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다니엘서 주석을 읽으며 진행하는 주일설교(1)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기록했다
칼빈은 다니엘서 주석을 1561년에 출판했다. 칼빈은 1535년에 프랑스를 떠나 망명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칼빈은 프랑스를 결코 잊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왜 칼빈은 프랑스를 사랑했는가? 그것은 인간된 근본이고 하나님께 주신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험한 망명길이 프랑스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익이 되었는데, 그것은 공부를 꾸준히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칼빈이 유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포로된 다니엘과 프랑스에서 망명한 자기 입장이 실존적으로 오버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악인이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자신이 시련의 용광로 속에 던져진 것처럼 느낄 떼 결코 슬퍼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과 세 친구가 보여준 순수한 예배를 사모한 것처럼 하나님께 드릴 순수한 예배(the pure worship of God)를 사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의 싸움이다. 우리는 유명한 자의 공적을 칭송하면서 그의 경건을 망각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이 탁월한 사람이지만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모습을 보아야 한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믿었고, 70년이 된 후에 다니엘은 그 사랑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칼빈은 다니엘의 일생이 자기의 인생과 연관되어, 프랑스에 결코 돌아가지 못할 슬픔이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를 결코 잊지 않았다. 칼빈의 마지막 작품이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1560년). 토마스 크랜머의 사위인 토마스 노턴(Thomas Norton, 1532-1584)이 29세에 <기독교강요>를 영어로 번역했다(1561년).
칼빈은 다니엘의 예언 부분(7-12장)이 바벨론 사람을 향한 것으로 이해했다. 승리로 교만한 바벨론 사람과 패자로 낙담한 유대인에게 준 것이 다니엘서의 예언 부분이다. 다니엘은 승자인 갈대아인 속에서 패자의 신인 하나님의 예언을 밝혔다. 다니엘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흐리게 하는 모든 세상 왕국은 멸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보편적 믿음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면서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허영심 가득한 행동일 뿐이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외모가 아닌 왕의 음성을 듣는 자로 영광을 받는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기에 역부족할 때에 그의 도우심을 구하며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참된 기독교를 세우기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이 역부족한 명령을 수행할 때, 두려워하지 말고 주신 능력 안에서 충성되게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할 것이다. 칼빈의 다니엘서 주석(1)을 읽으면서 <형람서원>
다니엘에게 보여준 환상의 목적은 하나님을 향해서 전쟁을 일으켰던 왕국을 무너뜨린 바위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고레스는 하나님을 향한 전쟁 유발자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는 일을 했다. 칼빈은 다니엘의 환난과 프랑스 망명한 프랑스 그리스도인의 환난을 교차시켰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구원의 날이 임박함을 믿은 다니엘을 묵상하며 위로와 격려했다(Post tenebras lux). 하나님의 예배를 모독하는 독재자의 횡포에 놀라지 말고, 불속에 던져져도 놀라지 않아야 한다. 마카비 왕조가 출범했어도 잔인한 학살로 의인들이 광야를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릇된 열성을 가진 자들에게 사탄이 침투하고 규합시켜 사악한 계략과 권위로 오히려 예배를 부패시켰다. 선지자로 말미암아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땅의 왕국을 기대했고. 선지자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왕국을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종들은 땅의 박해와 고난 속에서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흘린 보혈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며 예배하며 나그네 삶을 살 뿐이다. 자유롭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 심령 안에서, 정진하는 그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펼쳐진다(invisible the Kingdom of Christ, invisus Regnum Christi). 그 나라를 본 자는 그리스도인이고, 그 나라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은 자는 이방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나라를 보았기 때문에 그 나라를 세우려고 부단한 연단 속에서 믿음의 건축물을 짓는다. 그러나 냄새만 맡은 자는 흉내로 냄새를 재현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결코 냄새를 내지 못함을 인지하면서 각종 유사한 냄새를 만들어내는 우상공장을 세울 뿐이다.
