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베자와 퍼킨스 사이에 있는 라무스....

형람서원 2025. 2. 1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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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와 퍼킨스이 예정론을 강조한 신학자로 유사한 것으로 맞지만, 베자와 퍼킨스이 공동으로 한 묶음이 될 수는 없다.

테오도르 베자 (Theodore Beza, 1519~1605)

앤드류 멜빌(Andrew Melvill, 1545-1622)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

피터 라무스(Peter Ramus, 1515-1572) 라무스주의란 16세기 프랑스의 개혁파 철학자 페트루스 라무스(Pierre de la Ramee, 혹은 Petrus Ramus, 1515-1572)가 전개한 철학이다.

멜빌과 퍼킨스는 프랑스 학자 피터 라무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베자는 라무스와 적대적 관계를 이루었다. 라무스는 회중주의자 모렐리와 친분을 갖고 있었으며 회중주의를 배격하는 베자와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경건주의'는 프랑스의 라버디(Jean de Labadie, 1610-1674)에 형성된 라바디즘(Labadism)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개혁 초기에 피터 라무스의 사유체계와 모렐리의 회중주의적 사유 체계가 등장했고, 개혁 후기는 라바디즘이 등장해서 개혁교회에 융합되었다.

형람서원 고경태

베자-퍼킨스 복식조는 종교개혁을 뒤엎는 사단의 쟁기

정이철 입력 2025.02.11 11:33 수정 2025.02.12 07:32

 

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는 영국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그리고 뉴 잉글랜드(현재의 미국의 북동부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회중교회 신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Lloyd-Jones 2016, 255: Jeong 2021, 135, 155, 184). 제네바로 망명하여 칼빈에게서 신학을 배운 후 장로교회 설립을 위한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Knox와 달리 퍼킨스는 칼빈의 책들 보다는 베자와 우르시누스의 책들을 통해 신학을 더 많이 배웠다 (Beeke & Jones 2012, 120). 스콜라주의를 개신교 신학으로 도입하는데 앞장 선 베자와 우르시누스(Letham 2009, 101)의 영향을 많이 받은 퍼킨스의 신학과 스콜라주의를 경계했던 칼빈에게서 신학을 배운 낙스의 칭의 신학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자.

1590년대부터 청교도 운동의 성격과 방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이전에는 왕을 수반으로 하는 국교회를 칼빈이 유럽에 세운 장로제도를 기반하는 하는 종교개혁 교회로 바꾸는 것이 청교도 운동의 목표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과 국교회 감독들의 극심한 핍박으로 인해 청교도들이 계속 국교회 체제를 고치자고 요구할 수가 없게되었다. 그래서 부득이 청교도들은 새로운 방향의 개혁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Won 2018, 36).

1590년대부터 청교도들은 더 이상 외적인 교회의 제도와 체제를 개혁하자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대신 왕과 감독들에 의해 검열되지 않고 탄압받지 않는 새로운 방식과 전략으로 개혁운동을 추진하였다. 주일 예배,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헌신, 신앙의 실천, 가장이 목회자 역할을 하는 가족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는 개혁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Won 2018, 37-38). 처음에는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 국교회 지도자들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서서히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 개혁운동의 영향을 받은 시민들의 신앙 자세, 의식, 태도가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Won 1989, 299-301).

청교도 목회자들의 새로운 방향의 개혁 운동은 언약 신학이 함께 등장했었다. 국교회 체제에서는 감독들이 개인의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이전까지 국교회 신자들에게는 감독들의 명령을 따르기만하는 피동적인 자세만 요구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방향의 개혁 운동으로 신자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감독들의 지시를 받기보다는 자기의 신앙과 구원에 대해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이 같은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 개혁운동의 신학적 동력원으로 작용한 것은 바로 언약신학이었고 퍼킨스가 그 일을 앞장서 추진하였다 (Ahn 2016, 108; Won 2018, 40). 퍼킨스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에게 저절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조건을 성취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내용의 언약 신학을 주장했다.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이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통해 공식화되기전에 이미 1590년대 초 퍼킨스가 동일한 내용의 언약 신학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1592년 퍼킨스는 자신의 책 황금사슬 (A golden chain)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행위언약 이론을 제시하였다: “The covenant of works is God’s covenant made on the condition of perfect obedience, and this condition is expressed in the ethical law. The ethical law is God's covenant made to man on the condition of complete obedience in his nature and actions, and this condition is expressed in the ethical law. ...The law has two parts. It is a law requiring obedience and a condition coupled with obedience. The condition is eternal life for those who fulfill the law, and eternal death for those who break the law. “The Ten Commandments are a microcosm of all the laws and a covenant of works.” (Perkins 1626, 32; Won 2018, 48).

