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다니엘 주석 11 강) 다니엘 2:44-46
1. 칼빈은 이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the eternal kingdom of Christ)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을 시도한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강력한 권세인 그리스도 왕국을 제시한다. 네 왕국(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은 한 왕국이고, 다섯째 왕국은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2.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움”은 신상과 다른 왕국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앗수르와 유다는 바벨론이 정복했다. 바벨론은 바사가, 바사는 헬라(알렉산더)가, 헬라는 로마가 정복했다. 이 모든 나라를 하나님께서 정복하고 영원히 망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유대인들도 인정한다고 제시했다. 그런데 그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 죽음은 대속의 죽음이었고, 부활을 계시하기 위한 죽음이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여 성령을 보내어 그리스도의 왕국을 설립하셨다. 그 왕국이 로마 제국을 정복하며, 영원한 왕국을 건설할 것이다.
2. 다니엘은 넷째 제국이 멸망될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계시에 의해서 정립시켰다. 칼빈은 넷째 왕국이 터키라는 견해에 대해서 반박했다. 그리고 로마를 의미한다고 제시했다.
4. 칼빈은 형제 안토니오(our brother Anthony)에 대해서 제시한다. 안토니오는 다섯째 왕국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제시했다. 다섯째 왕국은 네 왕국과 전혀 다른 성질임을 제시했다. 네 왕국은 비록 주인이 다를지라도 성질이 동일하다. 통치 수단은 더 잔인하고 강포하다. 혹자들은 현재는 신사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근대 가장 큰 세계 전쟁을 두 번이라 치렀다. 그리고 현재 세상 왕국은 교묘하고 탐욕적이다. 고대 왕국을 미개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 정신이 고대보다 더 탐욕적이고 부패하다고 평가해야 한다.
5. 다니엘 선지자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대망하도록 촉구했다. 헬라를 정복한 로마 제국이 등장할 때에 메시아 오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이 실현되었을 때 로마 제국에 편승했고, 그 제국에 메시아를 고발해서 죽게 했다.
6. 칼빈은 하나님의 계시가 이방인 바벨론 왕에게 나타난 것을 신비를 제시했다.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다니엘이 예언한 그 왕이라고 결론했다. 네 왕국은 가시적인 나라이지만, 그리스도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이지 않는 나라가 보이는 제국을 파괴한다고 결론할 것인가? 그리스도는 자기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요 18:36). 보이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왕국은 존재한다.
7. 칼빈은 어떤 랍비가 옥타비아누스 시대에 출생한 그리스도가 다니엘이 예언한 왕이라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는데, 무지와 어리석음을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칼빈은 유대인과 오랜 기간 동안 대화했으며, 경건함, 정직함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상식도 부족한 것으로 제시했다. 그런데도 날카롭고 영리하게 보이도록 되어 있는 랍비의 행동이 뻔뻔스럽다고 제시했다. 랍비는 그리스도가 아구스도 치하에서 출생한 것을 부당하게 결론했다.
8. 어떤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 등 여러 황제가 그리스도를 믿음을 고백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이 멸망되지 않음을 제시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선지자는 로마 제국이 분리될 것을 계시했다. 칼빈은 복음이 널리 선포되기 시작하면서 로마 제국 붕괴가 예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은 트로이안 시대(the time of Trojan the empire)부터 로마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통치하기 시작했다.
9. 그런데 로마 제국은 멸망했을까? 로마 제국은 멸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경은 로마 제국이 멸망했다고 선언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권세의 근원인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에 있다. 세상 왕국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지만, 하나님의 독생자는 부활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그 나라는 존재하지만 그 본질은 소멸했다. 왕국(kingdom)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국은 여전히 유효하며, 영원토록 유효하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영원할 것임은 다니엘이 받은 계시이고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 개념은 천년기를 배격하는 근본 문장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시간에서나 영원에서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보이는 나라는 소멸되지만, 새하늘과 새땅은 영원하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결코 잃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신다(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10. “손대지 아니한 돌”이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다(45절). 그것은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께서 장래의 일을 보여주신 것이다. 다니엘은 그 꿈이 참된 것이고 자신의 해석도 확실하다고 제언했다(45절). 계시와 해석이 일치되는 것이다. 다니엘의 해석은 성령의 특별 감동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해석도 계시적으로 확실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리스도의 왕국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립된 그리스도 왕국에 속한 백성으로 다니엘의 계시에 근거해서 보호하심과 양육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
11.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하며 예물과 향품을 제공했다(46절). 느부갓네살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꿈을 해석했기 때문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 공언(公言)에 의해서 다니엘을 존대하며 큰 선물을 제공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에게 절한 것은 정복자의 행동으로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꿈으로 느부갓네살은 정복된 포로에게 절을 해야 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 주신 꿈으로 겸손한 상태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칼빈은 느부갓네살이 겸손한 상태였다고 주석하기는 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계시 해석으로 잠시 만족했을 뿐 정복자의 탐욕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멸망을 예언한 다니엘의 계시를 들었지만 결코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구하지도 않았다. 미래에 있을 일로 현재 겸손하고 헌신하는 것은 쉽지 않다.
