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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트겐쉬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9)의 제시는 한국에서 신학하기(Korea Theology)에 적합한 문구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서 온다"
2. 한국에서 과거 기독교 정보를 수집하여 정리하면, 부분적이지만 바른 기독교(some good Christianity)를 정립할 수 있습니다. 현재 트렌드 기독교(Trend Christianity)를 추종하는 것은 바른 기독교에 설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언어는 문자가 아니다. 학문은 문자화(쓰기)이다. 문자는 저자의 사상(입체)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고 저장하는 수단이다. 비트겐쉬타인은 철학에서 언어 이해를 추구했는가 보다. 그러나 필자는 사상의 문자화(쓰기)와 그 문자를 해독(읽기)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자기 사상은 입체적이고 추상적이다. 그 사상(다면체)을 고형화된 평면이고 제한된 기호에 저장시키는 방법은 쉽지 않다. 혹시 그것을 그 문자에 저장시켰다 할지라도, 그 문자를 다시 사상화(다면체)로 복원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4, 비트겐쉬타인의 방법을 칼 바르트가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칼 바르트는 과거의 정보를 수집해서 정리했고,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시대를 여는데 사용했다. 과거를 정리한다고 해서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시대가 가능하다. 필자는 과거를 정리해서 과거를 복원하고 과거를 이해한 뒤에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추구한다. 바르트가 이해한 기독교 과거 이해는 틀렸다. 틀린 분석에 근거한 새로운 기독교 제시도 틀린 것이다.
5. 1세기 기독교를 18-19세기 유럽의 최고 지성들인 자유주의가 이해하여 정립하지 못했다. 결국 그 찬란한 이성주의의 꽃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세계전쟁을 두 번이나 치뤄야 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인간 지성의 몸부림이 새로운 기독교를 창안했다. 결국 과거 이해는 지성의 기초라고 보아야 한다. 필자는 개인의 과거사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출처 : 한국개혁신학 연구원
글쓴이 : 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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