“행위언약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 율법을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동시에 퍼킨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은혜 언약 이론을 제시했다: “The covenant of grace is God’s free promise of Christ and his benefits to humans, and the covenant is completed when humans accept Christ with faith and repent of their sins. ... This covenant was also made testamentary: it has a testamentary nature and character. For this is confirmed by the death of the testator. ... Second, in this covenant we are not offering anything to God or promising anything significant, but only receiving. This is just as a person’s last will is not for the testator but for the heirs.” (Perkins 1626, 71; Won 2018, 51).

“은혜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유익을 인간에게 값없이 약속하시는 것으로 인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의 죄들을 회개함으로 언약이 체결되는 것이다. ... 이 언약은 또한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유언적 본질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유언자의 죽음으로 확증되기 때문이다. ... 둘째로, 이 언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제공한다든지 또는 중대한 어떤 것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받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마지막 유언이 유언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상속자를 위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퍼킨스는 하나님이 제시한 조건을 인간이 충족시키면 영생을 인간이 충족시키지 못하면 죽음을 내리기로 했고, 그 조건의 내용이 나중에 십계명으로 주어졌다고 했다. 50년 뒤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장의 행위언약과 동일한 내용이다. 단지 아담이라는 최초의 사람의 이름이 없을 뿐이다. 퍼킨스가 제시한 은혜언약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의 은혜언약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행위 언약을 주장하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으로 칭의를 설명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하게 살펴보았다. 과연 퍼킨스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을 주장했을까? 놀랍게도 퍼킨스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그리스도의 능동적-수동적 순종 사상을 주장하였다: “About Christ and His righteousness we must understand two things. The first is Christ's suffering as revealed in his passion and death. The second is His obedience revealed in the fulfillment of His law. These two go together.” (Perkins 1626, 567: Shin 2016, 93).

“그리스도와 그 분의 의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나타난 그 분의 고난이다. 둘째는 율법을 성취하시는데서 드러난 그분의 순종이다. 이 둘은 함께 간다”

베자와 우르시누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퍼킨스에게서는 행위 언약 사상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칼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낙스와 대조되는 모습니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the Cannon of Dort (1619)를 통해 정죄받은 네덜란드의 알미니안들이 가르쳤던 the covenant of works과 the covenant of grace와 동일한 내용을 퍼킨스가 주장했다는 것이다 (Bouwman 1998, 44-45, 54-55; Yosicaz 2018, 123-125). 베자와 퍼킨스의 신학이 칼빈의 신학에서 벗어났다는 패커의 지적은 옳았다 (Packer 2019, 19). 그리고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네덜란드 알미니안들과 잉글랜드 청교도들이 같은 언약 신학을 가지고 있었을까?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정이철 목사는 베자와 퍼킨스의 신학이 칼빈 신학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인용하면서 긍정했다. Thus Perkins and Beza move on from Calvin, whether or not they are judged to have move contrary to him. 그러나 오늘날의 칼빈주의자들이 베자가 발전시킨 신학 위에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베자, 도르트 시노드(총회), 웨스트민스터 총회, 하이델베르크, 영국 청교도주의, 화이트필드, 스펄전까지 연속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정 목사는 도르트 시노드와 베자를 대립시키는데, 패커는 연속 관계로 제시했다. Again, many who style themselves Calvinists today mean hereby to advertise that they accept Beza's scholastic development of Calvin's view of sin and grace, as confessionally restated by the Synod of Dort and the Westminster divines, and that they value the pastoral, devotional, and evangelistic use of this development found in the Heidelberg Catechism, English Puritanism, and the revival tradition from Whitefield and Edwards to Spurgeon: which too is a moving on from Calvin, however direct or deviant. It would take a bold man to deny that and theological provincialism might have entered into this vigorously developed tradition. 오히려 신학의 변방(theological provincial-ism)에서 대범하게 그 관계를 부정한다고 패커는 주장했다. 정 목사는 패커의 글을 자기의 주장에 맞는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하면서, 패커가 주장하는 의미를 왜곡시켰다. 패커는 Perkins based Christian assurance not on Scripture, Christ, being in the church and receiving the sacraments, as Calvin had done, but on discerning in oneself the signs of election 으로, 퍼킨스와 칼빈의 관심사가 유사한 것(선택의 표징을 분별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 정 목사는 도르트 교령으로 퍼킨스를 정죄하려고 하는데, 도르트 시노드에서 알미니안이 퍼킨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도르트 교령에서 알미니안을 배격했기 때문에, 도르트 교령이 퍼킨스를 배격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

