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기독교가 아닌 고백과 증거하는 교회

형람서원 2025. 1. 27.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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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기독교가 아닌 고백과 증거하는 교회

신학은 교회를 살리는 학문일까? 신학은 교회를 살리는 학문이 아닌 교회가 사회화가 되었을 때에 파생된 학문이다. 즉 300년 박해기간에 신학이 있지 않았고, 380년 교회의 신앙이 국교가 되면서 복잡한 체계가 대두되면서 체계화 등을 위한 이성적 훈련이 신학이다. 로마 제국은 교회의 신앙으로 제국을 통일하려고 했지만, 성상숭배 문제(787년 7차 공의회)로 심각하게 논쟁했다. 그런데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대한 필리오(Filioque) 첨가를 놓고 분열되었다. 서방교회가 589년 톨레도 공의회에서 필리오(Filioque)를 추가했고, 이에 대해서 동방교회가 거부하며 정죄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결국 1054년에 교회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대분열을 겪었다. 기독교 제국인 서로마는 476년에 멸망하고, 동로마(비잔틴 제국)은 1453년에 멸망했다. 멸망된 서로마의 기독교는 유럽으로 확장되었고, 멸망된 비잔틴 제국 지역은 이슬람이 자리잡았다. 신학은 기독교화된 유럽에서 발전되었다. 이 시대를 중세 시대라고 하고, 스콜라 철학(신학)으로도 분류한다. 중세 신학은 이성으로 신존재 증명을 시도했다. 신존재 증명은 근대시대 칸트에 의해서 확정적으로 거부되었고 인식론으로 전환되었다. 유럽 신학은 약 2,000년 동안 존재론과 인식론을 갖고서 연구했다. 그 결과 유럽에는 대가람(伽藍)의 예배당만 존재한 문화재로서 기독교 사회가 되었다.

중세 시대의 기독교는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대학으로 구성되었다. * 895년 파티마 알 피흐리라는 모슬렘 여성에 의해서 설립된 알콰라우이인 대학(모로코)이다. 1088년에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최초 대학(university)이 설립되었다. 1096년에 옥스퍼드 대학(왕립)이 설립되었다. 1160년에 설립된 파리 대학은 소르본 대학(1257년 설립)을 포함하고 있다. 교회는 미사를 중심으로 민중의 생활 속에 있었고, 수도원은 민중의 상활 밖에서 학문을 연구했고, 대학은 민중 생활 속에서 학문을 연구했다. 교회는 학문 기능을 미뤄두었고, 수도원에서는 신존재 증명을 시도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의 수사로서 당대 철학을 집대성한 스콜라 철학의 최고봉이다. 십자군 전쟁은 1095년에 시작되어 1291년에 마쳤다. 아퀴나스가 살던 시대는 십자군 전쟁이 진행되던 때이다. 십자군 전쟁에서 충격적으로 해석하는 전쟁은 4차 원정(1202-1204)인데, 동방 교회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라틴 제국(1204-1261)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세계 대격변 속에서 아퀴나스의 사유 체계는 구성되었다. 그의 신존재증명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이성으로 할 수 있는 최고 영역까지 진행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신존재 증명(존재론적 신학)이나 인식론적 구상화로 구성하는 신학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의 문제점은 논리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존재론적 사유와 인식론적 사유로 신학을 진행한 교회의 결과는 몰락이 아닌 소멸의 수준으로 볼 수 있다(5% 미만이 출석하는, 일본 1%, 한국 개신교 20%라고 하는데, 호감도는 14%로 나옴, 2024년).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신학은 칸트(1724-1804)의 도전에 붕괴되었다. 칸트 이후의 신학은 자유주의로 칸트의 전제로 신학을 재구성하려고 했다. 칸트의 이성을 거부하려는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 절대의존감정), 칸트적인 리츌(Albrecht Ritschl, 1822-1889), 헤겔(1770-1831)적인 스트라우스(1808-1874) 등이 신학의 주류가 되었다. 칸트 이전의 자유주의는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 1694-1768)와 제믈러(Johann Salomo Semler, 1725-1791)이다. 제믈러는 <자유로운 신학 교수법의 시도>(Versuch einer freieren theologischen Lehrart, 1777)’를 제안해서, 교리를 떠나 자유롭게 신학할 것을 제안했다. 계몽철학에 의존한 자유주의는 교리(Dogma)가 이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자유주의는 이성으로 신학하는 것(스콜라 신학)이 아니라, 이성의 합리성으로 기독교의 기원을 재검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학은 교회가 아닌 신학교에서 이루어졌다. 그 신학교에서 훈련된 인재들이 교회의 사역자가 되었다. 결국 그들이 배운 신학이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었다. 로마 카톨릭은 복음설교가 없는 미사 중심이었고, 개신교회는 자유주의로 점철된 신학내용이 교회에서 선포되었다. 참고로 2024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사제의 강론이 8분이 넘지않도록 제시했다. 강단에서 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교회는 자기 임무를 포기한 것이다. 교회는 선포된 복음 위에 세워진다(행 2장).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교회는 무너진다. 그런데 복음선포를 위한 훈련을 신학교에서 수행하지 않았다. 신학교는 복음선포가 아닌 학문을 위한 기관이었다.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칼빈이 세운 제네바아카데미에서 복음을 전파할 사역자를 훈련시켰지만, 후일에 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신학과가 폐지되었다. 복음이 선포되면 교회는 세워지며 확장된다. 그런데 왜 교회는 복음선포에서 후퇴할까? 이해할 수 없지만 교회사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은 패턴이다. 복음 사역자를 배출시키는 신학교는 처음에서 이탈해서 이성으로 학문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변화한다. 그 패턴에서 벗어난 신학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신학하는 기관이 아니며 이성의 기능을 증진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복음의 기관이며 은혜를 증진하는 기관이다. 복음이 선포되면 은혜가 증진되어, 은혜의 주 예수가 높아지며 전파된다. 교회는 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증거하며 전파함으로 세워진다. 교회의 강단에서 예수가 증거되며 선포되어야 한다. 어찌되었든지 예수 이름이 선포되어야 한다. 십자가가 선포되어야 한다. 성령이 선포되어야 한다. 회개와 경건훈련이 수행되어야 한다.

합리적 사유 체계나 교육 훈련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제자훈련으로 교회가 성장한다고 훈련했다. 교제로 교회가 성장한다고 훈련했다.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복음 선포뿐이다. 다만 숫자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이다. 2000년 교회 역사에서 복음 외에 다른 요소가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는 몰락한다(갈 1장). 다만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가장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가장 유구한 역사의 힘이 그들을 유지시킨다. 로마 가톨릭 기관이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들은 복음에서부터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힘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1962년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종교다원주의 체계를 공식화하면서 복음을 제외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선교 등을 기반으로 복음 전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 선교한다는 명분까지 만들었다. 복음전도가 없는 선교 전략을 구체화시켰다. 교회를 세우려는 선교 사역에서도 복음 전도가 없는데, 세워진 교회에서 복음 선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쉽지 않다.

교회에서 신학하는 것이 아닌 선포된 복음을 듣고 지켜야 한다(계 1:3). 하나님의 존재(who)가 아닌 개혁신학의 전통인 하나님의 특성(what)을 잘 익혀야 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직접적인 인식이 아니라 선포된 복음을 기준으로 힘써 전력해야 한다. 그래서 복음 선포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천상의 주 예수께서 자기 사자를 보내셔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신다. 그 복음을 선포를 귀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계 2-3장).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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