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적 묵시 종말론은 기독교의 종말론의 기원이 될 수 없다
벌코프는 <조직신학> "종말론"에서 개인적 종말과 중간상태(사후세계), 일반적 종말론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그리고 최후의 상태에 대해서 제시했다. 그런데 신약신학에서 말하는 "종말론"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전개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마치 조직신학의 종말론과 신약신학의 종말론에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시작하는 시점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개와 내용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조직신학의 종말론은 개인의 종말(죽음)과 로마 가톨릭이 형성시킨 사후 상태에 대한 평가와 바른 이해 그리고 천년왕국과 최종 상태에 대해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신약신학의 종말론은 1세기 유대 땅에 있던 유대적 종말 사상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연속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많다. 우리는 1세기 유대 땅에 있던 종말 이해는 기독교의 종말론이 될 수 없다고 제언한다.
행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세기 유대 종말 사상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관점을 두었다. 세대주의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여전히 주장한다.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는 이필찬 교수는 세대주의(특히 백투더예루살렘 운동)를 비판하는데, 그 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맹목적 견해에 대한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예수께서 분명하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행 1:6)이 아니라, "성령 받음"(행 1:7-8)을 제시하셨다. 그런데 세대주의가 아니더라도 1세기 유대 묵시사상은 기독교와 연계시키는 경향이 많다. 우리는 구약성경의 가르침(메시아 사상)과 유대 묵시상의 가르침(메시아 사상)이 같지 않다고 제언한다. 예수는 구약성경이 지시한 메시아이다. 유대 메시아 사상에 있던 1세기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이 지시한 메시아를 거부할뿐만 아니라 협력하여 죽였다. 그것도 헤롯당, 로마 군인까지 동원해서 죽였다. 그런데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을 본디도 빌라도(본디오 빌라도에게)를 주체로 세우는데, 그가 최종결정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을 피하기 위해서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번역을 완화시켜도 예수님의 죽음의 최종결정자의 자리에서 본디오 빌라도는 피할 수 없다. * 참고로 요한계시록을 묵시 문학(장르)로 제언하는 사례가 많다. 요한계시록이 묵시 문학이 되면 에스겔서, 다니엘서가 묵시 문학의 원형이 된다. 묵시 문학은 유대 땅에서 형성된 문학 장르로 보아야 한다.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의 환상과 계시는 묵시 문학의 원형이 될 수 있지만 연속성은 될 수 없다.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는 계시 문서이고, 묵시 문학은 인간의 상상 문서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근거한 신학에서는 일반도서로 분류된 외경(묵시문학)은 계시문서와 동질이나 유사가 될 수 없다. 요한계시록은 인간의 상상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 말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계시이다.
1세기 유대 묵시 문학에 나타난 종말 사상을 기독교 종말 사상과 연계시켜 기독교의 기원을 밝히려는 시도는 부당하다. 기독교는 원시 기독교가 아니라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체들로 형성된 성령의 사역으로 형성된 가치이기 때문이다. 유대 묵시 문학은 인간의 상상력에 근거한 인간적인 위로와 격려를 위한 작품이다. 압제를 피하기 위해서 익명성이 기본적이다. 그러나 계시 문서에는 익명성이 불가하다. * 원시 기독교(early Christianity)에서 원시 공산주의가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는 견해가 있다. 사도행전에 함께 떡을 떼며 유무상통한 사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교제는 물질적 나눔이 아닌 영적 나눔이 기본이다. 유물론 위에 세워진 공산주의와 기독교와 비교하는 자체가 모순이다. 교회의 시작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과 복음선포와 3000명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명확한 교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종말론은 1세기 유대 묵시주의 사상인 "하나님 나라 사상",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메시아 사상", "천년왕국 사상"을 기독교 신학에서 계속하는 것은 기독교 이룸에 합당하지 않다. '천년'이라는 숫자는 외경문서(유대묵시 사상) II Enoch 33장, 바룩2서에 나온다. 랍비 유대교에서 에녹서는 토라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단적인 책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종말론은 신자의 죽음(인간론 개인의 종말)과 시간과 공간의 끝(창조의 종말)에 대한 진술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나타난 부당한 이해에 대해서 논의한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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