다니엘서는 신약성경(인자), 요한계시록(인자의 오심)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점(起點)이다. “인자 人子”는 [개역](1961) 성경에서 187회 나온다. 구약에서 102회, 신약에서 85회 등장한다. 인자는 에스겔(93회), 시편(시 2:2, 8:4), 다니엘(3회, 7:13)에서 언급했다. 구약에서 인자는 “벤 아담”이고, 신약에서 인자는 “호 휘오스 투 안트로포스”이다. 구약에서는 호격(呼格)으로 사용하는데, 신약에서 인자는 예수께서 자신을 지칭할 때(일인칭 대명사) 사용하셨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자신(인자)을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막 2:10), 안식일의 주인(막 2:27-28),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막 10:45) 등으로 계시했다. 인자는 죄인과 세리의 친구이고, 병든 자를 치료해서 의인으로 만드는 의사이다. 인자는 구름타고 오시는 이이시다. 그런데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다시 인자로 구름타고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인자인지, 인자를 지시하는 선지자인지 신학자의 진술을 잘 분별해야 한다.
다니엘서의 저자는 다니엘 선지자이다. 칼빈이 다니엘서 주석을 프랑스 그리스도인에게 헌사 했는데, 망명한 프랑스인과 교황주의 아래에서 박해를 받는 프랑스 그리스도인들이 잘 오버랩된 것 같다. 칼빈은 프랑스의 압정을 피해서 망명했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과 복음에 대한 열정이 바울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보급했고, 올리베땅(Olivétan)이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에(1535년) 서문을 기록하며 참여했다. 칼빈의 동서 윌리엄 위팅햄(William Whittingham)는 영어권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영어로 번역하기 했다(The Geneva Bible, 1560년). 영국에서는 제네바성경에 대해서 자기 성경을 구축하기 위해서 번역한 것이 킹제임스성경(KJV)이다(1611년). 칼빈은 성경 번역이 언어 실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칼빈이 언어 실력을 인정해서 관심을 가지며 채용했던 카스텔리오이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하려는 것에는 부정적인 자세를 가졌다. 결국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 1515-1563)는 칼빈을 주도적으로 공격하는 인물이 되기도 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불순종함에도 사사를 보내어 통치했다. 백성이 왕이 구할 때에 허락하여 왕정을 유지했는데, 왕과 제사장이 결탁해서 불의를 일삼았다. 그래서 선지자를 보내어 율법 준수를 촉구했지만 불순종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했다. 개혁의 왕 요시야에게는 4 아들이 있었다. 요하난, 여호야김(엘리야김), 여호아하스(살룸), 시드기야였다. 여호야김의 애굽의 포로가 된 여호아하스를 대신해서 11년을 통치했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여고냐)이 18세에 왕이 되어 3개월 동안 치리하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11년 동안 반(反) 바벨론 정책을 펴다가 결국 멸망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남유대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유대인은 바벨론으로 유수(幽囚, Babylonian Exile)되었다. 유대인에게 매우 독특한 경험(바벨론에서 선지자 활동-다니엘과 에스겔)과 행동 양식(회당과 탈무드)이 발생했다. 최초로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고 간 것은 BC 605년으로 추정한다. 1차 포로는 왕족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고 갔다. 그리고 여호야긴이 왕위 등극한지 3개월 만에 BC 598년에 포로로 끌려갔다. 2차 포로에는 에스겔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3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그리고 BC 587에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함락 파괴되었고 시드기야와 포함해서 포로를 잡아 바벨론으로 이동시켰다.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에게 멸망당한 BC 538년까지를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70년을 첫 유수로 계산하여 산출한다. 다니엘은 1차 포로로 끌려가 70년을 바벨론에서 거주하며, 예레미야가 예언한 날 수가 채워지기를 사모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70년이 찾을 때에 바벨론은 예루살렘 귀환 길에 서지 못하고 바벨론에서 죽어야 했다. 마치 모세가 느보산에서 요단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바라보듯이, 오시는 인자를 고대하며 바벨론에 머물러야 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고위직이었을지 몰라도 총리 수준의 관리는 아니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 시대에 총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생사를 갖고 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바벨론의 관리였고,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킬 바사의 관리였다. 다니엘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가 겪은 36년의 강점기는 끝이 없는 기약이었다. 그 시대에 일제국주의에서 관리를 한 것이 그렇게 문제일까? 그 관리가 되기 위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민족의 고혈을 뽑았기 때문에 문제일 것이다. 일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보호한다고 선언한 것이 을사늑약(1905년)이고 병술국치(1910년)이다. 어떤 열강도 일제국주의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고, 미국은 테프트 가쓰라 밀약(Taft–Katsura agreement, 1905년)으로 필리핀과 나누기도 했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돕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장로 교회는 성도의 양심 자유를 보호하고 장려하는 것을 법의 제1원리로 세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지배국의 관리를 했을 지라도 배신자라고 하지 않은 것은 관리로 어떤 이득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앙으로 위기를 많이 맞았다. 경솔하게 행동한 믿음이 아니라, 매우 조용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행했지만 주변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애매한 고통을 받았다. 사자입에서 구출하심으로 열방에 주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선전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기록했다. 아람어도 있지만(단 2:4-7:28)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에는 느부갓네살의 꿈, 그의 미친 행동,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불솥), 벨사살의 잔치와 바벨론 멸망, 사자굴에 다니엘, 다니엘의 첫 묵시(7장)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아람어는 그 외 일부분에서 있다. 1세기 예루살렘에는 히브리어 성경이 없고, 헬라어 번역 70인경(LXX)와 아람어 번역(Targum)으로 구약성경을 읽었다.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파괴된 후에 히브리어로 구약을 편집한 것이 맛소라 사본(MT, Masoretic Text)이다.
