 있다가 고종 6년(655)에 황후가 되었다.

그 후 고종이 중풍에 걸리자 무후는 스스로 천후(天后)라 일컫고 수많은 명신(名臣)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고 전 황후의 소생인 태자를 폐하는 등 포악한 정치를 했다. 고종이 죽은 뒤 무후의 친아들인 중종(中宗:4대)‧예종(叡宗:5대)을 세웠으나 곧 폐하고 67세 때(690년)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주(周:690~705)라고 했다.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女帝)가 출현한 이 정변을 무주 혁명(武周革命)이라고 한다.

그 무렵, 적인걸(狄仁傑:630~700)이라는 청렴 강직하고 식견이 높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더없이 잔인하고 명석한 무후를 직간(直諫), 보필하여 어지러웠던 정치를 바로잡고, 민생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유능한 선비를 추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그는 조야(朝野)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따라서 적인걸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원행충(元行沖)과 같은 박학다재(博學多才)한 인물도 있었다. 그 원행충이 어느 날, 적인걸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공(相公) 댁에는 ‘맛있는 것(훌륭한 인재)’이 많습니다. 혹 과식하시어 배탈이 나는 일이 없도록 저 같은 쓴 약도 곁에 놔두십시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良藥苦於口而利於病], 충언을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忠言逆於耳而利於行]’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자 적인걸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야말로 바로 내 얄롱중물일세[君正吾藥籠中物].’ 임, 하루라도 곁에 없어서는 안 되고 말고[不可一日無也].”

[주] 적인걸 : 산서성(山西省) 사람. 당나라 고종(高宗) 때 강남 순무사(江南巡撫使)가 되어 치적을 쌓은 뒤 위주 자사(魏州刺史)로 있을 때 거란(꜈丹)의 침략군을 물리쳐 공을 세움. 재상으로 있을 때 즉천무후(則天武后)에게 직간하여 그녀의 친조카인 무삼사(武三思)로 하여금 황통(皇統)을 잇게 하려는 대역(大逆)을 막고 당황실을 회복, 수호하는 데 힘씀. 이후 국로(國老)로 예우 받음. 예종(睿宗) 때 양국공(梁國公)에 추봉됨.(630~700).

양두구육(羊頭狗肉) 羊:양 양.  頭:머리 두.  狗:개 구.  肉:고기 육.

[원말] 현양두 매구육(懸羊頭賣拘肉).

[동의어]현양수매마육(懸羊首賣馬肉),

현우수(매)마육[懸牛首(賣)馬肉].

[유사어] 양질호피(羊質虎皮), 현옥매석(衒玉賣石).

[출전]《晏子春秋》,《無門關》,《揚子法言》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 곧 ① 거짓 간판을 내검. ②좋은 물건을 내걸고 나쁜 물건을 함. ③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의 비유. ④ 겉으로는 훌륭하나 속은 전혀 다른 속임수의 비유.

▷고사 :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때의 일이다. 영공의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 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한 여인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嬰:晏子)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령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유행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을 내렸사옵니다. 하오면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羊頭狗肉]’과 같사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시오소서. 그러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영공의 안영의 진언에 따라 즉시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는 남장한 여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양상군자(梁上君子) 梁:들보 량.  上:위 상.  君:임금‧군자 군.  子:아들‧사람 자.

[출전]《後漢書》〈陳寔專〉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 곧 ① 집안에 들어온 도둑의 비유. ② (전하여) 천장 위의 쥐를 달리 일컫는 말.

▷고사 : 후한 말엽, 진식(陳寔)이란 사람이 태구현(太丘縣:하남성 내)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늘 겸손한 자세로 현민(縣民)의 고충을 헤아리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현민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모았다.

그런데 어느 해 흉년이 들어 현민의 생계가 몹시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진식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웬 사나이가 몰래 들어와 대들보 위에 숨었다. 도둑이 분명했다. 진식은 모르는 척하고 독서를 계속하다가 아들과 손자들을 대청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인이라 해도 모두 본성이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 어느덧 성품이 되어 악행을 하게 되느니라. 이를테면 지금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梁上君子]’도 그렇다.”

그러자 ‘쿵’하는 소리가 났다. 진식의 말에 감동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는 마룻바닥에 조아리고 사죄했다. 진식이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얼굴을 보아하니 악인은 아닌 것 같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나.”

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어 보냈다.

양약고구(良藥苦口) 良:좋을 량.  藥:약 약.  苦:괴로울‧ 쓸 고.  口:입 구.

[원말]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동의어]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 간언역어이(諫言逆於耳), 금언역어이(金言逆於耳). [참조] 약롱중물(藥籠中物).

[출전]《史記》〈留侯世家〉,《孔子家語》〈六本篇〉.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

▷고사 : ① 천하를 통일하고 동아시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천하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간 학정에 시달려온 민중이 각지에서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에 군사를 일으킨 유방(劉邦:훗날의 한고조)은 역전(歷戰) 3년 만(B.C. 206)에 경쟁자인 항우(項羽)보다 한 걸음 앞서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했다.

유방은 3세 황제 자영(子嬰)에게 항복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호화찬란한 궁중에는 온갖 재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궁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원래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은 마음이 동하여 그대로 궁중에 머물려고 했다. 그러자 강직한 용장 번쾌(樊噲)가 간했다.

“아직 천하는 통일되지 않았나이다. 지금부터가 큰일이오니 지체없이 왕궁을 물러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도록 하시오소서.”

유방이 듣지 않자 이번에는 현명한 참모로 이름난 장량(張良)이 간했다.

“당초 진나라가 무도한 폭정을 해서 천하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전하와 간은 서민이 이처럼 왕궁을 드실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의 임무는 천하를 위해 잔적(殘敵)을 소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입정하시자 재보와 미색(美色)에 현혹되어 포악한 진왕(秦王)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악왕(惡王)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옵니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忠言逆於耳利於行], 독약(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毒藥苦於口而利於病]’고 하였나이다. 부디 번쾌의 진언을 가납(嘉納:권하는 말을 기꺼이 들음)하시오소서.”

유방은 불현듯 깨닫고 왕궁을 물러나 패상(霸上:함양 근처)에 진을 쳤다.

② 이 ‘양약고구’란 말은《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실려 있는데 요약해서 적으면 다음과 같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은나라 탕왕(湯王)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번창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기에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 그리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패덕(悖德)의 악행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어부지리(漁父之利) 漁:고기 잡을 어.  父:아비 부.  之:갈 지(…의)  利:이로울 리.

[동의어] 어부지리(漁父之利), 방휼지쟁(蚌鷸之爭), 견토지쟁(犬ꟙ之爭), 전부지공(田不之功),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출전]《戰國策》〈燕策〉

어부의 이득이라는 뜻으로, 쌍방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챙긴다는 말.

▷고사 :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해 주도록 부탁했다.

조나라에 도착한 소대는 세 치의 혀 하나로 합종책(合縱策)을 펴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했다.

“오늘 귀국에 돌아오는 길에 역수(易水:연‧조와 국경을 이루는 강)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운수 사납게 이곳을 지나가던 어부에게 그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이옵니다. 연‧조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혜문왕도 명신으로 이름난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를 중용했던 현명한 왕인 만큼, 소대의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과연 옳은 말이오.”

이리하여 혜문왕은 당장 침공 계획을 철회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사리에 맞지 않음.

언어도단(言語道斷)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힘.

여도지죄(餘桃之罪) 餘:남을 여.  桃:복숭아 도.  之:갈 지(…의).  罪:허물 죄.

[동의어] 여도담군(餘桃啗君). [출전]《韓非子》〈說難篇〉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란 뜻으로,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의 비유.

▷고사 : 전국 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란 미동(美童)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刖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고 용서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더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먹을 것도 잊고 ‘과인에게 먹이다[啗君]’니…‥.”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미자하의 자태는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餘桃]’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이처럼 한 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도 오히려 화가 되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반장(如反掌)

대단히 쉬움, 식은 죽 먹기.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꾸어 생각을 함.

연목구어(緣木求魚) 緣:인연‧인할 연.  木:나무 목.  求:구할 구.  魚:고기 어.

[유사어] 지천사어(指天射魚). [출전]《孟子》〈梁惠王篇〉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 곧 ① 도저히 불가능한(가당찮은) 일을 하려 함의 비유. ② 잘못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려 함의 비유. ③ 수고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함의 비유.

▷고사 : 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신정왕(愼靚王) 3년(B.C. 318), 양(梁:魏)나라 혜왕(惠王)과 작별한 맹자(孟子)는 제(齊)나라로 갔다. 당시 나이 50이 넘는 맹자는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인의(仁義)를 치세의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을 유세(遊說)중이었다.

동쪽의 제나라는 서쪽의 진(秦)나라, 남쪽이 초(楚)나라와 함께 대국이었고 또 선왕(宣王)도 역량 있는 명군이었다. 그래서 맹자는 그 점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왕도정치가 아니라 무력과 책략을 수단으로 하는 패도정치(覇道政治)였으므로, 선왕은 맹자에게 이렇게 청했다.

“춘추 시대의 패자(覇者)였던 제나라 환공(桓公)과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패업(霸業)에 대해 듣고 싶소.”

“전하께서는 패도에 따른 전쟁으로 백성이 목숨을 잃고, 또 이웃 나라 제후들과 원수가 되기를 원하시옵니까?”

“원하지 않소. 그러나 과인에겐 대망(大望)이 있소.”

“전하의 대망이란 무엇이오니까?”

선왕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맹자 앞에서 패도를 논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짐짓 이런 질문을 던져 선왕의 대답을 유도했다.

“전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이, 아니면 아름다운 색이 부족하시기 때문이오니까?”

“과인에겐 그런 사소한 욕망은 없소.”

선왕이 맹자의 교묘한 화술에 끌려들자 맹자는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시다면 전하의 대망은 천하통일을 하시고 사방의 오랑캐들까지 복종케 하시려는 것이 아니오니까? 하오나 종래의 방법(무력)으로 그것(천하통일)을 이루려 하시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사옵니다.”

‘잘못된 방법(무력)으론 목적(천하통일)은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선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토록 무리한 일이오?”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하나이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은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후난(後難)은 없나이다. 하오나 패도를 쫓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옵니다.”

선왕은 맹자의 왕도정치론을 진지하게 경청했다고 한다.

오리무중(五里霧中) 五:다섯 오.  里:마을‧이수 리.  霧:안개 무.  中:가운데 중.

[동의어] 오리무(五里霧). [출전]《後漢書》〈張楷專〉

사방(四方) 5리에 안개가 덮여 있는 속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행방이나 사태의 추이를 알 길이 없음의 비유.

▷고사 :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학문이 뛰어난 장해(張楷)라는 선비가 있었다. 순제가 여러 번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병을 핑계 대고 끝내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장해는《춘추(春秋)》《고문상서(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서 평소 거느리고 있는 문하생만 해도 100명을 웃돌았다. 게다가 전국 각처의 숙유(夙儒‧宿儒:학식과 명망이 높은 선비)들을 비롯하여 괴족‧고관대작‧환관(宦官)들까지 다투어 그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는 이를 싫어하여 화음산(華陰山) 기슭에 자리한 고향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그러자 장해를 좇아온 문하생과 학자들로 인해 그의 집은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볐다. 나중에는 화음산 남쪽 기슭에 장해의 자(字)를 딴 공초(公超)라는 저잣거리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장해는 학문뿐 아니라 도술(道術)에도 능하여 쉽사리 ‘오리무(五里霧)’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방술(方術)로써 사방 5리에 안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주]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은 ‘오리무’에 ‘중(中)’자를 더한 것인데 처음부터 ‘중’자가 붙어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함.

방술 : 신선의 술법을 닦는 방사(方士)의 술법.

오매불망(寤寐不忘)

자나깨나 그립다는 뜻.

★오비이락(烏飛梨落)

뜻밖의 의심,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오상고절(傲霜孤節)

국화.

오손공주(烏孫公主) 烏:까마귀 오.  孫:손자 손.  公:공변될‧귀인 공.  主:주인 주.

[참조] 요령부득(要領不得). [출전]《漢書》〈西域專〉

정략 결혼의 희생이 된 슬픈 운명의 여인.

▷고사 : 오손은 전한(前漢) 때 서역(西域) 지방에 할거하던 터키계(系)의 유목 민족으로, 그 세력권은 천산(天山) 산맥 북쪽의 이시크를 호수 부근으로부터 이리하(伊犁河:일리 강) 유역의 분지를 포함하여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르 강 상류의 나린 강 계곡에 있던 적곡성(赤谷城:본거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오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성했던 흉노는 북방 몽골 땅을 근거지로 삼고 한나라를 끊임없이 침범했다. 그래서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武帝)는 흉노를 무찌르기 위해 건원(建元) 26년(B.C. 115) 장건(張騫)을 오손에 보내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0년 후 무제의 형인 강도왕(江都王)의 딸 세군(細君)을 공주로 꾸며 오손왕에게 출가시킴으로써 동맹은 더욱 굳어졌다.

이리하여 흉노는 한나라와 오손의 협공에 견디지 못하고 서역은 물론 한나라의 변경으로부터 북방 멀리 쫓겨가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서역 50여 이민족의 소국들은 한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라는 이들 나라의 이반을 막기 위해 구자(龜玆:쿠차)에 감독‧사찰 기관으로서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를 두었다. 건국 이후 100년 이상 시달려 온 흉노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먼 이국의 이민족에게 주어진 오손 공주는 망향의 노래를 부르며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五:다섯 오.  十:열 십.  步:걸음 보.  百:일백 백.

[동의어]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유사어] 대동소이(大同小異). [출전]《孟子》〈梁惠王篇〉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비웃는다는 뜻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론 마찬가지라는 말.

▷고사 : 전국 시대인 기원전 4세기 중엽,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진(秦)나라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도읍을 대량(大梁)으로 옮겼다(이후 양나라라고도 불렸음). 그러나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도 늘 패하는 바람에 국력은 더욱 떨어졌다. 그래서 혜왕은 국력 회복을 자문하기 위해 당시 제후들에게 왕도 정치론을 유세중인 맹자를 초청했다.

“선생이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이렇게 와 준 것은 과인에게 부국 강병(富國强兵)의 비책(秘策)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겠소?”

“전하, 저는 귀국의 부국 강병과 상관없이 인의(仁義)에 대해 아뢰고자 왔나이다.”

“백성을 생각하라는 선생의 인의의 정치라면 과인은 평소부터 힘써 베풀어 왔소. 예컨대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젊은이들을 하동(河東) 지방으로 옮기고, 늙은이와 아이들에게는 하동에서 곡식을 가져다가 나누어주도록 하고 있소. 그와 반대로 하동에 기근이 들면 하내의 곡식으로 구호하도록 힘쓰고 있지만, 백성들은 과인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것 같지 않고, 또 이웃 나라의 백성 수가 줄어들었다는 말도 못 들었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전하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서 아뢰겠나이다. 전쟁터에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지기 직전, 겁이 난 두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사옵니다. 그런데 오십 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고 ‘비겁한 놈’이라며 비웃었다면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나이까?”

“그런 바보 같은 놈이 어디 있소? 오십 보든 백 보든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걸 아셨다면 전하, 백성들 구호하시는 전하의 목적은 인의의 정치와 상관없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향하는 이웃 나라와 무엇이 다르옵니까?”

혜왕은 대답을 못 했다. 이웃 나라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백성을 구호한 것을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해서 구호한 양 자랑한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주] 대량(大梁) :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내 개봉(開封:카이펑).

오월동주(吳越同舟) 吳:오나라 오.  越:넘을‧월나라 월.  同:한가지 동.  舟:배 주.

[동의어] 오월지쟁(吳越之爭), 오월지사(吳越之思).

[유사어] 동주상구(同舟相救), 동주제강(同舟濟江), 호월동주(胡越同舟), 오월지부(吳越之富).

[참조] 와신상담(臥薪嘗膽). [출전]《孫子》〈九地篇〉

적대(敵對) 관계에 있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뜻. 곧 ① 서로 적의를 품을 사람끼리 같은 장소‧처지에 놓임. 원수끼리 함께 있음의 비유. ② 적의를 품은 사람끼리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서로 도움.

▷고사 : 《손자(孫子)》라는 책은 중국의 유명한 병서(兵書)로서 춘추 시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손무는 오왕(吳王) 합려(闔閭) 때 서쪽으로는 초(楚)나라의 도읍을 공략하고, 북방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격파한 명장이기도 했다.

