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성경] 고린도전서 6장: 송사는 신중하게 그리고 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1절]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고린도 교회에는 성도간의 문제로 세상 법정에 소송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성도가 어떤 일로 다른 성도를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것은 의인이 불의한 자 앞에 판결을 구하는 옳지 않은 일이다. 성도들 간의 갈등의 문제는 성도들 앞에서 즉 교회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성도는 세상 법정보다 교회 법정을 더 크게 여겨야 한다.
한국 교회사에서는 소송 문제로 교단이 나뉘기도 했다. 원리와 실재에 대해서 잘 판단해야 한다.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않는 것은 원리이다. 그러나 실재는 세상 법정에 송사를 의뢰해야 할 때가 있다. 송사 문제의 유와 무로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2-3절]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성도는 마지막 심판 날에 세상 사람들을 판단할 것이며 악한 천사들도 판단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상호간의 일들을 판단치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 상호간의 일을 판단해야 한다. 성도는 양심을 깨끗이 씻음 받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바른 분별력과 판단력을 받았으므로 세상 사람들보다 더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성도는 세상을 능가하는 윤리 의식, 도덕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성도는 천사도 판단하는 아들의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 법정에 성도가 송사를 의뢰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4-5절]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교회가 성도간의 문제를 재판하기 위해 모였을 때, 교회는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워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 교회의 일들은 진리의 지식과 믿음과 지혜가 있는 자들을 세워 처리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바른 판단을 하고 일을 바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는 그런 자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기 적절하게 진리의 지식과 믿음과 지혜가 있는 자들을 세워 주실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송사 문제로 무질서가 발생한 것은 "권위의 은사"가 없기 때문이다. 권위가 권력이 되어서는 안되며, 권위자가 없으면 혼란을 통제할 현실적 권능이 없다.
[6-8절]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성도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고소하고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다. 죄씻음 받은 자들이 죄인들에게 판단 받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더 낫다.
사도 바울은 (1)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 (2) 차라리 혼인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다. 매우 원론적인 말씀인 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원리에 적용되어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9-10절]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속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말라코이)[여자 같은 남자들, 동성애자들, 미동(美童), 남창]나 남색하는 자(아르세노코이타이)[남자동성애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탐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욕]하는 자나 토색[강탈]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 ‘미혹을 받지 말라’는 말은 ‘속지 말라’는 뜻이다. 죄 가운데 머물러 죄의 낙을 누리면서도 구원 얻고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속는 생각이다. 사도 바울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의 죄악들을 열거한다.
첫째는 음란(the sexually immoral)이다. 음란은 결혼 관계 외의 성행위를 가리킨다. 오늘 시대는 매우 음란한 시대이다. 성도는 이 시대의 음란 풍조를 경계해야 한다. 음란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시험되는 환경을 피하는 것이다.
둘째는 우상숭배이다. 하나님 외의 다른 신에게 절하는 것, 조상의 혼령을 섬기는 제사와 차례, 점치는 것, 마리아의 무죄함, 승천, 중보자 됨을 믿고 그에게 기도함, 돈 사랑 등은 다 우상숭배에 해당한다.
셋째는 간음(adulterers)이다. 결혼한 사람이 자기 배우자가 아닌 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간음이며 이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악이다. 신명기 22:22,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넷째는 동성애이다. 본문은 두 개의 단어, 탐색(말라코스, effeminate, 여자같은)과 homosexuals를 사용해 동성애를 정죄한다. 레위기 20:13은 동성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악으로 규정했다. nor homosexuals, nor sodomites( NASB)로 번역했다.
다섯째는 도적질이다. 속여 취한 재물은 사람에게 결코 복이 되지 못한다. 잠언 20:17,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성도는 돈 셈이 정확해야 한다.
여섯째는 탐람[탐욕]이다. 그것은 더 가지려는 욕심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다(눅 12:15).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5).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우리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히 13:5).
일곱째는 술 취하는 것이다. 술 취함은 마약과 같이 바른 정신을 잃게 하고 많은 실수와 범죄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이다.
여덟째는 욕하는 것이다. 남을 비열하게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큰 악이다. 진실을 증거해야 할 경우, 부득이 정당한 비난을 해야 할 때가 있겠지만, 성도는 보통 다른 이에 대한 비난을 삼가는 것이 좋다.
아홉째는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다.
이상 10가지 형태의 악들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음심(淫心)과 탐심(貪心)"이 주요한 악의 원인이다. 이런 자들은 교회 속에 있어서도 안 된다. 교회는 충실한 권징으로 이런 자들을 배제하고 거룩한 회(會)가 되어야 한다.