12. 전능하신 하나님, 주께서 주신 계시를 믿고 의지하나이다. 주의 계시를 받고 겸손하게 수용하며, 즉각 순종할 수 있게 하옵소서. 수 많은 불순종과 악인의 형통 속에서 거룩한 자녀로 설 수 있도록 복을 주옵소서. 복음의 선포와 성령의 인침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니 고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칼빈 다니엘 주석 12 강) 다니엘 2:47-3:1
1. 하나님의 계시를 느부갓네살이 받았지만, 정작 느부갓네살은 어떤 교만이나 자부심을 나타낼 수 없었다. 그리고 꿈을 해석한 다니엘 앞에 무릎을 꿇고 칭찬했다. 칼빈은 다니엘의 인격 속에 있는 하나님을 칭찬했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칼빈은 이 고백은 다니엘의 인격에 호소했기 때문에 죄를 완전히 용성받을 수 없다고 제시했다. 이러한 유사한 현상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도한 빌립에게서 나타난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나타낸 권능을 믿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 베드로 사도가 방문해서 성령이 없는 것을 보고 복음을 전했고 성령이 임했다(행 8:16-17). 불경건한 자들은 은혜를 잠시 볼 수는 있지만 구원받을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 자리잡으며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2. 칼빈은 느부갓네살의 믿음을 출애굽기의 바로와 비교했다. 느부갓네살은 바로처럼 완악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겸손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굴복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은혜가 없으면 스스로 최고신인 하나님께 가지 못하고, 바로 신을 꾸며 낸다(참고 기독교강요 1권 5장). 칼빈은 당시 교황주의자들이 하나님 한 분만을 고백하면서 예배를 강탈해간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칼빈은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에 준 영예는 부당하다고 결론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존경을 당연하게 받아야 하지만, 정도를 넘어서지 않도록 절제를 제시했다. 칼빈은 다니엘의 두 가지 행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째, 침묵으로 용인한 것인데, 그것은 바벨론 궁정에 익숙해 용인한 상태로 평가했다. 둘째,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않았지만 결사적으로 거절했다는 것이다. 칼빈은 다니엘의 상황에 대해서 규정하지 않으면서, 주의하지 않는다면 신성모독적인 영예에 참여하게 된다고 경계를 했다. 그럼에도 거룩한 선지자는 느부갓네살의 행위가 정당하지 않음을 지적했을 것으로 제시했다. 그것은 백부장 고넬료가 어부 베드로에게 절하려할 때 일을 비교했다(행 10:26). 하나님의 종은 영예가 바뀌는 것을 경계하며, 하나님의 영예를 받는 신성모독적인 행동을 금해야 한다.
3. 칼빈은 47절에서 느부갓네살의 고백과 하나님 찬양을 경건한 자의 경배와 구분시켰다. 불경건한 사람도 때때로는 임시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경배하는 것과는 구분해야 한다. 하나님을 순간(번개빛에) 인식할 수 있지만 미신에서 빠져 나올 만큼 확실하지 않다. 느부갓네살은 참으로 칭찬하는 마음과 함께 왕으로서 위용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 입술은 유익이 없는 짧은 찬양이던지, 가식적인(정무적인) 찬양이든지 할 것이다. 칼빈은 바벨론으로 끌려온 포로 대부분 유대인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을 떠났다고 분석했다. 소수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신앙을 유지했는데, 느부갓네살의 짧은 고백이 그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 지위를 갖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대인이 의심하는 하나님을 정복자 느부갓네살의 입에서 나왔다.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이요”, 느부갓네살의 고백은 고통 받고 있고 그리고 받을 유대인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이다.