《손자》〈구지편(九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은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당하지 않으려 해 봤자 최후의 의지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오합지중(烏合之衆) 烏:까마귀 오.  合:합할 합.  之:갈 지(…의).  衆:무리 중.

[동의어] 오합지졸(烏合之卒). [유사어] 와합지중(瓦合之衆).

[출전]《後漢書》〈耿弇專(경감전)〉

까마귀떼 같이 질서 없는 무리라는 뜻. 곧 ① 규율도 통일성도 없는 군중. ② 갑자기 모인 훈련 없는 군세(軍勢).

▷고사 :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嬰)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9년).

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후한의 시조)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 일당을 주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23년). 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與)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僭稱)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弇)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케 했다. 그런데 유수의 본진을 향해 행군하던 경감의 군사는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했다.

“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은 두 사람을 앞으로 끌어낸 뒤 칼을 빼 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섬서성 서안(陝西省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중’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에 임명되었다.

옥석혼효(玉石混淆) 玉:구슬 옥.  石:돌 석.  混:섞을 혼.  淆:뒤섞일 효.

[동의어] 옥석혼교(玉石混交), 옥석동가(玉石同架), 옥석동궤(玉石同匱).

[유사어] 옥석구분(玉石俱焚), 옥석동쇄(玉石同碎).

[출전]《抱朴子》〈外篇 尙專〉

옥과 돌이 뒤섞여 있다는 뜻. 곧 ① 훌륭한 것과 쓸데없는 것이 뒤섞여 있음. ② 선과 악, 현(賢)과 우(愚)가 뒤섞여 있음.

▷고사 : 동진(東晉:317~420)이 도사(道士)인 갈홍(葛洪:호는 포박자, 283~343?)은《포박자(抱朴子)》〈외편(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경(詩經)》이나〈서경(書經)〉이 도의(道義)에 대해(大海)라 한다면 제자백가(諸子百家:춘추 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의 글[書]은 그것을 보강하는 냇물의 흐름이라 할 수 있으며 방법은 달라도 덕을 닦는 데는 변함이 없다. 옛사람들은 재능을 얻기 어려움을 탄식하여 ‘곤륜산(崑崙山:중국 전설상의 산)의 옥이 아니라 해서 야광주(夜光珠)를 버리거나 성인(聖人)의 글이 아니라 해서 수양에 도움이 되는 말’은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漢)‧위(魏) 이래 ‘본받을 만한 좋은 말[嘉言]’이 많이 나와 있는데도 식견이 좁은 사람들은 자의(字義) 해석에만 사로잡혀 오묘한 점을 가볍게 보며 도외시한다. 또한 소도(小道)이므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거나 넓고 깊어서 사람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티끌이 쌓여 태산이 되고 많은 색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이룬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다. 또 천박한 시부(詩賦)를 감상하는가 하면 뜻 깊은 자서[子書:제자(諸子)의 서(書)]를 가볍게 여기며 유익한 금언(金言)을 하찮게 생각한다. 그래서 참[眞]과 거짓[僞]이 전도(顚倒)되고 ‘옥과 돌이 뒤섞이며[玉石混淆]’ 아악(雅樂)도 속악(俗樂)과 같은 것으로 보고 아름다운 옷도 누더기고 보니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주] 갈홍 : 동진의 도사. 강소(江蘇) 사람. 자는 치천(雉川), 호는 포박자(抱朴子), 소갈선옹(小葛仙翁)이라 불리기도 함. 고학으로 유학(儒學)을 배웠으나 신선술(神仙術)에 통달한 재종조부(再從祖父:할아버지의 사촌 형제) 갈현(葛玄:별명-갈선인)의 영향을 받고 갈현의 제자 정은(鄭隱)으로부터 연단(煙丹)의 비술(祕術)을 전승함. 동진의 시조(元帝:317~322)가 진(晉:西晉)나라 승상으로 있을 때 무공을 세워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짐. 만년에 교지(交趾:북베트남)에서 단가[丹砂:주사(朱砂)-수은과 유황의 화합물]를 채광하여 선약(仙藥)을 만들었다고 함. 평소부터 갈홍을 흠모하던 광주 자사(廣州刺史) 등악(鄧嶽)이 “스승을 찾아 멀리 떠날까 하네.”라고 쓴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가 보니 앉은 채로 죽은 갈홍의 얼굴색은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입관(入棺)할 때의 시체도 부드럽고 가벼웠다고 함. 그래서 세인은 61세로 세상을 떠난 갈홍이 껍데기인 시체만 남겨 놓고 신선이 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함. 저서로는 신선의 도를 설(說)한 내편(內篇)과 정치‧도덕을 논한 외편(外篇)의《포박자》《신선전(神仙專)》등이 있음.(283~343).

연단(煉丹) : 도사(道士)가 단사로 황금이나 선약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 연금술(鍊金術)의 한 가지.

온고지신(溫故知新) 溫:따뜻할‧복습할 온.  故:연고‧예 고.  知:알‧깨달을 지.  新:새 신.

[원말] 원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참조] 기문지학(記問之學), 구이지학(口耳之學).

[출전]《論語》〈爲政篇〉

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미루어 새 것을 안다는 뜻.

▷고사 : 공자는《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 것을 익히어 새 것을 알면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남의 스승이 된 사람은 고전(古典)에 대한 박식(博識)만으로는 안 된다. 즉 고전을 연구하여 거기서 현대나 미래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예기(禮記)》〈학기(學記)〉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기문지학(記問之學:피상적인 학문)은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記問之學 不足以爲師矣].”

지식을 암기해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은 실로 ‘온고지신’과 표리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고전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고전의 현대적 의의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에 고전 학습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와각지쟁(蝸角之爭) 蝸:달팽이 와.  角:뿔 각.  之:갈 지(…의).  爭:다툴 쟁.

[원말]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동의어] 와우각상(蝸牛角上), 와각상쟁(蝸角相爭), 와우지쟁(蝸牛之爭).

[유사어] 만촉지쟁(蠻觸之爭). [출전]《莊子》〈則陽篇〉

달팽이 촉각 위에서의 싸움이란 뜻. 곧 ① 대국(大局)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작은(쓸데없는) 다툼의 비유. ② 하찮은 일로 승강이하는 짓의 비유. ③ 인간 세계의 비소(卑小:보잘 것 없이 작음)함의 비유.

▷고사 : 전국시대, 양(梁:魏)나라 혜왕(惠王)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齊)나라 위왕(威王)에 대한 응징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혜왕은 재상 혜자(惠子)가 데려온 대진인(戴晉人)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진인은 현인(賢人)으로 이름난 도가자류(道家者流:도교를 믿고 닦는 사람)답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달팽이라는 미물(微物)이 있사온데 그것을 아시나이까?”

“물론, 알고 있소.”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 위에는 촉씨(觸氏)라는 자가, 오른쪽 촉각 위에는 만씨(蠻氏)라는 자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있었나이다. 어느 날 그들은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시작했는데 죽은 자가 수만명에 이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 지 15일 만에 전쟁을 멈추었다하옵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소?”

“하오면, 이 이야기를 사실에 비유해 보겠나이다. 전하, 이 우주의 사방 상하(四方上下)에 제한(際限)이 있다고 생각하시옵니까?”

“아니, 끝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하오면, 마음을 그 무궁한 세계에 노닐게 하는 자에게는 사람이 왕래하는 지상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으음, 과연.”

“그 나라들 가운데 위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大梁:개봉(開封)]이라는 도읍이 있사오며, 그 도읍의 궁궐 안에 전하가 계시옵니다. 이렇듯 우주의 무궁에 비한다면, 지금 제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시려는 전하와 달팽이 촉각(觸角) 위의 촉씨‧만씨가 싸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아옵니까?”

“과연,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소.”

대진인이 물러가자 제나라와 싸울 마음이 싹 가신 혜왕은 혜자에게 힘없이 말했다.

“그 사람은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

와신상담(臥薪嘗膽) 臥:누울 와.  薪:섶(땔)나무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유사어] 회계지치(會稽之恥), 절치액완(切齒扼腕).

[출전]《史記》〈越世家〉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는다는 뜻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딤의 비유.

▷고사 : 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欈李:절강성 가흥(浙江省嘉興)]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蠡)가 간(諫)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伯嚭)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의 날로부터 12년이 지난 그 해(B.C. 482) 봄, 부차가 천하에 패권(覇權)을 일컫기 위해 기(杞) 땅의 황지[黃地:하남성 기현(河南省杞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고 있는 사이에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歷戰) 7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소주(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와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절강성 정하(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완벽(完璧) 完:완전할 완.  璧:둥근 옥 벽.

[동의어] 완조(完調).

[유사어] 화씨지벽(和氏之壁), 연성지벽(連城之壁).

[출전]《史記》〈藺相如列傳〉,《十八史略》〈趙篇〉

① 흠이 없는 구슬[壁:환상(環狀)의 옥(玉)]. 결점 없이 훌륭함. ② 빌려 온 물건을 온전히 돌려보냄.

▷고사 :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천하명옥(天下名玉)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어떻게든 화씨지벽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 조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성(城) 15개와 맞바꾸자’고 제의했다.

혜문왕에게는 실로 난처한 문제였다. 제의를 거절하면 당장 쳐들어 올 것이고 화씨지벽을 넘겨주면 그냥 빼앗아 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혜문왕은 중신들을 소집하여 의논했다.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결국 강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다 하여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혜문왕은 중신들에게 물었다.

“사신으로는 누가 적임자일 것 같소?”

그러자 대부인 목현(繆賢)이 말했다.

“신의 식객에 지모와 담력이 뛰어난 인상여(藺相如)라는 자가 있사온데 그 자라면 차질 없이 중임을 완수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리하여 사신으로 발탁된 인상여는 소양왕을 알현하고 화씨지벽을 바쳤다. 화씨지벽을 손에 들고 살펴보던 소양왕은 감탄하여 희색이 만면했으나 약속한 15개 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인상여는 조용히 말했다.

“전하, 그 화씨지벽에는 흠집이 있사온데 그것을 외신(外臣)에게 주시면 가르쳐 드리겠나이다.”

소양왕이 무심코 화씨지벽을 건네주자 인상여는 그것을 손에 든 채 궁궐 기둥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소양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하께서 약속하신 15개 성을 넘겨주실 때까지 이 화씨지벽은 외신이 갖고 있겠나이다. 만약 안 된다고 하시면 화씨지벽은 외신의 머리와 함께 이 기둥에 부딪쳐 깨지고 말 것이옵니다.”

화씨지벽이 깨질까 겁이 난 소양왕을 일단 숙소로 돌려보냈다. 인상여는 숙소에 돌아오자 화씨지벽을 부하에게 넘겨주고 서둘러 귀국시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소양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당장 인상여를 잡아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죽였다가는 신의 없는 편협한 군왕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아 그대로 곱게 돌려보냈다.

이리하여 화씨지벽은 ‘온전한 구슬[完璧]’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인상여는 그 공으로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다.

요동지시(遼東之豕) 遼:멀‧나라 이름 요.  東:동녘 동.  之:갈 지(…의).  豕:돼지 시.

[준말] 요시(遼豕). [동의어] 요동시(遼東豕).

[출전]《文選》〈朱浮書〉,《後漢書》〈朱浮專〉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 양양하여 자랑함의 비유.

▷고사 : 후한(後漢) 건국 직후, 어양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논공 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 대장군(大將軍) 주부(朱浮)는 그의 비리를 꾸짖는 글을 보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이 그의 돼지가 대가리가 흰[白頭]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河東)까지 가 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光武帝]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

팽총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叛軍)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河北)에 포진(布陣)하고 있을 때에 3000여 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가 옛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의 중책(重責)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천자를 도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오만 불손한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컫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 당하고 말았다.

요령부득(要領不得) 要:종요로울‧구할 요.  領:옷깃‧요소 령.  不:아니 불.  得:얻을 득.

[출전]《史記》〈大宛專〉,《漢書》〈張騫專〉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의 요령을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고사 :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의 일이다. 당시 만리장성 밖은 수수께끼의 땅이었다. 그러나 영맹한 흉노는 동쪽 열하(熱河)에서부터 서쪽 투르키스탄(중앙 아시아 지방)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을 펴고 빈번히 한나라를 침범 약탈했다. 그래서 무제는 기원전 2세기 중반에 흉노에게 쫓겨 농서[隴西:감숙성(甘肅省)]에서 서쪽 사막 밖으로 옮겨간 월지(月氏:大月氏)와 손잡고 흉노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월지에 다녀올 사신을 공모한 결과 장건(張騫:?~B.C. 114)이란 관리가 뽑혔다.

건원(建元) 3년(B.C. 138), 장건은 100여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서쪽 이리(伊犁:위구르 자치구 내)란 곳에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월지를 찾아 장안[長安:서안(西安)]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농서를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때부터 흉노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장건은 활짝 트인 성격으로 해서 흉노에게 호감을 사 장가도 들고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탈출할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포로가 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장건은 처자와 일행을 데리고 서방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우뚝 솟은 천산(天山) 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 타림 분지를 횡단한 그들은 대완국(大宛國)‧강거국(康居國)을 거쳐 마침내 아무 강 북쪽에 있는 월지의 궁전에 도착했다.

장건은 곧 월지의 왕을 알현하고 무제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왕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적이었다.

“월지는 서천(西遷) 이후 기름진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소. 그러니 백성은 이제 구원(舊怨)을 씻기 위한 그런 쓸데없는 전쟁은 원치 않을 것이오.”

장건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당시 월지의 속국인 대하국(大夏國)까지 찾아가 월지를 움직이려 했으나 허사였다. 이 일을 사서(史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끝내 사명으로 하는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한 채[要領不得]’ 체류한 지 1년이 지나 귀국 길에 올랐다.”

장건은 귀국 도중에 또 흉노에게 잡혀 1년 넘게 억류되었으나 부하 한 사람과 탈출, 13년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B.C. 126). 그로부터 3년 후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진 장건은 계속 서역(西域) 사업에 힘썼는데 그의 대여행은 중국 역사에 많은 것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동서의 교통이 트이면서 서방으로부터 명마(名馬)‧보석‧비파(琵琶)‧수박‧석류‧포도 등이 들어오고 한나라로부터는 금과 비단 등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크 로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주] 대완국 : 중앙 아시아 페르가나 지방에 있었던 작은 나라.

강거국 : 아랄해 동쪽 시르강 하류의 키르기스 초원에 있었던 터키계(系) 유목 민족의 작은 나라.

대하국 : 일명 박트리아 왕국. 힌두쿠시 산맥의 계곡, 아무 강 상류의 좁은 지역에 있었던 나라.

용두사미(龍頭蛇尾)

출발은 야단스럽고 끝은 흐지부지 함.

우공이산(愚公移山) 愚:어리석을 우.  公:귀 공.  移:옮길 이.  山:메 산.

[유사어] 마부작침[磨斧作針(鍼)], 수적천석(水適穿石), 적토성산(積土成山).

[출전]《列子》〈湯問篇〉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큰 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의 비유.

▷고사 : 춘추 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이름은 어구(禦寇)]의 문인들이 열자의 철학 사상을 기술한《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먼 옛날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仞]이나 되는 두 큰 산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장애가 되었다. 그래서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나는 너희들이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리라며 반대했다.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예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고?”

“발해(渤海)에 갖다 버릴 거요.”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知叟)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녕’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은 옥황 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 과아(夸娥)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朔東) 땅에, 왕옥산은 옹남(雍南)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그래서 두 산이 있었던 기주(冀州)와 한수(漢水) 남쪽에는 현재 작은 언덕조차 없다고 한다.

★우이독경(牛耳讀經)

소 귀에 대고 경 읽기.

★우후죽순(雨後竹筍)

빨리 자라남.

원교근공(遠交近攻) 遠:멀 원.  交:사귈 교.  近:가까울 근.  攻:칠 공.

[참조] 누란지위(累卵之危). [출전]《史記》〈范雎列傳〉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정책.

▷고사 :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湣王)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遠:멀 원. 救:구원할 구.  近:가까울 근.  火:불 화.

[출전]《韓非子》〈說林篇〉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한다’는 뜻으로, 먼 데 있으면 급할 때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

▷고사 : 《한비자(韓非子)》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 목공(穆公)은 아들들에게도 진(晉)나라와 형(荊)나라를 섬기게 했다. 그 무렵 노나라는 이웃 나라인 강국 제(齊)나라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위급할 때 진나라와 형나라 같은 강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속셈에서였다. 목공의 그런 속셈을 이서(梨鉏)가 간했다.

