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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문제로 곤욕 치러 공회 결의대로 지켜야 [ 기독신문 2006-04-11 오후 5:08:24,
이병천 목사(고현교회) | |
본인은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이다. 최근에 축도문제로 곤욕 아닌 곤욕을 치렀다. 교인들의 잠도 쫓을겸 주일 오후 예배는 칠판설교 말씀을 전하는 데 한번은 우연히 축도를 언급하게 되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있던 장로님이 개인적으로 '있을지어다'가 아니라 '축원하옵나이다'가 맞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목사가 너무 신적 권위를 가지고 하는 것 같아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의 유명한 교단 목사님들도 '축원하옵나이다'로 축도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논란(?)이 본인을 너무나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7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그 장로님은 단 한번도 목사의 목회하는 일에 '아니오'라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언젠가는 축도에 대해 한 번은 말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고 목사가 축도에 대한 언급이 있는 기회를 타서 발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장로님의 주장은 전혀 양보의 기색이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별일 아닌 일로 교회분쟁거리가 될 것 같아 극단적인 경우가 발생하면 본인이 양보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장로님에게 말씀드렸다.
"장로님, 지금까지 목사설교를 들어보셨지요. 7년 동안 목사가 잘못된 것 가르친 적이 있던가요?" "아니요. 저는 늘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장로님 그러면 이번에도 믿어주십시오. 잘못된 것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제야 장로님께서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겠노라 해서 문제는 종결되었다.
본인이 알기로 축도는 기도가 아닌 선언으로 알고 있다. 축도는 라틴어 'Pronounce'에서 나온 말로 '좋은 것을 알린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축도는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 성도들에게 설교자(위임목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당신들과 함께 하니 잊지 말라고 삼위의 이름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럴 때 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자신들은 결코 세상에서 고아처럼 버려진 존재들이 아님을 각인하고 교회문을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기도로 오해를 해서 왜 '축원하옵나이다'로 하지 않고 '할지어다'로 하느냐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은 축도의 기원이 되는 구절이다. 여기서 바울은 기도가 아닌 선언하고 있다.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언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사람이 사람에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축원하옵나이다'로 축도하는 큰 교회 목사님들에게 간곡히 그리고 정중하게 부탁드린다. '있을지어다'는 공회에서 결의된 내용이므로 지교회에서는 그렇게 축도할지라도 다른 공식석상에서 축도할 때는 결의된 내용대로 축도해주었으면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을 지켜왔던 적지 않은 분들이 지교회에 돌아와서는 '저렇게 많이 배운 큰 교회 목사님들도 그렇게 하는데' 하면서 본교회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비효과'로 작은 교회에 미치는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책임의식을 가지고 공회축도에는 공회가 결정된 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
기독신문 (ekd@kidok.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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