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성경] 마태복음 22장. 율법의 완성, 다윗의 주이신 그리스도(찬 287)
1. [마 22:1-14] 혼인 잔치 비유. 예수께서 혼인잔치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임금은 아들 혼인 잔치에 많은 사람을 청했는데 청함 받은 사람들이 거절하면서, 왕의 종들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왕은 진노하여 그들을 심판하고 그 잔치에 참여하는 권리는 악함과 선함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10절). 왕의 청함을 거부할 위정관리가 누가 있을까? 이러한 일을 유대인들이 한 것이다. 그런데 왕의 청함을 받고 혼인 잔치에 입장하려는 모든 사람이 또 입장한 것이 아니었다(11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혼인 잔치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했다. 그는 유구무언으로 퇴출되었지만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았다(12-13절). 예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4절)”고 하셨다. ‘의복’이 무엇일까?는 해석이 분분하다. 필자는 ‘성령의 인침’으로 생각한다. 십자가의 피의 은혜를 입은 성령의 옷을 입은 성령과 진리의 사람이다(요 4:24).
2. [마 22:15-22] 세금으로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결탁함. 예수를 올무에 넣기 위해서 바리새인은 헤롯당과 결탁했다(15-16절). 바리새인은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하고, 헤롯당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거부하면 반역죄로 신고했다. 바리새인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깨는 우상숭배로 생각한 반면, 헤롯당원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납세 문제는 정치 종교적으로 예민한 이슈였다. 바리새인의 제자에게 예수께서 세금 낼 돈을 보여주라고 요구했다. 데나리온을 내 놓자(19절),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꾸짖었다(21절). 이 말씀을 들은 두 진영은 놀랍게 여겼지만 예수를 떠났다(22절).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눈으로 보아서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구절은 정교분리 원리로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예수께서 책망하는 가르침인데 정교분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은 것은 부당하다. 기독교는 천년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국교로 채택되어 운영되는 곳이 많다. 그럼에도 성속(聖俗)은 분리되지 않고 구분되어야 한다.
3. [마 22:23-33]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의 교만.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을 믿는 무리로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다. 바울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갈등을 유발시켜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행 23:6-10). 예수께서는 사두개인의 무지를 드러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주장하는 바리새인의 주장을 반격할 때 쓰던 난제로 공격했다. 계대제도와 사후관계에 대한 것이었다(25절). 이미 그들은 계대제도를 생명존중프로그램이 아니라 호기심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부활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없는 상태로 제시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신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살아있다. 사두개인들도 예수의 가르침에 놀랐다(33절).
4. [마 22:34-40] 큰 계명. 사두개인을 예수께서 제압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새인들이 모여 최고수가 예수를 시험했다(34-35절). 올무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36절).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시했다(마 7:12).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이 등장한다.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데, 두 계명은 하나이기도 하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 긴밀하게 연관되었다고 제시했다. 인식과 생활에서 하나님과 인간 이해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5. [마 22:41-46] 바리새인의 다윗의 자손. 바리새인은 다시 예수께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 질문했다(42절). 예수께서는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43절)라고 다시 질문했다. 바리새인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고, 묻지도 않았다. 돌이키지도 않았다. 주님께 배우면 회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보는 것이 크고 놀라운 일이지만, 가장 큰 것은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죄사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요 20:29).
6. 전능하신 하나님,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의 담력으로 예수 이름의 능력을 전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능욕을 참으셨습니다. 주의 택자를 구원함에 인내와 정진을 주옵소서. 땅끝까지 예수를 증언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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