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성경] 이사야 23장 두로에 대한 경고
[1-3절] 두로(Tyre)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Tarshish)의 선척(船隻)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荒蕪)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Chittim)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니라.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Sidon) 상고(商賈)로 말미암아 부요(富饒)하게 된 너희 해변 거민(居民)들아, 잠잠(潛潛)하라. 시홀의 곡식(穀食) 곧 나일(Nile)의 추수(秋收)를 큰 물로 수운(輸運)하여 들였으니 열국(列國)의 시장(市場)이었도다.
23장은 두로에 대한 경고이다(The oracle concerning Tyre). 두로는 이스라엘 북쪽 국경 너머 지중해 연안의 나라이다. 다시스는 스페인의 타르테수스(Tartessus)나 이탈리아 서쪽 사디니아 섬일 것이라는 견해(아하로니)도 있으나, 소아시아 동남부 길리기아 다소로 보는 것이 성경 본문에 가장 맞는 것 같다(요세푸스, 매튜 풀). 그것은 두로와 무역했던 한 중요 도시이었다. 옛 시대에 세계 무역의 중심지인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사람들이 들어갈 곳도 없기 때문에 그 소식을 깃딤(Chittim) 땅 곧 구브로(Cyprus) 섬에서 들은 다시스의 뱃사람들은 슬피 부르짖을 것이다. 두로와 시돈은 애굽의 풍부한 곡물이 거래된 열국의 시장이었다. 오늘날의 중국의 홍콩처럼 각 나라의 상품들이 그 곳에서 거래되었다. 지중해 연안 나라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의 상인들 때문에 부요함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 두로의 멸망은 그들로 할 말을 잃게 하는 큰 충격이 될 것이다.
[4-7절]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보장(保障)이 말하기를 나는 구로(劬勞)하지 못하였으며 생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 남자들을 양육하지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니라.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을 인하여 통도(痛悼)하리로다.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거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유하던 성이냐?
‘바다의 보장(保障)’은 바다에서 견고한 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이 견고한 성 두로가 자녀들을 출산치 못하고 양육지 못하는 자가 됨으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두로의 멸망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애굽 사람들도 슬퍼할 것이다. 두로는 고대에 건설된 유서 깊은 성이며 ‘희락의 성’ 곧 그 부요와 세력으로 인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던 성이며 먼 지방까지 세력을 떨쳤던 성이었으나, 이제 그 거민들은 다시스로 도피할 것이며, 또 그로 인해 유여함을 얻었던 지중해 연안의 거민들은 그의 멸망을 인해 슬피 부르짖을 것이다.
두로(Tyre)는 페니키아(뵈니게)의 주요 성읍이다. 페니키아는 고대 해상 무역을 주도한 핵심 지역이다. 두로는 육지에서 500m 떨어진 섬으로 도시를 옮긴 상태였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공격을 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두로는 자주색 염료가 교역되는 핵심도시였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은 BC 586-BC 573, 13년을 포위한 뒤에야 함락시켰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7개월에 두로성을 함락시켰다. 알렉산더가 두로를 함락시킨 것은 섬과 거리 500M를 메립하는 방법이었다. 지금 구글 지도로 보면 두로는 섬이 아닌 육지로 보인다. 그것은 알렉산더가 매립한 흔적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8-12절] 면류관(冕旒冠)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商賈)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이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딸 다시스여, 나일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을 내려 그 견고한 성을 훼파하게 하시고 가라사대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는 두로를 ‘면류관을 씌우던 자’ 즉 다른 나라들을 부요하고 존귀하게 하였던 자이며 두로와 무역하던 자들이 각 나라의 방백과 귀족들이었음을 말하면서, 그 두로의 멸망이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멀리 떨어져 있던 다시스도 두로에게 속박을 당했었으나 이제 두로의 멸망으로 자유함을 누릴 것이다. 상인이라는 뜻을 가진 ‘가나안’은 두로 지역을 염두에 둔 말씀이며 ‘그 견고한 성’은 두로를 가리켰다고 본다. 학대받는 시돈은 두로로 인해 다시는 희락을 누리지 못할 것이며 그 거민들은 깃딤 곧 구브로 섬으로 도피할지라도 거기서도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13-14절]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였느니라[그 궁궐들을 헐었으며 그가 그것을 황무케 하셨느니라](원문).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너희 견고한 성’은 두로를 가리킨다. 13절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들을 사용해 두로를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하지만(재미슨-포셋-브라운, 박윤선), 하나님께서 갈대아인들의 땅을 황폐케 하신 것처럼 두로도 황폐케 하실 것이라는 뜻 같다(매튜 풀).
[15-18절]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같이 70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같이 될 것이라. 잊어버린바 되었던 기생 너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행하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케 하라 하였느니라. 70년이 필한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그가 다시 취리(取利)하여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資料, food), 잘 입을 자료(資料, clothes)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두로의 멸망뿐 아니라, 두로의 회복도 작정하셨다.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아보실 것이다. 두로는 70년 동안 잊혀져 있다가 다시 회복되어 물질적 유여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물질적 유여는 하나님께 거룩히 드려질 것이며 하나님 앞에 거하는 자들의 먹을 양식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데 쓰일 것이다. 이 예언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초대교회사를 쓴 유세비우스는 하나님의 교회가 두로에 세워졌고 그것의 많은 재물이 하나님께 바쳐졌고 전도 사역의 후원을 위해 드려졌다는 사실을 증거했다(교회사, 10.4).
두로의 옷감은 자주색(purple)으로 염색된 옷감이었다. 비싼 가격과 복잡한 공정 때문에 '자주색'은 왕족(royal family)이나 귀족(noble man)을 의미하는 색깔이었다. 자색 실은, 지중해 연안 뿔고둥에서 나오는 청 자주 천연 분비물로 염색했다. 자주옷감 뿐만 아니라, 자주색 분비물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들이 다수 있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기뻐하거나 자랑하지 말자. 두로는 한때 열국의 시장으로 부요했고 또 ‘바다의 보장,’ ‘희락의 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견고하고 즐거움이 넘친 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황무케 하셔서 집도 없고 어린 자녀들도 없고 그 거민들이 부끄러워하고 멀리 도피케 하시고 주위의 나라 사람들도 놀라고 슬퍼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이 일시적이고 헛됨을 알고 그것들을 기뻐하거나 자랑하지 말자. 전도서 1:2-3,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요한일서 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둘째, 우리는 오직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하자. 8-9절,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두로의 멸망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두로의 회복도 작정하셨다. 개인의 생사화복도, 국가의 흥망성쇠도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 안에 참 평안이 있고 형통과 영생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하자. 시편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사야 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셋째, 우리는 오직 겸손히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두로를 멸망시키신 까닭은 두로가 부요와 영광 속에 교만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부요해지면 교만해지고 음란과 쾌락주의에 빠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자.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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