“사람이 물에 빠진 경우, 먼 월(越)나라에서 사람을 청해다가 구하려 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 해도 때는 이미 늦사오며, 또 집에 불이 난 경우, 발해(渤海)와 같이 먼바다에서 물을 끌어다가 끄려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때는 역시 늦사옵니다.

이처럼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한다[遠水不救近火]’고 했듯이 노나라가 이웃 제나라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먼 진나라와 형나라가 강국이긴 해도 노나라의 위난은 구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원입골수(怨入骨髓) 怨:원망할 원. 骨:뼈 골.  髓:골수 수.

[원말] 원입어골수(怨入於骨髓).

[동의어] 원철골수(怨徹骨髓), 한입골수(恨入骨髓).

[출전]《史記》〈秦本紀〉

원한이 뼈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원한이 마음 속 깊이 맺혀 잊을 수 없다는 말.

▷고사 : 춘추시대 오패(五霸)의 한 사람인 진(秦)나라 목공(繆公)은 중신 백리해(百里奚)와 건숙(蹇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장군에게 정(鄭)나라를 치라고 명했다. 진나라 군사가 주(周)나라의 북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 이곳에 소를 팔러 온 정나라의 소장수인 현고(弦高)는 진나라 장군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정나라 주상(主上)께서는 장병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소생에게 소 12마리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듣자 생각이 달라진 세 장군은 공격 목표를 바꾸어 진(晉)나라의 속령(屬領)인 활(滑)로 쳐들어갔다.

당시 진나라는 문공(文公)이 죽어 국상(國喪)중에 있었으나 태자[太子:후의 양공(襄公)]는 즉시 용장(勇將)을 파견하여 침략군을 섬멸했다. 포로가 된 세 장군은 태자 앞에 끌려 나왔다. 그러자 목공의 딸인 태자의 모후(母后)는 그들의 구명을 청원했다.

“저들을 죽이면 강국인 진나라 목공은 ‘원한이 뼈에 사무쳐[怨入骨髓]’ 반드시 이 나라를 칠 것이오. 그러나 저들을 살려 보내는 게 좋겠소.”

태자는 모후의 말을 옳게 여겨 세 장군을 모두 풀어 주었다.

월단평(月旦評) 月:달 월.  旦:아침 단.  評:평론할 평.

[준말] 월단(月旦). [동의어] 월조평(月朝評).

[출전]《後漢書》〈許劭專〉

‘매달 첫날의 평’이란 뜻으로, 인물에 대한 비평을 일컫는 말.

▷고사 : 후한(後漢) 말, 12대 황제인 영제(靈帝:167~189) 17년(184)에 일어난 ‘황건(黃巾)의 난(亂)’ 때 큰 공을 세운 조조(曹操)가 아직 두각을 나타내기 전 일이다.

그 무렵, 여남(汝南:호북성 내) 땅에 허소(許劭)와 그의 사촌 형 허정(許靖)이라는 두 명사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매달 첫날[月旦]’이면 허소의 집에서 향당(鄕黨:향-1만 2500집, 당-500집)의 인물을 뽑아 비평했는데 그 비평이 매우 적절함으로 해서 평판이 높았다. 그래서 당시 ‘여남의 비평’으로 불리던 이 비평을 들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조조가 허소를 찾아와서 비평해 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난폭자로 소문난 조조의 청인지라 선뜻 응하기가 어려웠다. 조조가 재촉하자 허소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대는 태평한 세상에서는 유능한 관리이되,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웅(姦雄)이 될 인물이오.”

이 말을 듣고 조조는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황건적(黃巾賊)을 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고 한다.

월하빙인(月下氷人) 氷:얼음 빙

[동의어] 월하로(月下老), 빙상인(氷上人), 빙인(氷人).

[유사어] 적승(赤繩). [출전]《續幽怪錄》,《晉書》〈索耽篇〉

월하로(月下老)와 빙상인(氷上人)이 합쳐진 것으로, 결혼 중매인을 일컫는 말.

▷고사 : ①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때의 이야기이다. 위고(韋固)라는 젊은이가 여행 중에 송성(宋城:하남성 내)에 갔을 때 ‘달빛 아래 한 노인[月下老]’이 손에 빨간 끈을[赤縄]을 든 채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위고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묻지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 혼사에 관한 책인데, 여기 적혀 있는 남녀를 이 빨간 끈으로 한 번 매어 놓으면 어떤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네.”

“그럼, 지금 제 아내 감은 어디에 있습니까?”

“음, 이 송성에 있구먼, 성 북쪽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진(陳)이란 여인네 어린아이야.”

위고는 약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뒤 상주(相州:하남성 내)에서 벼슬길에 나아간 위고는 그곳 태수(太守)의 딸과 결혼했다. 아내는 17세로 미인이었다. 어느 날 밤 위고가 아내에게 신상(身上)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실은 태수님의 양녀입니다. 친아버지는 송성에서 벼슬을 다니시다 돌아가셨지요. 그 때 저는 젖먹이였는데, 마음씨 착한 유모가 성 북쪽 거리에서 채소 장사를 하면서 저를 길러 주었답니다.”

② 진(晉)나라에 색탐(索耽)이라는 점쟁이가 있었다. 어느 날 영고책(令孤策)이라는 사람이 몽점(夢占)을 치러 왔다.

“꿈속에서 나는 얼음 위에 서서 얼음 밑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색탐은 이렇게 해몽했다.

“얼음 위는 곧 양(陽)이요, 얼음 밑은 음(陰)이니 양과 음이 이야기했다는 것은 ‘얼음 위에 선 사람[氷上人]’인 그대가 결혼 중매를 서게 될 조짐이오. 성사(成事)시기는 얼음이 녹는 봄철이고…‥.”

그 후 얼마 안 되어 과연 영고책은 태수의 부탁을 받고 그의 아들과 장(張)씨의 딸을 중매 서서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은감불원(殷鑑不遠) 殷:은나라 은. 鑑:거울 감. 遠:멀 원.

[원말]~재하후지세(在夏后之世). [동의어] 상감불원(商鑑不遠).

[유사어] 복차지계(覆車之戒), 복철(覆轍). [참조] 주지육림(酒池肉林), 맥수지탄(麥秀之嘆). [출전]《詩經》〈大雅篇〉

은(殷)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멸망의 선례는 먼데 있지 않다는 뜻으로, 남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고사 : 고대 중국 하(夏)‧은(殷)‧주(周)의 3왕조 중 은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 온 달기(妲己)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였다. 주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국고를 기울여 시설한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음주음락(飮酒淫樂)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가렴주구와, 충간자(忠諫者)를 처형하기 위한 포락지형(炮烙之刑)을 일삼는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그간 주왕의 포학을 간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당하고 서백[西伯:훗날 주문왕(周文王)이 됨]은 유폐되었다. 서백은 그때 ‘600여 년 전에 은왕조의 시조인 탕왕(湯王:주왕의 28대 선조)에게 주벌당한 하왕조의 걸왕(桀王:주왕과 대동 소이한 폭군음주)을 거울 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간하다가 화를 당했는데 그 간언(諫言)이《시경(詩經)》〈대아편(大雅篇)〉‘탕시(湯詩)’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 걸왕 때에 있네.

[殷鑑不遠 在夏侯之世(은감불원 재하후지세)]

삼공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주왕의 친형, 망명)‧기자(箕子:왕족, 망명)‧비간(比干:왕자, 처형당함)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은 걸왕의 비극적인 말로를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원성이 하늘에 닿은 백성과 제후들로부터 이반당한 주왕은 서백의 아들 발[發:주왕조의 시조 무왕(武王)]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읍참마속(泣斬馬謖) 泣:울 읍.  斬:벨 참. 謖:일어날 속.

[출전]《三國志》〈蜀志 諸葛亮專〉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 곧 ①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情)을 버림의 비유. ② 큰 목적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가차없이 버림의 비유.

▷고사 : 삼국시대 초엽인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227) 3월,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成都)를 출발했다. 곧 한중(漢中:섬서성 내)을 석권하고 기산(祁山:감숙성 내)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자는 중달(中達), 179~251]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의 가정(街亭:한중 동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을 잃으면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중책을 맡길 만한 장수가 없어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는가?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 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도로를 사수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적을 유인해서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 진을 쳤다. 그러나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한 채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식수가 끊겼다. 마속은 전병력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용장인 장합(張郃)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전군을 한중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228) 5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埦)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의심암귀(疑心暗鬼) 疑:의심할 의. 暗:어두울 암.  鬼:귀신 귀.

[원말]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유사어] 절부지의(竊斧之疑), 배중사영(杯中蛇影). [출전]《列子》〈說符篇〉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이 나오는 듯이 느껴진다는 뜻. 곧 ①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갖가지 무서운 망상이 잇달아 일어나 불안해짐. ② 선입관은 판단을 빗나가게 함.

▷고사 : ① 어떤 사람이 소중히 아끼던 도끼를 잃어버렸다. 도둑 맞은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이웃집 아이가 수상쩍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슬금슬금 도망갈 듯한 자세였고 안색이나 말투도 어색하기만 했다.

‘내 도끼를 훔쳐 간 놈은 틀림없이 그 놈이야.’

이렇게 믿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저번에 나무하러 갔다가 도끼를 놓고 온 일이 생각났다. 당장 달려가 보니 도끼는 산에 그대로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웃집 아이를 보자 이번에는 그 아이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별로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② 마당에 말라죽은 오동나무를 본 이웃 사람이 주인에게 말했다.

“집안에 말라죽은 오동나무가 있으면 재수가 없다네.”

주인이 막 오동나무를 베어 버리자 그 사람이 또 나타나서 땔감이 필요하다며 달라고 했다. 주인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이제 보니 땔감이 필요해서 날 속였군. 이웃에 살면서 어떻게 그런 엉큼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목지신(移木之信) 

[동의어] 사목지신(徙木之信). [반의어] 식언(食言).

[출전]《史記》〈商君列專〉

위성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뜻. 곧 ① 남을 속이지 아니한 것을 밝힘. ② 약속을 실행함.

▷고사 : 진(秦)나라 효공(孝公) 때 상앙(商鞅:?~B.C. 338)이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으로 법률에 밝았는데 특히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부국 강병책(富國强兵策)을 펴 천하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가로 유명했다.

한 번은 상앙이 법률을 제정해 놓고도 즉시 공포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믿어 줄지 그것이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앙은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남문에 길이 3장(三丈:약 9m)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 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리라.”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오십 금(五十金)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약속대로 오십 금을 주었다. 그리고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조정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주] 상앙 : 전국 시대, 진나라의 명재상. 제자 백가(諸子白家)의 한 사람. 별명은 공손앙(公孫鞅). 상군(商君).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 일찍이 형명학(刑名學)을 공부하고 진나라 효공(孝公)을 섬김. 법치주의(法治主義)에 입각한 부국 강병책(富國强兵策)을 단행하여 진나라의 국세(國勢)를 신장시킴. 효공이 죽자 그간 반감이 쌓인 귀족들의 참소(讒訴)로 사형 당함. (?~B.C. 338).

이심전심(以心傳心) 以:써 이. 傳:전할 전.

[동의어] 염화미소(拈華微笑).

[유사어]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출전]《五燈會元》〈傳燈錄〉,《無門關》,《六祖壇經》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말.

▷고사 : 송(宋)나라의 중 도언(道彦)이 석가 이후 고승들의 법어(法語)를 기록한《전등록(傳燈錄)》에서 보면 석가가 제자인 가섭(迦葉)에게 말이나 글이 아니라 ‘이심전심’의 방법으로 불교의 진수(眞髓)를 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송나라의 중 보제(普濟)의《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느 날 석가는 제자들을 영산(靈山)에 불러모았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들고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다[抩華].’ 제자들은 석가가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微笑].’ 그제야 석가는 가섭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인간이 원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덕(妙德-매우 뛰어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煩惱)를 벗어나 진리에 도달한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아는 마음), 불립문자 교외별전 불립문자(不立文字 敎外別傳:모두 언어나 경전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뜻. 곧, 진리는 마음에 의해서만 전해지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함)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전해 주마.”

[주]《오등회원》:《전등록》외 4부의 ‘등록’을 합친《오등록(五燈錄)의 초본》

인생조로(人生朝露) 朝:아침 조.  露:이슬 로.

[원말]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 [유사어] 인생초로(人生草露).

[참조] 안서(雁書), 구우일모(九牛一毛). [출전]《漢書》〈蘇武專〉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덧없다는 말.

▷고사 : 전한 무제(武帝) 때(B.C.100)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는 포로 교환차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들의 내란에 말려 잡히고 말았다.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는 한사코 항복을 거부하는 소무를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귀국을 허락하겠다’며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했다. 소무가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하던 어느 날, 고국의 친구인 이릉(李陵) 장군이 찾아왔다.

이릉은 소무가 고국을 떠난 그 이듬해 5000여의 보병으로 5만이 넘는 훙노의 기병과 혈전을 벌이다가 중과 부적(衆寡不敵)으로 참패한 뒤 부상, 혼절(昏絶)중에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이릉은 선우의 빈객으로 후대를 받았으나 항장(降將)이 된 것이 부끄러워 감히 소무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선우의 특청으로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이릉은 주연을 베풀어 소무를 위로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우는 자네가 내 친구라는 것을 알고, 꼭 데려오라며 나를 보냈네. 그러니 자네도 이제 고생 그만하고 나와 함께 가도록 하세.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人生如朝露]’고 하지 않는가.”

이릉은 끝내 소무의 절조를 꺾지 못하고 혼자 돌아갔다. 그러나 소무는 그 후(B.C.81) 소제(昭帝:무제의 아들)가 파견한 특사의 기지(機智)로 풀려나 19년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일거양득(一擧兩得) 擧:들 거.  兩:두 량.  得:얻을 득.

[준말] 양득(兩得). [동의어] 일거양획(一擧兩獲), 일전쌍조(一箭雙鳥), 일석이조(一石二鳥).

[반의어] 일거양실(一擧兩失). [참조] 조명시리(朝名市利).

[출전]《春秋後語》,《戰國策》〈秦策〉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 이익을 거둔다는 뜻.

▷고사 :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은 어전에서 ‘중원으로의 진출이야말로 조명시리(朝名市利)에 부합하는 패업(霸業)’이라며 중원으로의 출병을 주장하는 재상 장의(張儀)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신이 듣기로는 부국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국토를 넓히는데 힘써야 하고, 강병(强兵)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백성의 부(富)에 힘써야 하며, 패자(覇者)가 되기를 원하는 군주는 먼저 덕을 쌓는데 힘써야 한다고 하옵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패업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법이옵니다. 하오나, 지금 진나라는 국토도 협소하고 백성들은 빈곤하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면 먼저 막강한 진나라의 군사로 촉(蜀)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는 길밖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는 줄로 아옵니다. 그러면 국토는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은 쌓일 것이옵니다. 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고 무엇이오니까?

그러나 지금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는 한(韓)나라를 침범하면, 한나라는 제(齊)나라와 조(趙)나라를 통해서 초(楚)나라와 위(魏)나라에 구원을 청할 게 분명하오며, 더욱이 주나라의 구정(九鼎)은 초나라로 옮겨질 것이옵니다. 그땐 진나라가 공연히 천자를 위협한다는 악명(惡名)만 얻을 뿐이옵니다.”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국토를 넓혔다.

[주] 구정 : 우왕(禹王) 때에 당시 전 중국 대륙인 아홉 고을[九州]에서 바친 금(金, 일설에는 구리)으로 만든 솔. 하(夏)‧은(殷) 이래 천자(天子)에게 전해 오는 상징적 보물이었으나 주왕조(周王朝) 때에 없어졌다고 함.

일망타진(一網打盡) 網:그물 망.  打:칠 타.  盡:다할 진.

[준말] 망타(網打). [출전]《宋史》〈人宗紀〉,《東軒筆錄》

한 번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다 잡는다는 뜻. 곧 범인들이나 어떤 무리를 한꺼번에 모조리 잡는다는 말.

▷고사 : 북송(北宋) 4대 황제인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당시 북방에는 거란[契丹:요(遼)]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중국의 일부였던 안남(安南)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인종은 연약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내치(內治)에는 괄목할 만한 치적이 적지 않았다.

전한(前漢) 5대 황제인 문제(文帝)와 더불어 어진 임금으로 이름난 인종은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장려했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문치(文治)를 폄으로써 이른바 ‘경력(慶曆:인종의 연호)의 치’로 불리는 군주 정치의 모범적 성세(聖世)를 이룩했다.

