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김세윤 교수에 관한 신문 발표에 근거한 대한 소고

형람서원 2016. 4. 23.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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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교수에 관한 신문 발표에 근거한 대한 소고
고경태 목사(한국성경연구원)
기사입력 2016-04-20 오후 12:45:00 | 최종수정 2016-04-20 오후 9:47:33  

크리스찬투데이에 올라온 "칭의는 성화와 병행어이자 통합체"라는 기사를 보면서 정리했다.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0398/20160418/%EC%B9%AD%EC%9D%98%EB%8A%94-%EC%84%B1%ED%99%94%EC%99%80-%EB%B3%91%ED%96%89%EC%96%B4-%EC%9C%A4%EB%A6%AC%EC%99%80-%ED%95%98%EB%82%98%EC%9D%98-%ED%86%B5%ED%95%A9%EC%B2%B4.htm


한국 교회는 김세윤의 신학이 새관점 학파(NPP)의 견해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과 세계 신학계에서 대세는 새관점 학파의 견해이다. 김세윤 교수는 탁월한 신학자이지만 이제 신 신학(새관점)의 주류에서는 벗어난 의견이다. 성화를 강조하고 한국 교회의 부패를 지적하기 때문에 선지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새관점 학파는 더 과격하게 성화와 사회개혁을 주장한다. 기독교 목표는 성화, 사회개혁, 교회개혁에 있지 않고, ‘믿음 대상이 영광을 받는데 있다. 자기 믿음 대상을 밝히고 어떻게 하면 믿음 대상이 영광을 받을지를 제안해야 한다. 


1. 김세윤은 칭의론 정립을 한국교회에 제안하였다. 그렇다면 이전 한국교회의 칭의 개념은 무엇일까?

=> 한국교회의 칭의 개념은 박형룡 박사에 의해서 신학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박 박사의 견해는 루이스 벌콥의 개념이다. 루이스 벌콥은 네델란드 계열의 개혁파 신학이고,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 이전에 돌트 회의(1619), 그리고 칼빈까지 이른다. 칭의는 구원론에서 어떻게 죄인이 의인이 되는가?에 대한 종교개혁의 몸부림이었다. 루터의 명제인 이신칭의를 개신교는 받는다(articulus constitutivus ecclesiae). 루터는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는 하박국, 로마서의 말씀으로 정립하였고, 죄인과 의인이 관계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도식으로 정립하였다. 칼빈에게 와서 매우 철저하게 성화가 강조되었다(기독교강요 3). 죄인이 의인이 되는 방법은 오직 은혜와 믿음이었다. 구원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경륜에서 이루어진 예정과 역사에 있는 교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김세윤은 이러한 개념을 하나님 나라로 틀을 전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참고로 김세윤은 자신이 진리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기 제안이고, 현재보다 더 좋은 수준에서 제안한 것 뿐이다.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다. 복음 선포는 설교자가 진리를 선포한다. 이것을 독단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행위자와 판단자가 잘 교류를 해야 할 부분이다.) 김세윤이 이해한 하나님 나라 개념에 대해서 정립해야 한다. 필자가 이해하는 김세윤의 하나님 나라는 유대묵시문학에 있는 초인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초인은 하늘에서 구름타고 내려오는 초인인데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초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이 땅에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현세에서 올 미래를 기다리는 나라이다. 그 사인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사탄의 세력을 죽음으로 괴멸시켰다(이것은 교회가 신학화하여 인류에 공헌한 것이다). 


2. 김세윤은 칭의를 주권적 전이로 제안하였다.

=> 전통적인 칭의 개념은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세윤 구도에서 칭의는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사탄에서 예수로 바뀌는 것이다. 전자에서 죄인이 의인으로 바뀌는 것에 대한 논쟁에서 절대주권과 협력구원이 논쟁한다. 그러나 김세윤에게는주도구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미 예수가 죽음으로 펼쳐놓은 구원세계에 참여하는 결단을 하면 될 것이다.

 주권적 전이에서는 전통적인 죄인의 개념은 없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생각은 인류 보편적인 개념이다. 김세윤은 자기 죄인의 개념을 제시한다. 김세윤에게 죄는 자신이 무한한 자원인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원으로 생존하려는 욕심이다(참고 김세윤, 구원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인 개념에서 죄는 창조주 하나님께 반역하여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은 것이다(참고 서철원, 인간:하나님의 형상). 


3. 김세윤의 칭의론은 성화와 병행한다고 주장하지만, 유보된 칭의에서는 성화만의 구도이다.

=> 김세윤의 칭의 개념을 최덕성 박사는 유보적 칭의론이라고 비판하였다. 김세윤은 칭의가 최후의 심판까지 유보된 것으로 제시한다. 칭의에 대해서 유보한다는 견해이고, 최 박사는 이것을 유보적 칭의론으로 정립시켰다. 김세윤은 자신의 칭의론을 하나님 나라에 입각한 올바른 칭의론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칭의가 성화와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런데 칭의가 유보되었기 때문에 성화와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를 진행하다가 후대에 칭의를 만나는 구도로 제시해야 한다. 김세윤은 전통적인 칭의가 세례 받을 때 끝나는 방식으로 법정적 칭의를 제시하는데, 부당하고 얍삽한 표현이다. 법정적 칭의는 곧 성화와 연결되는 구도이다. 세례를 반복해서 하지 않지만 성찬을 반복해서 시행하는 구도이다. 김세윤의 구도에서 기독교 세례는 입문 형식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성화 후에 최종 칭의가 된다는 것은 예수께서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 될 것이다.

김세윤은 성화 뒤에 칭의가 온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칭의와 성화가 병행한다는 제안은 논리로 맞지 않는다. 혹 제시한다면 성화와 칭의가 병행한다는 것은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칼빈 신학에서는 중생으로 칭의와 성화가 한 묶음으로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런 개념은 칭의와 성화가 병행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종교개혁의 완성 종교개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완전하다고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한 개혁을 주장하는 신학이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이다. ‘Reformed’를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신학을 완성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틀을 사랑하고 세우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틀까지 바꾸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파괴이다.

루터와 칼빈 신학이 다른데, 칼빈은 이중예정까지 진행한 것이다. ‘이신칭의와 이중예정은 매우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관된다. 루터 신학은 이신칭의라고 하고, 칼빈 신학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신학이라고 한다. 두 명제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칼빈파이고, 이신칭의에 머문 부류가 루터파이다. 칼빈파는 이중예정을 더 발전시켜 전택설과 후택설까지 나가기도 하였고, 구원협약(pactum salutis)를 정립하였다. 서철원 박사는 칼빈의 언약 사상을 코케이우스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구도로 제시한 것을 다시 첫언약과 새언약 구도로 제안하였다. 그러나 김세윤 신학에는 이러한 신학 내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는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이라는 말은 부당하고, ‘파괴 후 재건립 즉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해야 한다.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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