[11절]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But you were washed, you were sanctified, you were justifi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by the Spirit of our God.(NIV)
본절 후반부는 원문에 “그러나 씻음을 받았고, 그러나 거룩해졌고, 그러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표현되었다. 성도는 다 과거에 죄인이었지만 그러나 지금 씻음을 받았고 지금 거룩하여졌고 지금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이것이 구원이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성령의 활동으로 된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불의한 행위 가운데,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요한일서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그러므로 구원 얻은 성도는 그 구원에 합당하게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지배를] 받지 아니하리라.
사람에게는 행동의 자유가 있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으나 자기에게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죄악되어 그에게 해를 준다. 죄악되지 않은 일들 중에도 절제하지 않으면 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지만 과식하면 자기에게 유익이 아니고 해가 된다. 취미 생활이나 오락도 너무 빠지면 신앙생활에 해가 된다. 성도가 돈을 버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돈에 종이 되지 말아야 하고, 또 육신의 쾌락에 종이 되지 말아야 한다.
[13-14절]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하나님께서]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하나님께서]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음식은 먹기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해 있다. 먹을 것이 없다면, 배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동안만 서로를 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위장병을 주시면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세상에 기근을 주셔도 위가 할 일이 없게 될 수 있다.
특히 우리의 몸은 음란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몸에 죄성이 있어서 언제나 음란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몸을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몸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부의 사랑이나 육신적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몸은 첫째로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하나님과 주 예수님께 순종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연약성을 아셨고 우리를 동정하셨고(히 4:15), 친히 우리를 위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의 몸을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의 몸과 같이 부활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같이 그 동일한 능력으로 모든 죽은 성도들을 영광스럽게 다시 살리실 것이다. 주의 재림의 날에 성도들은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다.
[15-16절]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더 놀라운 사실은, 구원 얻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고, 자기 몸을 창녀와 결합하여 더럽혀서는 안 된다.
[17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주와 합한다’는 말은 영적 연합을 가리킨다. 그것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주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뜻과 같고 성경에 자주 나오는 ‘주 안에’ 혹은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씀의 뜻과 같다. 이것은 주님과 우리의 인격적 구별을 부정하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실체적 연합은 불가능하다. 유한한 인간과 무한하신 하나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주와 한 영이 된다는 말씀은 단지 영적, 정신적 의미일 뿐이다.
[18절]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의 지체이기 때문에 자기 몸을 음행에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음행을 피해야 한다. 음행은 다른 죄들과 달리 자기 몸을 더럽힌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의 몸을 음행으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19-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전이며]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아님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되었음이라] (KJV, NASB) 그런즉 너희 몸으로[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전통본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NIV에서 your bodies로 번역한 것은 심각한 오역이다. σῶμα는 단수이다.
너희의 몸(your body)은 성령의 전(temples of the Holy Spirit)이며 주의 핏값으로 사신 바된 몸이다(고전 3:16; 행 20:28). 복수의 형제들의 한 몸이 성령의 전이다. 형제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은 한 믿음, 한 성령, 한 소망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일치를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우리가 이룬 주의 몸을 항상 거룩하게 보존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이다. 이사야 43:7은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말한다. 소요리문답 제1문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말하며(사 43:21),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죄인이 회개하는 것이며, 이단자가 돌아오는 것이다. 요한이서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을 포함한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성도들간의 소송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지 말고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을 얻은 자들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사함을 받았고 새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성도는 마지막 날 세상을 판단할 것이며 천사들도 판단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간의 문제를 세상 사람인 법관 앞에 판단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잘못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그런 일을 판단할 만한 진리의 지식과 믿음과 지혜를 가진 자들을 주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음란, 우상숭배, 간음, 동성애, 도적질, 탐심, 술취함, 욕설, 강탈 등의 죄를 범한 자를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하실 것이며 그가 사탄과 악령들을 위해 준비한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과 형벌은 매우 무서울 것이다. 지옥은 참으로 두려운 곳일 것이다. 우리는 다 과거에 지옥 가야 마땅했던 죄인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성령의 역사로 죄씻음을 받았고 거룩함을 얻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죄악을 멀리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사셨고 우리의 몸을 그의 지체가 되게 하셨고 성령께서는 우리 몸 속에 오셔서 우리의 몸을 그의 성전으로 삼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귀하고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음행과 같은 죄를 지음으로써 우리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하고 선하게 드려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즉 성경의 교훈대로 거룩하게 살고 선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과 하나님의 선한 일들에 사용해야 한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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