이 때의 역사적인 명신으로는 한기(韓琦)‧범중엄(范仲淹)‧구양수(歐陽脩)‧사마광(司馬光)‧주돈이(周敦頣)‧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頣) 등이 있었는데, 이들이 조의(朝議)를 같이하다 보니 명론탁설(名論卓說)이 백출(百出)했고 따라서 충돌도 잦았다. 결국 조신(朝臣)이 양 당으로 나뉘어 교대로 정권을 잡게 되자 20년간에 내각이 17회나 바뀌었는데, 후세의 역사가는 이 단명 내각의 시대를 가리켜 ‘경력의 당의(黨議)’라 일컫고 있다.

이 무렵, 청렴 강직하기로 이름난 두연(杜衍)이 재상이 되었다. 당시의 관행으로는 황제가 상신(相臣)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조서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내강(內降)이라 했다. 그러나 두연은 이 같은 관행은 올바른 정도(政道)를 어지럽히는 것이라하여 내강이 있어도 이를 묵살, 보류했다가 10여 통쯤 쌓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돌려보태곤 했다. 이러한 두연의 소행은 성지(聖旨)를 함부로 굽히는 짓이라하여 조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때 공교롭게도 관직에 있는 두연의 사위인 소순흠(蘇舜欽)이 공금을 유용하는 부정을 저질렀다. 그러자 평소 두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어사(御史:검찰총장) 왕공진(王拱辰)은 쾌재를 부르고 소순흠을 엄히 문초했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몰아 잡아 가둔 뒤 재상 두연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범인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유명한 두연도 재임 70일 만에 재상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주] 안남 : 인도차이나 동쪽의 한 지방, 당나라의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에서 유래한 명칭이어서 베트남인들은 쓰지 않는다고 함.

일의대수(一衣帶水) 帶:띠 대.  水:물 수.

[유사어] 일우명지(一牛鳴地), 일우후지(一牛吼地), 지호지간(指呼之間).

[출전]《南史》〈陳後主紀〉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이나 바닷물이라는 뜻. 곧 ① 간격이 매우 좁음. ② 강이나 해협을 격한 대안(對岸)의 거리가 아주 가까움.

▷고사 : 서진(西晉:265~317) 말엽, 천하는 혼란에 빠져 이른바 남북조(南北朝) 시대가 되었다. 북방에서는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이라 일컫는 흉노(匈奴)‧갈(羯)‧선비(鮮卑)‧강(羌)‧저(氐)등 5개 이민족이 세운 열 세 나라와 세 한족국(漢族國)이 흥망을 되풀이했고, 남방에서는 송(宋)‧제(齊)‧양(梁)‧진(陳:557~589) 등 네 나라가 교체되었다.

북방의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577~580)를 물려받아 수(隋:581~618)나라를 세운 문제(文帝:581~604)는 마침내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나라를 치기로 하고 이렇게 선언했다.

“진왕(陳王)은 무도하게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도다. 이제 짐(朕)은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一衣帶水]’ 따위를 겁내어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있으랴.”

양자강은 예로부터 천연의 요해(要害)로서 삼국 시대의 오(吳)나라 이후 남안(南岸)의 건강(建康:南京)에 역대 남조의 도읍이 있었다. 문제의 명에 따라 52만의 수나라 대군은 단숨에 양자강을 건너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일자천금(一字千金) 

[유사어] 일자백금(一字百金). [출전]《史記》〈呂不韋列傳〉

한 글자엔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아주 빼어난 글자나 시문(時文)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고사 : 전국 시대 말엽,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과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은 각 수천 명,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과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은 각 3000여 명의 식객(食客)을 거느리며 저마다 유능한 식객이 많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편 이들에게 질세라 식객을 모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일개 상인 출신으로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상국(相國:宰相)이 되어, 어린(13세) 왕 정(政:훗날의 시황제)으로부터 중부(仲父)라 불리며 위세를 떨친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B.C.235, 정의 친아버지라는 설도 있음)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정의 아버지인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가 태자가 되기 전 인질로 조나라에 있을 때 ‘기화 가거(奇貨可居)’라며 천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오늘날의 영화를 거둔 여불위였다. 그는 막대한 사제(私財)를 풀어 3000여 명의 식객을 모아들였다.

이 무렵, 각국에서는 많은 책을 펴내고 있었는데 특히 순자(荀子)가 수만어(語)의 저서를 내었다는 소식을 듣자 여불위는 당장 식객들을 시켜 30여만 어에 이르는 대작(大作)을 만들었다. 이 책은 천지만물(天地萬物), 고금(古今)의 일이 모두 적혀 있는 오늘날의 백과 사전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대작은 나 말고 누가 감히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의기양양해진 여불위는 이 책을 자기가 편찬한 양《여씨춘추(呂氏春秋)》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이《여씨춘추》를 도읍인 함양(咸陽)의 성문 앞에 진열시킨 다음 그 위에 천금을 매달아 놓고 방문(榜文)을 써 붙였다.

“누구든지 이 책에서 한 자라도 덧붙이거나 빼는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리라.”

이는 상혼(商魂)이 왕성한 여불위의 우수 식객 유치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자가당착(自家撞着)

모순.

자포자기(自暴自棄) 暴:사나울 포.  棄:버릴 기.

[준말] 자포(自暴), 포기(暴棄), 자기(自棄). [출전]《孟子》〈離婁篇〉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고 돌보지 아니함.

▷고사 : 전국 시대를 살다간 아성(亞聖) 맹자(孟子)는 ‘자포’‘자기’에 대해《맹자》〈이루편(離婁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포(自暴:스스로를 학대)하는 사람과는 더불어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자기(自棄:스스로를 버림)하는 사람과도 더불어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입만 열면 예의 도덕을 헐뜯는 것을 자포라고 한다. 한편 도덕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인(仁)이나 의(義)라는 것은 자기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한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원래 선(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도덕의 근본 이념인 ‘인’은 편안한 집[安宒]과 같은 것이며, 올바른 길인 ‘의’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정로(正路:正道)이다. 편안한 집을 비운 채 들어가 살려 하지 않으며 올바른 길을 버린 채 그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 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로다.”

[주] ‘자포자기’란 말은 맹자가 어느 때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모르나 오늘날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학대(虐待)하고 돌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음.

★적반하장(賊反荷杖)

잘못한 사람이 뒤통수를 치는 격.

적소성대(積小成大)

티끌 모아 태산.

★전광석화(電光石火)

아주 빠른 동작.

전전긍긍(戰戰兢兢) 戰:무서워 떨‧싸움할 전.  兢:조심할 긍.

[준말] 전긍(戰兢). [동의어] 전전공공(戰戰恐恐).

[유사어] 소심익익(小心翼翼). [출전]《詩經》〈小雅篇〉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는 모양.

▷고사 : 전전(戰戰)이란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떠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이란 몸을 움추리고 조심하는 모양을 말한다.

이 말은 중국 최고(最古)의 시집(詩集)인《시경(詩經)》〈소아편(小雅篇)〉의 ‘소민(小旻)’이라는 시(詩)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데 그 시의 내용은 모신(謀臣)이 군주의 측근에 있으면서 옛 법을 무시한 정치를 하고 있음을 개탄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不敢暴虎(불감포호)]

감히 걸어서 강을 건너지 못한다 [不敢憑河(불감빙하)]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고 있지만 [人知其一(인지기일)]

그 밖의 것은 전혀 알지 못하네 [莫知其他(막지기타)]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戰戰兢兢(전전긍긍)]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하듯 하고 [如臨深淵(여림심연)]

살얼음을 밟고 가듯 하네 [如履薄氷(여리박빙)]

[주] 요즈음에는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르고 적발당할까봐 쩔쩔매는 경우’에 이 말이 흔히 쓰이고 있음.

전전반측(輾轉反側)

잠을 이루지 못함(불안).

전차복철(前車覆轍) 前:앞 전.  車:수레 차‧거.  覆:엎어질 복.  轍:바퀴자국 철.

[준말] 복철(覆轍). [대응어]~후차지계(後車之戒).

[동의어] 전차복 후차계(前車覆後車戒), 후차지계, 복거지계(覆車之戒).

[유사어] 답복철(踏覆轍), 답복차지철(踏覆車之轍), 전철(前轍).

[참조] 은감불원(殷鑑不遠).

[출전]《漢書》〈賈誼專〉,《說苑》〈善說〉,《後漢書》〈竇武專(두무전)〉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란 뜻. 곧 ① 앞사람의 실패. 실패의 전례. ②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

▷고사 : ① 전한 5대 황제인 문제(文帝)때 가의(賈誼:B.C. 168~210)라는 명신이 있었다. 그는 문제가 여러 제도를 개혁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어 역사에 인군(仁君)으로 이름을 남기는 데 크게 기여한 공신인데, 당시 그가 상주한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속담에 ‘앞 수레의 엎어진 바퀴 자국[前車覆轍]’은 뒷수레를 위한 교훈[後車之戒]이란 말이 있사옵니다. 전 왕조인 진(秦)나라가 일찍 멸망한 까닭은 잘 알려진 일이 온데, 만약 진나라가 범한 과오를 피하지 않는다면 그 전철(前轍)을 밟게 될 뿐이옵니다. 국가 존망, 치란(治亂)의 열쇠가 실로 여기에 있사오니 통촉하시오소서.”

문제는 이후 국정 쇄신(國政刷新)에 힘써 마침내 태평 성대를 이룩했다고 한다.

② 이 말은《설원(說苑)》〈선설(善說)〉에도 실려 있다.

전국 시대,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어느 날 중신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 취흥(醉興)이 도도한 문후가 말했다.

“술맛을 보지 않고 그냥 마시는 사람에게는 벌주를 한 잔 안기는 것이 어떻겠소?”

모두들 찬동했다. 그런데 문후가 맨 먼저 그 규약을 어겼다. 그러자 주연을 주관하는 관리인 공손불인(公孫不仁)이 술을 가득 채운 큰잔을 문후에게 바쳤다. 문후가 계속 그 잔을 받지 않자 공손불인은 이렇게 말했다.

“‘전차복철은 후차지계’란 속담이 있사온데, 이는 전례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이옵니다. 지금 전하께서 규약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 규약을 지키지 않는 전례를 남기신다면 누가 그 규약을 지키려 하겠나이까? 하오니, 이 잔을 받으시오소서.”

문후는 곧 수긍하고 그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 후 공손불인을 중용했다고 한다.

전화위복(轉禍爲福) 轉:구를 전.  禍:재화 화.  爲:할‧위할 위.  福:복 복.

[대응어]~인패위공(因敗爲功). [동의어] 인화위복(因禍爲福).

[유사어] 새옹지마(塞翁之馬). [출전]《戰國策》〈燕策〉

① 화(禍)를 바꾸어 오히려 복(福)이 되게 함.

②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됨.

▷고사 : 전국시대 합종책(合從策)으로 6국, 곧 한(韓)‧위(魏)‧조(趙)‧연(燕)‧제(齊)‧초(楚)의 재상을 겸임했던 종횡가(縱橫家:모사) 소진(蘇秦)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옛날에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을 만들었고[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功)으로 만들었다[因敗爲功].”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주] 소진 : 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 주(周)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산서성(山西省) 내] 사람. 근처의 귀곡(鬼谷)에 은거하던 수수께끼의 종횡가 귀곡 선생[鬼谷先生:제반 지식에 통달한 인물로서 종횡설을 논한《귀곡자(鬼谷子)》3권을 지었다고 함]에게 배웠음. 따라서 소진이 죽은 뒤 연횡책(連橫策)을 펴 합종책을 깨뜨린 장의(張儀:?~B.C. 309)와는 동문이 되는 셈. 제(齊)나라에서 살해됨.(?~B.C. 317).

절차탁마(切磋琢磨) 切:끊을‧자를 절. 磋:탄식할‧찬탄할 차. 琢:쫄 탁.  磨:갈 마.

[원말] 여절여차여탁여마(如切如磋如琢如磨). [준말] 절마(切磨).

[출전]《論語》〈學而篇〉,《詩經》〈衛風篇〉

뼈‧상아‧옥‧돌 따위를 깎고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는 뜻. 곧 ① 수양에 수양을 쌓음의 비유. ② 학문‧기예 따위를 힘써 갈고 닦음의 비유.

▷고사 : 언변과 재기가 뛰어난 자공(子貢)이 어느 날 스승인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가난하더라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으며[貧而無諂] 부자가 되더라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富而無驕]. 그건 어떤 사람일까요?”

“좋긴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貧而樂道] 부자가 되더라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느니라[富而好禮].”

공자의 대답에 이어 자공은 또 이렇게 물었다.

“《시경(詩經)》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군자는 뼈나 상아(象牙)를 잘라서 줄로 간 것[切磋]처럼 또한 옥이나 돌을 쪼아서 모래로 닦은 것[硏磨]처럼 밝게 빛나는 것 같다’고 나와 있는데 이는 선생님이 말씀하긴 ‘수양에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일까요?”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賜:자공의 이름)야, 이제 너와 함께《시경》을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과거의 것을 알려주면 미래의 것을 안다고 했듯이, 너야말로 하나를 듣고 둘을 알 수 있는 인물이로다.”

점입가경(漸入佳境)

갈수록 아름다운 경치(꼴불견을 이름).

정문일침(頂門一鍼)

따끔한 충고.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 안 개구리를 이름.

정중지와(井中之蛙) 井:우물 정.  蛙:개구리 와.

[원말] 정중와 부지대해(井中蛙不知大海). [준말] 정와(井蛙).

[동의어] 정와(井蛙), 정중와(井中蛙), 정저와(井底蛙), 감정지와(坎井之蛙).

[유사어] 촉견폐일(蜀犬吠日), 월견폐설(越犬吠雪).

[참조] 망양지탄(望洋之嘆), 득롱망촉(得隴望蜀).

[출전]《後漢書》〈馬援專〉,《莊子》〈秋水篇〉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고사 : ① 왕망(王莽)이 전한(前漢)을 멸하고 세운 신(新)나라 말경, 마원(馬援)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 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隴西:감숙성(甘肅省)]에 웅거하는 외효(隗囂)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公孫述)은 촉(蜀) 땅에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僭稱)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손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雌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 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後漢)의 시조가 된 광무제(光武帝:25~27)와 수호(修好)하게 되었다.

② ‘정중지와’란 말은《장자(莊子)》〈추수편(秋水篇)〉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북해(北海)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황하(黃河)의 하신(河神)인 하백(河伯)에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하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 철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道)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강지처(糟糠之妻) 糟:술재강 조. 糠:겨 강. 妻:아내 처.

[원말]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출전]《後漢書》〈宋弘專〉

술재강과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

▷고사 : 전한(前漢)을 찬탈한 왕망(王莽)을 멸하고 유씨(劉氏) 천하를 재흥한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일이다. 건원(建元) 2년(26), 당시 감찰(監察)을 맡아보던 대사공(大司空:御史大夫) 송홍(宋弘)은 온후한 사람이었으나 간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느 날, 광무제는 미망인이 된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를 불러 신하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 결과 호양공주는 당당한 풍채와 덕성을 지닌 송홍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광무제는 호양공주를 병풍 뒤에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런 질문을 했다.

“흔히들 고귀해지면 (천할 때의)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가난할 때의) 아내를 버린다고 하던데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소?”

그러자 송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황공하오나 신은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는 잊지 말아야 하며[貧賤之交 不可忘], 술재강과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糟糠之妻 不下堂]’고 들었사온데 이것은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되나이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와 호양공주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조명시리(朝名市利) 朝:아침‧조정 조. 市:저자 시.  利:이로울 리.

[유사어] 적시적지(適時適地). [참조] 일거양득(一擧兩得).

[출전]《戰國策》〈秦策〉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市場]에서 다투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적당한 장소에서 행하라는 말.

▷고사 :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 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는 어전에서 ‘촉(蜀)의 오랑캐를 정벌하면 국토도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도 쌓일 것이므로, 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며 촉으로의 출병을 주장했다.

그러나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재상 장의(張儀)는 그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진나라는 우선 위(魏)‧초(楚) 두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한(韓)나라의 삼천(三川) 지방으로 출병한 후 천하의 종실인 주(周)나라의 외곽을 위협하면, 주나라는 스스로 구정[九鼎:천자(天子)를 상징하는 보물]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그 보물을 내놓을 것이옵니다. 그때 천자를 끼고 천하에 호령하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나이까? 이것이 패업(霸業)이라는 것이옵니다. 그까짓 변경의 촉을 정벌해 봤자 군사와 백성을 피폐(疲弊)케 할 뿐 무슨 명리(名利)가 있겠나이까?