4.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은밀한 것을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나타내셨다고 보고했다(47절). 칼빈은 비록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진정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밀하신 성령(the secret instinct of God’s Spirit)이 능력과 지혜를 표현하도록 자극을 받았다고 제시했다.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보다 뛰어나다고 고백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고백이 참되다고 인정했다. 기독교는 서기관들이 고백했던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죄 사함의 권세”(막 2장)를 진리로 채택하고 있다. 불신자의 입으로 고백한 하나님의 진리이지만, 그 불신자에게는 어떤 영적 유익이 없다. 예수는 바리새인의 가르침은 받고, 행위를 본받지 않도록 했다. 칼빈은 당시 교황주의자들에 대해서 변호하면서, 그들에게 임할 엄중한 심판을 알도록 제시했다. 칼빈은 불경건한 왕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인정한 것보다 더 나은 영광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5. 그리고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을 어떻게 높였는지를 보고한다(48-49절). 칼빈은 압제자의 제국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감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제시했다. 프랑스는 나찌 부역자들을 엄중하게 처결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1789-1794)으로 공화제를 창안했고, 1968년에 대의식전환을 이루었다(프랑스 68혁명). 권세를 소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유한 권세로 무엇을 어떻게 진행하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칼빈은 높은 영예에 돈이 결부됨을 제시하면서, 직무로 돈벌이를 하지 않도록 제언했다. 그리고 선지자와 교사들이 돈에 빠지는 것이 매우 쉬움을 제언했다. 돈에 빠진 사역자가 말씀의 질을 떨어뜨리고 부정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고후 2:17).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선물을 탐하지 않도록 경계시켰다. 선물이 탐욕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경계시켰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갈대인들에게 억눌림 당하는 것을 파악했고, 그 비참한 상황에서 구출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지방장관이 되는 것을 승낙했다. 주의 일을 위해서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필요하다(눅 16장).
6. 다니엘은 왕에게 세 친구를 청탁했고,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채택했다(49절). 칼빈은 다니엘이 돈을 목적으로 한 포석이 아니라, 압제받는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석했다. 바벨론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바벨론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했고, 바사에서 적당한 지위를 얻어서 생활할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70년이 된 후에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탈무드를 제작했고, 유능한 인재들이 바벨론에 체류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탈무드보다 더 권위를 갖는다. 다니엘의 선은 모두가 선한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원하는 목표, 메시아 혈통의 보존과 70년 뒤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그 선한 의도를 집행하면서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악이 기생하는 것까지 통제하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7.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는데(49절), “왕의 문을 지킨 것”으로 이해한 경우도 있다. 문지기는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높은 지위는 아니다. 바벨론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높은 지위에 있지는 않았다.
8. (단 3:1) 다니엘 3장은 느부갓네살이 금신상을 두라 평지에 세운 것에서 시작한다(3:1). 단 2장과 3장의 시간 차이는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2장 뒤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칼빈은 신상을 세움이 2장에서 몇 년, 상당한 기간이 지난 것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기간에 대해서 깊은 사색을 주의시켰다. 선지자가 침묵했기 때문이다.
9. 신상이 느부갓네살의 신격화인지, 바벨론의 주신 벨의 신상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신상으로 느부갓네살의 영광과 허영이 가득한 것은 사실이다. 칼빈은 미신적인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어떤 가치도 두지 않고, 오직 사람들에게 총애와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한다고 제시했다. 느부갓네살도 큰 금신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놀람을 선물하여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금신상에게 절함으로 강압적으로 굴종하도록 했다. 어떤 사람은 강압에 못 이겨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말 진심으로 금신상에 절하며 복(福)을 빌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무감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칼빈은 여기에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께 찬송한 것이 진정한 찬양이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주의 밝은 계시에 의해서 잠시 찬양을 했지만, 숨겼던 불경건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칼빈은 놀라운 고백이 마음을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건은 화려한 언술이 아니라 심장의 언술이다.
10.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마음 속에 숨겨진 허영과 거짓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부패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명철을 주옵시고, 그러한 부패를 제거할 수 있도록 주 예수의 피의 은혜를 주옵소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꾸준하기 마음 속에 더러움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고 흠없는 예배를 드리며, 깨끗한 양심으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하옵소서. 우리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주께서 주신 의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능력과 동역을 주옵소서. 그리고 하늘에 예비하신 참영광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형람서원 고경태
螢藍書院 五恩 高炅兌 형설청람(螢雪靑藍), ex fide in fidem
고경태 ktyhb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