** 반복하지만 퍼킨스의 행위언약과(1600년경) 1630년경 행위언약 개념은 같지 않다. 또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행위언약 개념이 또 같지 않다.

*** 정 목사는 알미니안의 신학이 네덜란드에 국한되지 않음에 대해서, 당시 유럽 문화에 대한 고려가 없다. 당시 유럽은 상당히 빠르게 정보가 유통되었다. 잉글랜드,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등은 빠르게 정보를 교류했다. 정보의 혼합과 융합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619년 도르트 시노드에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는 파견단을 파송했다.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와 도르트 회의에 참석한 대표자이다. 제임스 1세는 알미니안을 지지했다. 에임스의 제자 가운데 유명한 인물은 요한네스 콕세이우스(Johannes Cocceius, 1603-1669)가 있다. 죽기 직전 그는 뉴잉글랜드에 이주한 친구, 존 윈스럽(John Winthrop, 1588-1649)과 함께 하고자 했었다.. “도르트 공회에 참석한 잉글랜드 대표단은 왕이 반대해서 성공회 대표단으로 참석을 한 것이 아니고 개인 자격으로(참관인) 청교도 개혁운동을 반대한 조지 칼레톤(1559-1628) 주교, 엑스터 감독인 조셉 홀(1574-1656) 주교, 탁월한 청교도 사무엘 워드(Samuel Ward) 세 사람이었다. DeWar가 쓴 도르트 시노드 브리티시 사절단에 대한 글에서 그들의 성향이 국가만능주의자들이었다고 하는 것은 앞의 두 사람에게는 해당되나(그럴지라도 웨스트민스터 총회 회원이 아니었다)”고 서창원 박사는 제시했습니다. 저는 DeWar의 논문을 근거로 참석자들의 성향이 에라스투주의라고 제시했고, 다른 글에서는 찰스 1세 무렵에는 알미니안이 고조되었다고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1세의 계승자인 찰스 1세의 대주교 라우드에서 라우드주의로 주교주의(No bishop, no Church)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서창원 박사는 왕이 반대해서 개인 자격으로 도르트 회의에 참석했다고 하는데, 우병훈 박사는 제임스 1세가 청원서를 받고 6명을 계획했지만, 잉글랜드 4명, 스코틀랜드 1명을 파송했다고 제시합니다(우병훈, 2018: 153-154). 란다프의 주교(bishop of Llandaff)인 조지 칼톤(George Carleton; 1557/58-1628), 워체스터의 학장(dean of Worchester)인 조셉 홀(Joseph Hall; 1574-1657), 캠브리지 대학 교수인 존 데이브넌트(John Davenant; 1572-1641), 캠브리지 시드니 칼리지의 학사장(prefect of Sidney College at Cambridge)인 새무얼 워드(Samuel Ward; 1572-1643), 1618년 12월 17일에 제임스 I세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여 파견한 월터 발칸퀄(Walter Balcanqual; 1586-1645)이 회의에 합류했다는 것입니다.