신(臣)이 듣기로는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에서 다툰다[朝名市利]’고 하옵니다. 지금 삼천 지방은 천하의 저자이옵고 주나라 황실(皇室)은 천하의 조정이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이것을 다투려 하지 않고 하찮은 오랑캐의 촉을 다투려 하시옵니다. 혹, 패업을 멀리하시려는 것은 아니옵나이까?”

그러나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국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주] 장의 : 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 위(魏)나라 사람. 합종책(合縱策)으로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과 함께 수수께끼의 종횡가인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 종횡의 술책을 배움.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임을 받아 진나라의 재상이 됨. 소진이 제(齊)나라에서 살해되자(B.C. 317) 6국을 순방, 유세(遊說)하여 소진의 합종책을 깨고 연횡책(連◈策)을 성사시켜 6국으로 하여금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섬기게 함. 혜문왕이 죽은 후 참소(讒訴)를 당하여 위나라에서 객사(客死)함. (?~B.C. 309).

조삼모사(朝三暮四) 朝:아침 조. 暮:저물 모.

[준말] 조삼(朝三). [동의어] 조사모삼(朝四暮三).

[출전]《列子》〈黃帝篇〉,《莊子》〈齊物論〉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 곧 ① 당장 눈앞의 차별만을 알고 그 결과가 같음을 모름의 비유. ②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

▷고사 :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저(狙)란 원숭이를 뜻한다.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저공은 많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가 먹일 정도로 원숭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원숭이들은 저공을 따랐고 마음까지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먹이를 대는 일이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저공은 원숭이에게 나누어 줄 먹이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 같아 그는 우선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는 도토리를 앞으로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하나같이 화를 냈다. ‘아침에 도토리 세 개로는 배가 고프다’는 불만임을 안 저공은 ‘됐다’ 싶어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朝四暮三]씩 주마.”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좌단(左袒) 左:왼 좌.  袒:옷 벗어 멜 단.

[출전]《史記》〈呂后本紀〉

웃옷의 왼쪽 어깨를 벗는다는 뜻으로, 남에게 편들어 동의함을 이르는 말.

▷고사 :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황후인 여태후(呂太后)가 죽자(B.C. 180) 이제까지 그녀의 위세에 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던 유씨(劉氏) 일족과 진평(陳平)‧주발(周勃) 등 고조의 유신(遺臣)들은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북군(北軍)을 장악한 조왕(趙王) 여록(呂祿), 남군(南軍)을 장악한 여왕(呂王) 여산(呂産)을 비롯한 외척 여씨(呂氏) 타도에 나섰다.

그간 주색에 빠진 양 가장했던 우승상(右丞相) 진평은 태위(太尉) 주발과 상의하여 우선 여록으로부터 상장군의 인수(印綬)를 회수하기로 했다. 마침 어린 황제를 보필하는 역기(酈寄)가 여록과 친한 사이임을 안 진평은 그를 여록에게 보냈다. 역기는 여록을 찾아가 황제의 뜻이라 속이고 상장군의 인수를 회수해 왔다. 그러자 주발은 즉시 북군의 병사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원래 한실(漢室)의 주인은 유씨이다. 그런데 무엄하게도 여씨가 유씨를 누르고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이는 한실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 상장군 주발은 천하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여기서 여씨에게 충성하려는 자는 우단(右袒)하고, 나와 함께 유씨에게 충성하려는 자는 좌단(左袒)하라.”

그러자 전군(全軍)은 모두 좌단하고 유씨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이리하여 천하는 다시 유씨에게로 돌아갔다.

주객전도(主客顚倒)

주인과 손님이 뒤바뀜.

주마가편(走馬加鞭)

격려함.

주마간산(走馬看山) 

대충 보고 지나침. 건성.

주지육림(酒池肉林) 酒:술 주. 池:못 지. 肉:고기 육.

[동의어] 육산주지(肉山酒池). [유사어] 육산포림(肉山脯林).

[참조] 은감불원(殷鑑不遠).

[출전]《史記》〈殷本紀〉,《帝王世紀》,《十八史略》

술로 못[池]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주연(酒宴)을 일컫는 말.

▷고사 :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들은 각기 말희(妺喜), 달기(妲己)라는 희대의 요녀독부(妖女毒婦)에게 빠져 사치와 주색에 탐닉하다가 결국 폭군음주(暴君淫主)라는 낙인이 찍힌 채 나라를 망치 말았다.

하나라 걸왕은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로 바친 희대의 요녀 말희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에 빠졌다. 걸왕은 그녀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舞樂)을 베풀기도 했다.

또 무악에 싫증이 난 말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뭇 둘레에는 고기로 동산을 쌓고 포육(脯肉)으로 숲을 만들었다. 걸왕과 말희는 그 못에 호화선은 띄우고, 못 둘레에서 춤을 추던 3000명의 미소녀들이 신호의 북이 울리면 일제히 못의 미주를 마시고 숲의 포육을 탐식(貪食)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이 같은 사치음일(奢侈淫佚)의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력은 피폐하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리하여 걸왕은 하나라에 복속(服屬)했던 은나라 탕왕(湯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다.

또한 은나라 마지막 군주인 주왕(탕왕으로부터 28대째)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기는 주왕이 정벌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 온 희대의 독부였다. 주왕은 그녀의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의해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그래서 창고에는 백성들로부터 수탈한 전백(錢帛)과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국내의 온갖 진수기물(珍獸奇物)은 속속 궁중으로 징발되었다. 또 국력을 기울여 호화 찬란한 궁정을 짓고 미주와 포육으로 ‘주지육림’을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북리무악(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몰아(沒我)의 황홀경(怳惚境)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광연(狂宴)이 주야장천(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이같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광태(狂態)를 보다못해 충신들이 간하면 주왕은 도리어 그들을 제왕의 행동을 비방하는 불충자로 몰아 가차없이 포락지형(炮烙之刑)에 처하곤 했다. 포락지형이란 기름칠한 구리 기둥[銅柱]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는 일종의 잔인 무도한 사형 방법인데, 미끄러운 구리 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은 희생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까지도 잔인한 달기의 음욕(淫慾)을 돋우는 재료가 되었다. 이렇듯 폭군 음주로 악명을 떨치던 주왕도 결국 걸왕의 전철을 밟아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죽마고우(竹馬故友) 故:예‧연고 고. 友:벗 우.

[동의어] 죽마지우(竹馬之友), 죽마구우(竹馬舊友).

[유사어] 기죽지교(騎竹之交), 죽마지호(竹馬之好).

[출전]《世說新語》〈品藻篇〉,《晉書》〈殷浩專〉

어릴 때 같이 죽마(대말)를 타고 놀던 벗이란 뜻. 곧 ① 어렸을 때의 벗. 소꿉동무. ② 어렸을 때 친하게 사귄 사이. ③ 어렸을 때부터의 오랜 친구.

▷고사 : 진(晉:東晉)나라 12대 황제인 간문제(簡文帝:371~372) 때의 일이다. 촉(蜀)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桓溫)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殷浩)라는 은사(隱士)를 건무장군(建武將軍) 양주자사(揚州刺史)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이 되어 반목(反目)했다. 왕희지(王羲之)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 하나인 후조(後趙)의 왕 석계룡(石季龍)이 죽고 호족(胡族)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上疏)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竹馬故友]’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준조절충(樽俎折衝) 樽:술통 준. 俎:도마 조. 折:꺾을 절. 衝:충돌할 충.

[유사어] 준조지사(樽俎之師). [출전]《晏子春秋》〈內篇〉

‘술자리[樽俎(間)]에서 유연한 담소(談笑)로 적의 창끝을 꺾어 막는다[折衝]는 뜻으로, 외교를 비롯하여 그 밖의 교섭에서 유리하게 담판하거나 흥정함을 이르는 말.

▷고사 : 춘추 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신하인 최저(崔杼)에게 시해되자 동생이 뒤를 잇고 경공(景公)이라 일컬었다. 경공은 최저를 좌상(左相)에 임명하고 그를 반대하는 자는 죽이기로 맹세까지 했다. 이어 모든 신하가 맹세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안영(晏嬰:晏子)만은 맹세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고 한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라면 좋으련만.’

이윽고 최저가 살해되자 경공은 안영을 상국(相國)에 임명했다. 안영은 온후박식(溫厚博識)한 인물로서 ‘한 벌의 호구(狐裘: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으로 만든 갖옷)를 30년이나 입었을[一狐裘三十年]’정도로 검소한 청백리이기도 했다. 한 번은 경공이 큰 식읍(食邑)을 하사하려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며 사양했다고 한다.

“욕심이 충족되면 망할 날이 가까워지나이다.”

당시 중국에는 대국만 해도 12개국이나 있었고 소국까지 세면 100개국이 넘었다. 안영은 이들 나라를 상대로 빈틈없이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제나라의 지위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안영의 외교 수완에 대해 그의 언행을 수록한《안자 춘추(晏子春秋)》는 이렇게 쓰고 있다.

“술통과 도마 사이[樽俎間:술자리]를 나가지 아니하고 1000리(里) 밖에서 절충한다 함은, 그것은 안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주] 준조 사이 : ‘술통과 도마 사이’란 뜻으로, 술자리(연회석)를 가리키는 말.

중과부적(衆寡不敵) 衆:무리 중. 寡:적을 과. 敵:대적할‧원수‧적수 적.

[출전]《孟子》〈梁惠王篇〉

적은 수효가 많은 수효를 대적하지 못한다는 뜻.

▷고사 : 전국 시대, 제국을 순방하며 왕도론(王道論)을 역설하던 맹자가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말했다.

“전하 스스로는 방일(放逸)한 생활을 하시면서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천하의 패권(覇權)을 잡으려 드시는 것은 그야말로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사옵니다.”

“아니, 과인의 행동이 그토록 나쁘단 말이오?”

“가령, 지금 소국인 추(鄒)나라와 대국인 초(楚)나라가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기겠나이까?”

“그야, 물론 초나라가 이길 것이오.”

“그렇다면 소국은 결코 대국을 이길 수 없고 ‘소수는 다수를 대적하지 못하며[衆寡不敵]’ 약자는 강자에게 패하기 마련이옵니다. 지금 천하에는 1000리(里) 사방(四方)의 나라가 아홉 개 있사온데 제나라도 그중 하나이옵니다. 한 나라가 여덟 나라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결코 소국인 초나라가 대국인 초나라를 이기려 하는 것과 같지 않사옵니까?”

이렇게 몰아세운 다음 맹자는 예의 왕도론을 설파했다.

“왕도로써 백성을 열복(悅服)시킨다면 그들은 모두 전하의 덕에 기꺼이 굴복할 것이오며 또한 천하는 전하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옵니다…‥.”

중석몰촉(中石沒鏃) 沒:잠길 몰.  鏃:화살 촉.

[원말] 석중석몰촉(射中石沒鏃).

[동의어] 석석음우(射石飮羽), 석석몰금음우(射石沒金飮羽), 웅거석호(熊渠射虎).

[유사어] 일념통암(一念通巖),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출전]《史記》〈李將軍專〉,《韓詩外專》〈卷六〉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고사 : ① 전한(前漢)의 이광(李廣)은 영맹한 흉노족의 땅에 인접한 농서[隴西:감숙성(甘肅省)] 지방의 무장 대가(武將大家) 출신으로, 특히 궁술(弓術)과 기마술이 뛰어난 용장이었다. 문제(文帝) 14년(B.C. 166), 이광은 숙관(肅關)을 침범한 흉노를 크게 무찌를 공으로 시종 무관이 되었다. 또 그는 황제를 호위하여 사냥을 나갔다가 혼자서 큰 호랑이를 때려잡아 천하에 용명(勇名)을 떨치기도 했다. 그 후 이광은 숙원이었던 수비 대장으로 전임되자 변경의 성새(城塞)를 전전하면서 흉노를 토벌했는데 그때도 늘 이겨 상승(常勝) 장군으로 통했다. 그래서 흉노는 그를 ‘한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며 감히 성해를 넘보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황혼 녘에 초원을 지나다가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발견하고 일발필살(一發必殺)의 신념으로 활을 당겼다. 화살은 명중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꼼짝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화살이 깊이 박혀 있는 큰돌이었다. 그는 제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쏘았으나 화살은 돌에 명중하는 순간 튀어 올랐다. 정신을 한데 모으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한시외전(韓詩外專)》에도 초(楚)나라의 웅거자(熊渠子)란 사람이 역시 호랑이인 줄 알고 쏜 화살이 화살 깃까지 묻힐 정도로 돌에 깊이 박혔다[射石飮羽]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중원축록(中原逐鹿) 原:근원‧들‧벌판 원. 逐:쫓을 축. 鹿:사슴 록.

[준말] 축록(逐鹿). [동의어] 각축(角逐).

[유사어] 중원장리(中原場裡), 중원석록(中原射鹿).

[출전]《史記》〈淮陰侯列傳〉

중원[天下]의 사슴[帝位]을 쫓는다는 뜻. 곧 ① 제위(帝位)를 다툼. ② 정권을 다툼. ③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함.

▷고사 : 한(漢)나라 고조(高祖) 11년(B.C. 196), 조(趙)나라 재상이었던 진희(陳豨)가 대(代:산서성)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고조는 군사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다. 그 틈에 진희와 내통하고 있던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도읍 장안(長安)에서 군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여후(呂后:고조의 황후)와 재상 소하(蕭何)에게 모살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난을 평정하고 돌아온 고조는 여후에게 물었다.

“한신이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하지 않았소?”

“괴통(蒯通)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분하다고 하더이다.”

괴통은 제(齊)나라의 언변가로서 고조 유방이 항우와 천하를 다투고 있을 때 제왕(齊王)이었던 한신에게 독립을 권했던 사람이다. 그 후 고조 앞에 끌려 나온 괴통은 조금도 겁내는 기색 없이 당당히 말했다.

“그때 한신이 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날 폐하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고조는 크게 노했다.

“저놈을 당장 삶아 죽여라!”

그러자 괴통은 이렇게 항변했다.

“폐하, 신은 전혀 삶겨 죽을 만한 죄를 진 적이 없나이다. 진(秦)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각지에 영웅 호걸들이 일어 났사옵고, 진나라가 사슴[鹿:帝位]을 잃음으로 해서 천하는 모두 이것을 쫓았던[逐] 것이오며, 그중 키 크고 발빠른 걸물(傑物:고조 유방을 가리킴)이 이것을 잡았던 것이옵니다. 그 옛날 대악당인 ‘도척(盜跖)의 개가 요(堯) 임금을 보고 짖었다[跖狗吠堯]’고 해서 요 임금이 악인이라 짖은 것은 아니옵니다. 개란 원래 주인이 아니면 짖는 법이온데 당시 신은 오직 한신만 알고 폐하를 몰랐기 때문에 짖었던 것이옵니다. 그런데 천하가 평정된 지금 난세에 폐하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노렸다 해서 삶아 죽이려 하신다면 이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통촉하시옵기를…‥.”

빈틈없는 항변에 할 말을 잃은 고조는 괴통을 그냥 놓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주] 요 : 중국 고대의 이상적 성군(聖君).

도척 : 춘추 시대, 성인(聖人) 공자(孔子)와 같은 시대를 살다 간 같은 노(魯)나라 사람으로 큰 도둑. 도당 9000여 명과 늘 전국을 휩쓸며 같은 악행(惡行)을 일삼음으로 해서 대악당(大惡黨)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함.

지록위마(指鹿爲馬) 指:손가락‧가리킬 지. 鹿:사슴 록.

[출전]《史記》〈秦始皇本紀〉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다는 뜻. 곧 ① 윗사람을 농락하여 마음대로 휘두름의 비유. ② 위압적으로 남에게 잘못을 밀어붙여 끝까지 속이려 함의 비유.

▷고사 :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趙高:?~B.C. 208)는 거짓 조서(詔書)를 꾸며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현명한 부소보다 용렬한 호해가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다. 호해는 ‘천하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오로 어리석었다고 한다.

어쨌든 조고는 이 어리석은 호해를 교묘히 조종하여 경쟁자인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 그밖에 많은 구신(舊臣)들을 죽이고 승상이 되어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역심이 생긴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오소서.”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

말을 마치자 호해는 웃으며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하는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각처에서 진나라 타도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중 항우와 유방의 군사가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해 오자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嬰)을 세워 3세 황제로 삼았다(B.C. 207). 그러나 이번에는 조고 자신이 자영에게 주살 당하고 말았다.

지어지앙(池魚之殃) 池:못 지.  魚:고기 어. 殃:재앙 앙.

