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대한성경-39]신약 역사

형람서원 2016. 4. 2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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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경-39]신약 역사
고경태 목사(한국성경연구원)
기사입력 2016-04-20 오후 6:34:00 | 최종수정 2016-04-20 18:34  

생소한 믿음(fide aliena). 그리스도인은 자기 선택이 아니라 영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원 협약(pactum salutis)에 의해서 선택된 당사자에게 구주께서 은혜를 주었기 때문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수 있었다. 그 믿음은 전적으로 선물이어서 오직 은혜라고 한다( 2:8-9. sola gra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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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 역사는 1(예수 탄생) 100(사도 요한의 죽음)까지이다. 4년의 오차가 발생하여 예수 탄생은 B.C. 4년으로 잡는다. 그럼에도 간략하게 1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역사에서 2년 차이는 매우 당연하다.

1년에서 33년까지 예수께서 팔레스타인 지역(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거주하였다.통상 30세까지 개인 생활을 하였고( 3:23), 3년 동안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본다(세 번 예루살렘에 올라감). 예수께서 33년의 생을 보내셨다는 것은 성경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의 나이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카알 발트는 특히 하게 예수의 생애는 ‘A.D. 1-30으로 제시한다.

성경 기록으로는 정확한 시간 역사를 설정할 수 없다. 고린도에 있는 갈리오 비문을 중심으로 연대를 재구성하고 있다. 비문에 갈리오 총독이 A.D. 51~52년 봄까지 총독을 재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을 근거로 사도 바울도 그 당시에 고린도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18:1-18).

예수와 바울의 생애는 성경을 통해서 개략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생애의 재구성이 전기(傳記)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 기록의 목적이 예수를 믿도록 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제한시켰다( 21:25). 다만 바울의 생애는 사도행전과 서신서 등을 통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바울과 베드로 사도는 A.D. 64년경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바울의 생애는 신약 역사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신약 분야에서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예수 생애는 연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이유는 복음서 기록이 후대 제자들이 신학화하여 기록한 것으로 평가하고 또 후대 교회에서 더 첨가하여 형성된 문서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실제 모습을 구현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불가능하다. 요한 사도의 가르침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복음 전파로만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약 역사를 구성하려는 것은 인간이 이성을 가진 합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화의 진행해서 완전성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정하지만 완전성화를 위해서 전진한다. 이처럼 신약 역사를 재구성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신약 역사 재구성을 위해서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면서 구축하고 있다. 성경에서 허탄한 신화와 족보에 얽매이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학문을 한다(딤전 1:4, 4:7). 교회를 공격하는 적들의 내용을 알기 위한 소극적 학문 분야이다. 존 스토트는 유대 묵시 문헌(학가다Haggada, 희년의 책)을 허탄한 족보로 제시하였다(스토트,디모데전서,디도서강해. IVP).

2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요한 마가 동행을 놓고 심각하게 분쟁을 하였고 결국 사역단을 분리하였다. 사도행전은 바울만 조명하지만, 바나바와 마가는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전도 사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마가의 위치는 절대적이고 현재 콥틱교의 초대 교황은 마가이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울의 사역이 결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약 교회, 고대 교회는 사도들과 교회들의 공동협력구조로 진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사도들이 세운 교회는 한 믿음으로 형성된 한 교회였다. 그리고 박해를 받는 교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거짓 가르침에 대해서 정리하지 못하였다. 교회는300년 동안 심각한 박해를 받았다.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교회 안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 첫 문제는 예배 대상의 문제였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났다. 교회는 한 대상에게 예배해야 하는데, 신약 교회는 예수를 예배하고 있었다. 예수는 죄를 사한 구주(救主)이고 성령을 보내시는 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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