위키페디아에서 사무엘 워드는 nonconformity(비순응자)로 기소되었으며, Laud 주교와 대립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잉글랜드 청교도는 크게 nonconformity와 conformity(순응자)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교회와 왕국의 관계에 대한 견해입니다. ultra-conformity(초순응자)는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창원 교수가 비순응자인 사무엘 워드를 “탁월한 청교도”로 분류했는데 근거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1590년대 초 퍼킨스가 본격적으로 주장한 행위언약 신학과 1616년에 작성된 <도르트신조>에 의해 사형, 재산몰수, 국외추방에 처해진 화란의 알리니안들의 행위언약 신학이 같은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도르트신조, 둘째 교리조항-반박 2, 3, 4번). 대체 왜 청교도주의의 아버지 퍼킨스와 화란의 알미니안들이 같은 언약 이론을 믿고 주장했던 것일까? 제임스 패커는 이렇게 말했다.

"Arminianism emerged in Holland, but not as an isolated phenomenon; similar reactionary theologies appeared at about the same time in England, as we shall see, and in German Lutheranism." (Packer 2018, 5). (알미니안주의는 화란에서 일어났지만, 그것은 독립된 현상이 아니었다. 동시에 비슷한 신학이 잉글랜드와 독일 루터란주의에서 비슷한 내용의 신학이 나타났다.)

패커는 알미니우스가 활동했던 화란에서만 알미니안 신학이 번성한 것이 아니고 잉글랜드와 독일에서도 동시에 나타났다고 했다. 우르시누스의 자연언약이라는 다른 명칭의 행위언약 사상 (Ursinus 1562-1563, Larger Catechism Q. 36, 135), 그리고 퍼킨스의 행위언약이 사실상 알미니안 신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흉측한 알미니안 신학이 1647년에 작성된 웨신(WCF)에 삽입됨으로 오늘 날 필라델피아의 웨신세미나리, 미시간의 칼빈세미나리 등을 비롯한 모든 장로교회 신학의 심장 속에 알미니안들의 뜨거운 피가 흐르게 되었다.

(이 글에 관심이 많으시거나 거부감이 드시는 분들은 아래 관련 기사들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Packer, James. 2019. Arminianisms. https://www.onthewing.org/user/Arm_Arminianisms%20-%20Packer.pdf.

Lloyd-Jones, D. M. 2016. The Puritan: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Catisle: The Banner of Truth Trust.

Jeong, Lee-Chul. 2021. The Puritan Reformation at a Glance. Seoul: Daum.

Knox, John., Willock, John., Winram, John., Spottiswoode, John., Row, John., and Douglas, John. 1560. The Scottish Confession. PDF. https://apostles-creed.org/wp-content/uploads/2014/07/Scots_Confession_1560.pdf.

Beeke, Joel R. & Mark Jones. 2012. A Puritan Theology: Doctrine for Life.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Won, Chong-Chun. 2018. Covenant Theology of Puritans. Seoul: The Christian Literature Society of Korea.

Ahn, Sang-hyuk. 2016. the Covenant Theology. Seoul: Yungemsa.

Perkins, William. 1626. The Works of William Perkins. 1 vol. London: John Legatt.

Shin, Ho-Sup. 2016. The Reformed Doctrine of Imputation. Seoul: Jipyung Seowon.

Bouwman, Clarence. 1998. Notes on the Canons of Dort. Armadale: The League of the Free Reformed Women’s Bible Study.

Ursinus, Zacharias. 1562-1563. Large and Small Catechisms with the Heidelberg Catechism. Translated by Fred H. Klooster and John Medendorp. edited by The riddlebolog. PDF. http://kimriddlebarger.squarespace.com/the-latest-post/2009/11/23/ursinus-large-and-small-catechisms-together-with-the-heidelb.html

https://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3141

 

베자-퍼킨스 복식조는 종교개혁을 뒤엎는 사단의 쟁기

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는 영국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그리고 뉴 잉글랜드(현재의 미국의 북동부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회중교회 신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Lloyd-Jones 2016, 255: Jeong 2021, 135, 155, 184

www.good-faith.net

https://www.onthewing.org/user/Arm_Arminianisms%20-%20Packer.pdf

https://apostles-creed.org/wp-content/uploads/2014/07/Scots_Confession_156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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