[동의어] 앙급지어(殃及池魚). [출전]《呂氏春秋》〈必己篇〉

연못 속 물고기의 재앙이란 뜻. 곧 ① 화(禍)가 엉뚱한 곳에 미침. ② 상관없는 일의 재난에 휩쓸려 듦의 비유. 언걸 먹음.

▷고사 : 춘추 시대 송(宋)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사마(司馬:大臣) 벼슬에 있는 환퇴(桓魋)라는 사람이 천하에 진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죄를 지어 처벌을 받게 되자 보석을 가지고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러자 환퇴의 보석 이야기를 듣고 탐이 난 왕은 어떻게든 그 보석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왕은 측근 환관에게 속히 환퇴를 찾아내어 보석을 감춰 둔 장소를 알아보라고 명했다. 환관이 어렵사리 찾아가자 환퇴는 서슴없이 말했다.

“아, 그 보석 말인가? 그건 내가 도망칠 때 궁궐 앞 연못 속에 던져 버렸네.”

환관이 그대로 보고하자 왕은 당장 신하에게 그물로 연못 바닥을 훑어보라고 명했다. 그러나 보석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못의 물을 다 쳐낸 다음 바닥을 샅샅이 뒤졌으나 보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연못의 물을 퍼 없애는 바람에 결국 애꿎은 물고기들만 다 말라죽고 말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彼:저 피. 殆:위태하 태.

[출전]《孫子》〈謀攻篇〉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 곧 상대방과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알아보고 승산(勝算)이 있을 때 싸워야 이길 수 있다는 말.

▷고사 : 춘추 시대, 오왕(吳王) 합려(闔閭)의 패업(霸業)을 도운 손무(孫武)는 전국 시대에 초(楚)나라의 병법가로서《오자(吳子)》를 쓴 오기(吳起)와 더불어 병법의 시조라 불리는데 그가 쓴《손자(孫子)》〈모공편(謀攻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아니하다[知彼知己 百戰不殆]. 그리고 적의 실정은 모른 채 아군의 실정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 또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실정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만 번에 한 번도 이길 가망이 없다.”

[주] 여기서 말하는 ‘백(百)’이란 단순한 숫자상의 ‘100’이 아니라 ‘삼(三)’‘칠(七)’‘구(九)’‘천(千)’‘만(萬)’등과 같이 ‘많은 횟수’를 가리키는 것임.

★진퇴양난(進退兩難)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함. 궁지에 빠짐.

징갱취제(懲羹吹虀) 懲:징계할 징.  羹:국 갱.  吹:불 취.  虀:냉채 제.

[동의어] 징갱취채(懲羹吹菜), 징갱취회(懲羹吹膾).

[유사어] 징선기여(懲船忌輿), 오우천월(吳牛喘月).

[출전]《楚辭》〈七章 惜誦〉

뜨거운 국에 데어서 냉채를 후후 불고 먹는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 한 데 데어서 모든 일에 지나치게 조심함의 비유.

▷고사 : 전국 시대 말엽, 진(秦)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초(楚)‧제(齊) 두 나라뿐이었다. 그래서 진나라 재상 장의(張儀)는 초‧제 동맹의 강화론자(强化論者)인 초나라의 삼려 대부[三閭大夫:소(昭)‧굴(屈)‧경(景) 세 왕족의 족장(族長)] 굴원[屈原:이름은 평(平), B.C. 343?~277?]을 제거하기로 작정하고 기회를 노렸다. 이윽고 초나라 회왕(懷王)의 총회(寵姬) 정수(鄭袖)와 영신(佞臣) 근상(勤尙) 등이 굴원을 증오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장의는 곧 그들을 매수하여 굴원의 실각 공작을 폈다. 드디어 굴원이 조정으로부터 축출되자 장의는 회왕에게 제나라와 단교하면 진나라의 국토 600리를 할양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래서 회왕은 제나라와 단교했으나 장의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속았다는 것을 안 회왕은 분을 참지 못해 진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대패하고 도리어 접경 지역의 국토까지 빼앗겼다. 회왕은 지난 일을 후회하고 굴원을 다시 등용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B.C.299) 어느 날 진나라로부터 우호 증진이란 미명 아래 회왕을 초청하는 사신이 왔다. 굴원은 믿을 수 없는 진나라의 초청에 응해서는 안 된다며 극구 방대했다. 그러나 회왕은 왕자 자란(子蘭)의 강권에 따라 진나라에 갔다가 포로가 되어 그 이듬해 객사하고 말았다.

초나라에서는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동생인 자란이 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란에게 책임을 물었으나 이는 도리어 참소(讒訴)를 초래하는 결과가 되어 또다시 추방당하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그 후 10년간 오직 조국애에 불타는 굴원은 망명도 하지 않고 한결같이 동정호(洞庭湖) 주변을 방랑하다가 마침내 울분이 복받친 나머지 멱라(汨羅:동정호 남쪽을 흐르는 강)에 몸을 던져 수중 고혼(水中孤魂)이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굴원의 넋을 ‘멱라의 귀[汨羅之鬼]’이라 일컫고 있다.

《초사(楚辭)》에 실려 있는 굴원의 작품 중 대부분은 이 방랑 시절에 씌어진 것들이다. 그는 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걱정하고 나라를 그르치는 영신을 미워하며 그의 고고한 심정을 정열적으로 노래했는데 ‘징갱취제’는《초사》〈9장〉중 ‘석송(惜誦)’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뜨거운 국에 데어서 냉체까지 불고 먹는데 [懲於羹者 而吹虀兮(징어갱자 이취제혜)]

어찌하여 그 뜻(나약함)을 바꾸지 못하는가 [何不變此志也(하불변차지야)] ‥‥‥‥‥‥

‘석송’은 굴원이 자기 이상으로 주군(主君)을 생각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선비가 없음을 슬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뭇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것을 분노하며 더욱이 어쩔 수 없는 고독을 한탄하면서도 그 절조만은 변절하지 않겠다는 강개지심(慷慨之心)을 토로한 시이다.


창업수성(創業守成) 創:비롯할‧시작할 창. 守:지킬 수.

[원말] 이창업 난수성(易創業難守成).

[출전]《唐書》〈房玄齡專〉,《貞觀政要》〈君道篇〉,《資治通鑑》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

▷고사 : 수(隋:581~619)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인 이연(李淵)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이듬해(618) 2세 양제(煬帝)가 암살되자 이세민은 양제의 손자인 3세 공제(恭帝)를 폐하고 당(唐:618~907) 나라를 ‘창업’했다.

626년 고조(高祖) 이연에 이어 제위에 오른 2세 태종(太宗) 이세민은 우선 사치를 경계하고, 천하 통일을 완수하고, 외정(外征)을 통해 국토를 넓히고, 제도적으로 민생 안정을 꾀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문화 창달에 힘씀으로써 후세 군왕이 치세(治世)의 본보기로 삼는 성세(盛世)를 이룩했다. 이 성세를 일컬어 ‘정관의 치[貞觀之治:태종 정관 연간(627~649)의 치세]’라고 한다.

‘정관의 치’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단력이 뛰어난 좌복야(左僕射) 두여회(杜如晦), 기획력이 빼어난 우복야(右僕射) 방현령(房玄齡), 강직한 대부(大夫) 위징(魏徵) 등과 같은 많은 현신들이 선정(善政)에 힘쓰는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현신이 모인 자리에 이런 질문을 했다.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어렵소?”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 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나이다.”

그러나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옵니다. 그런 만큼 수성이 어려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방공(房公)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 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魏公)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驕奢:교만하고 사치함)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禍亂)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천고마비(天高馬肥) 肥:살찔 비.

[원말] 추고마비(秋高馬肥). [동의어]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

[유사어] 천고기청(天高氣淸). [출전]《漢書》〈匈奴專〉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 곧 ① 하늘이 맑고 오곡 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는 가을을 형용하는 말. ② (흉노에게 있어, 전하여 오늘날에는 누구에게나) 활약(동)하기 좋은 계절을 이르는 말.

▷고사 : 은(殷)나라 초기에 중국 북방에서 일어난 흉노는 주(周)‧진(秦)‧한(漢)의 삼왕조(三王朝)를 거쳐 육조(六朝)에 이르는 근 2000년 동안 북방 변경의 농경 지대를 끊임없이 침범 약탈해 온 표한(剽悍)한 유목 민족이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군주들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늘 고심했는데 전국시대에는 연(燕)‧조(趙)‧진(秦)나라의 북방 변경에 성벽을 쌓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기존의 성벽을 수축(修築)하는 한편, 증축 연결(增築連結)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흉노의 침입은 끊이지 않았다. 북방의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으로 살아가는 흉노에게 우선 초원이 얼어붙는 긴 겨울을 살아야 할 양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지는[天高馬肥]’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가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戰戰兢兢)했다고 한다.

천려일실(千慮一失) 慮:생각할 려. 失:잃을 실.

[원말] 지자천려 필유일실(智者千慮必有一失).

[동의어] 지자일실(智者一失). [반의어] 천려일득(千廬一得).

[참조] 배수지진(背水之陣). [출전]《史記》〈淮陰侯列傳〉

천 가지 생각 가운데 한 가지 실책이란 뜻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하나쯤은 실책이 있을 수 있다는 말.

▷고사 : 한나라 고조의 명에 따라 대군을 이끌고 조(趙)나라로 쳐들어간 한신(韓信)은 결전을 앞두고 ‘적장 이좌거(李左車)를 사로잡는 장병에게는 천금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지덕(知德)을 겸비한 그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전 결과 조나라는 괴멸했고, 이좌거는 포로가 되어 한신 앞에 끌려 나왔다.

한신은 손수 포박을 풀어 준 뒤 상석에 앉히고 주연을 베풀어 위로했다. 그리고 한나라의 천하 통일에 마지막 걸림돌로 남아 있는 연(燕)‧제(齊)에 대한 공략책을 물었다. 그러나 이좌거는 ‘패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않는 법[敗軍將 兵不語]’이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신이 재삼 정중히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패장이 듣기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쯤은 실책이 있고[智者千慮 必有一得]고 했습니다. 그러니, 패장의 생각 가운데 하나라도 득책이 있으면 이만 다행이 없을까 합니다.”

그 후 이좌거는 한신의 참모가 되어 크게 공헌했다고 한다.

천재일우(千載一遇) 載:실을‧해 재. 遇:만날 우.

[동의어] 천재일시(千載一時), 천재일회(千載一會), 천세일시(千歲一時). [유사어] 맹귀부(우)목[盲龜浮(遇)木].

[출전]《文選》〈袁宏 三國名臣序贊>

천 년[千載]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란 뜻으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이르는 말.

▷고사 : 동진(東晉)의 학자로서 동양태수(東陽太守)를 역임한 원굉(袁宏)은 여러 문집에 시문 300여 편을 남겼는데, 특히 유명한 것은《문선》에 수록된〈삼국 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이다. 이것은《삼국지》에 실려 있는 건국 명신 20명에 대한 행장기(行狀記)인데, 그중 위(魏)나라의 순문약(荀文若)을 찬양한 글에서 원굉은 ‘대저 백락(伯樂)을 만나지 못하면 천 년이 지나도 천리마[驥] 한 필을 찾아내지 못한다[夫末遇伯樂則 千載無一驥]’고 적고, 현군과 명신의 만남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

대저 만 년에 한 번의 기회는 이 세상의 통칙이며

[夫萬歲一期 有生之通途(부만세일기 우생지통도)]

천 년에 한 번의 만남은 현군과 명신의 진귀한 해후다

[千載一遇, 賢智之嘉會(천재일우 현지지가회)]

[주] 순문약 : 후한(後漢) 말, 조조(曹操)의 참모로 활약했으나 조조에게 역심이 있음을 알고 반대하다가 배척당한 강직한 인물.

백락 : 주(周)나라 시대에 준마(駿馬)를 잘 가려냈다는 명인.

천석고황(泉石膏肓)

자연친화의 병.

천의무봉(天衣無縫)

깨끗한 자연, 완벽한 글.

철면피(鐵面皮) 鐵:쇠 철. 皮:가죽 피.

[동의어] 후안무치(厚顔無恥).

[유사어] 면장우피(面帳牛皮), 강안여자(强顔女子).

[출전]《北夢瑣言(북몽쇄언)》,《虛堂錄》

①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수치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 사람. ②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름. 또 그런 사람. ③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음. 후안무치(厚顔無恥).

▷고사 : 왕광원(王光遠)이란 사람이 있었다. 학재가 뛰어나 진사(進士)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출세욕이 지나쳐 그는 고관의 습작시를 보고도 ‘이태백(李太白)도 감히 미치지 못할 신운(神韻:신비롭고 고상한 운치)이 감도는 시’라고 극찬할 정도로 뻔뻔한 아첨꾼이 되었다.

아첨할 때 그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았고 상대가 무식한 짓을 해도 웃곤 했다. 한 번은 고관이 취중에 매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를 때려 주고 싶은데, 맞아 볼 텐가?”

“대감의 매라면 기꺼이 맞겠습니다. 자 어서…‥.”

고관은 사정없이 왕광원을 매질했다. 그래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동석했던 친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질책하듯 말했다.

“자네는 쓸개도 없나? 만좌(滿座) 중에 그런 모욕을 당하고서도 어쩌면 그토록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잘 보이면 나쁠 게 없니.”

친구는 기가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광원의 낯가죽은 두껍기가 열 겹의 철갑(鐵甲)과 같다.”

청담(淸談) 淸:맑을 청.  談:말씀 담.

[유사어] 청언(淸言), 청담(淸譚).

[출전]≪晉書≫ <郄超傳(극초전)> <王衡傳>.

≪宋書≫ <蔡郭傳論>. ≪顔氏家訓≫

① 명리(名利)‧명문(名聞)을 떠난 청아(淸雅)한 이야기. 고상한 이야기. ② 위진 시대에 유행한 노장(老莊)을 조술(祖述)하고 속세를 떠난 청정무위(淸淨無爲)의 공리공론(空理空論).

▷고사 : 위진 시대(魏晉時代:3세기 후반)는 정치가 불안정하고 사회가 혼란해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는 난세였다. 게다가 정치적 권력자와 그에 추종하는 세속적 관료들의 횡포도 극심했다. 그래서 당시 사대부(士大夫) 간에는 오탁(汚濁)한 속세를 등지고 산림에 은거(隱居)하여 노장(老莊)의 철학이라든가 문예 등 고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중에서도 죽림 칠현(竹林七賢), 곧 산도(山濤)‧완적(阮籍)‧혜강(嵇康)‧완함(阮咸)‧유령(劉伶)‧상수(尙秀)‧왕융(王戎)은 도읍 낙양(洛陽) 근처의 대나무 숲에 은거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술에 취한 채 ‘청담’-청신기경(淸新奇警:산뜻하고 기발함)한 이야기, 곧 세속의 명리(名利)‧명문(名聞)‧희비(喜悲)를 초월한, 고매한 정신의 자유 세계를 주제로 한 노장(老莊)의 철학-을 논하며 명교(名敎:儒敎) 도덕에 저항했다.

청천백일(靑天白日) 

[출전]《唐宋八 家文》〈韓愈 與崔群西〉,《朱子全書》〈諸子篇〉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빛나는 해라는 뜻. 곧 ① 맑게 갠 대낮. ② 뒤가 썩 깨끗한 일. ③ 원죄가 판명되어 무죄가 되는 일. ④ 푸른 바탕의 한복판에 12개의 빛살이 있는 흰 태양을 배치한 무늬.

▷고사 : 당나라 중기의 시인‧정치가인 한유[韓愈:자는 퇴지(退之), 768~824]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굴지의 명문장가로 꼽혔던 사람인데 그에게는 최군(崔群)이라는 인품이 훌륭한 벗이 있었다. 한유는 외직(外職)에 있는 그 벗의 인품을 기리며 〈최군에게 주는 글[與崔群書]〉을 써 보냈는데 명문(名文)으로 유명한 그 글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좋고 싫은 감정이 있을 터인데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모두 자네를 흠모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봉황(鳳凰)과 지초[芝草:영지(靈芝)]가 상서로운 조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며 ‘청천 백일’이 맑고 밝다는 것은 노예인들 모를 리 있겠는가?”

[주] 여기서 ‘청천백일’이란 말은 최군의 인품이 청명(淸明)하다는 것이 아니라 최군처럼 훌륭한 인물은 누구든지 알아본다는 뜻임.