다니엘서를 다니엘이 기록했다면 기록년도가 주전 6세기가 된다. 그런데 지금은 다니엘서 저작년도를 주전 2세기로 보려는 경향이 많다. 주전 2세기가 된다면 다니엘서의 저작은 다니엘 선지자가 아닌 다른 익명의 저자가 기록한 것이 될 것이다. 새관점학파의 톰 라이트는 특이하게 다니엘 저작으로 본다. 그는 70년을 70이레로 해석하면서 500년 뒤에 등장할 예수까지 늘리는 역사 이해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말라기에서 세례 요한까지 400년의 중간기를 무력화시켰다. 400년의 중간기에 대한 이해는 역사 이해, 신학 이해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와 로마 카톨릭의 구원사 이해에서 큰 차이를 가진 부분이다. 우리는 성경 66권으로 말라기에서 마태복음까지 어떤 정경도 없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천주교)는 말라기에서 마태복음까지 정경은 없지만, 연대기로는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상, 하, 다니엘(추가), 에스텔(추가) 등이 제2경전(第二經典, Deuterocanon)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의 구약성경은 7권이 더 있는 46권이다. 천주교는 제2경전이라고 부르는 것을 개신교에서는 외경(外經, Apocrypha)이라고 부른다. 루터파는 외경을 영적유익이 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칼빈파는 외경은 일반도서 수준으로 분류한다.
참고로 90년대에 유대교의 얌니야 회의에서 구약정경(TaNaKh)를 결정했는데 정경목록은 24권이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구약 39권에 목록은 적지만 분량은 같다. 천주교는 구약 46권 신약 27권으로 73권이고, 동방교회는 구약 50권, 신약 27권으로 77권이다. 개신교회는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66권이다. 즉 중간기 이해하는 방식을 따라서 정경 목록이 다르게 되었다. 그런데 톰 라이트는 다니엘서의 저작을 인정하면서 70년을 이레로 해석하면서 성경 66권에 중간기를 포함시키는 성경 역사 이해를 확립시켰다. 그래서 톰 라이트의 글을 보면 다니엘서의 저작성, 중간기 외경들의 저작에 대한 확정적인 개념이 없다. 다니엘서의 저자를 다니엘로 보는 것은 말라기에서 마태복음 사이, 400년 중간기에 어떤 정경도 없다(계시침묵)는 것을 견지하는 신학 태도이다.
다니엘서의 저자를 다니엘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학 함의를 갖고 있다. 톰 라이트처럼 다니엘 저자를 인정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느슨하고 타협적인 방식은 오히려 혼란을 제공하는 미혹의 방편으로 생각해도 된다. 이전 신학자들처럼 주전 2세기 익명의 저자라고 확정하는 방식이 더 학적으로나 양심적으로 양호하다.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 문서로 보려한다면 다니엘서의 저자를 다니엘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다니엘서를 묵시문학으로 분류한다면 주전 2세기에 익명의 저자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계시 문서로 보기 때문에, 합리보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백성에 대한 구원 경륜과 섭리 통치에 대한 지식을 추구한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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