당송팔대가 : 당(唐:618~906)나라와 송(宋:北宋, 960~1127)나라 시대의 여덟 명의 저명한 문장 대가(大家). 곧 당나라의 한유(韓愈:韓退之) 유종원(柳宗元:柳子厚),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歐永叔) 왕안석(王安石:王介甫) 증공(曾鞏:會子固) 소순(蘇洵:蘇明允) 소식(蘇軾:蘇東坡) 소철(蘇轍:蘇子由). 당송 팔가, 팔대가라고도 일컬음.

청천벽력(靑天霹靂) 霹:벼락 벽. 靂:벼락 력.

[원말] 청천비벽력(靑天飛霹靂).

[출전] 육유(陸游)의《劍南詩稿》〈九月四日鷄未鳴起作〉

맑게 갠 하늘의 벼락(날벼락)이란 뜻. ① 약동하는 필세(筆勢)의 형용. ② 생각지 않았던 무서운 일. ③ 갑자기 일어난 큰 사건이나 이변(異變)의 비유.

▷고사 : 이 말은 남송(南宋)의 대시인 육유[陸游:호(號)는 방옹(放翁)]의《검남시고(劍南詩稿)》〈9월4일 계미명기작(九月四日鷄未鳴起作)〉에 나오는 오언절구(五言絶句)의 끝 구절이다.

방옹이 병으로 가을을 지내고 [放翁病過秋(방옹병과추)]

홀연히 일어나 취하여 글을 쓰니 [忽起作醉墨(홀기작취묵)]

정히 오래 움츠렸던 용과 같이 [正如久蟄龍(정여구칩룡)]

푸른 하늘에 벼락을 치네 [靑天飛霹靂(청천비벽력)]

청출어람(靑出於藍) 於:어조사 어(…에,…에서,…보다).  藍:쪽 람.

[준말] 출람(出藍).

[동의어] 출람지예(出藍之譽), 출람지재(出藍之才), 후생각고(後生角高), 출람지영예(出藍之榮譽).

[출전]《荀子》〈勸學篇〉

쪽[藍]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이르는 말.

▷고사 : 이 말은 전국 시대의 유학자(儒學者)로서 성악설(性惡說)을 창시한 순자(荀子)의 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學不可以已(학불가이이)]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靑取之於藍(청취지어람)]

쪽빛보다 더 푸르고 [而靑於藍(이청어람)]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氷水爲之(빙수위지)]

물보다도 더 차다 [而寒於水(이한어수)]

[주]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지해서는 안 되며 청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逐:쫓을 축. 鹿:사슴 록.

[동의어] 축수자목불견태산(逐獸者目不見太山).

[출전]《淮南子》〈說林訓篇〉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는 뜻. 곧 ① 명예와 이욕(利慾)에 미혹(迷惑)된 사람은 도리도 저버림. ② 이욕에 눈이 먼 사람은 눈앞의 위험도 돌보지 않음. 또는 보지 못함. ③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음.

▷고사 :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중앙 정권에 대항적인 입장을 취했던 왕족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 ? ~ B.C.122)은 문하(門下) 식객(食客)의 도움을 받아 많은 서책을 저술했는데, 그중 특히 도가(道家)사상을 중심으로 엮은《회남자(淮南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逐鹿者 不見山(축록자 불견산)]

돈을 움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

[攫金者 不見人(확금자 불견인)]

치인설몽(癡人說夢) 癡:어리석을 치. 說:말씀 설, 달랠 세. 夢:꿈 몽.

[원말] 대치인몽설(對癡人夢說).

[동의어] 치인전설몽(癡人前說夢).

[출전]《冷齋夜話》〈卷力〉,《黃山谷題跋》

바보에게 꿈 이야기를 해준다는 뜻. 곧 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의 비유. ② 종작없이 지껄이는 짓의 비유. ③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이해되지 않음의 비유.

▷고사 : 남송(南宋:1127~1279)의 석혜홍(釋惠洪)이 쓴《냉재야화(冷齋夜話)》〈권9(卷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 시대, 서역(西域)의 고승인 승가(僧伽)가 양자강과 회하(淮河) 유역에 있는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지방을 행각(行脚: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할 때의 일이다. 승가는 한 마을에 이르러 어떤 사람과 이런 문답을 했다.

“당신은 성이 무엇이오[汝何姓]?”

“성은 하가요[姓何哥].”

“어느 나라 사람이오[何國人]?”

“하나라 사람이오[何國人].”

승가가 죽은 뒤 당나라의 서도가(書道家) 이옹(李邕)에게 승가의 비문을 맡겼는데 그는 ‘대사의 성은 하 씨(何氏)이고 하나라 사람[何國人]이다’라고 썼다. 이옹은 승가가 농담으로 한 대답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석혜홍은 이옹의 이 어리석음에 대해《냉재야화》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는 곧 이른바 어리석은 사람에게 꿈을 이야기한 것이다[此正所謂對癡說夢耳].’ 이옹은 결국 꿈을 참인 줄 믿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주] ‘치인설몽’이란 말은 요즈음에는 본뜻과는 반대로 바보(치인)가 ‘종작없이 지껄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이옹 : 일명 이북해(李北海), 678~747. 특히 행서(行書)에 능하여 생전에 쓴 비서(碑書)가 800여에 이른다고 함.

칠보지재(七步之才) 步:걸음 보. 才:재주 재.

[동의어] 칠보재(七步才), 칠보시(七步詩).

[유사어] 의마지재(倚馬之才), 오보시(五步詩).

[출전]《世說新語》〈文學篇〉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

▷고사 : 삼국 시대의 영웅이었던 위와(魏王) 조조(曹操)는 문장 출신이었지만 건안(建安) 문학의 융성을 가져왔을 정도로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맏아들인 비(丕:186~226)와 셋째 아들인 식(植)도 글재주가 출중했다. 특히 식의 시재(詩才)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했다. 그래서 식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는 한때 비를 제쳐놓고 식으로 하여금 후사(後嗣)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다.

비는 어릴 때부터 식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 오던 차에 후사 문제까지 불리하게 돌아간 적도 있고 해서 식에 대한 증오심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비는 후한(後漢)의 헌제(獻帝:189~226)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220~226)라 일컫고 국호를 위(魏)라고 했다.

어느 날, 문제는 동아왕(東阿王)으로 책봉된 조식을 불러 이렇게 하명했다.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짓도록 하라. 짓지 못할 땐 중벌을 번치 못할 것이니라.”

조식은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읊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다지도 심히 핍박(逼迫)하는가’라는 뜻의 칠보시(七步詩)를 듣자 문제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주] 이후 ‘자두연두기’ 약하여 ‘자두연기(煮豆燃萁)’는 ‘형제 혹은 동족간의 싸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음.

칠종칠금(七縱七擒)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음.

★침소봉대(針小棒大)

과장됨.


타산지석(他山之石) 他:다를 타.

[원말] 타산지석 가이공옥(可以攻玉).

[유사어] 절차탁마(切磋琢磨), 공옥이석(攻玉以石).

[출전]《詩經》〈小雅篇〉

다른 산의 거친(쓸모없는) 돌이라도 옥(玉)을 가는 데에 소용이 된다는 뜻. 곧 ①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기의 지식이나 인격을 닦는 데에 도움이 됨의 비유. ② 쓸모없는 것이라도 쓰기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될 수 있음의 비유.

▷고사 : 이 말은《시경(詩經)》〈소아편(小雅篇)〉‘학명(鶴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일부)의 한 구절이다.

‥‥‥‥‥

즐거운 저 동산에는 [樂彼之園(낙피지원)]

박달나무 심겨 있고 [爰有樹檀(원유수단)]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其下維穀(기하유곡)]

다른 산의 돌이라도 [他山之石(타산지석)]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 [가이공옥(可以攻玉)]

[주]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돌[石]을 소인(小人)에 비유하고 옥(玉)을 군자(君子)에 비유하여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

태산북두(泰山北斗) 泰:클 태. 北:북녘 북. 斗:말‧별자리 두.

[준말] 泰斗(태두). 山斗(산두). [동의어] 여태산북두(如泰山北斗).

[출전] ≪唐書≫ 〈韓愈傳贊〉

태산과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말. 곧 ① 권위자. 제일인자. 학문‧예술 분야의 대가. ② 세상 사람들로부터 우러러 받듦을 받거나 가장 존경받는 사람.

▷고사 : 당나라 때 사대시인(四大詩人)의 한 사람으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굴지의 명문장가로 꼽혔던 한유[韓愈:자는 퇴지(退之)]는 768년,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서 태어났다.

그는 9대 황제인 덕종(德宗:779~805) 때 25세의 나이로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한 뒤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극간(極諫)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파직(罷職) 당했다가 재 등용되곤 했는데, 만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역임한 뒤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824년).

이처럼 순탄치 못했던 그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한유는 ‘한유(韓柳)’로 불렸을 정도로 절친한 벗인 유종원[柳宗元:자는 자후(子厚)]과 함께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하는 등 학문에 힘썼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에 대해《당서(唐書)》〈한유전(韓愈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당나라가 흥성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춘추 시대의 여섯 가지 경서)를 가지고 여러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한유가 죽은 뒤 그의 학문은 더욱 흥성했으며, 그래서 학자들은 한유를 ‘태산북두’를 우러러보듯 존경했다.”

[주] 태산 : 중국 제일의 명산. 산동성(山東省)의 태안(泰安)에 있는 오악(五嶽) 중의 하나인 동악(東嶽)으로, 중국에서는 옛부터 태산을 성산(聖山)으로 추앙해 왔음.

북두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가리키는 말. 북두칠성이 모든 별들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에 비유하고 있음.

토사구팽(ꟙ死狗烹) ꟙ:토끼 토. 死:죽을 사. 狗:개 구. 烹:삶을 팽.

[원말] 교토사 양구팽(狡ꟙ死良狗烹)

[동의어] 야수진 엽구팽(野獸盡獵狗烹)

[유사어] 고(비)조진 양궁장[高(飛)鳥盡良弓藏].

[출전]《史記》〈淮陰侯列傳〉,《十八史略》,《韓非子》〈內儲說篇〉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뜻. 곧 쓸모가 있을 때는 긴요하게 쓰이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말.

▷고사 :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를 멸하고 한(漢)나라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劉邦)은 소하(蕭何)‧장량(張良)과 더불어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의 한 사람인 한신(韓信:?~B.C.196)을 초왕(楚王)에 책봉했다(B.C.200).

그런데 이듬해, 항우의 맹장(猛將)이었던 종리매(鍾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고조는 지난날 그에게 고전한 악몽이 되살아나 크게 노했다. 그래서 한신에게 당장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와 오랜 친구인 한신은 고조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 주었다. 그러자 고조에게 ‘한신은 반심을 품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진노한 고조는 참모 진평(陳平)의 헌책(獻策)에 따라 제후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제후는 초(楚) 땅의 진(陳:하남성 내)에서 대기하다가 운몽호(雲夢湖)로 유행(遊幸)하는 짐을 따르도록 하라.”

한신을 진에서 포박하든가 나오지 않으면 제후(諸侯)의 군사로 주살(誅殺)할 계획이었다.

고조의 명을 받자 한신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아예 반기를 들까’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죄가 없는 이상 별일 없을 것’으로 믿고 순순히 고조를 배알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이 싹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활한 가신(家臣)이 한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가져가시면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한신이 이 이야기를 하자 종리매는 크게 노했다.

“고조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자네 곁에 내가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도 자네가 내 목을 가지고 고조에게 가겠다면 당장 내 손으로 잘라 주지. 하지만 그땐 자네도 망한다는 걸 잊지 말게.”

종리매가 자결하자 한신은 그 목을 가지고 고조를 배알했다. 그러나 역적으로 포박당하자 그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쓸모가 없어져)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狡ꟙ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高鳥盡良弓藏(고조진양궁장)],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敵國破謀臣亡(적국파모신망)]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한 내가, 이번에는 고종에게 죽게 되었구나.”

고조는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회음후(淮陰侯)로 좌천시킨 뒤 주거를 도읍인 장안(長安)으로 제한했다.

[주]《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고조(高鳥)가 비조(飛鳥)로, 양구(良狗)가 주구(走狗)로 나와 있으나 뜻은 같음.

퇴고(推敲) 推:밀 퇴‧옮을 추. 敲:두드릴 고

[출전]《唐詩紀事》〈卷四十 題李凝幽居〉

민다, 두드린다는 뜻으로,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을 이르는 말.

▷고사 :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자는 낭선(浪仙),777~841]가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면서〈이응의 유거에 제함[題李凝幽居]〉이라는 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웃이 드물어 한거하고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풀숲 오솔길은 황원에 통하네 [草徑入荒園(추경입황원)]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자고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그런데 마지막 구절인 ‘중은 달 아래 문을……’에서 ‘민다[推]’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두드린다[敲]’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여기서 그만 딱 막혀 버렸다. 그래서 가도는 ‘민다’‘두드린다’는 이 두 낱말만 정신없이 되뇌며 가던 중 타고 있는 말이 마주 오던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무례한 놈! 뭣하는 놈이냐?”

“당장 말에서 내려오지 못할까!”

“이 행차가 뉘 행찬 줄 알기나 하느냐?”

네댓 명의 병졸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가도를 말에서 끌어내려 행차의 주인공인 고관 앞으로 끌고 갔다. 그 고관은 당대(唐代)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로, 당시 그의 벼슬은 경조윤(京兆尹:도읍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이었다.

한유 앞에 끌려온 가도는 먼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솔직히 말하고 사죄했다. 그러자 한유는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역시 ‘민다’는 ‘퇴(推)’보다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네.”

이를 계기로 그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주] 가도 : 당나라의 시인. 하북성 범양(河北省范陽) 사람. 자는 낭선(浪仙). 일찍이 불문(佛門)에 들어감. 법명(法名)은 무본(無本). 한유(韓愈)와의 사귐을 계기로 환속(還俗)한 후 시작(詩作)에 전념함.


파죽지세(破竹之勢) 破:깨뜨릴‧깨어질 파. 竹:대나무 죽. 勢:기세‧형세 세.

[동의어] 영인이해(迎刃而解), 세여파죽(勢如破竹).

[출전]《晉書》〈杜預專〉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 곧 ① 맹렬한 기세. ② 세력이 강대하여 적대하는 자가 없음의 비유. ③ 무인지경을 가듯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진군함의 비유.

▷고사 : 위(魏)나라의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은 원제(元帝)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무제(武帝:265~290)라 일컫고, 국호를 진(晉)이라고 했다(265년). 이리하여 천하는 3국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吳)나라와 진나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이윽고 무제는 진남 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에게 출병을 명했다.

이듬해(280년) 2월(음력),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은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으나 두예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요. 대나무란 처음 두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휘하의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 건업[建業:남경(南京)]으로 쇄도(殺到)하여 단숨에 공략했다. 이어 오왕(吳王) 손호(孫晧)가 항복함에 따라 마침내 진나라는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했다.

[주] 두예 : 진(晉)나라 초엽의 명장‧정치가‧학자. 자는 원개(元凱). 진나라의 초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오(吳)를 정벌하고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무공을 세움.《춘추(春秋)》《고문상서(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도 유명함. 저서로는《좌전집해(左專集解)》《춘추석례(春秋釋例)》등이 있음. (222~284).

파천황(破天荒)

시작, 남상(濫觴), 효시(嚆矢), 원류(源流).

포호빙하(暴虎馮河) 暴:사나울 폭(관용)‧포. 虎:범 호. 馮:탈 빙.

[동의어] 포호빙하지용(暴虎馮河之勇)

[참조] 전전긍긍(戰戰兢兢). [출전] ≪論語≫ 〈述而篇〉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고 걸어서 황하를 건넌다는 뜻. 곧 무모한 행동.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용기의 비유.

▷고사 : 공자의 3000여 제자 중 특히 안회(顔回)는 학재(學才)가 뛰어나고 덕행이 높아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라고 한다. 그는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이를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으며 또한 32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노하거나 실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 안회에게 어느 날,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왕후(王侯)에게 등용되면 포부를 펴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를 가슴 깊이 간직해 두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는 나와 너 두 사람 정도일 것이다.”

이 때 곁에서 듣고 있던 자로(子路)가 은근히 샘이 나서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도를 행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만약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 임할 때 선생님은 누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무용(武勇)에 관한 한 자신 있는 자로는 ‘그야 물론 너지’라는 말이 떨어지기를 기대했으나 공자는 굳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거나 황하를 걸어서 건너는 것[暴虎馮河]과 같은 헛된 죽음을 후회하지 않을 자와는, 나는 행동을 같이하지 않을 것이다.”

풍성학려(風聲鶴唳) 風:바람 풍. 聲:소리 성. 鶴:학 학. 唳:학울 려.

[출전] ≪晉書≫ ≪謝玄載記≫

바람 소리와 울음소리란 뜻으로, 겁을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몹시 놀람의 비유.

▷고사 : 동진(東晉:317~420)의 9대 효무제(孝武帝) 때인 태원(太元) 8년(383)의 일이다.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 전진(前秦)의 3대 임금인 부견(苻堅:338~385)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효무제는 재상 사안(謝安)의 동생인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 사석(謝石)과 조카인 전봉도독(前鋒都督) 사현(謝玄)에게 8만의 군사를 주고 나가 싸우게 했다. 우선 참모인 유로지(劉窂之)가 5000의 군사로 적의 선봉을 격파하여 서전을 장식했다.

이 때 중군을 이끌고 비수(淝水) 강변에 진을 치고 있던 부견은 휘하 제장(諸將)에게 이렇게 명했다.

“전군을 약간 후퇴시켰다가 적이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돌아서서 반격하라.”

그러나 이는 부견의 오산이었다. 일단 후퇴 길에 오른 전진군(前秦軍)은 반격은커녕 멈춰 설 수도 없었다. 무사히 강을 건넌 동진군은 사정없이 전진군을 들이쳤다. 대혼란에 빠진 전진군은 서로 밟고 밟혀 죽는 군사가 들을 덮고 강을 메웠다. 겨우 목숨을 건진 군사들은 겁을 먹은 나머지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風聲鶴唳]’ 소리만 들어도 동진의 추격군이 온 줄 알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주] 부견 : 전진(前秦)의 3대 임금. 이름은 문옥(文玉), 자는 영고(永固). 시호(諡號)는 세조(世祖). 저족(氐族) 출신. 2대 임금을 시해하고 즉위한 후 농경(農耕)을 장려하고 법제(法制)를 정비‧확립하는 등 내치(內治)에 힘씀. 376년 화북(華北:황하 중‧하류 지방)을 평정하고 전진의 최성기(最盛期)를 이루었음. 국력이 신장되자 천하 통일의 야망을 품고 383년 동진을 쳤으나 비수의 싸움에서 대패함. 나라가 분열된 가운데 38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음. (338~385, 재위 357~385).

풍월주인(風月主人)

자연 친화.

풍수지탄(風樹之嘆)

부모 죽음에 대한 탄식.



★학수고대(鶴首苦待)

간절한 기다림.

학철부어(涸轍鮒魚) 涸 마를 학, 轍 수레바퀴 자국 철. 鮒:붕어 부. 魚:고기 어.

[준말] 학부(涸鮒), 철부(轍鮒).

[동의어] 철부지급(轍鮒之急), 학철지부(涸轍之鮒), 학철부어(涸轍鮒魚).

[유사어] 우제지어(牛蹄之魚). [출전] ≪莊子≫ 〈外物篇〉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란 뜻으로, 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의 비유.

▷고사 : 전국 시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했던 장자(莊子)의 이야기이다. 그는 왕후(王侯)에게 무릎을 굽혀 안정된 생활을 하기보다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그는 끼니조차 잇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장자는 굶다 못해 감하후(監河侯)를 찾아가 약간의 식대를 꾸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감하후는 친구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어 이렇게 핑계를 댔다.

“빌려주지. 2,3일만 있으면 식읍(食邑)에서 세금이 올라오는데 그때 삼백 금(三百金)쯤 융통해 줄 테니 기다리게.”

당장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2,3일 뒤에 거금(巨金) 삼백 금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체면 불고하고 찾아온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장자는 내뱉듯이 말했다.

“고맙군. 하지만 그땐 아무 소용없네.”

그리고 이어 장자 특유의 비아냥조(調)로 이렇게 부연했다.

“내가 여기 오느라고 걷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부르지 않겠나.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붕어가 한 마리 있더군[涸轍鮒魚].’‘왜 불렀느냐’고 묻자 붕어는 ‘당장 말라죽을 지경이니 물 몇 잔만 떠다가 살려 달라’는 겨야. 그래서 나는 귀찮은 나머지 이렇게 말해 주었지. ‘그래. 나는 2,3일 안으로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유세를 떠나는데 가는 길에 서강(西江)의 맑은 물을 잔뜩 길어다 줄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랬더니 붕어는 화가 나서 ‘나는 지금 물 몇 잔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기다리라고 하니 이젠 틀렸소. 나중에 건어물전(乾魚物廛)으로 내 시체나 찾으러 와 달라’고 하더니 그만 눈을 감고 말더군. 자, 그럼 실례했네.”

[주] ‘涸’이란 글자는 원래 ‘학’자인데 이 경우 ‘확’으로 읽어 ‘확철부어’라고도 함.

한단지몽(邯鄲之夢) 邯:땅 이름 한. 鄲: 땅 이름 단. 夢:꿈 몽.

[동의어]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몽침(邯鄲夢枕), 노생지몽(盧生之夢), 일취지몽(一炊之夢), 영고일취(榮枯一炊), 황량지몽(黃粱之夢)

[출전] 심기제(沈旣濟)의 ≪枕中記≫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華)의 헛됨의 비유.

▷고사 : 당나라 현종(玄宗)때의 이야기이다. 도사 여옹이 한단[하북성(河北省)내]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가 옆에 와 앉더니 산동(山東)에서 사는 노생(盧生)이라며 신세 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에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그 베개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니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崔氏)로서 명문인 그 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했다. 경조윤(京兆尹:서울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을 거쳐 어사대부(御史大夫) 겸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올랐으나 재상이 투기하는 바람에 단주 자사(端州刺史)로 좌천되었다. 3년 후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조정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년간 노생은 황제를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한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렸다. 변방의 장군과 모반을 꾀했다는 것이다. 노생은 포박 당하는 자리에서 탄식하여 말했다.

“내 고향 산동에서 땅뙈기나 부쳐먹고 살았더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애써 벼슬길에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걷던 때가 그립구나.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칼을 들어 자결하려 했지만 아내와 아들이 말리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노생과 함께 잡힌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으나 그는 환관(宦官)이 힘써 준 덕분에 사형을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수년 후 원죄(冤罪)임이 밝혀지자 황제는 노생을 소환하여 중서령(中書令)을 제수(除授)한 뒤 연국공(燕國公)에 책봉하고 많은 은총을 내렸다. 그후 노생은 모두 권문세가(權門勢家)와 혼인하고 고관이 된 다섯 아들과 열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한 만년을 보내다가 황제의 어의(御醫)가 지켜보는 가운데 80년의 생애를 마쳤다.

노생이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짓고 있는 기장밥도 아직 다 되지 않았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네.”

노생은 여옹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고하고 하단을 떠났다.

한우충동(汗牛充棟)

다독거림.

★허심탄회(虛心坦懷)

솔직한 태도.

★형설지공(螢雪之功)

가난을 이기고 성공함.

호가호위(狐仮虎威) 狐:여우 호. 仮:거짓 가. 虎:범 호. 威:위엄 위

[준말] 가호위(仮虎威). [동의어] 가호위호(仮虎威狐)

[출전] ≪戰國策≫ 〈楚策〉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림에 비유.

▷고사 : 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초엽, 초(楚) 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은 위(魏:梁) 나라에서 사신이 왔다가 그의 신하가 된 강을(江乙)에게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제국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렇지 않사옵니다. 북방 제국이 어찌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 따위를 두려워하겠나이까. 전하, 혹 ‘호가호위’란 말을 알고 계시옵니까?”

“모르오.”

“하오면 들어 보시오소서. 어느 날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나이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천제(天帝)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천벌을 받게 된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라구.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였는데도 호랑이 자신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지금 북방 제국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軍勢), 즉 전하의 강병(强兵)이옵니다.”

이처럼 강을이 소해휼을 폄(貶)하는 이유는 아부로 선왕의 영신(佞臣: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이 된 강을에게 있어 왕족이자 명재상인 소해휼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호구지책(糊口之策)

생계수단.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은 많은 방해가 있음.

호연지기(浩然之氣) 浩:넓을 호. 然:그럴 연. 氣:기운 기.

[준말] 호기(浩氣). [동의어] 정대지기(正大之氣). 정기(正氣).

[출전] ≪孟子≫ <公孫丑篇)

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도 큰 원기. ②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 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 ③ 사물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

▷고사 : 전국 시대의 철인(哲人) 맹자(孟子)에게 어느 날, 제(齊) 나라 출신의 공손추(公孫丑)란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이 제나라의 재상이 되시어 도를 행하신다면 제나라를 틀림없이 천하의 패자(覇者)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 생각하면 선생님도 역시 마음이 움직이시겠지요?”

“나는 40 이후에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용(勇)’이다. 자기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고, 이것이야말로 ‘대용(大勇)’으로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최상의 수단이니라.”

“그럼, 선생님의 부동심(不動心)과 고자(告子)의 부동심은 어떻게 다릅니까?”

고자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대하여 ‘사람의 본성은 선(善)하지도 악(惡)하지도 않다’고 논박한 맹자의 논적(論敵)이다.

“고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애써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말을 알고 있다[知言]는 점에서 고자 보다 낫다. 게다가 ‘호연지기’도 기르고 있다.”

‘지언’이란 피사(詖辭:편벽된 말), 음사(淫辭:음탕한 말), 사사(邪辭:간사한 말), 둔사(遁辭:회피하는 말)를 간파하는 식견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란 요컨대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는 것으로서 천지간에 넘치는 지대(至大), 지강(至剛)하고 곧으며 이것을 기르면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천지까지 충만 한다는 원기(元氣)를 말한다. 그리고 이 기(氣)는 도와 의(義)에 합치하는 것으로서 도의(道義)가 없으면 시들고 만다. 이 ‘기’가 인간에게 깃들여 그 사람의 행위가 도의에 부합하여 부끄러울 바 없으면 그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도덕적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호접지몽(胡蝶之夢) 胡:오랑캐‧어찌 호. 蝶:나비 접. 夢:꿈 몽.

[유사어] 장주지몽(莊周之夢)  [출전] ≪莊子≫ 〈齊物篇〉

나비가 된 꿈이란 뜻. 곧 ① 물아 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물아의 구별을 잊음의 비유. ②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심경. ③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④ 꿈.

▷고사 : 전국 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이름은 주(周), B.C. 365~290]는 맹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물(物)의 시비(是非)‧선악(善惡)‧진위(眞僞)‧미추(美醜)‧빈부(貧富)‧귀천(貴賤)을 초월하여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한 사람이다.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아닌가. 이는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그 나비인 자기가 꿈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일까.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장자(莊子)》의 이런 우화(寓話)는 독자를 유현(幽玄)의 세계로 끌어들여 생각게 한다.

[주]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요즈음에도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음.

유현 : 사물(事物)의 이치(理致) 또는 아취(雅趣)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음.

혼정신성(昏定晨省)

효도.

홍일점(紅一點) 紅:붉을 홍. 點:점‧점 찍을‧흠 점.

[출전] ≪唐宋八家文≫ 〈王安石 詠石榴詩〉

① 여럿 가운데서 오직 하나 이채를 띠는 것. ② 많은 남자들 틈에 오직 하나뿐인 여자. ③ 여러 하찮은 것 가운데 단 하나 우수한 것.

▷고사 : 북송(北宋) 6대 황제인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1021~1086)이란 재상이 있었다. 당시 신법당(新法黨)의 지도인 왕안석은 재상에 임명되자 부국강병을 위한 이른바 ‘왕안석의 개혁’을 실시했다. 처음에는 구양수(歐陽脩)‧사마광(司馬光)‧정이[程頤:호는 이천(伊川)]‧소식(蘇軾) 등 유명한 문신들이 주축이 된 구법당(舊法黨)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쳤으나 신종의 적극적인 지지를 배경으로 중단 없이 실행되었다.

왕안석은 시문(詩文)에도 능하여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는데 그의〈영석류시(詠石媹詩)〉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많은 푸른 잎 가운데 한 송이 붉은 꽃

[萬綠叢中 紅一點(만록총중 홍일점)]

사람을 움직이는 봄빛 많은들 무엇하리

[動人春色 不須多(동인춘색 불수다)]

화룡점정(畵龍點睛) 畵:그림 화. 龍:용 룡. 點:점 찍을 점. 睛:눈동자 정.

[유사어] 입안(入眼). [출전] ≪水衡記≫

용을 그리는데 눈동자도 그려 넣는다는 뜻. 곧 ①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킴. 끝손질을 함. ② 사소한 것으로 전체가 돋보이고 활기를 띠며 살아남의 비유.

▷고사 :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양(梁)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군장군(右軍將軍)과 오흥태수(吳興太守)를 지냈다고 하니 벼슬길에서도 입신(立身)한 편이지만 그는 붓 하나로 모든 사물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화가로 유명했다.

어느 날, 장승요는 금릉[金陵:남경(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의 주지로부터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절의 벽에다 검을 구름을 헤치고 이제라도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두 마리의 용을 그렸다. 물결처럼 꿈틀대는 몸통, 갑옷의 비늘처럼 단단해 보이는 비늘, 날카롭게 뻗은 발톱에도 생동감이 넘치는 용을 보고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장승요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은 당장 벽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장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는 성화독촉(星火督促)에 견디다 못한 장승요는 한 마리의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기로 했다. 그는 붓을 들어 용의 눈에 ‘획’하니 점을 찍었다. 그러자 돌연 벽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한 마리의 용이 튀어나와 비늘을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은 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화서지몽(華胥之夢) 華:빛날 화. 胥:서로 서. 夢:꿈 몽.

[유사어] 화서지국(華胥之國). 유화서지국(遊華胥之國).

[참조] 호접지몽(胡蝶之夢). [출전] ≪列子≫〈黃帝篇〉

화서의 꿈이란 뜻으로, 좋은 꿈이나 낮잠을 이르는 말.

▷고사 : 먼 옛날 중국 최초의 성천자(聖天子)로 알려진 황제[黃帝:공손헌원(公孫軒轅)]는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 놀러 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경(理想境)을 보았다.

그곳에는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의 권위도 없고,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愛憎)도 이해(利害)의 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도 초연하다. 또 물 속에 들어가도 빠져 죽지 않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죽지 않으며, 공중에서 잠을 자도 침대에 누워 자는 것과 같고 걸어도 땅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또한 사물의 미추(美醜)도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고 험준한 산골짜기도 보행을 어렵게 하지 않는다. 형체를 초월한 자연 그대로의 자유로 충만한 이상경인 것이다.

이윽고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번뜻 깨닫는 바 있어 중신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짐은 지난 석 달 동안 방안에 들어앉자 심신 수양에 전념하며 사물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려 했으나 끝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소. 그런데 짐은 이번에 꿈속에서 비로소 그 도(道)하는 것을 터득한 듯싶소.”

그 후 황제가 ‘도’의 정치를 베푼 결과 천하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화씨지벽(和氏之璧) 和:화할 화. 氏:각시 씨. 璧:둥근 옥 벽.

[준말] 화벽(和璧). [동의어] 변화지벽(卞和之璧)

[유사어] 완벽(完璧). 연성지벽(連城之璧)

[참조] 완벽(完璧). [출전] ≪韓非子≫ 〈卞和〉

천하 명옥(天下名玉)의 이름.

▷고사 :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산 속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곧바로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한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를 월형(刖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그러안고 궁궐 문 앞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울었다. 문왕이 그 까닭을 묻고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이라 명명했다.

그 후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으나 이를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한때 양국간에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불렸다.

화중지병(畵中之餠)

그림의 떡.

환골탈태(換骨奪胎)

완전히 변함.

회자인구(膾炙人口)

많은 사람들의 찬양을 받음.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이별.

후생가외(後生可畏) 後: 뒤 후. 畏:두려울 외.

[출전] ≪論語≫ 〈子罕篇(자한편)〉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 곧 젊은 후배들은 선인(先人→先生)의 가르침을 배워 어떤 훌륭한 인물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히 두렵다는 말.

▷고사 : 춘추 시대의 대철학자‧사상가인 성인(聖人) 공자는 말했다.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後生可畏].’ 장래에 그들이 지금의 우리를 따르지 못하리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焉知來者之不知今也]? 그러나 40세, 50세가 되어도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바 없느니라.”

[주] ‘후생가외’는 공자가 제자 중 학문과 덕행이 가장 뛰어난 안회[顔回:자는 자연(子淵), B.C. 521~490]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함.

후안무치(厚顔無恥)

뻔뻔스러움을 뜻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